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3)
JTBS 방송국 근처의 고급 한식당.
어떤 비밀 이야기도 절대 새어 나가지 않는 음식점.
정새롬은 몇몇 직원들과 함께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옆에 있던 직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 실장님, 오디션 건은…. 정말 괜찮을까요?”
“네. 그냥 두셔도 됩니다.”
옆에서, 함께 동석한 지성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작가님 완전 천재예요. 그냥 믿어도 될 것 같은데.”
“…. 제발 감독님 앞에서만 조용히 해줘.”
“우우, 나만 미워해.”
이번 작품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런 식의 막무가내 캐스팅이라.
원래 정새롬의 스타일대로라면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번에는 상관없었다.
‘성기훈 감독님이 알아서 자르실 테지.’
대놓고 악역이 존재하는데 굳이 작가와 트러블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평소에는 일하기 싫다고 불평을 토해내는 감독이지만.
막상 작품을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몰입하는 인물이다.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여자 아이돌?
갑자기 툭 튀어나온 남자 신인배우?
성 감독은 그런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시 후,
예정대로 김진우 작가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 옆에는 세미와 그녀의 매니저도 함께였다.
“안녕하세요! 세미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정새롬이예요.”
인사를 하면서도 새롬은 빠르게 세미를 스캔했다.
작품 속 여주인공과 얼마나 캐릭터가 맞는지 확인했는데.
‘비주얼적으로는 흠이 없네.’
예쁜 걸 떠나서 2% 결핍이 있는 작품 속 여주인공 ‘차예주’ 역할과 딱 어울렸다.
말투나 행동거지, 걷는 모양새까지도 자신이 상상하던 그 모습과 일치했으니.
“김 작가님,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네. 실장님은요.”
“저야 뭐, 정신없이 바빴죠.”
‘누구 때문에’ 라는 말은 생략했다.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중간에.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성기훈 감독이 도착했다.
드르륵─
성 감독은 들어오자마자 좌중을 스윽 둘러보더니.
“그쪽이 김 작가요?”
“아, 네.”
새롬은 침을 꿀꺽 삼키고 감독을 쳐다봤다.
첫 미팅에 배우까지 주렁주렁 달고 왔으니.
욕을 퍼부으면 어떻게 대처할지도 생각해 두었는데.
“허, 작가님이 이렇게 젊으실 줄이야.”
“???”
예상했던 성 감독의 반응과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응?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닐 텐데?’
새롬과 함께 온 직원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감독의 눈치를 살폈다.
“작품 잘 봤어요. 며칠 사이에 4부까지 세 번은 본 것 같아.”
“아…. 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겸손하시긴.”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못 알아본 건 새롬 자신이었다.
‘분명히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수차례 스타작가들과 작업을 함께한 성 감독이 저렇게 반응하다니.
심지어 신인작가의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지 않은가.
‘내가 작품에서 놓친 부분이 있었나? 성 감독님 눈에만 보이는….’
이내, 성기훈은 김진우에게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연출 경력은 있으시고?”
“아니요. 보조 작가 생활을 6년 정도….”
“아니. 작가 말고, 연출 경험.”
“없습니다.”
“동아리 같은 거라도….?”
“전혀 없습니다.”
“…. 대단한 재능이네.”
성기훈 감독의 극찬.
순간, 지금까지 단순히 작품의 ‘재미’만을 봤던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만큼 성기훈 감독의 칭찬은 드라마 판에서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 * *
나는 어리둥절하며 성 감독의 반응을 지켜봤다.
‘뭐야, 이 사람 왜 이래?’
안 본 사이에 그의 성격이 유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 실장의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슬쩍 입을 열었다.
“감독님, 원래 이런 성격이신 줄 몰랐네요.”
“제가요? 원래 저는 어떤 성격입니까?”
“….”
싸가지 없다고 왜 말을 못 해.
세미나 지성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나를 계속 칭찬하는 성 감독.
쌍욕을 먹을 각오까지 하고 왔는데, 이런 반응을 보여주니까 오히려 당황스럽다.
“저기, 캐스팅 건은….”
“그 부분은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아, 세미랑 지성호 배우는 픽스고 메인 남자 주인공만….?”
“흠, 글쎄요.”
에라이, 그럼 그렇지.
어째 분위기가 좋다 싶었다.
“지성호 씨는 연기로 검증이 된 배우지만 세미 씨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생각하는 여주인공의 이미지와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크흠….”
완강하게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면 충분히 킹능성이 보였다.
그때, 지성호가 눈치를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랑 세미 씨랑 같이 즉흥연기를 준비했는데. 보여드려도 될까요?”
이어지는 성호의 나이스 어시스트에 쾌재를 불렀지만.
오히려 정새롬 실장은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미리 연습한 장면을 보여주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감독의 대답은 냉담할 뿐이었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세미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가 입을 떼었다.
“대본에서 한 장면 골라주시면 그 부분을 연기해 보겠습니다.”
갑자기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세미.
어제 하루종일 한 장면만 연습해놓고 왜 굳이 그런 말을 하는지.
‘아, 왜….!’
세미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폭망하면 이번 작품에서 주연 캐스팅은 완전히 나가리니까.
“여기서 보여줄 수 있는 건가? 1부의 43씬 여주인공 독백 씬으로 부탁하지.”
이미 성 감독은 흥미로운 눈으로 세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강력하게 추천을 하니까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다.
‘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세미는 성 감독이 대충 고른 장면을 잠깐 생각하더니 감정을 잡기 시작했다.
준비 시간도 없이 ‘차예주’로 분한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대변했다.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니까….”
1부에서 차예주가 가족들과 대화하는 장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와 행방불명된 남동생.
집안이 쫄딱 망해서 온 집안의 가구에 압류 딱지가 붙은 상황.
비참한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여주가 부각되는 씬이었는데.
“그러니까….”
순간, 세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하고 떨어졌다.
5초도 안 돼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슬픈 듯이….’
내가 봤던 드라마에서도 차예주의 눈에 물기가 맺히기는 했었다.
허나, 대본에는 분명히 슬픈 듯이 읊조린다고 적어놨을 뿐인데.
얼마나 대본을 많이 봤으면 이렇게 빨리 감정을 잡을 수 있는 걸까.
‘다음부터는 계속 질문해도 다 받아줘야겠다.’
갑자기 연기하는 상황이 낯설 법도 했건만, 전혀 어색함 없는 모습.
워낙 연기가 자연스럽다 보니 어색한 분위기가 많이 희석되었다.
이내, 세미는 3분짜리 연기를 마치고 다시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짧은 침묵 속에, 지성호가 물개박수를 치며 그녀를 칭찬했다.
“와, 세미 씨! 어제보다 연기를 더 잘하는데요?”
“아, 아니에요. 그냥 이번 작품이 저랑 너무 잘 맞아서…. 헤헤.”
세미는 슬쩍 나를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저 외모에 가난한 역할이 어울릴까 싶었는데.’
잠깐 세미를 의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동시에, 더욱더 메인 남주 자리에 임재준을 앉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연기 잘 봤습니다. 작가님 안목이 대단하시네요.”
“아하하….”
성 감독은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정새롬 실장의 표정을 보니까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저는 이번 작품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
“그런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럼….”
“잘해봅시다.”
나는 악수를 건네는 성 감독의 손을 붙잡았다.
“감독님, 메인 남주 역할도 저 한번 믿어주세요.”
“흠, 대체 누구를 생각하고 계시길래….”
“오디션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신인배우를 발굴해 보시죠.”
“….”
내 말을 듣고 성 감독은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드라마에서 신인이 주연을 맡은 거 보셨소?”
“역사를 써 보시죠.”
“글쎄요….”
“감독님, 제 작품 보셨으면 아실 겁니다. 새로운 마스크가 필요해요.”
임재준이라던가.
“흠…. 신인까지 포함하면 오디션장이 붐비겠군.”
씨익─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성 감독의 말을 듣고 미소가 지어졌다.
반면, 정 실장을 포함한 제작사 직원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럴 만도 한 게, 투자를 받는 데에 가장 중요한 건 주연배우니까.
“오디션…. 준비하죠.”
정 실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지못해 승낙했다.
* * *
잠시 후, 나는 템페스트 엔터 사옥에 도착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쌩하니 사라져 버린 정새롬 실장.
이왕이면 같이 가려고 했는데 물어볼 틈도 없었다.
“정 실장님만 빼고 나머지 직원들 표정이 좀 싸늘하네.”
오디션 건 때문에 불만을 갖는 이들이 있을 법도 하다.
신인작가 하나 잘못 만나서 일이 많아진 건 사실이니까.
“뭐, 어쩔 수 없지.”
곧이어, 대본 집필을 위해 템페스트 사옥 1층 카페를 찾았다.
지성호를 만나고 정 실장과 계약했던 추억이 담긴 장소.
‘카페 직원이 바뀌었네. 저번에는 남자였는데.’
커피 한잔을 주문하려고 입을 떼려고 하는 찰나.
언젠가 경험해 본, 심장이 두근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세미를 처음 봤을 때….!’
바로 그날, 처음으로 시스템이 발동했었다.
띵동─
【새로운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현재 등급에서 중복 집필은 불가능합니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미지의 언어.
다시 한번 상대를 천천히 뜯어보니까 청초한 매력이 돋보였다.
예쁘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간직했다.
연기력 외에도, 배우가 가져야 할 필수 덕목.
“손님….?”
직원은 한동안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불렀다.
“아…. 김현지 배우님.”
“네에?”
“아니, 김현지 씨.”
나는 그녀의 복장에 붙어있는 명찰을 보고 횡설수설을 했다.
상대가 조금 당황한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었다.
“혹시 배우세요?”
“아, 배우지망생이긴 한데….”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살면서 지금까지 만난 배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능력이 흔하게 발동하는 건 아닐 테니까.
‘세미를 만난 이후로는 처음이기도 하고.’
그래서 혹시 모르니까 번호를 물어봤는데.
“죄송합니다. 손님.”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옆에서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던 여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작가라는 사람이 회사 직원이나 꼬시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근에 정 실장의 사무실에서 마주친 배우였다.
“여민서 씨.”
“예예. 김 작가님.”
“말씀이 조금 지나치신 거 같은데.”
“글쎄요.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매력적인 마스크에 연기력까지 검증된 여배우지만 성격은 까칠한.
“저는 재능 있는 배우의 연락처를 물어본 겁니다.”
“참나, 얼굴만 보고 재능을 알아봐요?”
“그건….”
“아예 작가 말고 캐스팅 디렉터를 하시지 그랬어요? 천부적인 재능인데.”
“오, 그것도 좋은 방법인데?”
“네?”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의 표현을 했다.
“아, 참 그리고….”
뭐 씹은 표정으로 씩씩대고 있는 여민서에게 슬쩍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그쪽한테는 관심 없거든요. 그쪽 말고 김현지 씨한테 물어본 건데. 왜 엄한 사람이 난리지?”
이내, 나는 여민서를 무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서 노트북을 켰다.
한쪽에서 성질이 잔뜩 난 그녀의 눈빛이 나를 향하는 게 느껴졌다.
작가가 배우지망생 번호쯤은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막말로 관심 있어서 번호를 물어봤다고 해도 마찬가지.
너무 사적인 영역을 건드리니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그나저나….”
시스템에 새로운 기능을 발견한 것 같아서 기분이 오묘하다.
어쩌면 내가 찾지 못한 시스템 기능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어.
잠시 후, 나는 시스템의 또 다른 기능을 발견했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게 이상할 만큼 쉬운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