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22)
아침부터 전주에 들러 맛집을 찾고, 점심쯤 집으로 돌아왔다.
“실장님도 좋아하실 텐데.”
원래 데이트 코스는 남자가 먼저 준비하는 법.
사실, 지난 새벽 동안 집에서 밤새도록 짱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실장님께 라면을 얻어먹을지 방법을 모색하면서.
기회는 한 번뿐, 이건 한번 거절당하면 끝이다.
그 다음에도 계속 매달리면 바로 철컹철컹하는 거야.
‘내가 연애 이론은 마스터거든.’
저번에 집에서 파스타 해준다고 했을 때 어떻게든 갔어야 해.
한번 들어가는 게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의외로 쉬울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괜히 아침부터 전주까지 다녀온 게 아니었다.
욕쟁이 할매집은 실장님도 좋아하셨으니까.
전주에서 기가 막힌 맛집을 찾았다고 말하면 안 갈 수가 없단 말이지.
운전해서 가도 꽤 먼 거리라서, 돌아올 때쯤에는 배가 꺼질 테니까.
‘타이밍 잘 맞춰서 라면 신청을….’
아니지, 잠깐만.
나는 왜 실장님 집을 꼭 저녁에만 갈 생각을 하는 거지?
가서 글도 써야 하건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네.
“키키킥.”
결혼이 걸린-, 아니, 인생이 걸린 중대한 문제로 사색에 잠겨 있거늘.
소파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아우님께서 쪼개는 모습을 확인했다.
“김희정, 너 뭐하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혼자서 낄낄대는 김희정 여배우님.
“응? 오빤 몰라두 돼.”
“어, 그래. 전혀 안 궁금해.”
“…. 과연 그럴까? 실장님 제로투 영상인데?”
“놀구 자빠졌네. 내가 그걸 믿겠…. 응?”
슬쩍 내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희정이.
비록 마법소녀 분장까진 안 했지만, 익숙한 음악과 함께.
“레알?”
얼핏 스치는 모습을 보니, 진짜 실장님이 맞는 것 같다.
“야, 갖고 와.”
“안 돼. 나한테만 보여주신 거야.”
“왜 하필 너만?”
“내가 먼저 우연히 봤거든. 히히.”
“…. 좋은 말로 할 때 갖고 와라. 뒈지기 싫으면.”
“놉! 이거 보여주면 언니가 나랑 절교한댔어.”
“나는 이미 너랑 의절했어.”
“흥, 나도거든?”
희정이는 내가 힘으로 뺏을까 봐 두려웠는지, 제 방으로 잽싸게 도망갔다.
“김희정이, 감당할 수 있겠어? 내가 대본으로 복수할지도 모르는데?”
“안 무서운뎅?”
“너 혹시 킹콩 분장 안 해볼래?”
“???”
“아니면, 최근에 코딱지 먹어 봤냐?”
“!!!”
여동생은 아주 잠깐 망설이더니 문을 쿵- 하고 닫아버렸다.
아마도, 당연히 내가 농담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두고 보자. 이 자식.’
이제 혼자서 작성해도 퀼리티를 뽑아낼 자신이 있었다.
오늘 무슨 내용이 나오든 너는 무조건 킹콩으로 대체될 거시야.
‘아니, 근데….’
제로투 지목은 내가 했는데 왜 실장님은 쟤만 보내주냐. 어이가 없네.
영상 공개할 생각도 없으시면, 적어도 나한테는 보여주고 접던가.
톡, 토톡─
냉큼 실장님께 톡을 보내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실장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
억울한 마음에 일단 보내긴 했지만, 그 다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지이이잉─
그때, 실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실장님.”
-무슨 뜻인가요?
“제가 진짜 오래 고민했는데요.”
-네.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념이 휘몰아쳤다.
문득, 황금알을 낳는 오리배를 가른 우화 속 어리석은 부부가 떠오른 이유는 뭘까.
“…. 우리 같이 전주 여행 갈래요?”
-네? 여행은….
“다, 당일치기로! 욕쟁이 할매집보다 맛있는 식당을 찾았어요.”
-아, 음….
수화기 너머로 고민하는 실장님의 모습이 연상됐다.
-그래요. 그럼.
“굿!”
-작가님, 며칠 뒤에 임진년 마지막 촬영이죠?
“네. 맞아요.”
-그 촬영만 끝나면 여유가 좀 생기니까. 그다음 날 가시죠.
“콜입니다.”
-네. 그럼.
시스템이 내게 부여한 시간은 일주일.
촬영 끝나고 가도 여유로운 편이니까.
그동안 강연 대본을 점검하던가, MDN 요리 예능 스케줄이나 확인해야겠다
* * *
MDN 방송국.
최근에 회사 내에 많은 인력풀이 새로운 인물로 채워졌다.
외부에서 영입한 스타 PD도 간간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 예능본부에 야심 차게 영입한 연출자도 존재했다.
한때, JTBS에서 ‘무전여행’과 ‘무전식당’으로 이름을 알린 정찬수 PD.
특히, 음식이나 요리와 관련된 컨텐츠를 많이 다뤘으니.
백중원 선생님과도 안면이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키야, 내가 이렇게라도 김진우 작가님이랑 같이 일을 해보네.”
순정마초 때부터 그를 알아보고 영입하려고 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사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김진우 작가는 원래 모르는 번호를 잘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때 포기한 게 천추의 한이로다.”
잠시 후, 약속 시각에 맞춰 출연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인은 당연히 백중원 선생님, 그리고 보조로 김진우 작가님.
마지막으로, 방송 출연은 부담된다고 하면서 빠진 백중원 선생님의 아내분을 대신해서.
‘신인배우 이시연이라….’
그냥 템페스트 엔터에서 밀어주는 느낌이 강했다.
배우로서 커리어가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
하지만, 백중원 선생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진짜 요리사잖아?’
그냥 적당한 실력이 아니라 요리 경연대회 수상자 출신.
게다가, 맛 평가사 자격증까지 갖춘 특이한 이력까지.
“PD님, 미식이랑 뭘까요?”
“네?”
갑작스럽게 정 PD에게 질문을 건네는 백중원 선생.
“문화를 알고 조리법을 알고 상대를 알아야 하는 거거든.”
“아, 네. 그렇죠. 선생님.”
“시연 씨는 근본이 탄탄하다고 봐유.”
“하하. 그런가요.”
아이템 선정도 끝났고, 촬영진 세팅도 완료되었으니.
“첫 촬영 날짜는 여기 쓰인 날짜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 PD는 예능 작가에게 받은 대본을 출연진에게 전달했다.
특히, 김진우 작가는 대본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는데.
“재밌네요.”
요즘 최고의 작가에게 긍정적인 사인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미팅을 파하고, 진우는 은근슬쩍 정 PD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기, PD님.”
“네. 작가님.”
“혹시 다큐 드라마 감독…. 한 명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네?”
월드 클래스 미식가.
방송국이 아니라, 개인 채널에 올릴 만한 사이즈의 드라마.
분량도 그렇고 TV로 볼만한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큐 PD도 아니고, 다큐 드라마 PD는….”
“쉽지 않겠죠?”
“네. 어렵네요.”
사실, 진우의 목표는 시스템이 내준 미션을 깨는 것이었다.
【미션 : 당신이 아는 인물 중에서 신인배우를 발굴하세요.】
‘미션 내용이 졸라 애매하네.’
그래서 더욱더 시연의 이름을 예능으로 알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웹드라마도 찍었는데,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황당할 것 같아서.
진우가 사라지고, 정 PD는 다큐 드라마를 전문으로 찍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 고민했다.
“아….!”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올랐다.
워낙 비주류 장르라 한국에서 몇 명 없었지만.
“이름이…. 심주원 PD랬나.”
요즘 여기저기 강연이나 공연 같은 데에 돈 받고 촬영한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아니라서 진우에게 말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 * *
며칠 뒤, 「임진년, 반격의 칼날」 마지막 촬영장.
워낙 성적이 좋다 보니 스탭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CG 작업까지 고려해, 촬영 일정을 빡빡하게 짰음에도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효주야, 벌써 마지막 촬영이야.”
“그러니까요.”
“시간 빠르네.”
“오빠, 이번 작품의 진짜 마지막 장면은….”
“백윤 배우가 끝낼 거야.”
조금 고전적이긴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현대인 백윤이 역사책을 보면서 끝이 난다.
극 중 천재 책사로 명성을 날린 김성일 대감은 광화문 동상의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자연스레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님 뒤에 세 번째 위인으로 자리매김하고 끝을 맺는다.
“…. 레디, 액션!”
마침내, 국진현 감독의 마지막 씬 사인이 떨어졌다.
특수 효과로 채워질 초록색 배경에 덩그러니 놓인 모형 배.
전쟁 영웅들은 다 함께 배 위에 모여서 왜나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우리의 명분과 노고를 후대인들이 정의할 테지요.”
“후대인의 평가보다 중요한 건 당장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지.”
“전리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싸움입니다.”
현대인 김인수가 아니라, 진짜 김성일 대감이 옆구리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곧이어,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촬영이 종료되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반드시 패배할게요.”
밍쁨이 그렸던 콘티상, 대장선 뒤로 수백 척의 판옥선이 뒤를 따를 터였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오케이, 컷! 수고했어요!”
국 감독님의 사인과 함께 스탭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한산도 대첩 씬에서 무려 시청률 35%를 찍은 대박 작품의 촬영이 종료된 것이다.
“효주야, 막방까지 대충 2주 남았나.”
“네. 오빠.”
이렇게, 어려운 고비를 또 한 번 넘겼다.
“아, 오늘 저녁에 회식 잡혔대요.”
“공영 방송은 원래 회식 안 하는 거 아니었나.”
“에이, 그래도 이렇게 대박 났는데 뒤풀이 장면은 남겨야죠.”
“음…. 글쎄.”
귀찮은데.
“정 실장님은 중간에 오신대요!”
“여윽시 마지막 촬영 날엔 당연히 회식 조져야지.”
“그쵸!”
하지만 언제나 조져지는 건 나였다.
“효주야.”
“네?”
“회식 다 끝나가잖아.”
“…. 그러네요.”
“실장님 오신다며.”
“바쁘셔서 못 오신대요.”
“….”
“내일 급하게 전주로 출장 잡히셨다고.”
뜨금─
출장이 아니라 나랑 맛집 가는 거잖아.
“실장님이 그러셨어?”
“네. 그래서 오늘 일 다 끝내야 한대요.”
“흠, 그래?”
“그래서 변 팀장님도 안 오셨어유. 힝.”
“힘내.”
“네에….”
나는 내일을 위해 술을 적당히 먹고 적당히 일어났다.
시청률이 워낙 잘 나왔으니, 회식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다.
다음 날,
실장님과 만나서 함께 움직이려고 타운힐 아파트로 향했다.
띠링─
그런데, 약속 시간 직전에 실장님께 톡이 하나 날라왔다.
[어쩌죠? 집에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는데….]
음, 내가 바쁜 실장님을 너무 귀찮게 했나.
어디 카페라도 가서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띠링─
[작가님, 우리 집에 들어와서 기다리셔도 괜찮아요!]
“…. 전주는 나중에 가야겠는데?”
* * *
인재대 국문학과 이태성 교수는 총장실을 방문했다.
똑, 똑─
“네. 들어와요.”
문을 열자마자 총장은 이 교수를 격하게 환영했다.
“하하. 우리 김진우 작가님 은사님께서 오셨구만!”
“그런 거 아닙니다. 총장님.”
“에이, 무슨!”
작나 나부랭이 취급을 받기엔 김진우의 격이 너무 올라갔다.
일개 작가를 배출했다는 이유로 인재대학교의 명성은 껑충 뛰었으니.
“재학생보다 졸업생이 더 많이 신청했다던데.”
“졸업생도 우리 학교 출신이죠.”
“하하. 맞아요. 지금 입결이 세 단계는 오를 거라는 전망이에요.”
“아…. 네. 저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국문학과는 특히나 더 오르지 않겠습니까?”
“요즘 분위기가 좋긴 합니다.”
최근, 김진우가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국문학과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미국의 모 대학 지리학과 졸업생 평균 연봉이 1억 원인 것과 비슷하다.
의대보다, 법대보다 높은 이유는 마이클 조던이 졸업했기 때문이었으니.
현재 인재대 국문학과 학생들은 이상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하여튼, 이렇게 김진우 작가와 연을 유지해 주세요.”
“저기, 총장님.”
“네?”
“김진우 작가 강연을 촬영해서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무슨 문제라도….”
“….”
당연히 문제가 있다.
“강연료도 전부 기부한다고 합니다.”
“아, 그건 들었습니다만….”
“김진우 작가 본인 너튜브 채널에 올리는 정도는 배려해 드려야죠.”
“흠….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총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 교수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좋은 감독 있으면 직접 섭외하실 수 있겠어요?”
“네. 심주원 PD라고, 지금 연락이 닿아서 말을 맞춰보고 있습니다.”
다큐 드라마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혼자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는 만능 연출가였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줘요.”
총장은 웃는 얼굴로 이 교수를 바라봤다.
‘이제 인문대학에서도 총장이 나올 때가 됐지.’
* * *
새롬은 날렵하게 움직이며 급하게 집을 정리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편하게 들어오라고 했지만.
일전에 파스타를 해준다고 오라고 했던 때랑 왜 이렇게 기분이 다른지.
“음….”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고 머리를 정돈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최소한의 메이크업을 한 얼굴까지.
띵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인터폰에 김진우 작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진우가 들어오자마자 하는 말.
“어? 예쁘다.”
“….”
음성인식 뭐지.
요즘 개그 프로 보시나.
진우는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말을 걸었다.
“실장님, 일할 거 많아요?”
“한 시간 정도….”
“음, 전주는 다음에 가고 오늘은 라면…. 아니, 저번에 말씀하신 파스타 해주면 안 돼요?”
“네?”
“사실, 저도 여기서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서….”
“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진우 작가는 종종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는 경향이 있었으니.
‘이따 조준 오빠가 잠깐 들른다고 했는데….’
전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연락하기로 했지만.
톡, 토톡─
새롬은 곧바로 조준에게 오지 말라는 톡을 보냈다.
[나 오늘 전주 출장은 취소됐어]
[근데 계속 회사에 있을 것 같아 ㅠ]
[그냥 오늘 말고 내일 집에 들러줘]
본가에서 아주머니가 싸주신 음식을 손수 전달해 준다고 했으니.
무슨 방송국 사장님이 그런 걸 직접 하느냐고 면박을 줬던 게 바로 어제였다.
“그럼 오늘은 제가 요리해 줄게요.”
“네!!!”
낯선 남자가 처음으로 집에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분위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가짐 덕분인지.
타닥, 타다닥─
한동안 거실에는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가님, 저는 끝났는데….”
“음, 저는 아직 많이 남았어요.”
“옆에서 구경해도 될까요?”
“그럼요.”
오늘도 김진우 작가의 집필 속도는 대단했다.
단 하루 만에 세 편을 연달아 쓰고 계셨을 줄이야.
‘…. 희정이가 킹콩 분장을 하네.’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입을 틀어막았다.
“킹콩 분장을 하고 코딱….”
“네?”
“아, 아니에요.”
제작사 대표로서 작품에 개입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완성본도 아닌데 나서서 간섭할 수는 없었다.
“와우, 희정이가 고생이 많네요.”
“시트콤이잖아요. 자극적으로 뽑아야 시청률도 나와요.”
“아, 네. 그쵸.”
새롬은 한참 동안 김진우 작가의 옆에서 구경하다가 입을 열었다.
“배고프시죠?”
“네? 아….”
“재료 다 있어요. 제가 맛있는 스파게티 해드릴게요.”
“네! 실장님.”
진우는 멀어지는 실장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덜덜덜덜─
할리 데이비든 오토바이 배기음이 고급 아파트 단지를 뒤덮었다.
“102동…. 1102호.”
정조준은 헬멧을 쓴 채로 여동생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았는데.
“어라? 오늘 집에 없다고 톡 했었구나.”
그냥 아주머니가 전달해 주신 음식만 놓고 나오면 되니까.
삐리릭─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도어락이 열리고 안에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누구세요?”
누군지는 자신이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리 봐도 XY 염색체를 가진 것으로 판별되는 사내놈.
“그, 배달 왔….”
“네. 감사합니다.”
곧바로, 포장 음식을 받자마자 다시 문을 닫아버리는 상대.
정조준은 헬멧도 벗지 못한 채 한동안 제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아는 김진우랑 많이 닮았네?’
아무래도 몰래 들어온 것 같진 않았다.
주방 쪽에서 새롬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니.
“….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 지금 배달 기사로 오해받은 거잖아.
여동생 집에 남자가 왔으면 화를 내야 할 상황 아닌가.
“아니, 다 큰 성인이니까 화낼 것까진 없긴 한데.”
조준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터덜터덜 자신 오토바이로 걸어갔다.
한편, 같은 시각.
김진우는 배달 기사에게 받은 음식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포장 용기가 이렇게 고급스럽지?”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도 뭔가 배달 음식 같지가 않잖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앞치마를 두른 새롬이 진우에게 말했다.
“작가님! 파스타 다 됐어요!”
진우는 생각을 멈추고 새롬에게 다가가 포장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게 뭐예요?”
“실장님이 배달시킨 거 아니에요?”
“음…. 글쎄요.”
새롬은 진우의 눈치를 살피더니, 급하게 그의 시선을 파스타로 돌렸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식사부터. 식으면 맛없어요.”
“넵.”
새롬은 살짝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포장 음식을 바닥에 내려놨다.
“배달 기사 못 봤어요?”
“네? 그야, 헬멧 쓰고 있으니까.”
“아! 다행이네요.”
“그게 왜 다행….?”
새롬은 진우가 아무 말도 못 하도록,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아서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냠, 맛있어요!”
“정말요?”
“네! 실장님, 요리의 신이었네! 욕쟁이 할매집보다 맛있어요!”
“에이, 그 정돈 아니고.”
“진짠데.”
새롬은 엄마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진우를 바라봤다.
한 번씩 그의 입에 소스가 묻을 때마다 티슈를 꺼내서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