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02)
부르릉─
작고 귀여운 소니타의 기분 좋은 배기음이 들려왔다.
때깔 좋은 자동차를 운전해서 템페스트 엔터로 향했다.
“흠, 어제 너무 큰 걸 잃어버린 느낌이야.”
정 실장님 집에 방문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어.
다음엔 집에서 요리 안 해줄 거 같은데.
직접 해주신 파스타를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은데.
개밥 같아도 졸라 맛있다고 해줄 자신 있는데.
하여튼, 다음에는 반드시….!
“그래도 차는 예쁜 거 골라주셨네.”
…. 는 내가 골랐구나.
파란색 소니타.
운전도 젬병이고 해서, 택시나 대중교통만 타고 다녔는데.
막상 차를 뽑고 나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3천만 원짜리 승용차.
내가 버는 돈에 비해 그렇게 비싼 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 차를 빌려 탔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과분하다.
끼이익─
기분 좋게 정 실장님 스포츠카 옆에 차를 세우…. 헛.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옆 차와의 간격이 말도 안 되게 가까운 것 같은데.
지이이잉─
곧바로 창문을 열고 목을 주욱 빼서 확인했다.
“후우….”
다행히도 일단 생존에 성공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옆 차에 닿을락 말락 하는 모습.
“나는 할 수 있다. 천천히 가면 된다고.”
본인 방금 전에 소니타로 스포츠카 긁는 상상함.
덜덜덜─
이전까지 아름다웠던 자동차 배기음은 덜덜 떨리는 내 심정을 대변했다.
이어서, 조심스럽게 브레이크를 떼면서 주차를 하는데 성공했다.
“와 씨, 죽을 뻔했네.”
면허 딴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아니면 어제 본 운전 너튜버가 잘못 알려줘서 그런가.
비 올 때는 무조건 창문을 열고 한쪽 팔을 걸치라는 가오남.
주차는 무조건 한방컷으로 하라는 너튜브 채널 주인놈.
“…. 차 산지 하루 만에 강제로 팔림 당할 뻔.”
스포츠카 긁었으면 수리비 얼마나 나왔으려나.
어쩌면 소니타를 팔아도 못 갚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론은,
“생존 성공.”
3천만 원 벌었다.
차 산지 하루 만에 정 실장님 노예될 뻔.
잠시 후,
작업실에 들자마자 효주와 밍쁨이 인사를 건넸다.
“작가님, 오셨어요?”
“오빠!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탑 텐!!!”
“응?”
효주는 쪼르르 달려와서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통합 랭크 10 :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대박! 디지니 전체 컨텐츠 탑텐이요, 탑텐!!!”
“…. 그러네.”
뭔가 기쁘긴 기쁜데, 솔직히 실감이 잘 안 난다.
전 세계적인 디지니 플레이 전체 10등이라니.
그냥 한 번 더 시스템이 시스템 한 거 아닐까.
“오빠! 마블이랑 픽사만 빼면 그냥 1등이에요!”
“그래?”
“뭐, 뭐지….? 안 기쁘세요?”
“당연히 기쁘지. 실감이 안 나서 그래.”
마블과 픽사.
디지니의 근본이자 언젠가 내가 넘어야 할 산.
“흠, 잘됐구만.”
흐뭇한 표정으로 효주 어깨를 토닥거리고 스케줄을 확인했다.
1. KBC 드라마 미팅.
2. 마법소녀 촬영장.
(특이사항) 퍼플걸스 세미 방문.
“세미 씨가 방문한다고?”
“아, 무슨 예능 촬영 찍으러 오신대요.”
“여기서?”
“네. 지성호 배우님이랑 같이 찍는 예능이라서.”
“아…. 순정마초 조합이네.”
이제 영화 촬영도 끝나서 그런가.
예능 찍으면서 홍보도 하시겠네.
‘기생벌레, 이름부터 멋있잖아.’
그때,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밍쁨과 눈을 마주쳤다.
“흠, 은빈쓰? 할 말 있남?”
“네! 그, 저번에 말씀하셨잖아요.”
“응?”
밍쁨은 대본을 보여주면서 말을 이었다.
“이거 순정마초 대본 제가 혼자 써본 건데.”
“아, 맞다. 봐주기로 했었지.”
옛날부터 내가 종종 해왔던 훈련이랑 비슷했다.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 혼자 대본을 써보는 연습.
“마침 시간 좀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곧이어, 밍쁨이 건넨 대본을 펼쳐 천천히 확인했다.
‘순정마초, 추억 돋네.’
처음 시스템을 얻고 공부해 가면서 스스로 대본을 쓰던 시절.
그때 영상을 보고 나서 나 혼자 연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촤라락─
한 장씩 넘기며 천천히 보던 중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음…. 괜찮은데?”
“정말요?”
“응. 근데 아쉬운 점은 캐릭터 간의 티키타카가 어색해.”
“그쵸? 저도 그게 좀 아쉬웠어요.”
“음, 그거 말고도….”
밍쁨에게 부족한 점을 설명하면서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시스템이 내어준 드라마는 전개나 스토리, 내용상 완벽한 규격.
덕분에, 내가 연습했던 대본에서는 딱히 부족한 점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실제 시스템으로 쓴 대본과 비교해도 우월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밍쁨, 이 친구도….’
TVM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탈 만큼 재능 있는 친구잖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완벽해야 하지 않나.
“은빈아.”
“네?”
“이 대본 한번 볼래?”
“어떤 거요?”
“네가 준 거랑 같은 드라마에, 같은 파트야.”
“아하.”
내가 시스템을 보고 혼자 쓴 대본이 떠올랐다.
이론상 별다를 게 없는 게 정상이니까.
“내가 쓴 건 아니고, 어떤 작가 지망생이 나한테 봐달라고 한 거야.”
“아, 네!”
내가 썼다고 하면 선입견을 품을까 봐 그렇게 말했는데.
잠시 후.
“음…. 제가 쓴 거보다 훨씬 좋은데요?”
“그래?”
“네. 거의 원본 대본처럼 완벽에 가까워요.”
“….”
“그냥 보고 옮긴 건 아니에요?”
“그 정도야?”
“네. 딱 봐도 잘 썼잖아요.”
“….”
“진짜 작가 지망생 맞아요? 재능러 같은데.”
뭔가 기분이 묘하네.
항상 내 실력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시스템을 얻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래, 그러고 보니까 나도 내가 쓴 대본으로….’
TVM 공모전 대상을 탔는데, 그게 우연일까?
케이블 방송국 중에 세 손가락인데?
게다가 캠커사 시즌 2도 거의 다 내가 썼잖아.
‘어쩌면….’
스윽─
나는 조용히 노트북에 잠들어 있는 어떤 대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쁜 남자의 사랑법」
TVM 단막극 공모전에서 대상을 탄 내 작품.
언젠가 16부작으로 제작하길 바랐던 대본.
‘진짜…. 한번 도전해 볼까.’
어쩌면 시스템이라는 초월적인 힘에 매몰돼서 스스로의 한계를 가두었던 건 아닐까.
* * *
새롬은 미팅 장소에 가려고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 차…. 뭐 이렇게 바짝 댄 거지? 문을 열 수가 없잖아.”
곧바로 전화를 걸까 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아는 차였다.
“아, 이 차….”
파란색 소니타.
김진우 작가의 첫차.
‘…. 어쩔 수 없지.’
할 수 없이 조수석으로 타야겠네.
얼마 전, 김진우의 기부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에 대한 모든 게 관대해졌다.
가벼운 성격과 말투조차, 성숙한 내면을 가리기 위한 위대한 성인의 가면이 아닐까 싶을 만큼.
새롬은 어릴 때부터 돈의 가치에 대해 엄격하게 배우고 자랐다.
그녀가 36억 기부보다 놀랐던 점은 남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
재벌의 관점에서 ‘의미 없는 행동’을 한 진우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잠시 후,
약속 시각에 맞춰 KBC에서 미팅을 가졌다.
주 국장님과 국 감독님이 도착하기 전.
터벅, 터벅─
“하아암. 실장님 오뎠더요?”
“…. 네. 빨리 오셨네요.”
피곤한 듯 입을 쩌억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다가오는 진우.
심지어, 그런 모습조차 왠지 모르게 기품이 느껴졌….
‘음, 그 정돈 아니고.’
진우는 오늘따라 배가 고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 식사도 안 하셨어요?”
“네. 아직.”
밥도 안 먹고 열심히 일해서 또 기부하려는 건가.
“밥 사드실 돈까지 전부 남을 위해 쓰는 건 아니죠….?”
“네? 갑자기 무슨?”
“…. 그래요. 본인 선택이니까 존중할게요.”
“????”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표정을 짓는 김진우 작가.
‘연기도 잘하시네.’
작가가 아니라 배우를 해도 될 것 같아.
기부 사실을 이렇게까지 숨기다니.
전 재산의 태반을 사회에 환원하고 내색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냥 가벼운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동안 생각했던 김진우라는 사람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인격적으로 이렇게 성숙한 분인 줄은 제가 미처 몰라뵈었네요”
“무슨 댕소리세요.”
“…. 혹시 배고프면 말씀하세요. 밥은 언제든지 사줄게요.”
“진짜로?”
“물론이죠.”
“오오, 그럼 저번에 말했던 스파게티!”
“그래요. 다음에….”
“직접 요리해주시는 거예요?”
30억을 기부하고 스파게티로 만족하는 소박함이란.
“10인분도 해줄게요.”
“음, 그 정도까진 필요 없는데.”
“든든하게 드셔야죠.”
“???”
새롬의 표정에는 모순적인 감정이 뒤섞였다.
가난한 예술가와 위대한 성인을 동시에 보는 듯한 시선.
한편, 진우는 대체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나한테 왜 이러시지.’
누가 보면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해주는 것 마냥….
‘…. 리얼로?’
끼이익─
곧이어, 주 국장과 국 감독이 함께 미팅룸에 들었다.
“허허, 일찍 오셨네들.”
“아뇨.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새롬과 주 국장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제 슬슬 캐스팅을 마무리해도 될 것 같은데.”
“음, 아직 선조 역할은 마땅한 인재를 못 찾았네요.”
“그럼 차라리 오디션을….?”
“아뇨. 오디션을 채울 배역은 아니죠.”
“고민이 많네요.”
다행히 제작비는 충분히 충당이 가능했다.
KBC에서 회당 2억 5천만 원.
주상 미디어와 템페스트를 합쳐서 자본금 50억.
그 외 끊임없이 들어오는 기타 투자사와 PPL 요청까지.
‘이 정도 돈이면 내가 본 시스템에서 표현한 전쟁씬도 충분히….!’
현대와 사극 양쪽에서 드라마를 찍게 되었으니.
투자금을 모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 뿐만 아니라 김진우 작가의 이름값도 워낙 올랐기에.
“캐스팅만 마치면 바로 제작 들어가시죠.”
* * *
KBC 방송국에서 드라마 미팅을 마친 뒤.
나는 직접 운전해서 마법소녀 세트장을 방문했다.
‘오늘 진짜 실장님이 나한테 왜 그러실까.’
그냥 직접적으로 여쭤볼까.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왜 말을 모태!
터벅, 터벅─
현장에 도착했을 때, 효주는 먼저 와서 음료수를 돌리고 있었다.
“잘하네. 누가 키웠나.”
일단 내가 키운 건 아니겠지만.
마침, 여민서는 송 감독님의 큐 사인을 받고 연기를 하고 있었다.
분홍색 붙임 머리와 꽉 끼는 스판 복장으로 차려입은 모습.
‘복장이 참 잘 어울리네.’
그녀의 뒤로 초록색 바다가 펼쳐졌다.
전부 CG로 덮어버릴 배경이었으니.
콘티와 프리 비주얼 작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게 아니면 배우들은 자신이 무슨 연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쌩쇼하는 기분이겠지.
한 장면이 끝나고 여민서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민서 씨, 핑크 머리가 잘 어울리네요.”
“…. 지금 놀리는 거예요?”
“네? 제가 왜 놀려요?”
100% 진심을 담은 칭찬이었는데.
“…. 제가 요즘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래요.”
“음.”
의도치 않게 이런 연기를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네.
어떻게 격려해야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실까.
“아마, 여민서 씨가 아니라면 아무도 마법소녀 역을 소화하지 못할 거예요.”
시스템이 공인한 맞춤형 배우.
베네핏으로 보니까 항목별 스탯도 어마어마하시던데.
“참 고맙네요.”
싸늘하게 대답하는 걸 보니 이게 아닌 것 같다.
“진심이예요. 진짜 잘 어울려요.”
“아 쫌, 그만 좀 하세요.”
여민서는 나랑 대화하는 사이에 얼굴이 더욱더 붉어졌다.
그런 상태로 다음 촬영 장면에 들어가는 그녀를 확인했는데.
곧이어, 송 감독님이 손짓하면서 나를 불렀다.
“저기, 작가님 잠시만요.”
“저요?”
“네!”
나를 부르는 소리에, 주뼛거리며 다가갔는데.
“음, 작가님. 민서 씨한테 칭찬 좀 해주세요.”
조금은 황당한 주문을 하는 감독님에게 반문했다.
“…. 무슨 소리예요?”
“방금 연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네?”
“바뀐 건 작가님이랑 대화하고 더 부끄러워하는 게 전부인데.”
“….”
“작가님이 민서 씨 칭찬을 좀 더 해주세요.”
“지, 지금요?”
“네.”
살면서 이런 부탁은 처음 들어보는데 뭐라고 칭찬을 해야 하나.
“여민서 씨! 복장이 나이스!!!”
찌릿─
날카롭게 째려보는 여민서의 눈을 살며시 피했다.
‘아니, 뭐여.’
시켜서 한 건데 개억울하네.
이어서, 붉어진 얼굴로 대사를 치는 여민서.
“다, 다시는 마법소녀를 무시하지 마라!”
“우리가 잘못했다. 사과할게. 미안합니다.”
“그래도 안 봐줘!”
“꾸엑.”
거대한 괴인 형상의 탈을 쓰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엑스트라는 픽- 하고 쓰러졌다.
“오케이, 컷! 너무 좋았어요!”
스탭들과 여민서는 송 감독님의 지시에 따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스윽─
“읭?”
아, 왜 또 보세요.
“작가님, 한번 더요.”
“아니, 또 하면 맞을 것 같은데요.”
“영화 완성도가 먼저 아니겠습니까?”
“….”
한숨 돌리는 여민서는 다음 촬영을 위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여민서 씨!”
“아, 하지 말라고!”
“…. 넹.”
거봐요,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요.
* * *
넥플렉스의 극작가 에미코는 기사를 보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왜 자꾸 비교질이야!”
김진우랑 자신을 자꾸만 비교하는 기자들에게 화가 났다.
아무리 그래도 데뷔한 지 1년 된 작가랑 비교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일본에서 극작가로 활동했던 3년 동안 정상에서 내려와 본 기억이 없으니.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
작년에 대박 난 김진우 작가의 데뷔작.
심지어 일본에서 리메이크까지 되었으니.
“제목도 거지 같이 지어가지고.”
일본에서 순정마초와 회귀자가 히트쳤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도 작년에 메가 히트작을 가뿐하게 뽑아냈으니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뭐, 일본에서 성공한 건 인정해.”
사실, 그동안 김진우 작가의 작품은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굳이 다른 나라의 드라마를 볼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그런데, 그녀는 「겨울의 연가」 때도 K-드라마에 딱히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젊은 나이대보다는 40, 50대 여성을 겨냥한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래. 한번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한다.”
삑─
디지니 플레이에 가입해서 티비로 순정마초 리메이크 버전을 틀었다.
일본에서 제법 유명한 배우가 등장해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그저 배우빨로 밀어붙이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음, 나쁘진 않네.’
어느새 첫 방송이 끝나고, 최근에 방영된 4회분까지 몰아서 봤다.
‘…. 원작은 얼마나 재밌는 거야?’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디지니 플레이 어플을 다운받았다.
‘최신작 보고 노잼이면 바로 끈다.’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일본인으로서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영상을 틀고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시간이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 어라?”
분명히 밤이었는데, 왜 해가 떠 있냐.
아니 그런 건 어찌 됐든 잘 모르겠고.
“이런 씨! 이거 왜 8부작인데!”
결말도 흐지부지 끝낸 거 보면 다음 시즌을 준비한 것 같은데.
“좋은 말로 할 때 시즌 투 내놔라.”
…. 어이없네.
그동안 김진우의 드라마는 의식적으로 보지 않았건만.
자존심이고 뭐고 그의 전작을 눌러볼 수밖에 없었다.
순정마초는 리메이크판으로 볼 거니까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부터.
이틀 뒤.
결국 순정마초의 원작까지 전부 다 본 에미코는 본인 SNS 계정에 하나의 게시글을 올렸다.
《JWK, Respect—!!!》
#Emiko #Drama #Diziney
해당 게시글의 댓글에는 JWK가 누군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다.
해시태그를 보고 대부분은 진우킴이라고 생각했으나.
일본의 일부 네티즌들은 절대 아니라고 격렬하게 거부했다.
* * *
“사극 대본도 세 편밖에 안 남았네.”
이번 대본만 다 쓰면 당분간은 촬영장에 자주 들러야겠다.
송 감독님이 촬영장에 종종 들러서 여민서를 놀려달-, 아니, 격려해달라고 했으니까.
‘슬슬 사극도 제작할 타이밍이고.’
일단 캐스팅이 잘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순신 역에 유동건 배우님.
류성룡 역에 이경윤 배우님.
그 외, 선조 역할 정도는 내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
당분간 새 작품을 생각하기보다는 제작 중인 작품에 집중해야지.
터벅, 터벅─
어느새 템페스트 엔터에 도착했을 때, 로비에서 뜻밖의 인물을 발견했다.
내게 시스템을 안겨준 천상 아이돌, 세미 씨.
지성호와 함께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다.
‘예능 촬영인가.’
한쪽 어깨에 숄더백을 메고, 막대사탕을 들고 있는 모습.
흰색 반팔 크롭티에 맵시 좋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녀.
솔직히, 막대사탕을 왜 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방긋 웃는 미소와 잘 어울렸다.
촬영 중이라서 일부러 피해서 빙 돌아가고 있었는데.
오히려 세미 씨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작가님!!!”
방송 중에 인사해도 되는 건가.
생각보다 편한 분위기의 예능 촬영인 듯싶다.
카메라 감독님도 덤덤하게 나를 비추는 걸 보면.
“세미 씨.”
“아앗, 마침 잘됐다!”
“네?”
“이거 시사회 티켓이에요!”
“아, 기생벌레?”
“네!”
“감사해요.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헤헤.”
그럼 봉진호 감독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건가.
두근─
그때, 새로운 감각이 내 심장을 가볍게 두드렸다.
처음 세미 씨를 만났을 때 시스템이 보냈던 신호와 같은.
‘뭐지, 새 작품인가?’
아니, 뭔가 달랐다.
언제나 예외 없이 알림창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는데, 이번에는.
“…. 작가님?”
“아, 세미 씨.”
띵동─
이내, 그녀의 앞에서 시스템은 새로운 임무를 던져주었다.
【‘인정받기, 2단계!’ 임무를 발견했습니다.】
【미션 : 당신이 직접 쓴 대본의 주연 배우에게 인정받으세요. (0/2)】
【제한 시간 : 30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내가 직접 쓴 대본의 주연 배우….?
그러니까, 「나쁜 남자의 사랑법」 여주인공을 시스템이 정했다는 건가.
‘아니, 이 친구야.’
이거 세미 씨한테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이제 순정마초 찍을 때의 그 세미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