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52)
활짝 처진 커튼 사이로 창문 하나가 달려있는 호텔방.
고급스러운 창틀 너머에 달빛이 스산하게 빛을 발했다.
“티비가…. 자꾸만 꺼진다구.”
한 여인은 나이에 맞지 않는 요술봉 하나를 든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반쯤은 장난식으로, 반쯤은 호신용으로 가져온 마법소녀의 최애 무기.
-뾰로롱
얼마나 꼭 쥐고 있는지, 자꾸만 버튼이 눌리곤 했다.
그때마다 깜짝 놀라는 쪽은 유령이 아니라 여민서, 본인이었다.
“이 씨, 그래서 내가 여기서 혼자 안 자겠다고 했는데에….”
슬쩍 스마트폰을 들고 매니저를 재촉했다.
톡, 토톡─
[오빠 대체 언제 와 ㅠㅠ]
평소에 쓰지 않던 이모티콘까지 동원했거늘.
돌아오는 매니저의 답장은 민서의 기분을 기저 아래로 처박았다.
띠링─
[미안, 아직 길 PD님이랑 식사 중이라]
[갈 때 햄버거 포장해갈게 ㅎㅎ]
지금 햄버거 포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대체 밥을 언제까지 먹는 거야!”
주변에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다면 쌍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길 PD가 모니터링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잠깐만, 지금 PD님도 식사 중이시라면….’
위험한 상황에서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거잖아!
그때, 민서의 예민한 청력에 거실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분명히 켜놓은 TV 소리가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으니.
끼이익─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서 문밖을 확인했는데.
“또, 또 꺼졌어?”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TV를 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서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했기에.
“으으….”
살금살금 접근해서 TV와 전등을 켜고 다시 방에 돌아가려는 찰나.
문득, 이 객실에서 유령이 출몰한다는 건너편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 귀신이 있는 거야?’
혼자 살면서 겁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어봤을 터.
‘한 번만 확인해 보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거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귀신이랑 기싸움을 할 수는 없잖아.
이어서, 민서는 조심스럽게 건너편 방문 앞에 다가섰다.
‘어….?’
곧바로 문에 귀를 대고 내부 상황을 살며시 염탐했는데.
무언가를 타닥타닥거리는 의문의 소리가 들려왔다.
‘타자기 귀신….! 진짜 귀신이었어!?’
그때, 귀신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이라도 한 듯 뚝- 하고 소리가 멈췄다.
그러고는,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듣고 숨이 막힐 듯한 공포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뭐야, 서양 귀신은 발이 있는 거야!?’
순간,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템페스트 엔터에 들어오고, 인지도를 쌓고, 김진우를 만나 스타가 되고, 마법소녀가 되고.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방년 서른한 살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그런데, 죽음보다 두려운 현실은 따로 있었다.
배우로서 유작이 마법소녀라니, 그건 반드시 막아야 해.
‘절대 안 돼!’
아카데미 미술상까지 타서 한국 연예계의 역사에 기록됐을 텐데.
생에 마지막 작품으로 마법소녀를 남기고 죽으면 사후세계에서도 놀림 받을 거야.
자신에 대한 뉴스 기사가 어떻게 뜰지는 뻔했다.
《마법소녀 여민서, 미국에서 유령에게 숨져!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너튜브는 물론이고, 나중에 「서프라이징」 같은 프로그램에도 나오면서 영원히 박제될 터.
꾸욱─
여민서는 머릿속에 위대한 장군께서 말씀하신 필사즉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부끄럽게 죽은 마법소녀로 이름을 남길 바에야, 유령이랑 싸워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노라.
킹룡도 기갑도 물리 마법봉 한 방이면 다 때려잡을 수 있지 않았는가.
‘만약에 오늘 내가 죽는다면….’
마법소녀 시즌 2를 이끌어 갈 후임은 바로.
끼이익─
유령이 문을 여는 순간, 더이상 상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여민서는눈에 살기를 띠고 플라스틱 마법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정의구현!!!!”
빠악─
머리통에서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솔직히, 유령치고는 상당히 약한 상대였다.
“어….? 김진우 작가님!?”
“????”
두 명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진상을 파악하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아프시겠당.”
“끄아아아악─!”
진우의 비명 소리와 마법봉의 영롱한 음색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었다.
-뾰로롱
* * *
김진우의 채널을 시청하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마법소녀가 현실에서 물리적인 능력을 과시했으니.
다음 날, 길주창 PD는 진우의 채널에 출연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작가님과 시청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김희정은 머리에 커다란 밴드를 붙인 오빠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방송에서 웃거나 밥도 잘 먹는 걸 보면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다.
“희정아, 오빠는 괜찮으시겠지?”
“괜찮겠지.”
“…. 남 얘기하듯이 하네?”
“나는 아니니까 남이 맞긴 하지.”
“….”
JTBS 방송국, 새 드라마의 미팅 현장.
메인 작가 황효주는 배우들을 기다리며 희정과 대화를 나눴다.
“오늘 처음 보는 거야.”
“누구?”
“재준 오빠!”
“아….”
김희정은 친해서 그를 오빠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팬으로서 스타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번에 듣기로, 원래 지성호 배우님 팬이었다면서.”
“에이, 갈아탄 지가 언젠데. 쉐어 하우스 찍으면서 환상도 깨짐.”
“음….”
“템페스트에 들어오면 재준 오빠 매일 볼 줄 알았는데. 계속 일본에만 계셔서….”
“오늘 소원 풀겠네.”
“그렇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로맨스.
임재준과 김희정은 일찌감치 캐스팅이 확정되었는데.
그 외에 배역들도 전부 주연급 배우들로 채워졌다.
“솔직히 깡준이 먼저 하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네.”
“그러게. 강준 배우님은 지금 일본에서 광고만 찍어도….”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도 친한 사람이랑 찍으면 좋고.”
게다가, 나머지 한자리 역시 레인보우 엔터의 기현수.
주연급 배우들은 하나 같이 진우의 라인에 속하는 배우들이었다.
“너무 우리 소속사 배우들로 채우는 것 같긴 한데….”
“그만큼, 요즘 템페스트가 잘 나가니까.”
JTBS 방송국은 진우가 데뷔하기 전부터 템페스트 엔터와 계약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희정이 때문인가.’
남의 애정사에 눈치가 빠른 효주가 아닌가.
대충 어찌 된 상황인지 알 것도 같았다.
기현수 배우님이 희정이에게 관심이 많은 건 진작에 눈치챘으니까.
‘어쩌면 강준 배우님도….’
그때, 임재준이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 들어왔다.
“오빠!!!”
“네?”
“제가 엄청 팬이에요!”
“아, 희정 씨.”
희정은 그동안 덕질했던 증거를 들이밀었다.
친오빠에게 돈 주고 산 임재준 사인이나 응원 영상까지.
“고마워요. 저도 희정 씨 오빠분 팬입니다.”
“저는 성덕인 것 같아요. 으앙.”
“네. 하하.”
효주는 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이거….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각 관계 같은데?’
임재준의 광팬인 희정이.
그리고, 강준과 기현수까지.
‘영감이 떠오른다.’
오늘따라 대본이 잘 써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새롬 씨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며칠 동안 우리집에 살다시피 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여친.
이거 좀만 더 아픈 척-, 아니, 아픈 티를 내주면 여기서 자고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우 씨, 한입 먹어봐요.”
“뭔가요?”
“전복죽이에요.”
“오, 봉죽에서 사 왔어요? 거기 맛있는데.”
“제가 직접 끓였어요.”
“대박.”
새롬 씨 요리 실력은 백중원 선생님도 인정하셨으니까.
“저번에 맛 선생에 출연하셨죠?”
“아, 그냥 잠깐 얼굴만….”
아픈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매일 여친 얼굴도 보고, 여친이 해주는 밥도 먹고.
“…. 왜 안 드세요?”
“아아아.”
“???”
“손에 힘이 안 들어가요.”
“…. 머리를 맞았는데?”
“머리에 혹이 났어요. 중추신경은 원래 온몸으로 이어지는 법이죠.”
“아픈데 말은 참 잘하시네요.”
“원래 입은 살았잖아요.”
새롬 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숟가락으로 죽을 퍼서 입에 넣어주었다.
“손 주세요.”
“네?”
손을 못 움직인다고 하니까 조심스럽게 마사지해주는 새롬의 손길.
얼마 전에 스킨십 1년 금지 먹었는데, 자연스럽게 풀린 기분이다.
‘개꿀인데?’
내 생각에 여민서 씨는 벌써 내 편이야.
빨리 마법소녀 시즌 투 써드려야겠다.
그건 베네핏으로 쓰는 거라 언제라도 쌉가능.
“제가 민서는 다음에 꼭 혼내줄게요.”
“네?”
“왜 사람을 때려. 속상하게.”
“…. 유령인 줄 알았다잖아요.”
“그게 말이 돼요!?”
솔직히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게.
오늘만 해도 길 PD님한테 이상한 톡을 받았거든.
[김진우 작가님 뭔가 이상하네요]
[촬영 중간에 217호에서 TV가 자동으로 꺼졌어요]
PD님도 혼자서 편집하다가 기겁을 했다고 들었다.
전원을 끄는 정도는 호텔에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음…. 하여튼, 덕분에 노이즈 마케팅 제대로 하고 좋죠.”
“노이즈 마케팅 좀 하려다가 사람 잡겠네.”
“….”
사파리 때부터 이어지는 스트리밍.
그러고 보니까 개인 방송 할 때마다 꼭 문제가 하나씩 생겼다.
‘개인 방송은 당분간 멈춰야지.’
공포 대본도 가능하면 빠르게 마무리 짓고 싶다.
주렁주렁 달고 가는 게 오히려 더 기 빨리는 기분이야.
‘이제 혼자 가도 될 것 같아.’
이내, 새롬 씨는 잠시 표정을 굳히더니 의외의 말을 꺼냈다.
“근데 진우 씨, 혹시 형식이 소식은 들었어요?”
“무슨 소식이요?”
“아, 회사에 안 들러서 모르시는구나.”
“???”
밍쁨과 형식의 로맨스를 굳이 들어야 하나 싶긴 한데.
“지금 은빈 씨랑 사귀기로 했다네요.”
“…. 군대 가기 직전에?”
“네. 둘이 알아서 할 문제죠.”
혹시라도 두 명이 결혼하고, 내가 새롬 씨랑 결혼하면.
밍쁨이 나랑 사촌지간, 친척뻘이 되는 셈이구나.
“나중에 헤어질까요?”
“글쎄요.”
갑자기 은빈이 생각이 궁금해졌다.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고 톡을 보내고 있었는데.
“저기요, 작가님.”
“네?”
“손 못 움직인다면서요.”
“아, 맞다. 까먹었다.”
“…. 숟가락 들어.”
“넵.”
애옹─
마침, 로미오는 옆에서 나를 놀리는 듯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 * *
한 달 뒤.
심주원 감독은 최근 들어 부쩍 친해진 로다주와 대화를 나누었다.
“흠, 오늘로 사파리 촬영도 마지막이군요.”
“아마존에서 촬영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 참 빠르군요.”
“그러게요.”
진우가 미국의 더 스탠리 호텔을 다녀간 지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맨 vs 네이쳐」 촬영도 현대 배경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 그 작품은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네?”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시즌 투.”
심 감독은 로다주의 말을 듣고, 회사 직원에게 들은 내용을 말해주었다.
“지금 대본리딩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 벌써 제작에 들어가는군요.”
“네. 대본도 다 쓰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아는 어떤 작가보다도 빠르시네요.”
“사실, 대본 쓰는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촬영 시간 역시 극도로 단축해 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촬영 스케줄이 한 번이라도 꼬이는 법이 없었으니.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돈과 시간이다.
최소한의 자본으로 최대한 빠르게 촬영을 마치는 것.
값비싼 배우들 개런티를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우 작가의 대본은 그야말로 보물과도 같았다.
“음, 준비를 마친 것 같네요.”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현장에는 표범 가죽을 에바가 야성미를 뽐내고 있었다.
판타지 세계의 엘프를 현실에서 표현한 것처럼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쉐어 하우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반전매력.
드라마 스틸컷을 몇 장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내 역할이 정말 중요하구나.’
심 감독은 오늘도 굳은 다짐을 하고 메가폰을 잡았다.
한국이 낳은 천재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로다주 배우님, 스탠바이….”
이번 작품이 김진우 작가의 할리우드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거라는 소문도 있었으니.
“액션!”
최고의 대본에 걸맞은 최고의 연출로 보은에 보답하고 싶었다.
* * *
“할리우드요? 저한테는 아직 너무 이르죠.”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두드렸다.
“겸손한 답변이네요. 잘 편집해서 쓰겠습니다.”
“음….”
“이번에 처음으로 디지니에서 시즌 2를 제작하시게 됐는데, 소감 한 말씀만 해주신다면….”
“뭐, 소감이랄 게 있나요. 감사할 따름이죠.”
“와우, 템페스트 측에서 건네받은 자료에 의하면…. 러닝 개런티 3프로를 보장받았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인생 목표를 들을 수 있을까요?”
“목표라….”
솔직히 나도 어느 정도의 사명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시스템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겠다는 의무감.
그저 돈이 전부였다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대본을 쓸 이유가 없었겠지.
벌써 통장에는 돈이 썩어 넘칠 만큼 많았으니까.
‘조만간 시스템도 또 승급해야겠어.’
지이이잉─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에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네. 새롬 씨.”
-오늘 저랑 같이 방송 보기로 한 거 기억하시죠?
“당연하죠.”
길 PD님이 희대의 역작을 만들었다고 장담했던 다큐.
희정이가 빠진 「그 분이 알고싶다」의 시즌 1 마지막회.
-저기, 장소를 바꿀까요? 우리집으로.
“네? 저야 뭐, 완전 좋죠!”
-그럼 오늘 로미오도 같이 오시면 안 돼요? 오랜만에 보고 싶은데.
“당연히 가능하지요. 하하.”
-…. 웃음 소리 뭐죠.
“그냥 기분 좋아서요. 하하하.”
드디어 때가 되었는가.
애인을 집에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 그 날.
남녀가 유별하지만 히나가 되는 아주 중요한 날.
대망의 합방일, 그거슨 바로 오늘!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네.
‘스킨십 금지도 다 옛말이로다.’
새롬 씨 집까지 5분 거리라서 로미오를 데려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만들고….’
편의점에 들러서 중요한 물건을 사 가지 않을 수가 없겠구려.
한참 기대에 부풀어 올랐는데.
새롬 씨가 던진 한마디를 듣자마자 팍 식어버렸다.
-오늘 다른 손님도 불러서 같이 방송 볼까 하는데….
“…. 좋다가 말았네요.”
-같이 출연했잖아요. 민서까지는 좀 봐줘요.
“아하.”
곧바로 답장을 보내고, 로미오를 챙겨서 새롬 씨 집으로 향했다.
이어서, 실장님 댁에 방문하자마자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봉투를 들어 올렸다.
“새롬 씨!”
“어? 뭐예요 그건?”
“간식 사 왔죠. 새롬 씨가 좋아하는 거.”
“고마워요.”
애옹─
“우리 로미오도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갑네.”
“음….”
역시, 털 달린 반려동물은 무조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니까.
새롬 씨도, 민서 씨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야옹이를 만지기 바빴다.
누가 밥 주든 다 퍼먹는 길냥이답게 사람을 안 가리고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우리 새롬 씨는 오늘따라 더 예쁘네요.”
“…. 갑자기 뭐지.”
“왜요.”
“그런 말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기더라고. 어디 공동묘지에 간다던가.”
“….”
이제 예쁘다는 칭찬도 편히 못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내 잘못이 크다.
“공포 대본은 다 썼어요.”
“다행이네요.”
“해외 로케는 두 군데만 잡으면 될 것 같아요.”
“어디….?”
“일본이랑 멕시코.”
“아, 거긴 대체가 안 되죠.”
“맞아요.”
진짜 전 세계 유명한 공포 스팟은 다 돌아다닌 것 같다.
지성호 그 친구도 은근히 겁이 많은데, 어떻게 촬영할런지.
“저기, 진우 씨.”
“네?”
“저번에 말했던 정기 모임 기억하시죠? 제가 친구들 소개시켜드린다고….”
“아, 네. 이번 주말이잖아요.”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일정에 적어놨으니까.”
새롬 씨는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 기자분께 인터뷰 내용은 전달받았어요.”
“그래요?”
“…. 그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네?”
“진우 씨 인생 목표요.”
“아….”
인터뷰 때 내가 했던 말이구나.
내게 주어진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고 했던.
“그래서 요즘 디지니 작품을 그렇게 열심히 쓰는 건가요?”
“음…. 그런가.”
그냥 시스템이 던져주는 거 받아적는 건데요.
“혹시 다음 작품은 마법소녀 시즌 2, 맞나요?”
“아, 뭐…. 그럴 수도 있고.”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여민서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제 좀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지.
‘다중 집필’ 베네핏 쿨타임은 이미 리셋된 지 오래니까.
‘그래도 한번 써볼까.’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다중 집필(Lv 2)을 사용합니다.】
띵동─
여기서 배우라고는 오직 여민서 한 명 뿐이니까
별 탈 없이 마법소녀, 두 번째 작품을 던져주겠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용 : 고양이 탐정 메로로】
【장르 : 영화, 고양이, 추리, 범죄 수사】
【장소 : 푸름 아파트 106동 1101호】
【제한 시간 : 무기한】
【※ 다이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50억 원】
우리집이잖아.
근데 왜 여민서 대신 고양이가 주인공이 됐냐.
‘아, 얘가 나랑 더 가까워서….’
애옹─
부드럽게 만져주는 내 손을 즐기던 우리집 야옹이.
로미오는 왜 멈췄냐는 듯이 불만 섞인 울음소리를 뱉었다.
“…. 혹시 마법소녀 같은 고양이 영화는 어때요?”
“네?”
“주연은 우리집 고양이.”
“….”
두 여인의 표정에 의문이 가득했다.
내 말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파악이 안 되는 듯했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오늘은 민서 씨가 마법봉을 안 들고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