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06)
강남의 한 카페.
길주창 PD를 기다리면서 내가 얻은 베네핏을 회상했다.
【장르 선택권 (1회 한정)】
선택권을 얻고 나서부터 꽤 오랫동안 무슨 대본을 쓸지 고민했다.
어떤 작품이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시스템으로 공부하기 좋은….’
액션이나 연출보다는 대본이 중요한 장르.
톡톡 튀는 대사와 티키타카.
여러 가지 사건들과 아이디어.
다양한 캐릭터들의 활용법.
이왕이면 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장편 시트콤이라던가….’
대략 30분짜리 영상에 두 가지 사건이 터지며 재미를 유발하는 시트콤.
캐빨, 먹방, 대학, 회사, 연예계, 로맨스, 막장까지.
대충 떠오르는 것만 해도, 아우를 수 있는 범위가 무한하다.
‘그럼 시스템으로 공부하기에도 좋고.’
현재로서 시스템을 극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저기…. 혹시 김진우 작가님?”
“네?”
그때,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팬이에요!”
“아.”
“글 쓰러 어디까지 가봤어도 봤고, 다른 드라마들도….”
일부러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않아서 그런가.
이제는 종종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다.
기분 좋네.
“싸인해드릴까요?”
“아, 아뇨. 싸인은 필요 없는데.”
“사양하지 마세요.”
“…. 진짜 필요 없….”
“어디에 해드릴까요?”
“….”
부끄러움이 많은 팬분께서 마지못해 꾸깃꾸깃 영수증을 내밀었다.
“마침 제가 볼펜이 있네요.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하하.”
“…. 감사해요.”
“감사는요.”
꾸벅 인사하고 멀어지는 팬분은 영수증을 바르게 펴서 주머니에 넣었다.
아마 대대손손 물려줄 것 같은데.
이거 참,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유명인의 삶이란….’
사자는 뒤져서 꺼죽을 남기고 인간은 명을 달리하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명성을 드높여서 팬분께서 오늘 받은 싸인의 가치를 더 올려드려야겠다.
세상에 이런 셀럽이 또 어딨나.
“저기, 작가님.”
그때, 약속 시간에 맞춰 길 PD가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PD님.”
“아하하. 넵. 잘 지내셨죠?”
“그럼요.”
한때 광활한 남해안을 함께 항해한 동료가 아닌가.
중간에 하선한 나약한 동료도 감싸 안아야 진정한 뱃놈이라고 할 수 있지.
길 PD는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용건을 꺼냈다.
“김진우의 글 쓰러 어디까지 가봤어….? 어떻게 생각하세요?”
“…. 별론데요.”
“그, 그쵸?”
내가 매일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 전혀 윈윈하는 길이 아니니까.
“차라리 배우 한 명을 추천할게요.”
“네? 누구….”
“김희정 배우요.”
“오, 김희정 배우님이면….”
“이순신 박물관에 같이 갔었죠.”
“네. 알죠. 그때 시청률이 얼마나 나왔는데요.”
당시에 이상한 오해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제 친동생이에요.”
“네!?”
회사 외에 업계 사람에게는 처음 밝히는 사실.
언론에도 조만간 공개하기로 합의를 봤으니까.
“와…. 지금 TVM 주연급 배우잖아요.”
“그쵸.”
“근데 두 분이 전혀 안 닮….”
“???”
“…. 긴 했는데 성격은 똑같이 닮았군요!”
“음, 둘 다 제가 낫죠?”
“그, 그럼요. 당연하죠.”
시트콤을 생각하면 배우풀이 넓은 게 좋겠지.
조연, 주연, 카메오, 게스트.
필요한 배역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MBS 섭외력을 빌려서 다양한 게스트를 만날 수 있을 거고.
필요한 장소가 있으면 장소 섭외도 부탁할 수 있을 테고.
희정이도 공중파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놔서 나쁠 거 없고.
고작해야 1주나 2주에 한 번씩 촬영이 있으니까 큰 부담도 없잖아.
이런 게 바로 윈윈윈 아닌가.
“희정이랑 회사에는 제가 말해 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 * *
“쌉가능.”
희정이는 계약 조건을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럼 정 실장님께 여쭤본다.”
“오, 그럼 내가 메인 MC야?”
“…. 아마도.”
“대박! 공중파 예능…. 아니, 다큐에 고정 출연이라니!”
“여튼, 축하해.”
갑자기 그 방송이 걱정되긴 하지만, 내 알바는 아니니까.
‘정 실장님께만 여쭤보면 되겠어.’
연락드리고 한번 찾아가 봐야겠네.
시트콤 관련해서 여쭤볼 것도 있고.
“아, 근데 너…. 따뜻한 첫눈처럼은 촬영 끝났냐?”
“거의 끝나가. 한 일주일 남았나?”
“그래?”
“응. 오늘도 촬영장 가봐야 돼.”
“음….”
사전제작이라더니, 아직 첫 방송도 안 했네.
어찌 되었든 여동생 첫 주연작인데 잘됐으면 좋겠구만.
“그래서, 이민주 작가는 아직도 모르냐?”
“뭐를?”
“니가 내 동생인 거.”
“흐흐. 조만간 내가 밝힐 거야.”
“….”
족같은 표정 뭐냐.
마음 같아서는 평생 숨겨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동생이지만.
“그래. 그냥 네 맘대로 해라.”
“예압!”
사실, 처음에는 빽으로 배역 꽂았다는 소리나 들을까 봐 숨겼는데.
이제 주연급에 촬영도 마쳤으면 알아서 연기로 실력을 증명할 테니까.
‘연기 못 했으면 어쩔 수 없고.’
그거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는 거니까.
띠리리리─
그때, 희정은 스마트폰에 온 연락을 확인하더니 방으로 걸어갔다.
“뭐지? 강준이야?”
“아니, JTBS 성 감독님!”
“오키.”
쿠웅─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다시 한번 소중한 내 보물을 확인했다.
【장르 선택권 (1회 한정)】
“흠,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네.”
그냥 베네핏처럼 막 쓰면 되는 건…. 가?
띵동─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장르 선택권을 사용합니다.】
【장르를 선택해주세요. (제한 시간 10초)】
“야, 이런 시발롬아! 아직 쓴다고 말 안 했잖아!”
【장르를 선택해주세요. (제한 시간 8초)】
“…. 선생님, 제한 시간 있다고 안 했잖아요.”
【장르를 선택해주세요. (제한 시간 5초)】
선택 안 하면 혹시 랜덤이냐?
이 쉑, 컨셉 하나는 진짜 확실하네.
【장르를 선택해주세요. (제한 시간 2초)】
“에휴, 시트콤. 존나 힐링 되는 걸로.”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시트콤’ 장르를 선택합니다.】
【최근에 마주친 배우와 어울리는 작품을 탐색합니다.】
장르를 선택한다고 했지.
배우도 고를 수 있다곤 안 했다.
“…. 설마 김희정이야?”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김희정이 팔짝팔짝 뛰면서 거실로 나왔다.
두근─
“오빠아아아!!!”
김희정 맞네.
쟤를 내가 어떻게 컨트롤하냐.
【내용 : 쉐어 하우스 1부】
【장르 : 시트콤, 캐릭터, 힐링, 에피소드】
【장소 : TVM 방송국 로비】
【제한 시간 : 20일】
【※ 다이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50억 원】
일단 장소는 희정이가 들렀던 곳인가.
띵동─
그런데, 시스템은 아직 독재를 끝낼 마음이 없는 듯했다.
【시스템에 등록된 배우 중에 주연급 배우를 찾습니다.】
뭐야, 불안하게 왜 이래?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설마 주연급을 시스템이 전부 다 정해 놓는 건가.
‘장르 선택권, 좋은 거 맞지?’
여동생은 내 마음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내 팔에 매달렸다.
“오빠오빠! 나 신인상 후보야!!!”
“어. 그래.”
“나 백상예술대상 여자 신인상 후보라니까!?”
“응. 대단하다.”
“…. 안 기뻐? 이게 안 기뻐?”
“기뻐.”
“흐음….”
가자미눈을 하고 나를 흘겨보는 차기작 여주님.
김희정이를 뒤로한 채 마지막회를 확인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마지막회 정보열람(Lv 2)을 사용합니다.】
한 지붕 아래,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춘 시트콤.
그들 중에서 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면서 결말을 맞는다.
‘120부작 시트콤이라….’
초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은데.
이번에는 캐스팅에 정말 많이 신경 써야 될 것 같다.
‘아니면, 혹시….’
벌써 시스템이 캐스팅을 다 끝낸 건가.
* * *
새롬은 아버지의 통화를 받으면서 표정을 굳혔다.
-올해도 벌써 반년이나 흘렀구나.
“그러네요.”
드라마 한 편으로 MDN 방송국을 키우겠다는 약속.
그냥저냥 적당한 수준의 시청률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평균 30%프로….’
작년 말에 약속을 받았는데 이미 반년이 훌쩍 지나갔다.
“제작비는 얼마나 지원받을 수 있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 좋네요.”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라, MDN을 천성 그룹의 스피커로 쓰겠다는 목표.
투자금이 충분하다면 가능성은 있었다.
템페스트의 스타급 배우들을 투입해서 어떻게든.
곧이어, 새롬은 아버지와의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김진우 작가님께 여쭤봐야 하나.”
반쯤은 사적인 약속이라서 내키지는 않지만.
당장 생각나는 극작가는 당연히 김진우밖에 없었다.
요즘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자주 마주치는 건 사실이니까.
똑, 똑─
그때, 변 팀장이 노크를 두드리며 새롬을 찾았다.
“들어오세요.”
변혁주가 내미는 보고서에는 반가운 소식이 담겨있었다.
“드디어 마법소녀 촬영이 끝났네요.”
“뉴스 기사는 며칠 내로 나갈 예정입니다.”
“잘됐네요. 송 감독님이랑 같이 편집이나 CG 작업도 힘써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민서와 임재준 배우.
송권수 감독과 나지수 조감독까지.
템페스트 엔터의 입장에서는 나름 드림팀을 꾸린 셈이었다.
마침 괜찮은 인력풀에 공백기가 생겼으니.
스케줄 되는 이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 일단 다들 한 번쯤은 여쭤봐야겠네.’
곧바로 새 작품에 들어갈지 묻는 게 살짝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나저나, 내일이 대본리딩이군요.”
“네. 임진년, 반격의 칼날.”
“벌써 드라마만 다섯 번째….”
“와, 벌써 그렇게 됐네요.”
새롬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변 팀장에게 말했다.
“곧 새 작품 들어갈 겁니다.”
“네? 마법소녀 촬영도 이제 겨우 끝났는데….”
“부족한 인력은 외주 써야죠.”
“아, 네. 알겠습니다.”
이런 기세로 드라마를 제작하면 국내 정상에 오르는 것도 머지않았다.
벌써 기존의 탑 3 제작사의 위치를 위협할 지경이었으니.
‘3년 안에 전부 찍어 누를지도.’
이 모든 게 김진우 작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두 작품을 동시에 제작하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대본의 품질과 집필 속도 덕분이다.
“마법소녀 제작진분들께 상여금이 나갈 겁니다.”
“오, 정말인가요?”
“대표님께 결재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실장님!”
자본주의에 무릎 꿇은 변 팀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실장실을 벗어났다.
“….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시네.”
다음부터 더 많이 챙겨드려야겠다.
뚜루루루─
곧이어, 새롬은 스마트폰을 들어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실장님?
“작가님. 대본리딩만 끝나고 한번 보시죠.”
-네? 요즘 자주 보잖아요.
“정식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하, 오늘은 초밥 정식?
“…. 아니, 그 정식 말고.”
새롬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차기작 관련해서요.”
-오, 마침 저도 할 말 있었는데.
“그래요?”
-네. 대본리딩 말고 시상식 끝나고 보시죠.
“그, 백상예술대상이요?”
-네. 그쯤이면 여유가 생길 것 같아서요.
“그래요. 그럼.”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 * *
KBC 방송국 미팅룸.
「임진년, 반격의 칼날」 대본리딩 현장.
유동건, 이경윤, 조용만, 백윤, 신조훈.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기 드문 별들의 잔치에 주 국장이 빠질 리는 없었다.
“이야, 우리 드라마 벌써 눈이 부시네.”
국장님은 한 명씩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더니 내게 다가왔다.
“김진우 작가, 이번 캐스팅에 수고를 많이 했다던데?”
“아뇨, 저보단 국진현 감독님이 수고하셨죠.”
“하하. 이 사람아, 내가 진현이한테 들은 게 있는데.”
“음….”
생각해보니까 주요 배우들은 내가 전부 다 관여한 것 같다.
“우리 드라마 잘 돼야죠.”
“당연하지. 하하.”
주태홍 국장은 어느새 다가온 국 감독을 바라보며 은근하게 말을 이었다.
“대본도 좋고, 배우들도 이렇게 훌륭한데…. 망하면 방송국 탓 아니겠나?”
“에이,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하.”
잠시 후, 감독부터 시작해서 한 명씩 간단하게 말을 이었다.
“국진현입니다. 예상보다 대단한 배우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놀랍네요. 앞으로 석 달 정도만 열심히 한번 해보죠.”
특히, 유동건, 이경윤 배우에게 시선을 보내며 말하는 감독님.
곧바로 내 차례가 다가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마디를 추가했다.
“김진우 작가입니다. 아마 이번 작품은 잘 될 것 같으니까, 연말 시상식 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짝, 짝짝짝─
내 말을 듣고, 두 명의 선생님급 배우들은 너스레를 떨었다.
“김진우 작가님이 된다고 하면 무조건이겠구만.”
“하하하. 작가님 꼬탄주라도 한잔 말아드려야겠네.”
배우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다섯 번째로 일어나 짧은 소개를 마친 신조훈 배우.
처음으로 큰 비중을 맡아서 나름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대본리딩 시간에 신 배우는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으니.
“그대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예. 전하.”
“민심을 어지럽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하오나,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순간, 김성일 역의 조용만 배우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신조훈.
그동안 악역을 전담해서 그런가, 오히려 조용만을 압도하고 있었다.
조선의 왕.
위엄이 깃든 그의 목소리가 대본리딩 현장에 울려 퍼졌다.
“김성일, 그대는 좌의정을 도와 왜나라의 군대를 상대할 방도를 모색하라.”
“예. 전하. 명을 받들겠나이다.”
생각보다 더 뛰어난 실력에 스탭들과 동료 배우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역시 포텐이 있다니까.’
탑급 배우로 성장할 발판은 마련해 드렸으니.
돈 많이 벌어서 내 통장 좀 채워주셨으면 좋겠네.
* * *
며칠 뒤,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오빠, 진짜 다 끝났네요.”
“고생했어”
나는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확인하면서 효주와 대화를 나누었다.
《디지니 플레이 오리지널, 「코드네임 030 : 마법소녀 Part. 1」 크랭크업! 편당 추가 요금은….》
《KBC 방송국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대하드라마, 「임진년 반격의 칼날」 초호화 캐스팅으로…. 》
“최근에 진짜 너무 바빴어요.”
“그렇긴 해.”
“밍쁨이도 혼자 콘티 그리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 너희 둘 데리고 비싼 밥 한 번 먹으러 갈게.”
“오, 정말요?”
“어.”
올해 상반기는 두 작품 때문에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언제부턴가 쉬지도 않고 글만 쓰는 기계처럼 살았잖아.
‘다음 작품은 좀 여유롭게 제작하자.’
시간을 좀 두고 천천히 대본부터 쓰고 제작하면 되지.
아직 시트콤 1부는 제한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내일이라도 TVM 방송국에 들어야지.’
일단, 김희정이 나오는 건 알겠는데.
다른 주연급 배우는 누구일지 너무 궁금하다.
“저기, 오빠. 오늘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디?”
“킨텍스요. 백상예술대상.”
“좀 있다가 회사에서 픽업해준대.”
“아, 그래요?”
사실, 이민주 작가 보기 싫어서 안 가려고 했는데.
그냥 안 가면 욕만 먹을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다.
“아마, 우리 작품도 상 몇 개는 탈 거예요.”
“그러겠지.”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해외영업 3팀 김나연」
두 작품에서 몇몇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니.
“저기, 그러고 보니까 희정이가 신인상 후보 아니에요?”
“맞아. 근데 타겠냐?”
“왜요? 오류동 팔남매에서 희정이 인기가 젤 많았어요.”
“에이, 설마….”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
.
.
“여자 신인상! JTBS 오류동 팔남매의 김희정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우리 엄마랑 아빠, 좋아하시겠네.
아들래미, 딸래미가 둘 다 성공했으니까.
수상 소감을 조곤조곤 읊기 시작하는 희정이를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장그래 극단에서 작은 배역 하나 생겼다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슬슬 내 작품에도 출연할 때가 됐지.’
오히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나보다 이민주 작가 작품에 먼저 출연할 줄이야.
“함께 고생해준 혜연이도 고마워,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느새 시상식장을 두리번거리며 마무리 멘트를 준비하는 희정이.
촬영감독은 눈치껏 이민주 작가를 비춰주었다.
곧이어, 대형 스크린에 이민주의 얼굴이 커다랗게 걸렸다.
‘이민주 씨한테 감사 인사라도 하려나.’
오늘 수상한 「오류동 팔남매」와 연관이 없어서 그런가.
희정이는 일부러 TVM에서 촬영 중인 작품을 언급하지 않았다.
‘한마디 정도는 하겠지.’
그런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김진우 작가님.”
“???”
“아니, 우리 엄마 아들 김진우 씨.”
또라이냐.
“항상 응원해 줘서 고마워. 오빠.”
순간, 시상식장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음이 발생했다.
“우리 25년 같이 살았으니까 5년만 더 같이 살고 분가하자.”
여전히 대형 스크린에 띄어진 한 중년의 여인.
이민주는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