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4)
타닥, 타다다닥─
“6부는 생각보다 쉽네.”
그동안은 좀 너무했어. 퍼플걸스 안무 연습실이 뭐야.
오랜만에 아무런 방해도 없이 집필을 마무리할 수 있을….
턱─
그때,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려놓고 노트북을 구경했다.
“벌써 6부? 와, 엄청 빠르시네요.”
고개를 돌려서 상대를 확인했다. 지성호였다.
“성호 씨, 어쩐 일이에요.”
“아, 정 실장님이 찾으셔서 와봤어요.”
“저를요?”
“네.”
“잠시 후에 6부까지만 쓰고….”
그때, 갑작스럽게 시스템이 작용했다.
띵동─
【배역에 87%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서형민’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아니, 여태까지는 반응하지 않다고 왜 하필 오늘?
애초에 지성호가 서브 남주 역할인데, 이게 무슨.
“접촉…. 이구나.”
“네?”
샤샥─
내 말을 듣고 지성호가 손을 급하게 떼어냈다.
“덕분에 하나 알았네요.”
“뭐, 뭐를요?”
“아니에요.”
거의 5초 동안 접촉하고 나서 발동한 것 같다.
만약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난이도 5배.
곧바로 시스템상에서 YES라는 답변을 떠올렸다.
【해당 배우를 ‘서형민’ 역할로 등록합니다.】
【현재 등급에서는 등록된 배우를 다시 변경할 수 없습니다.】
지성호를 무시하고 시스템으로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다시 한번 드라마를 처음부터 머릿속으로 재생하려고 시도했는데.
‘…. 이게 뭐야.’
드라마의 모든 내용은 여전히 똑같았지만 딱 하나가 바뀌었다.
서브 남주의 얼굴이 지성호의 얼굴과 일치했으니.
세상에.
시스템이라는 능력은 보면 볼수록 놀라운 점밖에 없네.
“지성호 씨, 먼저 올라가시면 안 될까요?”
“엥? 지금 100번째 씬이니까 거의 다 쓰신 것 같은데. 그냥 기다릴….”
“아니요. 다시 처음부터 갈아엎을 거예요.”
“아, 아…. 넵. 작가님.”
남은 시간 동안 지성호가 나오는 씬은 수정해야겠다.
지금 보니까 얼굴만 바뀐 게 아니었다.
이전에는 87% 일치한다고 했었는데, 드디어 100%로 바뀐 느낌.
평소 지성호의 행동이나 말투가 정확히 서브 남주와 겹쳐 보인다.
“이런 기능을 진작에 알려줬으면 좋았잖아.”
1부 때부터 알았으면 완성도가 올랐을 텐데.
불친절한 시스템 같으니라고.
타다닥, 타다다닥─
거의 두 시간을 다 채울 때쯤이었을까.
기지개를 켜는 내 앞자리에는 정새롬 실장이 앉아있었다.
“흐아암, 언제 왔어요.”
“10분 전쯤이요.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슬쩍 미소짓는 모습이 어느 여배우 못지않다.
내가 아는 직장인 중에는 진짜 원탑이야. 능력이든 외모든.
“잠깐 이야기하러 왔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거의 다 썼어요. 10분만 더.”
“천천히 쓰세요. 저도 일할 거 가져와서.”
팔랑─
A4 용지 몇 부를 흔들며 씨익 웃는 정새롬.
갑자기 왜 이렇게 착해진 거지? 무슨 꿍꿍이가 있나.
‘음….’
잠시 후, 정확히 15분 후에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정 실장님, 6부 다 썼는데 보내드릴까요?”
“김 작가님은 정말 빠르시네요.”
“그야 뭐, 신이 도우셔서.”
“네? 종교 있으세요?”
“있죠. 사이비 종교에요.”
“아, 아….”
농담인데 이걸 믿어버린다.
나에 대한 믿음이 강한 건지, 없는 건지.
“사이비 아니고 사이버 종교. 시스템교라고….”
“….?”
“1인 교단이에요. 제가 교주이자 신도라서.”
“으음….”
생각보다 반응이 싸늘하네.
현실에도 사이비가 많아서 그런가.
곧이어, PC 톡에 접속해서 새롬에게 톡을 보냈다.
띠링─
“톡으로 6부 보냈어요. 한번 보세요.”
“아, 네. 잠시만요.”
꼭 어린아이가 되어 선생님께 숙제검사를 받는 기분이다.
보통 작가가 제작사에게 숙제검사 받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성호 역할에 대한 수정을 거친 만큼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작, 작가님, 뭔가 바뀌었네요.”
“뭐가 바뀌었는데요?”
기대했던 반응이라 웃음이 나왔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서형민 역…. 우리 성호랑 너무 어울려요!”
“아, 그런가.”
“네!!! 쓰면서도 못 느꼈어요? 이거 완전히….!”
정 실장은 말을 하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으음, 어쨌든 지금 너무 좋네요.”
“저도요.”
이내, 나는 그녀에게 용건을 물었다.
“아, 그런데 정 실장님께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오디션 관련해서요.”
올 것이 왔구나.
방금 톡으로 임재준에게 오디션에 대해 알리긴 했는데.
연락을 하면서도 미안함 때문에 통화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속 말씀하세요.”
“작가님이 저번에 메인 남주는 신인으로 가겠다고 하셨죠.”
“네. 그랬죠.”
“그런데 갑자기 오디션으로 바꾸신 이유가 뭔가요?”
“….”
“저희도 오디션의 방향은 알고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순간, 정 실장의 눈빛이 날카롭게 쏘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서 사실을 실토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건 기분탓일 거야.
“사실 제가 처음에 염두에 둔 배우가 있었어요.”
“그럼 대체 오디션은 왜….”
“신인배우가 갑자기 드라마 주연급으로 발탁되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
“그나마 남자 배우라서 낫지만, 그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비리, 스폰, 인맥, 집안까지.
다양한 억측과 비난이 임재준과 드라마로 향할 터다.
“오디션은 소규모로 진행하시죠.”
“비공개 오디션….”
“네. 몇몇 인지도 있는 배우들만 모아서 진행하는 걸로.”
“지금 저한테 사기를 치라고 말씀하시는….!”
“아니요. 절대!”
“그럼요?”
“뭔가 제 말뜻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
나는 확신한다. 공개 오디션이든, 비공개 오디션이든 결과는 같을 거라고.
어차피 임재준이 뽑힐 테니까 제작사에서 오디션에 쓸데없는 돈을 쓰는 건 낭비다.
“공정하게 평가해 주세요.”
“네?”
“그 친구가 떨어지는 이유가 합당하면 받아들이겠습니다.”
“….”
“순정마초 역할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뽑아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드라마는 제목 따라간다고 하잖아.
순정마초 주인공에서 순정마초가 빠지면 안 되지.
나는 할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고작 10m 거리에서 웃는 얼굴로 손님을 응대하는 여인.
“저기, 정 실장님.”
“네.”
“이곳 카페 직원, 김현지 씨 말이에요.”
“네? 갑자기?”
“배우로 재능 있어요. 키워보세요.”
“너무 뜬금없는데….”
“싫으면 어쩔 수 없죠.”
정새롬 실장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카페를 벗어났다.
슬쩍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의 시선은 카페 직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잘 좀 키워줘요. 내 차기작 배우님이니까.”
* * *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스템의 능력을 정리해 보았다.
1. 특정한 배우를 보면 작품이 떠오른다.
2. 픽스되지 않은 배우는 5초간의 접촉으로 등록할 수 있다.
3. 현재 등급에서 두 작품을 동시에 집필할 수 없다.
4. 현재 등급에서 배우를 변경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등급을 올리면 두 작품을 동시에 집필하거나 배우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
그게 다음 등급일지 그다음 등급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지금처럼 임재준이나 세미에 한정해서 목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개사기네.”
지금이야 내 드라마에서 그 둘이 없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차피 시스템이 적당히 새로운 배우에 맞는 드라마를 보여줄 테니.
“오늘만 해도 드라마 내용이 바뀌었잖아.”
지성호가 아니라 다른 배우를 등록했어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메인급 주인공도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돈 벌면 등급부터 올려야겠네.”
배우를 바꾸려면 무슨 등급이 되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신인배우만 고집하는 건 너무나도 큰 제약이니까.
아니지, 신인이 아니라 탑배우면 더 문제다.
대부분의 탑스타들은 이미 스케줄이 꽉 차 있잖아.
충무로 간판스타나, 한류배우 같은 사람들을 캐스팅하는 게 훨씬 더 어렵겠지.
한동안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서 그런가.
언제나 그렇듯 한 편을 다 쓰면 다음 회차의 집필 장소가 공개된다.
띵동─
그런데, 이번에는 선정 이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내용 :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 7부】
【장르 : 로맨스, 재벌】
【장소 : 한라산 백록담】
【제한 시간 : 2일】
【※ 브론즈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000만 원】
갑자기 분위기 등산?
“미쳤냐?”
나도 모르게 시스템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당장에라도 ‘안 미쳤는데?’라고 말할 것만 같다.
근데, 제주도까지는 알겠는데 한라산은 너무 뜬금없잖아.
“잠깐만.”
이거 혹시 지성호와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오늘 등록했잖아.
곧바로 풀잎위키에 들어가서 지성호를 검색했다.
「취미 : 독서, 영화 시청, 등산」
아니 시발. 이딴 식이면 취미가 등산이 아닌 사람이 어딨냐.
그냥 한국인 3대 취미 복붙한 거를 가지고 나를 산으로 보내버리네.
언젠가 제주도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제주도를 가라고 하면.
“가야지.”
요즘 비행기 표값이 얼마더라.
* * *
2주일 후,
“실장님, 비공식 경로를 통해 오디션에 신청한 사람은 오직 한 명입니다.”
“수고했어요. 감 팀장님.”
새롬은 직원이 내미는 보고서를 곧바로 펼쳐보았다.
결재 파일로 깔끔하게 처리된 한 장짜리 이력서.
“임재준….”
비공개 오디션이라 신청을 하려면 내부 정보를 알아야만 가능하다.
템페스트 엔터의 직원일 리는 없으니까, 김진우 작가라고 봐야겠지.
“감 팀장님, 이 사람이 그렇게 연기를 잘해요?”
“네. 연기도 연기지만, 이번 역할이랑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제 옷을 입은 것처럼.”
“그래요?”
세미도 그렇고, 김 작가는 그들의 잠재력을 어떻게 알아봤을까.
신인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민망한 배우지망생에 불과한데.
“임재준 배우님 영상평가 자료를 가져올까요?”
“아니요. 어차피 오늘 실물로 볼 텐데요, 뭐.”
오늘 최종 오디션이 끝나면 드디어 메인 남자 주인공이 확정될 것이다.
성기훈 감독 외 방송국 대표와, 자신을 포함한 제작사 대표.
당연히 김진우 작가도 포함돼야 하지만, 그는 보름 동안 연락 두절 상태였다.
문득, 그가 추천해 준 배우 한 명이 떠올랐다.
“김현지 배우님은 계약했나요?”
“네. 신인으로는 최고의 대우로 계약했습니다.”
“잘했어요.”
“실장님, 대체 그런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그렇게나…. 대단해요?”
배우를 캐스팅하는 측면에서 감 팀장은 정새롬 보다 전문가였다.
이번 오디션만 봐도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하는 직원이었으니.
“연기력은 둘째치고, 김현지 배우님만의 독보적인 아우라가 있어요.”
“아, 음….”
“그게 연습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서요.”
“그래요. 오늘 오디션만 끝나면 이틀 정도 휴가 쓰세요.”
“에이, 아닙니다. 저는 이 일이 좋아서 하는걸요.”
새롬은 인사하고 나가는 감 팀장을 미소로 배웅했다.
일명, 정새롬 사단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인사.
감 팀장 외에도 정 실장이 이끄는 인재들은 하나 같이 업계 탑 클래스였다.
“김 작가님만 내 사람으로 만들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작가로서, 그리고 캐스팅 디렉터로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인재.
다시 한번 조건을 높여서 전속계약을 제안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지이이잉─
바로 그때, 새롬의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대표님’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된 인물이었다.
“예. 대표님.”
-오늘은 삼촌이다.
“아, 네. 어쩐 일이세요. 삼촌.”
-형님께서 오늘 가족끼리 식사나 하자고 부르신다.
딸의 식사자리를 동생을 통해 전하는 아버지.
하지만, 새롬은 못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버지랑 사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요즘 회사 힘들다.
“…. 대표님이세요? 삼촌이세요?”
-대표님.
“….”
템페스트의 정기태 대표는 계속해서 새롬에게 매달렸다.
-부탁 좀 합시다. 조카님. 아니, 정 실장님.
“하아, 알았어요. 오디션만 끝나고 갈게요.”
-그거 드라마로 몇 푼이나 번다고 이렇게 열심히 하나.
“…. 대표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죠.”
-최근에 영화 시나리오 죽이는 거 하나 들어왔는데….
“끊습니다.”
뚝.
아버지 얼굴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침체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이가 급속도로 냉각되었으니.
“아니, 근데에….”
새롬은 괜히 엄한 데에 신경질을 부렸다.
“대체 김진우 작가는 2주일째 연락이 안 되면 어쩌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