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20)
띵동─
【해당 골목에서는 조건에 만족하는 맛집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골목을 찾아주세요.】
‘아니, 이런! 벌써 몇 번째냐고!’
세 번째 골목을 지나칠 때쯤 실장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냥 대충 드시죠.”
“…. 음, 저는 더 맛있는데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서….”
“정말인가요?”
큰일 났다.
눈치 99단 인생 경력으로 봤을 때 지금 딱 화나기 직전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대충 아무 데서나 먹고, 시스템은 나중에 생각할걸.
‘…. 다음 골목은 그냥 어디든 들어가자.’
슬쩍 실장님을 쳐다보니 아직까진 평소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작가님, 저는 음식 안 가리고 다 좋아해요.”
“아….”
“원래 단 음식은 싫어했는데. 작가님 덕분에 이젠 잘 먹어요.”
…. 면목이 없네.
새하얀 도화지에 초콜릿 색깔 크레파스로 칠한 기분이다.
“실장님. 제가 진짜 맛있는 집 찾아볼게요.”
“…. 글쎄요. 어디서 먹는지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
“저는 누구랑 먹는지가 더 중요해서.”
“아…. 저도요!”
천사 같은 실장님과 함께 네 번째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드디어, 갓스템은 마음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던 기도에 응답했다.
띵동─
그런데, 조금 묘하게 응답했다.
【첫 번째 맛집 골목을 찾았습니다. 푸른빛을 따라가세요.】
‘첫 번째….?’
언젠가 사막에서 경험했던 푸른색 빛의 등장.
내가 있는 장소를 시작으로, 골목의 어귀 안쪽까지 쭈욱 이어지는 이정표.
“가요, 실장님.”
“어디를….?”
나는 실장님 팔목을 가볍게 붙잡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시스템이 안내한 맛집이라는 장소의 간판에 걸린 이름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모퉁이에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오는 풍경을 확인했다.
이 근처에서 제법 유명한 맛집인 듯, 점심 이후의 한적한 시간에도 손님들이 가득했다.
“이 집은 작명 센스가 좀….”
“그래도 내부는 나쁘지 않네요.”
“네. 근데 상권이 좀 아쉬워요.”
“맛만 있으면 되죠.”
“손님이 생각보다 많아서 신기하네요.”
외벽은 허름해 보였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에어컨도 잘 틀어놓고, 청소도 주기적으로 잘 된 느낌이지만.
“뭐 먹을 거야, 이것들아!”
욕쟁이 할매, 컨셉 보소.
“여기 뭐가 제일 잘 나가요?”
“아, 그럼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 이것들아!”
“….”
요즘 보기 드문 놀라운 서비스 정신에, 실장님은 문화 충격을 받은 듯했다.
“…. 방금 저희가 욕 먹을 행동을 했나요?”
“어…. 아닐걸요.”
“여기 뭐지.”
“글쎄요. 인심 좋은 할매 스타일?”
한때 유명했지만, 지금은 각종 프랜차이즈 업계에 의해 종말을 맞은 컨셉.
마침,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친 아저씨 한 명이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냈다.
“오늘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하하.”
“다 처먹었으면 빨리 계산하고 꺼져!”
역시나, 우리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아, 할매. 어쩌죠? 하하.”
“어쩌긴 뭐기 어째!? 빨리 돈 내고 꺼지라니께.”
“아까 커피 먹고 나서 카드를 회사에 두고 왔네. 그냥 오늘은 외상으로….”
“손님, 경찰 부를까요?”
“네?”
“여기서 이러시면 제가 많이 곤란합니다.”
“…. 온라인 뱅킹도 되나요?”
“비트코인도 받습니다. 두두 코인이나 투잡 코인이나….”
“….”
시스템 이 자식아.
여기 뭐냐고.
“작가님, 이집 광장한 맛집인가 봐요.”
“네. 아마도 그런 듯. 하하하.”
“…. 아마도?”
“반드시!”
건너편 자리에 앉은 실장님이 나를 지긋이 응시했다.
죽일 것처럼, 뚫어지게.
‘아까는 누구랑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으면서….’
* * *
아이돌 주력 기획사, 레인보우 엔터테인먼트.
배우를 취급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레인보우에 드라마나 영화 오디션 바람이 불어닥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특히,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기생벌레」의 인기는 회사에 꿈과 희망을 실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세미는 활짝 웃으면서 한 무리의 후배들에게 인사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연기 재능을 보고 뽑았다고 들었다.
‘조만간 사업 확장한다고 하던데.’
이제는 아이돌과 연기자 부서를 구분해서 운영할 예정인 레인보우 엔터.
최근에 떡상한 기현수, 세미, 미령을 중심으로 연기 판에 손을 댈 계획이었으니.
‘사장님이 어련히 잘 하시겠지.’
세미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천천히 걸어가던 중.
모퉁이에 돌기 직전, 다른 부서 매니저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김진우 작가님 작품이라서….”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익숙한 이름이 나와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아무리 미령 씨가 출연하고 있다지만….”
“뭐, 솔직히 퍼플걸스 전원 카메오는 좀 그렇지. 지금 세 명이나 일본에 있는데.”
“시트콤 촬영 때문에 정규 앨범 작업이랑 컴백까지 늦출 수는 없….”
“저기요.”
“세, 세미 씨?
세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니저들에게 물었다.
“방금 이야기 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아, 그게…. MDN에서 나지수 감독님이 특별 출연을 요청해서요.”
“저희를요?”
“네. 퍼플걸스 전원…. 안 되면, 세미 씨만이라도….”
“저는 처음 듣는걸요?”
“아마 사장님 선에서 끊었을….”
툭─
그때, 옆에 있던 매니저가 팔꿈치로 입 싼 직원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아뇨. 세미 씨, 신경 쓰지 마시고….”
“감사합니다!”
“아, 음…. 저희가 얘기했다는 건….”
“알아요.”
레인보우의 장경준 대표.
이 바닥에서 돈을 정말 잘 버는 사람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자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번에는 틀리셨네요. 대표님.’
세미는 김진우 작가를 만나고 나서,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
지금 이 관계가 깨지면 훨씬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를 터다.
뚜루루루─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세미야.
“대표님,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응? 그야…. 물론이지.
수화기 너머, 장 대표는 의아한 어조로 대답했다.
세미가 먼저 만남을 요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
“지금 올라갈게요.”
* * *
새롬은 진우를 향해 눈을 흘겨보면서 생각했다.
‘왜 하필 여기로 데려왔을까.’
네 번째 만에 들른, 이제는 한물간 맛집 골목.
그중에서도 구석진 위치에 자리 잡은 작은 음식점.
‘그럼 우연히 들른 건 아닐 테고….’
사실, 오늘 김진우 작가가 이 음식점에 데려왔을 때 당황했던 건 사실이다.
보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가장 무난하고 선호되는 데이트 코스가 아닌가.
“김치찌개…. 네요.”
“네. 일단 한번 먹어볼까요?”
국자로 앞접시에 덜어서 한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새롬은 자신의 혀끝의 감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다….!’
천상의 맛이 있다면 바로 이곳의 음식이 아닐까.
분명히 평소에 즐겨 먹는 요리도 아니거늘.
“어때요, 실장님?”
“여, 여길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맛있어요?”
“네!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니에요!”
“그 정도로?”
“네!”
함께 나온 생선 요리와 밑반찬도 보통이 아니었다.
추억 보정 잔뜩 끼고, 어머니가 해주셨던 김치찌개가 떠오를 만큼.
‘정말…. 눈물 나게 맛있네.’
진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는데.
“!!!”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라면 스프나 맛다시 같은 인위적인 재료로 낼 수 있는 맛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진짜 제대로 된 맛집을 추천해 줬구나.’
덕분에, 실장님 앞에서 면목이 조금은 서는 기분이다.
“작가님….”
“네?”
“저 조금 감동했어요.”
“….?”
“바쁘실 텐데…. 저를 위해서 이렇게 미리 맛집도 찾아보시고.”
“???”
“저는 그것도 모르고….”
“음….”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이걸 정정해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스무 살 때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찌개 맛이에요.”
“아, 정말요?”
“네.”
그러고 보면, 새롬이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동안 일부러 피하는 듯한 느낌이라, 진우도 묻지를 않았던 건데.
“돌아가셨거든요. 7년 전에.”
“아….”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이런 말을 들으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김진우는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새 그릇에 김치찌개를 퍼서 새롬의 앞에 놓았다.
피식─
그 모습이 뭔가 재밌어서 살짝 웃는 새롬.
‘남들은 보통 말로 위로하던데.’
오히려 그러한 모습에서 묘한 따스함을 느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형언하기 어려운 평안을 얻었으니.
‘내가 남자 보는 눈은 있네.’
한동안 맛있게 식사를 하고,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기, 실장님. 저쪽 자리에서 휴지 좀 가져올게요.”
“네? 아, 네.”
진우는 천천히 걸어가서 시스템이 내려준 대본을 확인했는데.
“뭐냐….”
한동안 멍- 하니 제자리에 서서 벽을 바라봤다.
잠시 후,
진우는 곧바로 작업실로 돌아와서 새 작품을 떠올렸다.
‘욕쟁이 할매집은 다시 들르기로 하고….’
【내용 : 월드 클래스 미식가(2)】
【장르 : 다큐 드라마, 요리, 음식】
【장소 : 전주의 맛집 중 랜덤 지정 】
【제한 시간 : 무기한】
【※ 다이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50억 원】
“서울 다음은 전주.”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지방의 한 도시.
이름이 월드 클래스인 만큼 해외로 갈지도 모르겠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당연하게도 이시연이 원톱 주연으로 나오는 다큐 드라마.
작은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식당에 방문해서 주문하고, 맛보고, 평가하는 내용까지.
“졸라 맛있게 먹네.”
너튜브 채널 키우는 미식가의 월클 맛 칼럼니스트 도전기.
미드처럼, 로맨스는 싹 제거한 담백한 맛집 여행 드라마였다.
“이거 회냐? 너무 날먹인데?”
솔직히, 절반쯤은 그냥 음식 묘사랑 맛있게 먹는 내용이 다였다.
시스템이 표현력도 올려주니까 욕쟁이 할매집에 다시 들르긴 해야겠지만.
‘일단 내가 혼자 써 보고 비교해야지.’
솔직히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오늘 직접 먹어봤으니 당장이라도 맛을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마지막회 정보열람(Lv 2)을 사용합니다.】
‘아니, 진짜 외국 가라고?’
굳이 촬영까지 외국에서 할 필요는 없겠지만.
대본을 쓰러 외국에 가는 건 불가피할 것 같다.
정말로 뉴욕이나 이탈리아의 최고급 레스토랑에 들르게 생겼으니.
‘이번 작품은 그냥 대본을 천천히 써야겠어.’
그 다음에 촬영진을 구하던가 해야겠다.
* * *
며칠 뒤, 템페스트 엔터 내 작업실.
할매집에 다시 들러 편집한 대본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아니, 그냥 완전히 똑같아.’
아예 처음부터 내가 썼던 대본이라고 판단해도 무방한 수준.
특히, 이번엔 대사의 비중이 작어서 더욱더 그런 특성이 두드러졌다.
띠링─
그때, 얼마 전에 저장했던 번호로 톡을 받았다.
“교수님….”
톡을 보자마자 일전에 대학교 지도 교수님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진우야, 그때 말했던 강연 말이야]
[날짜가 잡혔는데…. 이 날 시간 괜찮은가?]
주말이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비는 날이었다.
시트콤 촬영도 없어서 급한 일도 없을 것 같고.
톡, 토토톡─
[네. 교수님. 시간 괜찮습니다.]
톡을 보내는 동시에 1이 사라졌다.
[오 잘됐구만]
[장소랑 강연 내용 톡으로 보낼 테니까.]
[혹시 물어보고 싶은 내용은 나한테 물어봐.]
알겠다는 톡을 보내고, 강연 내용을 확인했다.
《김진우 작가 특강》
-한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살아가는 법.
-1년 동안 김진우가 이룬 업적.
-실패 없이 오직 성공만 맛보는 삶이란.
-대한민국 0.1%의….
내용을 보니까 가관이었다.
낯부끄러운 용어들만 나열되었으니.
“뭔데 이거.”
톡, 토톡─
[교수님, 혹시 강연 내용을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요?]
곧바로 교수님께 톡을 보내고, 당연히 가능하다는 답장을 받았다.
“어휴. 늦게 봤으면 큰일 날 뻔.”
까먹기 전에 화이트보드에 날짜와 장소를 적어놓았다.
특히, 강연 내용도 준비해야 하니까 일정을 여유롭게 기재했다.
드르륵─
한참 화이트보드에 스케줄을 적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작업실 문이 열리며 효주가 들어왔다.
“오빠!!! 지금 촬영장 난리 났어요!”
“뭐?”
“저도 조연출님한테 방금 들었는데….”
“???”
평소에도 텐션이 높은 편이지만 이 정도는 아닌지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퍼플걸스….!”
큰일 났다면서 갑자기 퍼플걸스는 너무 생뚱맞지 않냐.
“지금 촬영장에 퍼플걸스가 왔어요!”
“미령 씨?”
“아뇨. 퍼플걸스 전원!”
“아…. 그럼 임진년 촬영장은 아닐 테고.”
“당연히 시트콤이죠!”
부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아직까지 부른 기억이 없는데.
“나지수 감독님이랑 연락한 다음 급하게 스케줄 냈대요!”
“어? 그럼….”
“내일 다시 일본에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까….”
“빨리 대본 고쳐야겠네?”
“당연하죠!”
퍼플걸스 완전체면 시청률 견인 보증 수표나 다름없지.
요즘 글로벌 인기는 거의 블루핑크랑 견줄 만큼 올랐기에.
‘특히 세미 씨 출연료는….’
적어도 지금 만큼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워낙 바쁘신 몸이라 연락도 잘 못 할 정도였으니.
“효주야, 먼저 가 있어라.”
“네?”
“나는 여기서 대본 수정할 테니까.”
“오오!!!”
효주는 내 말뜻을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내주는 대본, 바로 감독님께 전달해.”
“네!”
“가즈아─!”
“가주아!!!”
* * *
「쉐어 하우스」 촬영장.
나지수 감독은 연출진과 함께 퍼플걸스를 활용할 에피소드를 정리했다.
“17화에 옆집 아이들 소음 에피소드는 어떨까요?”
“나쁘지 않네요.”
“25화에 걸그룹이 나오긴 하는데….”
“아주 잠깐 등장하니까 너무 아깝죠.”
그때, 나 감독을 조심스럽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아, 효주 씨. 어쩐 일로….?”
“여기요. 김진우 작가님이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요.”
“아, 그럼….”
“방금 전에 편집한 건데. 25화 걸그룹 분량을 대폭 늘렸습니다.”
“오….!”
지수는 곧바로 대본을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그래. 이거지!!”
퍼플걸스 멤버들이 매력을 제대로 발산했으며, 시트콤 기존 출연자들 간의 케미 역시 살아있었다.
25화를 시작으로 26화까지 두 편에 걸쳐 나오는 퍼플걸스.
딱 방영 한 달쯤 됐을 때 시청률을 펌핑해줄 소중한 자원이었다.
“와…. 역시 김진우 작가님.”
“지금 25화는 완성했고, 26화도 최대한 일찍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효주 씨.”
“감독님이랑 작가님이 고생하셨죠.”
급하게 수정해서 그런지, 평소처럼 대본에 빼곡한 지시가 기술되어있지는 않았지만.
나지수 감독에게 어려운 연출은 전혀 없었다.
일전에 캠커사 때도 충분히 훈련을 해놨으니.
“세미 씨, 바로 촬영 들어갈게요!”
탑급 영화배우에 글로벌 아이돌 센터의 여신처럼 빛나는 세미.
남성 스탭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했다.
“스탠바이, 액션!”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촬영이 이어졌다.
두 편 연속 촬영이었기에, 밤늦은 시각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이제는 체력적으로 더이상 촬영이 불가능하다 싶을 때까지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다.
늦은 시각, 뒤늦게 김진우 작가가 현장에 도착하고.
퍼플걸스 멤버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쪼르르 달려가서 인사했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오호, 요즘 카메라 마사지 받아서 그런가.”
“맞아요. 잘 생겨졌어요. 히히.”
오랜 촬영으로 힘들 텐데도 비글처럼 떠들어대는 멤버들.
해맑은 아이돌의 매력에 남성 스탭들은 입에 걸린 미소를 거둘 길이 없었다.
“오늘 고생했어요.”
“작가님도요!”
세미는 활짝 웃으면서 진우에게 말했다.
“작가님, 저번에 저한테 보여주신 작품….”
“네?”
“나쁜 남자의 사랑법.”
“아….”
“기다릴게요. 제작될 때까지.”
“고마워요.”
잠시 후, 퍼플걸스 매니저는 바쁜 멤버들을 데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우는 그들의 차량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곧이어 나지수에게 다가갔다.
“나 감독님 수고하셨어요.”
“작가님….”
“네?”
“방금 레인보우 엔터에서 허가 떨어졌어요.”
“무슨….?”
“제작발표회 날, 퍼플걸스로 언플해도 될 것 같아요!”
“…. 이틀 남았는데요?”
아니, 이미 저녁 늦은 시각이라 하루밖에 안 남았다.
“제가 오늘, 내일 밤을 새워서라도 예고편 기가 막히게 뽑아내겠습니다!”
“…. 화이팅.”
나지수 감독은 원래 바쁠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 * *
시간이 흘러, 제작발표회 당일.
의외의 인물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은 그의 등장에 갑론을박을 주고받았다.
“세상에, 정대한 부회장!?”
“대체 이 드라마가 뭐라고…..?”
천성 그룹의 실질적인 지배자.
정대한 부회장이 일개 드라마 기자회견에 예고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MDN의 정조준 사장은 직접 비서 역할을 자처하며 부회장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
정새롬 실장은 멀리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