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26)
야마토는 김진우의 제안을 듣고 정신이 멍해졌다.
바로 오늘, 에미코 작가의 작품에서 캐스팅이 불발되었으니.
“그러면, 에미코 작가님 작품은 안 하기로 했다는 거죠?”
“네, 그렇긴 한데….”
“그럼 제 드라마를 같이 하시죠.”
“네?”
옆에 있던 리코는 눈을 크게 뜨고 진우를 쳐다봤다.
보통의 캐스팅 과정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에.
“왜 저를….”
야마토는 현재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
배우라는 걸 모르면, 평범한 사람들도 가까이하기 꺼려할 터다.
게다가, 상대는 글로벌적으로 히트작을 여러 번 낸 한국의 작가.
‘순정마초’와 ‘회귀자’, ‘마법소녀’는 일본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었다.
“야마토 씨는 제 작품이랑 딱 어울릴 것 같네요.”
“…. 제가요?”
사실 당장이라도 수락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석 달 전이었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테지만.
지금 몸 상태로 촬영은커녕 밖에 돌아다니기도 버거웠다.
이쯤 되면 귀차니즘도 심각한 병이다.
당분간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우선이었으니.
“죄송합니다.”
“네?”
“저는 지금 소속사에서도 버림받았어요.”
“….”
“계약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재계약은 없을 거예요.”
“음, 저기.”
“저는 당분간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나오니 진우로서는 당장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오히려 옆에서 듣고 있던 소꿉친구 리코가 나서서 그를 말렸다.
“야마토! 지금 장난해? 평생 침대에서 쉬게 해줄까?”
“응….?”
“작가님, 야마토는 그 작품 할 거예요. 제가 먼저 대화를 좀 나누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곧이어, 두 사람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아있는 진우와 강준은 벙찐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대차게 까였네.”
“아…. 그러네요.”
확실히, 한국이랑은 달랐다.
뭔가 사람들이 개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특히, 이번 드라마 특성상 캐스팅에 힘을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총 8명이 서바이벌 게임을 펼치는 전개.
당연하게도, 최소한 그 만큼의 배우가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강준아, 너 당분간 작품 들어가는 거 없지?”
“네. 광고랑 화보 촬영만….”
“…. 일단 새 작품 들어가지 말고 있어 봐.”
“네? 아, 네. 형님.”
절반쯤은 템페스트 사람으로 채워야 돈을 좀 만지겠지.
게다가, 현재 일본에서 강준 인지도는 최상급이니까.
일본에 템페스트 영향력을 순식간에 넓힐 수 있을지도.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도 직원을 충분하게 고용할 테고.
그럼 나는 정 실장님이랑 같이 한국으로 떠나는 거야.
이 정도면 완─벽한 일본 탈출 플랜이 아닌가.
‘일단 야마토 집에 들어가야 해.’
배우 변경권이 있으니까.
야마토를 섭외하진 못 하더라도 1부 대본은 써야만 한다.
“준아, 너 야마토 씨 번호 있어?”
“아, 아뇨. 대신 리코 번호는….”
“그럼 그거라도 알려줘.”
“네. 형님.”
일단 한발 물러서고 다시 미팅을 가져야겠다.
* * *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 지부.
안젤라는 「쉐어 하우스」에 나오는 에바를 보며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집안의 골칫덩어리가 언제 이렇게 커서 능청스러운 연기를 하게 된 걸까.
-밝기가 뭐예요?
-아, 밝기라는 건….
-야동에서 나오는 단어!?
-아니, 그건 밝기가 아니고….
-그럼 볼기는 뭐예요?
-음, 궁뎅이? 근데 왜 단어가 전부….
어째서 이 교환학생은 성인 잡지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건가.
‘…. 이거 연기가 아닐지도 몰라.’
한국에서 쉐어 하우스의 인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비인기 케이블 방송국에서 시청률 20프로를 넘나들고 있었으니.
외모로는 탑급 여배우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에바의 인기도 단숨에 수직 상승했다.
‘인기보다 중요한 건….’
김진우 작가랑 연을 만들었다는 거지.
그런 이상, 앞으로 여동생의 앞날은 탄탄대로라고 확신했다.
“저기, 지부장님?”
“아, 네.”
“보고드릴 게 있는데….”
이내, 안젤라는 직원에게 보고를 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월드 클래스 미식가?”
“네. 갑자기 다른 영화의 배급을 그쪽으로 돌리신 이유를 알아야….”
“미국 LA에 영화관, 고작 세 군데가 전부인 걸요?”
“네. 그렇긴 한데 기존 영화의 배급사랑 소통이 어려워서요.”
“…. 저한테 연락 돌려주세요.”
“아, 네! 지부장님.”
내년 2월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 다른 말로 오스카상.
수많은 다큐 영화 부문의 수상작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전년도 12월에 개봉했다는 것.
가장 수상하기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다.
‘…. 혹시라는 게 있잖아, 김진우 작가님 작품이니까.’
솔직히 「월드 클래스 미식가」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네?”
“얼마 전에 김진우 작가님이 일본에 가신 건 들었죠?”
“네. 새 작품을 일본에서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흠.”
역시 도전의 아이콘이 아닌가.
이제 한국에서 김진우 작가가 용변을 봐도 박수를 칠 텐데.
‘하여튼 대단하셔.’
현재 「코드네임 030 : 마법소녀 Part. 1」의 영업이익은 아시아 지부 최대 규모.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이라도 시즌 2 대본을 써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시즌 2도 써 주셔야지.’
역주행이라는 단어는 음원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특히 OTT 시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
‘호러 스트리머’ 역시 ‘마법소녀’와 함께 동반 성장하면서 드라마 실시간 랭킹 탑 텐에 가볍게 안착했다.
“지금 500만을 돌파했죠?”
“네. 마법소녀를 런칭한 이후로 디지니 가입자 수가 20퍼센트 정도 증가했습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수치네요.”
고작 몇 달 만에 단위가 바뀌었다.
온전히 ‘마법소녀’ 때문만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확실하다.
이대로만 성장하면, 아시아권에서 넥플렉스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게 불가능은 아닐지도.
“계속 수고해줘요.”
“네. 지부장님.”
문득, 처음 김진우를 발견한 순간을 기억했다.
‘순정마초’에 이어서 ‘회귀자’를 보고, 다이아 원석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1년 사이에 원석은 예쁘게 가공되어 그 무엇보다도 귀한 보석이 되었다.
한편, 안젤라가 말한 그 보석은 지금 일본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 *
템페스트 엔터 재팬.
은빈이랑 효주는 10년 만에 만난 가족처럼 꼭 껴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언니이이이이!”
“밍쁨아아아아!”
…. 지랄하네. 진짜.
고작 비행기 2시간 거리에 왜 이렇게 오바야.
바로 어제만 해도 3시간 동안 서로 전화했으면서.
아니, 지들이 무슨 견우와 직녀야?
“은빈아, 너 또 가야 하는 거 아니지?”
“언니, 편집자라는 악마가 마감이라는 무기로 저를 괴롭혀요.”
“그럼 가야 돼?”
“네에…. 힝.”
어휴, 놀고 있네.
둘이서 별 쌉소리를 다 해.
“웹툰은 나도 봤어! 짱잼!”
“정말요? 언니, 감동쓰….!”
결국, 나는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효주야, 너 안 읽고 그림만 보는 거 내가 다 봤는데?”
“…. 감동 파괴 아웃!”
오히려 내가 더 꼼꼼하게 웹툰을 읽어봤을 텐데.
띠링─
그때, 예정대로 정 실장님이 톡을 보냈다.
오늘 후지 TV랑 미팅을 잡았다고 했으니까.
“나갔다 올게. 밍쁨이는 다시 한국 잘 돌아가고!”
“네.”
잠시 후, 나는 정 실장님과 함께 후지 TV로 향했다.
“작가님.”
“네?”
“어제 70인조 여자 아이돌 센터랑 식사하셨다면서요.”
강준 쉑, 그새 말했냐.
“좋으셨겠네.”
“좋았다기보단….”
“와, 70인조 아이돌 그룹 센터는 어떤 기분일까요?”
“그쵸, 그런 경쟁률을 뚫고….”
“김진우 작가님이랑 같이 밥 먹는 영광을 다 누리고. 기분 좋았겠네.”
“….”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실장님, 우리 후지 TV 가서 무슨 얘기 해요?”
“네?”
“미팅 가는 길이잖아요.”
“아, 그쪽에서는 지금 작가님이 작품을 쓰고 있는 줄 알아요.”
“흠. 그래요?”
“일단 쓰고 있는 척이라도 하셔야 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
“새 작품으로 뭘 쓸지 벌써 정해져서.”
“아, 그럼….”
“실장님! 앞에 빨간불!!!”
끼이이익─
정 실장님은 내 말을 듣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뭘 쓸지 정해졌다고요?”
“네.”
“그럼 장르가….?”
“서바이벌 생존물입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
그거였으면 저 죽었죠.
사파리에서 호랑이랑 하이파이브하다가 손목 날아갈 듯.
곧이어, 약속 시각에 맞춰 후지 TV 방송국에 도착하고.
우리는 예정대로 드라마국 사람들과 미팅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내 다음 작품 연출을 담당해 줄 료스케 감독님.
후지 TV에서 배려를 해줬다는 게 실감이 난다.
료스케 감독님이 방송국 내 최고 실력자로 평가받는다고 했으니.
오히려 일본 시청자들 기호에 맞춰서 연출하는 건 송 감독님보다 나을지도.
“하하하. 김진우 작가님, 이게 얼마 만인가요?”
“아, 잘 지내셨죠? 저번에 순정마초 때 만나고 처음이네요.”
“어라? 그새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와, 진우 상! 대단한 열정입니다!”
“…. 고마워요.”
어제 리코한테 칭찬 들었을 때랑 기분이 좀 다르네?
“그럼 일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래야죠.”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대본이 있어야 스탭도 구하고, 배우도 구하고, 편성도 잡을 테니.
“제 차기작은 야마토 배우님이 주연입니다.”
“???”
방송국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동안 같이 작업했던 정 실장님만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첨언을 덧붙였다.
“이게 김진우 작가님 스타일이에요. 배우부터 정해놓고 대본을 쓰셔서.”
“아….! 대단하시네.”
“어쩐지, 준 상 연기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하하하. 타브 크라스는 다르네요!”
타브 크라스 아니고 탑 클래스.
“근데, 어쩌죠? 야마토 상은 지금 에미코 작가님의 차기작에….”
“그건 걱정 마세요. 어제 들었어요. 그 캐스팅 엎어졌다고.”
“오, 그럼….!”
야마토를 캐스팅하기 이전에, 중요한 건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
그러려면 후지 TV와 야마토 소속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료스케 감독님.”
“네.”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무슨 부탁을….?”
* * *
띵동─
야마토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인터폰을 확인했다.
어쩐 일인지, 리코는 한껏 차려입고 문밖에서 자신을 바라봤다.
‘뭐지….?’
분명히 어제 이야기는 충분히 마쳤을 텐데.
김진우 작가님 작품은 정중하게 거절하는 걸로.
“흠, 문을 열어줘야 하나.”
사실, 이런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에, 부모님끼리도 잘 아는 사이.
어차피 상대는 이미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띠리리리─
하지만, 야마토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방송국에서 나온 카메라맨과 리포터가 한꺼번에 들이닥쳤기에.
“자, 여기는 야마토 군의 집인데요!?”
“리코 상, 이 정도면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걸요?”
“야마토 군이 하기로 했던 작품…. 하여튼 작품 때문이에요!”
“에에….? 지금 메소드 연기를 위해 이렇게 살고 있군요?”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후지 TV에서 나온 리포터는 리코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야마토의 집을 관찰했다.
리코와 야마토가 오랜 지기라는 사실은 연예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지금 내 집에서 뭐 하시는….”
꽤나 유명한 리포터였다.
몰카 형식으로 남의 집에 쳐들어가서 강제로 집 구경을 하는 방송.
당연히 소속사의 허가가 없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을 테니.
‘나한테 왜 이래….?’
후지 TV는 일본에서 6대 방송국 중 하나니까 영향력이 상당했다.
고작 중소 소속사 정도가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힘들었겠지.
타닥, 타닥─
근데, 아까부터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사람이 존재했다.
언제 그들 사이에 끼어서 같이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진우 상?”
“예?”
“여기서 뭐 하세요?”
“리코 씨가 불러서 같이 왔어요.”
사실, 정확히는 김진우가 리코를 불러서 같이 온 거지만.
“…. 그니까 왜 여기서 글을 쓰시는지.”
타닥, 타다닥─
야마토의 말대로, 김진우는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이 몰아서 닥치면 현실이 현실 같지 않을 때가 있다.
“리코!!! 아, 안 돼! 침대 밑은 뒤지지 마!!!!”
“…. 야마토, 실망이야.”
“….”
이미 카메라맨은 야마토의 은밀한 사생활을 찍고 있었다.
일본에서 잘 나가는 성인 배우분들의 사진첩과 기념품들.
“…. 편집해 주시죠.”
“이미 소속사 측이랑 합의를….”
“거기랑은 좀 있으면 계약 만료예요.”
“그 전에 방송 나갈 것 같긴 한데….”
방송인은 인권도 없냐.
* * *
야마토의 야마가 돌아갔는 지는 잘 모르겠고.
나는 다시는 이 집에 못 들어온다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집필을 이어갔다.
타닥, 타닥─
알면 알수록 놀라운 시스템의 세계.
기껏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왜 일본어 표현을 다 알 것 같지?”
노트북을 두드리면서도 막히는 구간이 전혀 없었다.
표현력을 올려주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도 포함되는 셈이었다.
“…. 에바가 영어 대사를 치르는 것도 다 기억나긴 했다만.”
그땐, 간단한 수준이라서 그냥 내가 영어를 꽤 잘하는 줄 알았지.
시스템의 빛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언어 능력은 사라지겠지만.
타닥, 타닥─
그래도, 덕분에 막힘없이 편하게 대본 집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생존 필드 in 도쿄 1부」
─────────────
끼이이이익─
세련된 스포츠카에 치여서 숨을 헐떡거리는 중학생 어린아이.
젊은 남자는 급하게 차에서 내려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미약하게 늑골 부근이 움직였으니, 지금 신고하면 살 수 있었다.
“이런, 시발! 꼬맹이 새끼가 겁도 없이 왜 새벽에 돌아다녀!”
올백 머리에 명품을 휘감은 남자는 아이의 생명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아이를 내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으니.
뚜루루루─
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연락해서 뒤처리를 요청했다.
“어, 나야. 사고 쳤어. 당장 튀어와.”
-어떤 일로….?
“긴말 말고, 두어 명만 데리고 튀어와!”
-아…. 네, 이사님!
젊은 남자는 다시 차를 몰고 급하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는데.
사이드미러를 통해, 멀리서 어떤 여인이 자신의 차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격자가…. 있었어?”
남자의 두 눈에 여자의 모습이 똑똑하게 각인됐다.
이상하게 낯이 익는가 싶더니,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연예인이네? 그것도 존나게 잘 나가는….”
재벌 3세의 뺑소니와 시체 유기 사건.
놀랍게도, 대중에 알려질 새도 없이 가볍게 묻혀버렸다.
일본의 한 탑급 여자 연예인의 마약, 음주운전, 학폭이 동시에 터지면서.
재벌 3세의 비서와 그가 부른 어떤 회사원에 의해 가뿐히 정리됐는데.
비서의 요청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범죄에 가담하지 않고 거절한 남자는.
한 달 뒤.
“후르르릅.”
라면을 먹으며 티비 속 ‘망한’ 연예인을 바라보는 주인공, 마츠시타.
한 달 전쯤부터 이상한 스캔들에 휘말려서 인생을 말아먹은 여자 연예인.
루머들은 전부 거짓으로 판명났지만, 이미 연예계 인생을 끝나버렸다.
한때는 공중파를 전부 씹어먹었던 인물치고 뭔가 기구했다.
“에휴, 저 사람도 나처럼 불쌍하네.”
그 후로, 과거 회상 장면이 펼쳐졌다.
한동안 이어지는 남자의 고된 회사 생활 장면.
사내 왕따 문화와 함께, 후배의 초고속 승진 장면까지.
결국, 직접 회사를 뛰쳐나왔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야쿠자들에게 쫓기는 생활을 영위했으니.
이어서, 마츠시타는 다시 반지하 원룸 씬으로 돌아와서 독백을 읊조렸다.
“그때 그냥 차라리 눈 한 번만 딱 감고…. 아니, 됐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기자에게 사건을 제보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자신의 행적만 발각되어 위험에 처하게 될 뿐이었기에.
“개 같은 놈들.”
전부 썩어빠진 새끼들뿐이다.
모아둔 돈도 다 써가고, 은둔형 외톨이 생활도 슬슬 지쳐갈 때쯤.
잠자리에 들기 직전,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의 요청으로 생존 필드가 열립니다. 지금부터 간단한 규칙을 알려드릴 테니….】
‘…. 꿈인가.’
다음 날, 마츠시타는 입에 물려있는 종이를 뱉어내며 잠에서 깨어졌다.
“퉤, 퉷! 뭐야 이거.”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어젯밤에 꿨던 꿈이 생생하게 기억에 각인됐다.
다섯 가지 규칙이라는 용어와 함께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물건.
【당신은 7번입니다. 8번을 조심하고 6번을 사냥하세요.】
【종이에 장소를 적으면, 도쿄 내 어디로든 1분 후에 이동합니다.】
【종이를 훼손하거나 폐기해도 다음 날 새로운 종이를 받습니다.】
【타인에게 귀속되기 전까지는 오직 본인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신이 나간 건가.”
글쎄, 그냥 미친 척하고 시도해 보면 그만이지.
사각, 사각─
종이에 글씨를 적던 중, 창밖에서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무슨 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가스 냄새 같기도 하고.
“흠, 30초 남았…. 어?”
순간, 반지하의 창문 밖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를 마주 보는 순간, 한 손에 들고 있는 종이로부터 묘한 떨림이 발생했다.
“와아…. 뭐지? 설마 선배도 참가자야?”
“뭔 개소리야!?”
“크하하하. 재밌네.”
“너 이 새끼, 내가 여기에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옛날부터 알았지. 선배는 애초에 먹잇감이었으니까.”
“개자식들….!”
시체 은닉 사건 때, 거절한 자신과 달리 은닉을 도운 회사 후배.
지금은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해서 부장까지 달았다고 들었는데.
“근데 선배는 몇 번이야? 나는 8번인데.”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를….”
이내, 후배 놈은 갑자기 입에 호루라기를 물고 미소를 지었다.
삐이이이이─
입에서 나오는 호각 소리와 함께, 후배의 입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가벼운 불씨 정도가 아니라, 반지하 원룸을 집어삼킬 만큼 뜨거운 불꽃을.
콰아아아아앙─!
가스가 폭발하며, 반지하에 굉음이 발생했다.
열기에 저항력을 보유한 후배는 반지하가 폭발해도 생채기 하나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마츠시타가 사라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크크큭, 크하하하하. 나는 신이야!”
뚜루루루─
“이사님, 처리했습니다.”
-잘했어.
“저기, 그럼 약속하신 대금은….”
-이 새끼가, 내가 니 친구야?
“죄,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조심해라.
“넵!”
뚝.
후배는 전화를 끊자마자 이사를 씹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을 종처럼 부리는 인간이었지만.
“감히, 열등한 인간 주제에! 돈 좀 있다고 나를 무시해?”
후배는 더이상 눈에 봬는 게 없었다.
불에 타는 고통은 그 어떤 고문보다 위에 있다.
“나는 신이야. 신이라고!”
다른 참가자들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든 관심 없었다.
기계음은 1번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글쎄.
전부 다 죽여버리면 8가지 물건을 전부 차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
예상은 했지만 이번 드라마의 스케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집을 홀라당 폭파시켜 버릴 줄이야. 돈이 썩어 넘치나.
도쿄 전체를 생존 필드로 삼아버리는 거대한 스케일도 그렇고.
최소 8명 이상의 주연급 배우들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후배놈 연기 보니까 광기가 보통이 아닌데.
“뭐, 그럼 일단….”
저기, 리코라는 사람도 연기 경력이 있다고 했으니까.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사전 조사(Lv 2)를 사용합니다.】
【해당 배우는 ‘참가자 3번’ 역할과 65% 만큼 일치합니다.,】
“이번에도 키워서 써먹어야 하나.”
“나니?”
“….”
내 시선을 느낀 리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70명 아이돌 그룹에서 센터라고 하더니, 얼굴은 더럽게 예쁘다.
굳이 비교하자면 에바는 서양적인 미인상, 리코는 동양적인 미인상.
‘…. 근데 왜 불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