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11)
MDN 방송국에서 처음으로 갖는 미팅 자리.
드라마국장과 정 실장이 주로 대화를 나누며 회의를 진행했다.
“일단 개런티는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 비싸군요.”
“작가님 원고료로 회당 5천이면 비싼 게 아니죠. 16부작이었으면 최소 억 단위인걸요.”
“아….”
처음 경험하는 단위에 MDN 관계자들은 연신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아무래도, 공중파에서 놀던 수준과는 달라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명, 촬영, 소품, 의상 등 어느 것 하나 차이 나지 않는 게 없으니까.
게다가, 가장 중요한 연출진은.
“저기요.”
진우가 손을 번쩍 들고 말을 꺼내자 이목이 집중되었다.
탑스타로 깔아놓은 판에 불편한 인물이 끼어있었기에.
곧바로 아까부터 너무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던 말을 꺼내었다.
“저쪽 분은 왜 계속 같이 앉아있으신가요?”
“….”
동시에, 국장은 한 사내에게 시선을 옮기며 급하게 그를 소개했다.
“아, 이쪽은 우준서 감독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요?”
“시트콤 연출을 맡아주실 예정이라….”
“….”
‘누구 마음대로.’
“우리 회사에서 그나마 제일 실력이 뛰어납니다. 하하.”
진우가 아무런 말이 없자 우준서 감독은 살며시 말을 꺼냈다.
“제가 여기선 나름 에이스라 너무 걱정하실 필요….”
“저기, 죄송한데요.”
“네?”
“저희는 그나마 잘하는 감독님은 필요 없습니다.”
“네? 아, 음…..”
“이번 작품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요.”
주연 배우 6명과 작가가 러닝 개런티를 1프로씩 나눠 갖고도 출연료가 어마어마했다.
“음, 저도 작가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옆에 있던 정 실장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작가님과 우리 회사가 그동안 쌓은 명성을 연출 때문에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 말씀을 참 섭섭하게 하시네.”
우 감독은 표정을 한껏 찌푸리고는, 격양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고작 시트콤에 무슨 대단한 연출이 필요하다고!”
“그런 생각으로 드라마를 연출할 생각이신가요?”
“….”
우 감독은 얼굴을 붉그락푸르락 붉히며 반박할 거리를 찾았다.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기껏 한다는 이야기는.
“김진우 작가님, 작년 일로 아직 저한테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은데….”
“음.”
“그때 김현지 배우한테 소리 지른 건 감독으로서 정당한 권리였습니다!”
“…. 쌍욕도 하셨죠.”
사실 작년부터 작은 악연이 있었지만, 진우는 그 사건을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
좋은 이야기도 아니라 굳이 꺼낼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먼저 말을 꺼낼 줄이야.
“우 감독님, 작년에 드라마 망했죠?”
“무, 무슨 그런 말씀을….”
“저도 봤어요. 그 드라마.”
딱 대학교 졸업 작품 수준의 결과물.
아니, 너튜브 개인 채널보다 못할지도.
‘차라리 내가 있던 동아리 연출팀이 낫겠어.’
진우는 내심을 숨기고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외주 감독으로 가시죠.”
“…. 얼마나 잘 되나 두고 보겠습니다.”
우 감독은 성질이 잔뜩 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성격 까칠한 건 여전하시네.’
대단한 연출진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한 실력의 감독을 섭외할 수만 있다면.
“아, 그러고 보니….”
문득, 진우의 뇌리에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나지수 감독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마법소녀 제작하고 계시잖아요.”
“거의 끝나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영화도 이번 작품 못지않게 중요하니까요.”
“음….”
정 실장은 아쉬워하는 진우의 표정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일단 여쭤보기는 할게요.”
“감사해요.”
“제가 감사하죠.”
한편, 우준서 감독은 미팅을 진행 중인 두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나한테 이런 모욕을 줘?”
그래 봐야, 그들은 타인이다.
MDN 방송사랑 관계없는 이들.
둘이 합심해서 치졸한 복수나 하려고 생떼를 부리는 것 같은데.
“여기서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촬영 감독부터 조명팀 막내까지 전부 같은 식구니까.
마음만 먹으면 자사 드라마 하나쯤 망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디 스탭들 한 명도 없이 일해보라지.”
우 감독은 복수심에 눈이 멀어 혼자만의 착각에 빠졌다.
“내가 새로 오신 사장님이랑 인사도 하는 사이라고!”
오죽했으면 캐치볼 좋아하냐는 질문까지 하셨을까?
* * *
얼마 후.
템페스트 엔터에 의외의 손님이 찾아왔다.
“백윤 배우님이요?”
-네.
“내일모레 제작발표회 때문인가요….?”
-아뇨, 그건 아니고.
정 실장님의 연락을 통해 백윤 배우의 방문 소식을 들었다.
「임진년, 복수의 칼날」 때 미팅 한 번으로 편하게 캐스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엄청 감사해 하시던데.’
작년 신인상 수상자치고 굉장히 겸손한 타입.
굳이 나쁘게 표현하면, ‘심심한’ 성격의 배우였다.
“오빠, 지금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시다네요.”
“캐스팅 때문에 오셨다던데.”
“시트콤이요?”
“응. 아마도.”
효주를 뒤로한 채 곧바로 걸음을 옮겨 로비로 이동했다.
“아,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네. 백 배우님. 안녕하세요.”
나를 향해 깍듯하게 인사하는 백윤 배우님.
자연스럽게 악수를 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눴는데.
띵동─
【배역에 61%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금사빠 껄떡남’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 마지막 주연급 배역이구나.’
근데 일치율이 너무 떨어졌다.
시스템에 등록하면 당연히 어느 정도 보정은 되겠지만.
그렇다고 배우의 재능이나 배역을 송두리째 바꿀 순 없더라고.
“백윤 배우님.”
“네.”
“시트콤 캐스팅 관련해서 찾아오셨다구요?”
“아, 그…. 네.”
연기할 때와 달리, 평소에는 살짝 조용한 성격인 것 같다.
‘인지도는 충분하지만….’
온갖 또라이들이 판치는 시트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새 배우를 찾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백윤 배우님이랑 어울릴 것 같지는 않네요.”
“…. 그런가요.”
“금사빠 껄덕남을 찾고 있거든요.”
“네?”
“백윤 배우님이 소화할 수 있는 배역 같진 않아서요.”
“저, 저 완전 껄떡대요!”
“네?”
“그, 요즘 막 눈이 벌게져서 엄청 돌아다니는데….?”
“아.”
“오늘도 오다가 길에서 만난 여성 분한테 첫눈에 반해서 고백할 뻔.”
뭐야, 무서워.
“…. 그 정도까진 아니고.”
늦었어요.
“…. 하여튼.”
“저기, 작가님. 그럼 혹시 오디션으로 진행하실 건가요?”
“글쎄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그럼 오디션 기회라도….”
“네. 기회는 당연히 공정하게 드려야죠.”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아뇨. 배역에 대한 힌트를 주셨으니까,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그냥 연습 좀 한다고 부족한 일치율이 충분하게 채워질까?
이진호 때를 생각해 보면 연기력이랑 어느 정도 비례하긴 했다만.
이번 케이스는 그런 문제랑 전혀 상관없는 것 같아서.
“음, 백윤 배우님.”
“네?”
“힌트요, 괜찮으시면 조금 더 드릴까요?”
“???”
스멀스멀 궁금증이 밀려왔다.
시스템으로 배우의 연기 실력에 얼마나 큰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배우 평가(Lv 1)를 사용합니다.】
【배우 ‘백윤’의 역할을 확인합니다. , 】
실전에서 처음 써보는 베네핏.
어차피 포인트도 많고, 배우 변경권도 있으니까.
일단 61% 배역을 등록하고 새 역할을 선택했는데.
‘배우 평가….’
이거 진짜 사기 스킬이잖아?
* * *
안젤라는 얼마 전에 가출한 여동생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이라서 딸처럼 업어 키운 동생이었다.
그런데, 스무 살 넘어서 가출하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한국행 비행기표 구매 내역까지 확인했으니.
“이런, 또라이가 진짜.”
얼마 전부터 외국인 취업 비자는 어떻게 신청하냐는 헛소리를 받아준 게 화근이었다.
최근 들어서 뭔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고 기쁜 마음에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더니만.
‘어휴, 뒤통수가 얼얼하네.’
이미 한국으로 떠난 건 확실한 것 같고.
떠나기 전에 나눴던 마지막 대화는 아마.
‘김진우 작가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던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에바 본인도 김 작가의 작품을 봤으면 잘 알 텐데.
얼마나 완벽한 시나리오에 적절한 배역들로 채워지는지.
“에반데.”
물론, 모든 조연과 단역까지 완벽하게 채울 순 없지만.
적어도 주연 배우는 ‘그’ 만의 놀라운 식견으로 완벽한 맞춤 배역을 추구했다.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
일단은 템페스트 엔터 측에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을 팔았다면, 컨택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뚜루루루─
긴 통화 연결음 끝에, 정새롬 실장이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지부장님, 오랜만이네요.
“저기, 그, 마법소녀 제작은 차질없이 진행 중인가요?”
-그럼요.
일단 공적인 질문으로 시작해서 넌지시 진짜 용건을 꺼냈다.
“혹시 얼마 전에 외국인 한 명…. 만나셨어요? 미국인.”
-누구요, 에바요?
“흡.”
정 실장의 입에서 여동생 이름이 나오니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철저하게 공적인 관계에서 민망한 치부를 들킨 기분이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아, 김진우 작가님께 들으셨구나?
“네?”
-우리 차기작 여주인공 중에 한 명이요. 마침 외국인 배역이 필요하시다고 해서.
“아….”
-120부작 시트콤인데, 이 작품도 추후에 디지니 플랫폼에 올릴까 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뭐야.
진짜로 김진우 작가의 차기작에 캐스팅됐다는 거잖아.
“어, 아…. 음.”
-근데, 왜 그러시는지….?
“아뇨. 아닙니다.”
-네?
“그럼 마법소녀 런칭 때 또 연락 드릴게요!
-네. 그럼.
“네!”
뚝.
민폐 끼치러 간 여동생이 그분의 작품에 나오게 됐다니.
그것도 정황상 자신의 이름도 팔지 않고 당당하게.
“아주 좋은데?”
시트콤이면 외국인도 가볍게 시청할 수 있을 거고.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로 이미 이름값을 증명했으니까.
‘디지니에서 흥행을 기대해도 될 것 같아.’
가족까지 연관이 되었으니, 갑자기 김진우 작가와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일도 없이 빈둥거리던 여동생을 거둬준 은혜.
가출한 동생의 소재를 파악하는 순간, 앓던 이가 쏙 빠진 듯했다.
“지부장님, 여기 결재….”
그때, 한 직원이 다가오며 서류를 건넸다.
“흥흥. 결재요? 당연히 해야죠.”
“….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제가요? 그래 보여요?”
“네.”
안젤라는 그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주고 말을 이었다.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현재 성적이 어떻게 되죠?”
“최고 탑 8까지 찍고 서서히 내려오고 있습니다.”
“음…. 8부작이라서 아쉽네요.”
“그쵸.”
“당분간 프로모션을 더 걸어서 탑 텐을 유지하시죠.”
“네? 어떤 프로모션을….”
“메인 배너요.”
“아, 예정에 없던…. 음, 네. 알겠습니다.”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 지부에서 안젤라의 발언권은 독보적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단 한 순간도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의 선택에는 약간의 사심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 * *
「임진년, 반격의 칼날」 제작발표회장.
화려한 예고편을 시청하고, 기자들은 각자의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렸다.
특히, 연달아 히트 행진을 기록하는 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얼마 전에 흥행한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이후 고작 몇 개월이 흘렀을 뿐이었기에.
“그럼 국진현 감독님께 질문하실 기자님들 손을 들어주세요.”
국진현 감독과 주연 배우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MC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가장 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김진우 작가님, 이번 작품과 여타 작품의 차별점을 말씀해 주세요!”
“사극이라는 점이요.”
“아.”
별로 시청자들이 궁금하지도 않을 것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기자들.
‘그냥 뭐라도 하나 건지려는 건가.’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내 대답은 점점 짧아졌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아끼는 배우가 있으신가요?”
“음, 글쎄요.”
이번 질문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나마 고르라면 신조훈 배우나 백윤 배우, 둘 중 한 명이 아닐까.
“유동건, 이경윤 선생님분들께 제일 감사하죠. 제 작품에 나와주셔서.”
“아하.”
거의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일정을 마치고,
‘백윤 배우님,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요즘 계속 연기 연습만 하고 있다고 매니저가 넌지시 알려줬다.
얼마 전에 내가 보낸 메시지에 감사하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백 배우님이 한계치가 전부 높구나.’
거의 여민서 씨랑 동급이네.
베네핏이 평가하는 항목은 총 7가지.
호흡, 발성, 표정, 제스쳐, 표현력, 즉흥력, 적합성.
그중 적합성은 일치율을 의미하니까 나머지는 6가지였는데.
내가 조언한 부분을 전부 수용하고 그대로 적용하기만 한다면.
언젠가 탑급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계약 기간은 얼마나 남으셨으려나.’
나중에 내 배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띵동─
【세 편 연속 집필 확률에 당첨되었습니다.】
일단, 백윤 배우도 등록을 하긴 했으니까.
떠나기 직전에 어김없이 시스템이 발동했다.
【내용 : 쉐어 하우스 5-7부】
【장르 : 시트콤, 캐릭터, 힐링, 에피소드】
【장소 : 강남역 인근 헌팅포차 ‘마녀의 사냥’】
【제한 시간 : 7일】
【※ 다이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50억 원】
그런데, 장소가 조금 특이하다.
‘백윤 이 사람.’
여자한테 껄떡댄다는 게 진심이었어?
* * *
「그 분이 알고싶다」 첫 촬영 일정이 나오고.
희정은 길 PD에게 받은 톡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헌팅포차 사장님?”
인물 탐구를 아무나 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 사람을 탐구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띠링─
그런데, 이어지는 길 PD의 톡을 보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탑스타가 차린 헌팅포차!]
[1세대 아이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에요]
헌팅포차 주인은 방송각이나 너튭각 뽑아서 좋고.
길 PD는 과거에 유명했던 연예인으로 분량 뽑아서 좋고.
‘나쁘지 않네.’
다큐 작가에게 대본은 전달받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삐, 삐삐삐─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진우가 집에 들어왔다.
“오빠, 오늘 제작발표회 아냐?”
“맞아.”
“뒤풀이 안 갔어?”
“KBC 국영 방송이잖아.”
“아하.”
공기업 위주로 단체 회식 문화는 없어지는 추세였기에.
“오빠, 그거 생각해 봤어?”
“응? 뭐를?”
“그 분이 알고싶다, 다큐 출연 말이야.”
“아…. 뭐, 가끔은 출연해도 되고.”
“그러면 이번에는 빠지겠네.”
“응.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오빠가 좋아하는 헌팅술집 가려고 했는데.”
“뭐….?”
이내, 진우는 희정이 보여주는 장소를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확히 자신에게 발동한 집필 장소와 동일한 곳이었으니.
“뭐냐.”
“응?”
“아니, 그냥 이번에 나도 낄래.”
“…. 방송이 무슨 술래잡기야? 끼고 말고 하게?”
“싫음 말고. 나 혼자 가면 되니까.”
“오빠, 진짜 좋아하는구나?”
“응?”
“헌팅포차.”
진우는 뭔가 단단히 오해한 희정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런 거 아냐, 작품 쓰는 데 필요해서 자료 조사하러 가는 거야.”
“….”
“진짜라고.”
“그래. 믿을게.”
희정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새롬 언니한테 말해도 되지?”
“뭐를? 헌팅포차? 그냥 자료조사라니까?”
“흐흐흐.”
“…. 일단은 비밀로 하자.”
김희정, 이 자식.
대본으로 복수한다.
* * *
MDN 방송국.
우준서 감독은 며칠 사이에 직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적절한 회유와 협박을 섞어서.
직원이 많이 없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기에, 선배나 상사의 입김이 제법 강했다.
몇몇 직원들은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르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크흐흐, 내가 두고 보라고 했지?”
그의 마지막 목표는 신임 사장님.
재벌이면서도 모든 직원들에게 아침마다 반갑게 인사해 주는 인물이었으니.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엄청나신 것 같으니까….”
그분 역시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을 의심치 않았다.
대충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김진우 작가가 갑질했다고 포장하면.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직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장과 독대하는 자리.
우준서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사장실 문을 열었다.
‘템페스트 욕은 하면 안 돼.’
템페스트 엔터의 사장 역시 천성 그룹의 사람이니까.
철저하게 김진우 작가의 잘못으로 몰고 가야만 했다.
그런데, 대화 시작부터 사장님의 표정이 뭔가 묘했다.
‘사장님,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은….’
말을 이어갈수록 잔뜩 일그러지는 사장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긴장했다.
김진우 작가에게 화가 났을 거라고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는데.
“우 감독님.”
“네. 사장님.”
“제가 편하십니까?”
“네?”
뭔가 일이 크게 틀어진 기분이다.
“제가 젊어서 만만하세요?”
“아, 아닙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사장, 정조준은 눈을 사납게 뜨고서 말했다.
“지금 직원들 선동해서 의도적으로 작품 망치고 있죠.”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겉보기에는 직원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잘 지내는 듯 보였으나.
정조준 사장은 그 누구보다도 특권 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선을 넘는 사람을 대우해 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우준서 감독, 당신 입사하고 나서 지금까지 실적 전부 들고 와요.”
“네?”
“다시 말해줄까요?”
“아뇨, 아닙니다!”
우 감독은 헐레벌떡 일어나서 사장실을 벗어났다.
“싹 다 정리 한 번 하고 가야겠어.”
정신없이 바쁘면 저딴 쓸데없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텐데.
능력 없는 사람이 어중간하게 높은 자리를 꿰차면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