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23)
템페스트 엔터 내 작업실.
나는 노트북을 켜 놓고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나는 될 놈이다.”
어제 실장님이 파스타 멕여줄 때 확신했다.
아니, 입 닦아줄 때 확신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진짜 고백해도 될 것 같아.”
어젯밤, 정새롬 실장님과 오붓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식사 중에 스마트폰을 확인한 실장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작가님, 갑자기 오빠가 올 것 같아요!
-어휴, 형님께 인사를 드려야 하나?
-…. 절대 안 돼요!
-까비.
원래 파스타를 다 먹고 나서도 할 게 참 많았는데.
영화도 같이 보고, 팝콘도 먹으면서 눈이 그냥 파바박, 하트는 뿅뿅.
“…. 하여튼 아깝다.”
그래도 어젯밤은 참 따뜻했어.
엄마 말고 여자가 해주는 밥은 처음인 듯….?
아니지, 김희정이 끓인 라면도 먹어 봤구나.
“어, 왜 눈에서 콧물이 나지?”
드르륵─
그때, 효주가 생기발랄한 발걸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왔다.
“오빠! 일본에서 초대박 난 거 아시죠?”
“응? 뭐가.”
“강준 배우님이요!”
“아, 액션 드라마 하나 찍는댔지.”
곧바로, 효주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게 기사 하나를 보여주었다.
《에미코의 사전제작 드라마 「무사도」 터졌다! 현재 일본에서 주연 배우 강준의 인기는….》
에미코의 대본과 함께, 강준의 액션씬이 하드캐리했다는 내용의 뉴스.
지금까지와 달리, 진짜 일드에 출연해서 성공한 거라 느낌이 많이 달랐다.
“완전 초대박 났어요!”
“오오….!”
생각해 보니까 강준 수입의 17프로는 내 돈이잖아.
“임진년보다도 인기 많았대?”
“음…. 아마, 굳이 인구대비를 고려해서 비교하자면….”
“뭐, 잘됐네. 강준이 뜨면 나야 좋지.”
“에미코 작가님 SNS에 글 하나 올라왔는데, 보실래요?”
“응?”
영어로 쓰인 게시글을 대충 해석했더니.
이제 스코어는 1대 1이라고 자랑하는 내용.
“이게 뭔 뜻이지.”
“글쎄요.”
“됐고, 요즘 은빈이 소식은 없어?”
“아, 은빈이 마법소녀 이제 막 그리기 시작했대요!”
“그래? 빠르네.”
여기저기 다 잘 굴러가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이제 오늘의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려는데.
그에 앞서, 효주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내게 물었다.
“저기, 오빠. 어제 보내 주신 대본 봤는데요.”
“어, 왜.”
“희정이, 킹콩 분장하는 거 진짜예요?”
“당연하지.”
“음, 아무리 봐도 귀여운 토끼 분장이 맞는 거 같아서.”
“어휴, 우리 효주 입봉하려면 멀었네. 감 떨어졌구나?”
“헐, 말넘심….”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네.
이제 시트콤 내용상에서도 러브 라인이 제법 진행된다.
역시 한국 드라마에서 로맨스 빠지면 섭섭하다니까.
“백윤이랑 김현지 캐릭터는 이제 거의 사귀는 단계네요?”
“응. 부럽게.”
“…. 그럼 희정이는요?”
“우리 아우님은 영원히 개그캐야.”
“아하.”
마지막화에 한 커플이 결혼하고 끝나는 드라마.
베네핏으로 본 마지막회 정보는 이 정도가 끝이었다.
‘포인트를 또 쓰기엔….’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쓰는 건 좀 아깝고.
“아, 근데요. 오빠.”
“응?”
“강연 준비는 잘하고 계세요?”
“당연하지.”
내 주제에 무슨 강연인가 싶긴 한데.
그래도 커리어만 놓고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작년부터 웹드에 영화까지 치면 성공시킨 작품이 총 7개.
“일단 강연 게스트들 대본 초안 써놨으니까. 네가 대본 좀 전달해 줘.”
“네. 오빠.”
“아! 실장님 대본은 내가 보내드릴게.”
“넹.”
오늘 점심도 실장님이랑 함께 먹을 생각으로 톡을 보냈다.
[실장님, 오늘 점심 같이 드실래요?]
[이왕이면 저녁도 ㅎㅎㅎㅎ]
생각보다 실장님의 답장은 빠르게 도착했다.
띠링─
[좋아요]
점점 실장님과 사이가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 * *
며칠 뒤, 마침내 다가온 인재대학교 강연 당일.
정새롬 실장님을 포함한 게스트들이 전부 모여서 한 번에 이동했다.
회사 막내였던 김희정은 새로 들어온 막내 앞에서 꼰대 기질이 튀어 나왔다.
“이름이 시연이라고 했나?”
“네? 아, 네! 맞습니다!”
“무슨 시연?”
“이시연입니다, 선배님!”
“이야, 좋을 때다. 그래서 몇 살이라고?”
“스물여덟 살입니다!”
“…. 동안이시네여. 언니.”
저건 진짜 빡대가리가 맞아.
내 학교 동아리 후밴데, 나랑 나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냐.
그래도 게스트들을 보니까 마음이 든든하다.
혼자서 3시간 동안 혼자 떠들 자신은 없어서.
끼이익─
곧이어, 실장님이 웃으면서 모두에게 말했다.
“도착했네요. 이제 내리면….”
“와아아아아아─!!!!”
문이 열리는 동시에, 바깥에서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김희정이랑 이진호의 팬들이 몰려온 건지.
안전요원들이 양팔을 벌려서 막고는 있었지만.
수많은 팬들을 전부 막기엔 인력이 부족해 보일 지경이다.
“작가님, 빨리 가시죠.”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강연장 내부로 들어섰다.
‘이거, 거의 팬 미팅 현장인가.’
학교에서 가장 큰 대회의장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관중.
티케팅 1초컷의 승리자들이 특강을 들으러 빼곡히 들어섰다.
이어서, 대기실에서는 지도 교수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진우 왔어?”
“네. 교수님.”
“이쪽은 심주원 PD님, 오늘 강연 찍어서 너한테 보내줄 거야.”
“네?”
“아, 미리 말을 안 했구나.”
너튜브 채널이든, 템페스트 회사 채널이든.
상업적으로 영상을 이용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시는 교수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 참, 무슨 말을…. 내가 오히려 감사하지.”
그때, 이시연이 눈을 크게 뜨고 PD에게 아는 체를 했다.
“심주원 PD님…. 안녕하세요!”
“아, 시연 씨?”
“???”
시연은 내 표정을 보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예전에 심 PD님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했었습니다.”
“…. 네가 단역 출연한 작품이면.”
다큐 형식의 드라마.
재미는 없지만 감상적인 연출이 기억에 남았으니.
‘…. 혹시 이것도 시스템의 설계?’
이제는 의심병이 걸릴 지경이지만.
이렇게 요리 재료를 다 모을 줄이야.
“심 PD님, 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제, 제 번호요?”
“네. 나중에 미팅 한 번 하시죠.”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월드 클래스 미식가」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기에.
이내, 정 실장님은 주변을 환기시켰다.
“자, 어쨌든 간단하게 메이크업만 하고 각자 시간 맞춰 무대에 오르시죠.”
첫 번째 순서는 당연히 내 차례였다.
* * *
김진우 작가가 강연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강연하는 중간까지.
객석에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여인이 존재했다.
조아름은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싶었다.
‘나야, 나 여깄다고!’
첫 번째 파트, 한국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약 30분간 김진우는 자신의 인생사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아! 그렇다고 이민주 작가님을 탓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하하하하.”
확실히 보조 작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름에게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혹시 질문 있으면 세 분만 받을게요.”
조아름은 이때다 싶어서 손을 번쩍 들었다.
‘어? 누, 눈 마주쳤어!’
역시 김진우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우연히 눈을 마주칠 수는 없….
“거기 체크무늬 옷 입은 남성분이요.”
“저, 저요!?”
“네.”
“아, 저는 작가 지망생 조유상이라고 합니다! 정식으로 드라마 작가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가장 빠른 길은…. 사람 많은 곳에서 시스템창! 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
“…. 은 농담이고, 공모전이 가장 빠르겠네요. 다음이요!”
아쉽게도, 다음 질문 차례에도 조아름은 뽑히지 않았다.
아직 강연은 세 챕터씩이나 남았으니까 다음을 기약했는데.
‘저 사람은…. 정새롬 실장.’
김진우 작가와 함께 템페스트 엔터를 국내 정상급 엔터로 올려놓은 사람.
종종 진우와 함께 방송에도 출연해서 잘 알고 있었다.
연예계에서도 재색을 겸비한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정새롬 실장입니다.”
“우오아아아아─!!!”
인사만 했는데, 무슨 군부대 위문 공연에 온 것처럼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조아름의 자부심과 자존감은 밑바닥을 기어들어 갔다.
적어도 외적인 매력은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앞선다고 생각했건만.
‘그래도 원래 김진우는 나를 더….’
아름은 두 사람이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봤다.
무슨 연인처럼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 뭐가 이렇게 달달한지.
‘둘이 무슨 사이….?’
결국, 그녀는 새롬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 * *
실장님과 함께 무대에서 내려오고, 이시연이 무대에 올랐다.
‘이상한 개그만 하지 마라.’
저번에 백 선생님 앞에서 얼마나 조마조마했었는지.
슬쩍 믿는다고 말하고 내려오는 동시에.
이시연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울려 퍼졌다.
“여러분, 소랑 개가 부딪히면?”
“….”
이런 씨, 그거 내가 하지 말라고.
“소개팅!!!!”
스윽─
그때, 실장님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작가님, 일단 믿고 맡겨요. 20분은 시연이 시간이니까.”
“아, 네.”
엉겁결에 실장님 손을 잡고 같이 대기실로 향했다.
‘말랑말랑하네.’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작가님.”
“네?”
“너무 주무르는데요?”
“아, 좋아서 그만.”
“…. 속마음을 자꾸 말로 하시네요.”
내 생각에 이 정도면 우리 사이가 썸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실장님과 단둘이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실장님. 제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데요.”
“네?”
“오늘 저녁 같이 드실래요?”
“아….”
뭔가 이상한 기류를 느꼈는지, 실장님은 잠시 뜸을 들었다.
곧이어,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실장님이 고운 입술을 떼었다.
“어쩌죠? 저 오늘 대표님이랑 식사 약속 있는데.”
“우리 회사…. 정기태 대표님?”
“네. 혹시 내일은 어때요….?”
“좋아요!”
실장님과 마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던 중.
갑자기 들어온 희정이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오빠! 이제 우리 차례야!”
“아, 그러네. 갔다 올게요.”
“네. 작가님.”
희정이는 음흉한 눈빛으로 연신 나를 힐끔거렸다.
“야, 죽을래?”
“…. 갑자기? 내가 왜?”
“그냥 방금 눈빛이 재수가 없었어.”
“얼레리 꼴레리.”
“….”
관객들 앞에서 동생이랑 치고받고 싸우면 뉴스에 나오려나.
잠시 후, 나는 무대 위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여배우 동생을 두면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요?”
손을 들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을 지목했다.
“매일 예쁜 얼굴 볼 수 있잖아요!”
“…. 그건 단점이죠.”
“???”
“못생겼는데 남들은 예쁘다고 하면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어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싸대기 날리고 싶게.”
“하하하하.”
웃으라고 한 소리 아닌데요.
당연히 희정이는 반격을 가할 줄 알았는데.
내 여동생은 생각보다 훨씬 여우 같은 인간이었다.
“여러분! 작가 오빠를 두면 좋은 작품 제일 먼저 읽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오오….”
천사를 바라보듯 희정이에게 시선을 주는 관객들.
당신들은 속고 있다고 말을 해도 안 믿을 것 같다.
내 대본을 쓰레기 활자조합물 불쏘시개라고 욕했던 나날들이 기억나지 않는 건가.
‘죽을래?’
‘해보실?’
뒤를 돌아서, 희정이와 눈으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시간.
관객들을 좌에서 우로 슬쩍 쳐다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강연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아아아….”
“마지막으로 질문받을게요.”
그때, 관중 속에서 손을 들고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같은 동아리였고, 한때 미모로 남심을 여럿 울렸던 사람.
아까부터 계속 손을 들어서 이번에도 안 불러주면 울 것만 같다.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건 아닌데.’
물론, 그때로 돌아가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네. 저랑 같은 동아리를 다녔던 조아름 씨, 말씀하세요.”
조아름은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우 씨, 행복하세요.”
“???”
뭔 개소리야. 왜 저래.
순간, 뒤쪽에서 뒤통수를 뚫어버릴 듯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돌아보니, 정 실장님이 눈을 사납게 뜨고 내게 해명을 요구했다.
‘개억울한데?’
오늘 실장님이랑 저녁 같이 안 먹어서 다행이다.
* * *
그날 저녁,
강남의 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세 사람이 들어섰다.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템페스트 엔터의 정기태 대표.
그를 뒤따르는 남녀 한 쌍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걸어갔다.
템페스트의 정새롬 실장과 MDN의 정조준 사장.
‘오빠가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지?’
만나자마자 당연히 김진우 작가에 대해 언급할 줄 알았다.
얼마 전, 자신의 집에 들르겠다고 톡으로 페이크까지 쳤던 오빠가 아닌가.
“새롬아.”
“응? 왜, 오빠.”
“그때…. 음, 아니야. 됐다.”
“….”
이어서, 세 사람은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했다.
“조준이가 같은 업계에서 일하니까 든든하네. 앞으로도 종종 밥 먹자.”
“아, 네. 삼촌.”
연장자인 정기태 대표가 대화를 주도했다.
주로 집안과 연예계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요즘 김진우 작가님이 정말 많이 수고해 주시더라.”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동시에, 두 젊은 남녀의 표정이 묘하게 상기됐다.
“다음에 불러서 다 같이 식사라도….”
“삼촌,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새롬은 급하게 삼촌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둘이서 같이 밥 잘 먹고 있으니까.
“허허. 그래도 사람 인심이라는 게 있는데….”
“괜찮아요.”
“때로는 인간적으로 가까워져도 나쁘지 않아.”
“…. 네.”
정조준은 그들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삼촌, 인간적으로 너무 가까워도 좀 그렇지 않을까요?”
“…. 무슨 말이지?”
“아닙니다.”
찌릿─
새롬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빠를 째려봤다.
“흠흠.”
조준은 처음 보는 여동생의 모습에 속으로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이래서 로맨스가 무서운 법이다.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거든.
식사를 마치고, 정기태 대표는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새롬아, 이번에 강준 배우가 제대로 터졌잖아.”
“네. 삼촌.”
“김진우 작가님 작품 덕분에 일본에서 우리 배우들 인기가 많이 올라갔어.”
“맞아요.”
“그래서 말인데….”
새롬은 정 대표의 뒷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일본 진출이요?”
“그래. 템페스트 제팬.”
“…. 쉬운 결정은 아니네요.”
“그치?”
“네. 누가 관리할지도 의문이고요.”
“…. 너.”
“???”
“당연히 너지. 내가 이 나이에 타지 생활을 하라고?”
“….”
“나 요즘도 맨날 와이프한테 바가지 긁혀.”
지분 없는 재벌의 설움이란.
그저, 돈 좀 많은 가장에 불과했다.
“그럼 그냥 없던 걸로 하시죠.”
새롬은 더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끊어냈는데.
정기대 대표는 옆에서 듣고 있던 조준에게 시선을 돌려 의견을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나쁘지 않네요. 일본 진출.”
“그치?”
“네. 지금도 일본에서 외주 업체 쓰잖아요. 그게 한두 푼이 아니거든요.”
“잘 아네.”
“차라리 제대로 된 회사를 설립해서 일본 시장을 개척하는 게 더 좋죠.”
“옳거니!”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정기태 대표는 팔짱을 끼고 새롬을 쳐다봤다.
“왜 그래, 뭐 걸리는 게 있나?”
“….”
전혀 없다. 일적으로는.
아니, 오히려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럼 난 연애는 언제 해?’
나도 내년에 서른이라고.
김진우한테 진우 오빠라고 부르고 싶다고.
“비행기로 고작 두 시간 거리야. 한국은 자주 왔다 갔다 하면 되니까….”
“그러면 그냥 삼촌이 가시면 되겠네요.”
“에이, 내가 수영을 못 하잖냐. 비행기 추락하면 나는 죽을 거야.”
“…. 비행기 추락하면 원래 다 죽어요.”
그때, 정기태 대표는 새롬의 정곡을 찔렀다.
“요즘 혹시 만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
“제, 제가요?”
그런데, 오히려 조준이 더 당황해서 새롬의 편을 들었다.
“삼촌, 우리 새롬이 그렇게 공과 사도 구분 못 하는 사람 아닙니다.”
“그야, 나도 알지. 내가 항상 정 실장만 믿거든. 하하하.”
“….”
상황이 이렇게 꼬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러면, 오히려 내일 김진우 작가를 만나서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본인이었다.
‘일본 진출이라….’
김진우 작가한테 물어보면 뭐라고 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