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1)
엘리베이터가 정상에 도착하기까지 고작 30초.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이민주와 같은 층에 올랐다.
끼이익─
대표실 문이 열리고 레인 엔터 대표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레인 엔터 대표 장경준이라고 합니다.”
40대 초반의 젊은 사업가.
그 앞에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이민주가 앉아있었다.
“너는 이제 인사도 안 하니?”
“할 이유가 없죠. 입장이 다른데.”
“뭐야?”
나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이민주 건너편 자리로 걸어갔다.
털썩─
“이민주 씨, 반말하지 마세요. 저 당신 시다바리 김진우 아닙니다.”
“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
이내, 그녀를 무시하고 핸드폰을 들어 녹음파일을 틀었다.
「이런 썅, 보조 작가라고 불러주니까 진짜 니들이 작가 같냐? 내가 오늘 아침까지 자료 준비하라고 했지! 주말에 밤새워서라도 가져왔어야지!」
이민주가 시원하게 갑질하는 목소리가 녹음된 파일.
음성을 듣는 내내 그녀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지, 지금 뭐 하자는….”
“나는 잃을 게 없고 당신은 잃을 게 많아요. 행동하기 전에 잘 생각하셔야죠.”
“이, 이딴 걸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고소하려면 고소하던가!”
“귀찮게 그런 걸 왜 해요. 너튜브에 이민주 타이틀만 걸어놓으면 100만 명이 봐줄 텐데.”
“너….”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반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
나는 고개를 돌려 레인보우 엔터의 장 사장을 쳐다봤다.
“대표님, 이민주 씨가 뭐라고 하던가요?”
“아, 그, 그게….”
“이민주 차기작에 주연급 조연이라…. 좋죠. 약속만 확실하게 지키면.”
그 순간, 나와 눈을 마주친 이민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며 장경준 대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요즘 이 바닥에서 정보 느리면 죽는 겁니다.”
“네? 무슨 소리신지….”
“성기훈 감독님이 제 작품 맡기로 하셨거든요.”
“네에?”
장경준 대표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성 감독의 이름값이면 결코 이민주보다 아래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무엇보다 작품이 금방 엎어질 거라고 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으니.
“장 대표님, 제가 어떤 생각으로 기회를 드렸는지 잘 모르고 계신 것 같네요.”
“그, 그런 게 아니라….”
뚜루루루루─
그때, 대표실 수화기에 연락이 울렸다.
장 대표는 받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천천히 받으세요.”
무슨 전화인지 알 것 같았기에 전화를 권했는데.
“지, 지성호 배우님? 그분이 여기를 왜 와?”
“제가 불렀는데. 돌아가라고 해야겠네요. 세미 씨와 연기를 맞춰볼까 했거든요.”
“아, 아니. 작가님, 진정하시고….”
드르륵─
이민주는 더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일어서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사실, JTBS에서는 이민주도 작품을 한 적이 없어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임 끝났네.’
저렇게 나간 이상 장 대표가 매달릴 사람은 나뿐이겠지.
아마 퍼플걸스 카메오 촬영 건도 물 건너갈 확률이 높을 텐데.
솔직히 내가 알 게 뭐야.
먼저 약속을 깬 건 이쪽이니까.
“아이고, 김 작가님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기분이 풀리실지….”
“퍼플걸스 카메오도 날아간 것 같은데.”
“아, 그건…. 카, 카메오는 카메오일 뿐이죠. 허허.”
이민주 드라마에 얼굴 비추면 이름값 꽤나 오를 텐데.
쓰린 맘을 애써 감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대표님, 이왕 한배 탄 거잖아요. 우리 같이 좀 삽시다.”
“아아, 그럼요. 물론이죠.”
“퍼플걸스 카메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희 쪽 드라마로 돌리시죠.”
“네?”
레인보우 엔터에서 퍼플걸스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간판급 스타들.
특히, 보이그룹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성공한 걸그룹이었다.
“퍼플걸스 중에 원탑 여주인공은 처음이잖아요.”
“이전에 재은이가 이민주 작가님이랑….”
“에이, 그때는 주연급 조연이죠.”
“하하….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여기서 장 대표 신경을 더 건드리면 결국 나만 손해였다.
“그리고 저 퍼플걸스 안무 연습실 좀 빌릴게요.”
“네? 어째서….”
“거기서 지성호 배우님이랑 같이 대본 좀 맞춰보고 싶어서요.”
“아, 네. 그러시죠.”
장 대표는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 주었다.
왜 하필 안무 연습실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했는데.
* * *
「내 마음에 들어온 걸요~♬」
안무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며 안무를 추고 있는 멤버들.
나는 그 앞에서 들어가도 되는지 한참을 서 있었다.
“실수했네.”
오늘만 멤버들 치워달라는 부탁을 생략했어.
“아니, 괜히 그러면 세미 씨한테 피해가 갈지도 모르지.”
“작가 형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지성호 씨. 왔어요?”
탑급 배우님한테 작가 형님 소리도 다 듣고, 그새 출세했다.
그런데, 탑급 배우님은 경우 없이 안무 연습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 지, 지성호다!”
“꺄아아아아!”
나는 5분도 넘게 고민했는데 1초 만에 고민을 해결해주는 모습.
심지어 안에 있던 퍼플걸스 멤버들은 다들 좋아해 주니까 뭔가 억울하다.
‘이 억울함의 원인은 내 소심함 탓일까, 얼굴 탓일까.’
재잘거리는 멤버들과 지성호의 모습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봤는데.
입구 쪽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향해 누군가 천천히 다가왔다.
“하아, 하아. 작가님, 오늘 여기서 연습하신다면서요.”
“벌써 알고 계시네요.”
“매니저님이…. 헤헤.”
한참 연습을 했는지 숨을 고르며 다가오는 세미.
땀에 살짝 젖은 모습도 청초하고 매력적이었다.
“작가님? 왜 그러세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혹시 매니저분께 못 들었어요?”
“무슨….”
“우리 작품에서 세미 씨 잘릴 뻔….”
“네? 왜요! 저 잘할 수 있어요!”
“아니, 그럴 뻔했는데 잘 넘어갔다고요.”
“아, 아….”
세미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부끄러워했다.
이민주가 워낙에 급하게 방문해서 아직 그녀도 몰랐던 것 같다.
“우리 내일이 감독 미팅인 건 아시죠?”
“네!”
“오늘 지성호 배우님이랑 합 좀 맞춰보세요. 내일 감독님 앞에서 즉흥연기해야 하니까.”
“네. 열심히 할게요.”
곧이어, 구석에서 빛이 반짝이는 자리를 발견했다.
지성호와 세미가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연습실 한복판이었으면 수치사할 뻔했어.”
털썩─
한쪽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틀었는데.
곧이어, 빛이 머릿속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음악소리가 생각보다 거슬리지는 않네.”
‘기억’ 속에서 들려오는 대사 외에 다른 소음은 겹쳐도 상관이 없었다.
말 그대로 기억은 기억일 뿐, 지금 들려오는 노랫소리와는 별개였다.
타닥, 타다닥─
대본 집필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에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안녕하세요. 작가님.”
“아, 레이미 씨. 안녕하세요.”
직접 작사작곡하는 아이돌, 레이미.
퍼플걸스 노래의 상당수는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다.
아버지였나, 어머니였나 서양인의 피가 섞여서 상당히 이국적인 마스크.
특유의 걸크러쉬한 분위기로,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여덕몰이를 담당하는 멤버였다.
“작가님, 매니저 오빠한테 들었는데.”
“네?”
“우리 카메오 건 날아갔다면서요?”
“아….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는 상관없는데, 재은이가 조금 원망하더라고요.”
슬쩍 멤버들이 있는 쪽을 바라봤는데 재은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레이미의 말처럼 그녀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마 이민주 작가님 작품은 영원히 못 들어가겠네요.”
“그것도 죄송하긴 한데….”
원래 이민주 작가는 배우 재탕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다른 작품으로 꼭 성공하실 거예요. 재은 씨 연기 잘하시니까.”
“음, 작가님, 개인적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레이미의 제안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다른 멤버와 함께 OST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니.
한쪽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유나를 쳐다봤다.
‘내가 본 드라마에 음악은 원래 없긴 한데….’
사실, 음악적인 부분은 나에게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시스템에 OST 삽입 기능까지 탑재되지는 않았기에.
“다음에 음향감독님이 확정되면 잘 말씀드려볼게요.”
“무리한 부탁인 거 알아요. 큰 기대 안 하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네. 레이미 씨.”
레이미의 음악은 막귀인 내가 들어도 대단한 수준이고.
메인보컬 유나의 실력은 솔로 가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니까.
“첫 작품이라 그런지 손이 많이 가네.”
* * *
타다다닥, 타닥─
5부에서는 본격적인 러브라인이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메인 남주가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여주에게 들이대었는데.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여주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 장면.
“연기 잘해야겠어.”
진심으로 자신이 어떻게 여자에게 차인 건지 의아해 하는 모습이 관전 포인트였다.
스타로 살아본 적이 없는 임재준이 연기를 잘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당장 내일이 감독 미팅인데 고민이 많았다.
성기훈 감독 성격에 쌍욕이나 날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세미까지는 인지도라도 있지 임재준은 말도 꺼내기 어렵다.
그때, 연습실 한쪽에서 담담히 노래를 연습하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메인보컬에 귀여움을 담당하는 멤버, 유나.
씹덕상에 발랄한 분위기로 남덕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
덕분에, 퍼플걸스 내에서 세미와 함께 가장 인기가 많았다.
천천히 걸어가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뭐 하세요?”
“아, 노래 경연 오디션 프로그램 준비해요.”
“굳이 왜 안무 연습실에서….”
내 말을 듣고, 유나가 손을 들어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세미와 지성호가 대사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나머지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연습 분위기가 깨진 것 같네요.”
“괜찮아요. 미령 언니랑 재은 언니도 종종 여기서 연기 연습하니까.”
“아, 정말요?”
“네. 저도 뭐 가끔은….”
아니 무슨, 퍼플걸스에는 연기 꿈나무들만 몇 명이야.
단체로 카메오 출연한다는 소리 들었을 때부터 떡잎이 다르다고는 생각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꼭 합격하시기를…. 아.”
순간, 오디션이라는 단어에 꽂혀버렸다.
아무래도 내 고민을 털어줄 해결책을 찾은 것 같다.
‘…. 재준이 붙일 방법.’
시스템 능력이 찐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방법이다.
급박한 드라마 판에서 메인 남주를 오디션으로 뽑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조차도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작가로서 어떻게든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곧이어, 대사를 주고받는 세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스템이 선택한 그녀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쪽은 친구가 저밖에 없어요?”
“내가 누군지 알면 그런 말 못 할걸?”
세미와 지성호가 한 번씩 대사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분명히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야.’
알바 중에 찾아온 서브 남주를 놀리는 여주의 대사.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대사는,
“그쪽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개념은 셀프입니다. 손님!”
“에이, 손님한테 너무하네.”
“그쪽이 손님이었어요?”
스윽─
약간은 째려보는 듯, 무심한 눈빛으로 성호를 바라보는 세미.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여주인공 ‘차예주’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이거…. 진짜 맞네.’
세미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만약, 내가 봤던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만 그대로 보여주면 오디션의 주인공은 반드시 임재준이 될 거라고.
신인을 주연 자리에 꼽는 것보다는 훨씬 납득할 만한 방법이다.
오디션 자리에 신인이 끼어둘 여지만 남겨두면 나머지는 임재준의 몫이 아닐까.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톡을 보냈다.
[정새롬 실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