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49)
김진우 작가의 작품들 중에 최근까지도 주목받는 작품은 무엇일까.
솔직히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지만.
그중, 아직도 꾸준히 팔리고 성장하는 작품은 두 개를 고를 수 있었다.
바로, 디지니 플레이 오리지널 작품들.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와 「코드네임 030 : 마법소녀 Part. 1」
둘 다 CG와 음향 작업에 특히 신경 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템페스트 엔터 실장실.
새롬은 두 명의 전문가들과 잡은 미팅을 재차 확인했다.
“음악 감독은 서지훈 감독님, 그리고 CG 총괄는 구성락 디렉터님…. 아, 맨 대 네이쳐도 가능하신지 여쭤봐야겠네.”
각각 나지수 감독님과 송권수 감독님의 지인들.
첫 번째 시즌 때의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인 연출 역시, 그대로 조셉 리 감독님이 맡아주셨으면 좋겠지만.
“음…. 이건 디지니 측에 물어봐야겠어.”
이내, 새롬은 불현듯 얼마 전에 겪은 일을 회상했다.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주카이 숲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 전 일본에서 진우와 함께 찍은 라이브 방송.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진짜, 남친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들었네.”
심심할 겨를이 없잖아.
‘귀신, 귀싱’ 떠들며 진우를 잡아끄는 자신.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 떨었던 지난 시간들.
“…. 내가 왜 그랬을까.”
너튜브에 박제되는 흑역사를 스스로 만들었다.
진우에겐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지만, 부디 눈치껏 영상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어휴, 됐다. 우리 남친 눈치 없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 재벌가 사교 모임에 나갈 일은 영원히 없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친한 친구가 얼굴 좀 비추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절대 안 가. 아니, 못 가.”
똑, 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사고뭉치 남매가 실장실에 들었다.
“진우 씨?”
새롬이 부른 건 남친이었지만, 대답은 김희정이 대신했다.
“언니! 우리 오빠가 미쳤어요!”
“???”
“저를 멕시코에 데려가겠대요! 거기 엄청 위험한 나라잖아요!”
진우는 급하게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니, 치안 괜찮은 곳만 간다니까. 그리고 경호원이야 고용하면 그만이지.”
“안 간다니까!?”
“참나, 소속사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니 짬에.”
“꼰대!!!”
“얼씨구, 지도 후배들한테 꼰대짓 하면서 내로남불 개쩌네.”
“흥! 우리 새롬 언니가 나보고 가라고 할 것 같아?”
“…. 내 여친이야. 너랑은 남이고.”
오랜만에 남매간에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진우 씨, 희정이는 새 드라마도 들어가야 하고….”
“스케줄 다 확인했어요. 딱 10일이면 됩니다.”
“….”
희정이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롬을 쳐다봤다.
“그래도 일단 연기가 먼저니까 희정이는 안 가는 거로 하시죠.”
“에이, 너튜브도 일이잖아요. 놀러 가는 게 아니에요.”
“음….”
“아마존이랑 사파리 갔다 와서 증명했잖아요!”
현재 「맨 vs 네이쳐」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범국민적이었다.
당연히 로다주를 캐스팅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너튜브에 올린 ‘오지는 픽’의 영향도 결코 작지 않았다.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번에는 작가님이 그냥 양보하시죠.”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새롬 씨랑 같이 가면….”
“아뇨, 생각해 보니까 희정이가 가는 게 좋겠네요.”
“그래요?”
“네. 잘 부탁드려요. 우리 여배우님.”
“하하. 제 여동생인데요, 제가 잘 챙겨야죠.”
“역시 오빠가 든든하네요.”
새롬의 급격한 태세 전환.
“내, 내 의견은….?”
희정은 입을 크게 벌린 채 새롬을 쳐다봤다.
믿었던 언니에게 눈앞에서 배신당한 기분이 이럴까.
“희정아, 조심히 갔다 와.”
“어, 언니! 저한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네 자린 잘 마련해 둘게. 갔다 와.”
새롬은 미안한 마음에 눈을 감고 말했다.
제갈 사조가 읍참마속 할 때의 심정이 아닐런지.
“새롬 언니….!”
진우는 씨익 웃으며 여동생의 팔을 이끌었다.
그녀의 모습이 꼭 간수에게 끌려가는 죄수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따라 와. 일단 여권부터 챙기자.”
“이, 이럴 수는 없….”
“이럴 수 있어.”
잠시 후, 본가에 들른 김 씨 남매.
희정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항공권을 구매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 동상, 다 촬영 목적이에요. 채담 씨 항공권도 내 돈으로 냈다고.”
“…. 이게 생색낼 일이야?”
“응.”
오빠야 원래 그런 줄 알고 있었기에.
새롬에 대한 배신감은 희정을 흑화의 길로 인도했다.
“…. 오빠, 내가 링크 하나 보내줄게.”
“응?”
이른바, 희정의 보석함
그녀는 악마의 영상을 링크로 보관하고 있었다.
‘이게 다 언니가 자초한 일이에요.’
띠링─
곧이어, 희정은 톡으로 영상 링크를 전송했다.
“…. 지금은 열지 말고, 앞으로 새롬 언니한테 화나는 일이 세 번 생기면 열어봐.”
“뭔 개소리야.”
“내가 큰맘 먹고 주는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뭐래. 이거 바이러스 아냐?”
“아니거든!”
“응, 꺼져. 안 봐.”
“보던가 말던가.”
그렇게, 진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손에 넣었다.
* * *
일주일 뒤.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 지부.
안젤라는 멕시코로 떠났다는 진우의 소식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새 대본을 쓰시는구나.”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시즌 2」
곧이어, 템페스트 엔터 측에서 전달받은 대본을 확인했다.
사실 마법소녀를 더 많이 기대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 작품도 기대했다.
“음, 읽어볼까.”
두근─
생일 선물 포장지를 뜯는 것처럼 기대감이 차오르는 기분.
김진우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극에 완전히 몰입해서 전부 읽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와, 살벌하다, 살벌해.”
역시나 배경은 일본의 아오키가하라 숲.
얼마 전에 그의 라이브 방송에서 봤던 그곳이었다.
‘지금은 멕시코에 갔다고….’
직접 현장에서 대본을 써서 이렇게 생생한 대본이 나올 수 있겠지.
누가 그랬던가, 시즌 1만 한 시즌 2는 없다고.
김진우의 작품에 적용되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캐릭터에 세계관이 넓어졌으니.
이렇게 되면, 두 작품의 제작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템페스트 엔터 측과 제휴해서 감당할 수 있긴 하겠지만.
“잠깐만, 그러고 보니….”
시즌 1 때 연출했던 감독, 조셉 리는 현재 다른 작품에 들어갔다.
그것도 이제 막 사전 제작 단계라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른 감독이라….”
아무한테나 맡길 순 없고, 김진우 작가의 대본을 깊이 이해하고 그대로 찍어줄 사람.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지금까지 김진우 작가의 작품을 충실하게 찍어서 영상으로 만들어 준 이들.
“나지수 감독님.”
최근에 데뷔작인 「쉐어 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연출했으니.
이제 시스콤 외에, 일반적인 드라마도 찍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고 정새롬 실장에게 의견을 개진했는데.
띠링─
그때, 여동생으로부터 톡이 날라왔다.
[언니 뭐해]
요즘 ‘김진우’라는 공감대가 생겨서 자주 톡을 주고받았다.
톡, 토톡─
[대본 읽어]
에바를 생각하면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언제 이렇게 한국에서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을까.
새삼스럽게 격세지감을 느꼈다.
현재는 할리우드 탑스타랑 투톱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기에.
“너나 나나, 정말 운이 좋았어.”
김진우 작가님의 작품을 만났으니까.
* * *
「천상의 멜로디」 마지막 촬영일.
최근에 제작진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음악 차트 최상위권을 싹 쓸어버린 건 물론이고.
“여러분! 우리 드라마 시청률이 무려 39.2프로를 찍었어요! 작년부터 올해까지 최고의 기록이에요!”
SBC 드라마제작국장은 직접 촬영장에 방문해서 촬영진과 기쁨을 나누었다.
촬영은 오늘 끝나지만, 방송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어쩌면 정말로 40프로의 벽을 깰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 회식 때 소고기든 대게든 제가 다 쏠 테니까, 한 분도 빠지지 말고 참석하세요!”
“네에!!!”
성공 요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 작용한 건 역시나 대본.
“김진우 작가님…. 오늘은 오시려나.”
세미는 오늘 진우가 촬영장에 방문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 별일이 없으면 항상 마지막 촬영날에는 들렀으니까.
그때, 그녀의 시야에 밍쁨 작가가 들어왔다.
“은빈 씨, 안녕하세요!”
“네! 세미님!”
이제 그녀와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서로 안부도 주고받을 만큼 편한 동생이었으니.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제작 이야기는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네? 아, 헤헤.”
“아직 제작사는 안 정해졌죠?”
“네. 디지니랑 템페스트에서 의논하고 정하기로 했어요.”
“네이바 웹툰 덕분이네요.”
“에이, 아니에요.”
실제로, 밍쁨이 웹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그 결과물을 보고 한국의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서로 뛰어들고 있었기에.
“저기, 오늘 작가님은 안 오세요?”
“김진우 작가님이요?”
“네!”
세미의 질문에, 은빈은 아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작가님, 지금 멕시코에 가셨어요.”
“네? 왜요?”
“너튜브 촬영이랑 드라마 대본 쓰러 가셨어요.”
“아…. 정말 쉬지 않고 일하시네요.”
“맞아요.”
“나도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비교도 안 되네.”
“아, 아니에요. 세미님도 대단하신걸요!”
“고마워요.”
세미는 오늘 촬영 중에 부를 노래를 떠올렸다.
언젠가 진우를 생각하며 직접 작곡한 음악, ‘미씽유’.
“오늘 촬영도 화이팅!”
“네. 은빈 씨.”
이내,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세미는 목을 가다듬었다.
* * *
깊은 밤, 멕시코 소치밀코의 작은 호수.
새하얀 달빛이 반사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우리 일행은 작은 배에 타서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희정이가 헛소리 못 하도록 섬의 관리인과 경호원까지 대동했다.
“이렇게 밤에 가는 사람은 처음 본대요.”
“…. 그게 하필 우리냐.”
소채담은 아까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온몸을 부를 떨고 있었다.
“음, 슬슬 방송 켜야겠네.”
일단, 명목상 촬영을 위해 방문한 거니까.
곧바로 조명과 마이크를 준비하고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진우하이
-ㅈㅎㅈㅎ
-오늘은 또 어디야?
-쏘블리다 ㄷㄷ
-너튜브 채널에? ㅋㅋㅋㅋㅋ
-진우 섭외력 보소 ㅋㅋㅋ
방송을 켜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유입되는 시청자들.
이제는 익숙해서 그런지, 시청자 수가 일본 때보다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헹님들, 우리는 조만간 목적지에 도차…. 억.”
“꺄아아악─!”
“으으으.”
전방에 작은 섬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도무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심지어, 옆에서 호들갑 떠는 희정이를 타박할 정신조차도 없었다.
“… 여길 어떻게 들어가냐.”
섬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반겨주는 수십 개의 인형들.
특이한 건, 모든 인형이 전부 어린아이처럼 생겼다는 점.
머리나 팔다리, 눈깔이 없는 인형들이 나무에 아무렇게나 걸려있었다.
-비주얼 미쳤네
-어두워서 더 무서움 ㄷㄷ
-아 잠깐만 손전등 비추지 말아봐
-섬 전체가 인형 천지네
-죄다 새끼줄로 엮어버렸어 ㅋㅋㅋ
-무서운 거 없어질 때까지 숨 참음. 흡.
어떤 남성이 호수에 빠져 죽은 여자아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26년간 매일 모았다는 인형들.
세월이 흐르고, 관리가 안 돼서 너덜너덜해진 아기 모양의 인형들은 기괴한 조화를 이루었다.
“오빠,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혼자 갔다 와.”
“…. 쫄보 쉑.”
“채담 언니, 우리 여기 남아서 같이….”
얘는 아직 소채담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구나.
이분은 그냥 단순한 공포 마니아가 아니야, 찐이라고.
“대박쓰….! 여기가 공포체험의 성지로구나.”
“….”
채담은 공포에 덜덜 떨면서도 오히려 그것에 짜릿함을 느끼는 진성 변태였다.
우리는 관리자와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섬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희정아, 너는 그럼 여기서 혼자 기다려.”
“어, 어….? 같이 가, 바보야!”
인형들의 모양은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사람 형상을 띄고 있었으며, 무언가에 매달려 있다는 점.
-왜 인형들이 다 깨져 있냐;;;
-아 씹 방금 까만 눈깔 인형이랑 눈 마주침 ㅠㅠ
-와 삐에로 인형 미친 ㅋㅋㅋㅋ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네 ㅋㅋㅋ
-대가리가 없는 인형보다 대가리만 있는 인형이 더 무섭네
-존나 기괴하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따라오는 여배우들을 뒤로한 채 주변을 둘러봤는데.
워낙 작은 섬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시스템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행님들, 오늘도 갑니다. 스터디 윗 미.”
“으으, 오빠는 진짜 또라이야.”
“너한테 그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아.”
“내가 뭘.”
“얼마 전에 SNS에 헛소리해서 일주일간 금지 먹었다며.”
“…. 그건 또라이가 아니라.”
“모자란 건가.”
“응!”
희정이와 남매간 우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채담이 끼어들었다.
“작가님! 저는 희정이랑 섬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
“응? 내 의견은?”
“완전 특이한 인형들은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 그니까 왜 나랑?”
채담은 아까부터 손을 꼭 붙잡고 있는 희정과 함께 사라졌다.
여동생은 손전등을 휙휙 흔들거나, 입을 뻐끔거리며 내게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잘 갔다 와.”
이번 작품 한정, 밤중에만 허락되는 대본 집필.
주변에 시선을 주지도 않고 노트북을 꺼냈다.
-극한의 컨셉충이다 진짜 ㅋㅋㅋ
-진우야 너는 인정이야
-김나연 때 사막 갔다는 썰이 ㄹㅇ이었누
-이쯤 되면 컨셉이 아니라 찐이야
-소채담도 반전 매력 쩔어 ㅋㅋㅋ
-그래서 새롬이 어디에 있냐고 ㅠㅠ
-여친 불러와
타닥, 타닥─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S2 2부」
평화로운 채팅창을 슬쩍 확인하고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곳에 방문할 불쌍한 지성호를 생각하면서.
몇 시간 뒤, 대본은 어느 정도 마무리할 때쯤.
띠링─
마침, 내 라이브 방송을 잘 보고 있다는 새롬 씨의 톡을 받았다.
“크으, 행님들! 역시 여친이 있으니까 힘이 나네요.”
채팅창에 올라오는 죽창 드립을 가뿐히 무시하고, 희정이에게 어딨냐고 톡을 보냈다.
그런데, 문득 최근에 여동생과 나눴던 톡 내용이 눈에 띄었으니.
‘새롬 씨한테 세 번 화나면 열어보라고 했었나.’
얼마 전에 희정이가 내게 보내준 인터넷 링크.
내가 화날 일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의문인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파란색 링크창에 손가락이 움직였다.
꼭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니, 굳이 이유를 들자면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어라….?”
익숙한 태국 음악에 맞춰서 몸을 흔드는 인물.
정새롬 제로투.
이걸 진짜 했어?
멍 때리고 시청하는데, 뒤늦게 시청자들과 함께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롬 너무 귀엽자너
-이거 그거 맞지? 갭모에
-진우 개부럽누
-다음생엔 나도 여친 생기게 해주세요 ㅠㅠ
-지누야 새로미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서둘러 영상을 껐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지이이잉─
한국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상대방은 하나뿐인 새롬 씨.
‘씨발 좆됐다.’
전화 받으면 좆 되는데 안 받아도 좆 됨.
이런 걸 요즘 말로 가불기라고 하던데.
-야, 김지누우우우우우!!!!!!!!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여친의 노호성.
그 우렁찬 음성은 마치 무협 영화의 사자후를 연상케 했다.
“여, 여보새롬? 안 들려. 역시 통화 품질은 한국이 최고네.”
-들리는 거 다 알아요!
“지, 진짜 안 들리는데. 아아, 여보세요? 안 들려요. 뭐라고?”
-나도 방송 보고 있거든!?
“….”
시청자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채팅창에 키키키로 도배했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우리도 잘 들림 ㅋㅋㅋㅋ
-바보냐 새롬이도 방송 보겠지 ㅋㅋㅋㅋ
-전화가 왜 바로 왔겠냐고 ㅋㅋㅋ
-ㅈㄴ 웃기네 ㅋㅋㅋㅋ
어떤 이유로도 살기 위한 노력을 폄하할 수는 법이다.
뚜- 뚜- 뚜 뚜─
“어휴, 여러분 잘 안 들리네요. 여친이 저를 많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나 봐요.”
지이이잉─
다시 걸려오는 전화를 애써 무시하고 대본을 마무리했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채담이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작가님!! 저기 인형 목이 돌아갔어요!”
“후우, 인형이니까 돌아갔겠죠.”
“아뇨, 진짜 제가 보는 앞에서 돌아갔어요! 진짜로!”
“….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 한국 돌아가면 인형 말고 내 모가지가 돌아가게 생겼다고.
생명줄 앞에서 공포는 부질없는 것.
인형 따위가 어찌 그리 무섭단 말인가.
띠링─
[우리 남친, 예쁜 말로 할 때 전화 받아요 ^^]
내게 무서운 건 여친님의 잔소리뿐이거늘.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