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58)
성(性) 문화의 종주국이 있다면 아마 일본이 아닐까.
그런데, 성진국에서 B급 성인 영화로 흥행에 성공한 한국인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고작 대학생 때 익명으로 다키다키 영화제에 출품한 저예산 영화.
그의 화려한 전적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제2의 봉진대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몇몇 관계자들은 부디 일본에 남아서 업적을 남겨주길 바랐지만.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성인용 작품을 찍게 됐군.’
고독한 야티스트(Yartist)는 대본을 천천히 곱씹으며 음미했다.
그의 표정은 일본의 성인 배우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신성했다.
‘벌써 작가님과 세 번째 작품인가.’
심주원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언어유희에 흠뻑 빠져들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재처럼 느껴졌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절대 공정한 심판은 아닐 터다.
그랬다면 단 한 명에게 이렇게 많은 재능을 몰빵하지는 않았을 테니.
“섹드립까지 섭렵하셨을 줄이야….”
훌륭한 음담패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도 같았다.
일렁이는 마음속에 잔잔하게 미소를 짓게 만드는 힘.
상대방이 불쾌하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실패한 섹드립이 아닐까.
그래도 드라마용 대본이라서 그런지, 노골적인 성애 묘사는 자제하고 대사로 맛을 살렸다.
그 와중에 매력적인 여주인공의 색기 발랄한 몸짓과 교태를 연출하는 건 자신의 몫이겠지.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해보겠어.’
이 또한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더이상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국위‘성’양에 힘쓰리라.
무명 다큐 감독에게 어떤 조건도 없이 손을 내밀어준 김진우 작가.
템페스트 엔터에 들어오고, 직업 만족도는 언제나 최상이었기에.
‘이제는 보은에 보답할 때가….’
심 감독은 템페스트 엔터 1층 카페에서 대본을 읽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천천히 다가와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심 감독님.”
“음, 누구시죠?”
“MDN 연출팀 신입 사원 소성식입니다!”
“흠….”
한국에서는 이미 거장 반열에 오른 심주원 감독이 아닌가.
상대방은 그 어떤 때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MDN에서 조연출 후보로 나왔습니다!”
“그래요?”
“넵!”
이내, 두 손으로 본인의 자기소개서를 내미는 소성식.
심 감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그의 프로필을 건네받았다.
“미술 고등학교 나왔네요?”
“네! 입시 미술 준비했었습니다!”
“미시 입술?”
“아, 아뇨. 입시 미수….”
“아하. 그럼 그림을 좀 그리겠네요.”
“네. 감독님.”
“합격!”
“네?”
“미술 하는 사람들이 이쪽을 잘 이해하거든.”
“이쪽이라면….?”
심 감독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 * *
우리집 고양이가 며칠 사이에 진화했다.
“얘가 뭘 잘 못 먹었나.”
아니, 오히려 너무 잘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애옹─
원래 참치나 츄르만 먹던 로미오는 사료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까 순딩순딩한 게 내가 알던 그 고양이가 맞나 싶다.
“너 이제 나대지 마라. 귀엽다고 안 봐준다.”
애옹─
내일 또 훈련이 있다고 하던데, 로미오 때문이라도 영화 찍기를 잘 한 것 같다.
고양이 수명이 1, 2년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같이 살 건데.
‘갑자기 착해지니까 개이득-, 아니, 냥이득.’
확실히 전문가는 진짜 다르긴 달라.
이 정도면 고양이계의 강현욱 인정.
이제 훈련냥이라 어디 가서 사고 칠 일은 없겠네.
“오빠, 혹시 사육사가 우리 로미오 때리면서 가르친 건 아니겠지?”
“고양이가 때린다고 말을 듣겠냐?”
“아….”
희정이는 오늘도 생각하는 게 김희정스럽다.
“요즘 너 인기 많더라?”
“아, 응. 헤헤.”
얘가 스타병에 걸렸나 왜 이래.
“지금 나랑 관련된 너튜브 영상 눌렀는데, 조회수가 장난 아니야.”
“얼만데.”
“이거 봐, 며칠 만에 200만!”
“크으, 내 동생! 많이 컸다.”
JTBS 드라마 「세 남자」
출연 중인 남자 배우들과 김희정의 케미는 대단했다.
메인 남주이자 현실에서 덕질하던 임재준.
현실 친구 사이라고 팬들에게도 알려진 강준.
「쉐어 하우스」에서 케미를 검증한 기현수.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셋 다 골고루 인기가 많았다.
과거에 이런 류의 드라마로 유명했던 「꽃 같은 남자」의 F4 느낌.
“종영까지 얼마나 남았냐?”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지.”
“효주는 대본 다 썼대?”
“거의 다 쓰긴 했는데, 매번 촬영장에서 수정하는 게 있어서….”
“아하.”
원래 촬영지 환경이나 날씨에 따라 수정하는 게 일상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아주 가끔 수정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새 보조 작가를 구해야 하나….’
이제 효주는 보조 작가로 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지이이잉─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고.
핸드폰에 효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오빠, 새 드라마 대본 봤어요.
“새 드라마…. 김 프로?”
-네! 자잘한 오타 수정했으니까 한번 확인해 주세요!
“뭔 말이야, 니가 그걸 왜 해?”
-네? 제가 보조 작가니까 하죠.
“…. 네 대본은 다 썼냐?”
-그럼요. 오늘 촬영 없는 날이라 할 일도 없어요.
보조 작가 딱지를 떼어줘도 왜 다시 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너 이제 졸업해.”
-네?
곧이어, 효주는 내 말뜻을 이해하고 펄쩍 뛰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커리어나 더 쌓아라. 데뷔했으면 끝이지, 언제까지 내 밑에 있을래?”
-오빠 밑에 있는 게 최고의 경력이에요!
“응?”
-모르시는구나. 지금 템페스트 엔터에 보조 작가 지원하겠다고 문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굳이….?”
-완전 꿀 직장인데, 인맥 쌓이는 수준은 전국에서 최고잖아요! 게다가 오빠 밑에서 대본만 편집해도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아, 그런가.”
-당연하죠! 한국 사람 중에 로다주 배우님 번호 저장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음….”
내가 이민주 밑에 있을 때 고생한 걸 생각해서 그런지.
당연히 효주나 밍쁨이도 보조 작가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빨리 메인 작가로 데뷔하라고 푸시도 해준 건데.
-하여튼, 저는 회사 소속이니까요. 저는 실장님이 자르기 전에는 안 그만둘 거예요!
“어, 그래. 알아서 해.”
본인이 좋다는데 내가 뭐라고 해.
효주가 계속해준다면 나야 땡큐지.
각종 외국어 실력은 기본에, 운전도 잘하고, 친화력도 좋으니까.
-저기, 근데 오빠! 고양이 탐정 메로로는 대본리딩이 언제예요?
“그거, 내일모레 오후 3시.”
-그때 시간 날 것 같네요. 저도 참석할게요.
“일단 네 드라마나 신경 쓰지 그래?”
-아뇨, 짤릴까 봐 안 되겠어요. 어차피 그날 촬영도 오전에 다 끝나요!
“그래, 그럼. 그때 보자.”
-네. 오빠!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까 고민거리가 남았다.
“이 친구를 대본리딩에 데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야아옹─?
“그래, 너.”
제작사든, 송 감독님이든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데려오지 말라는….
아닌가, 반대로 당연히 데려올 거라고 생각해서 말을 안 해준 건가.
‘새롬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새롬 씨도 내게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우리 할아버…. 아니, 아니에요. 만나서 얘기해요. 우리.
“그래요.”
-아니, 그냥 지금 말씀드리면 신경 쓰일 테니까요.
“네?”
-대본리딩만 끝나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무슨 말이길래….?”
-이틀밖에 안 남았잖아요.
“네. 뭐….”
우리 새롬 씨답지 않게 뜸을 많이 들였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이름.
존귀하고 고결한 여신님.
너무 기니까 조금만 짧게 줄여야지.
톡, 토톡─
[존귀녀]
* * *
며칠 뒤,
「고양이 탐정 메로로」 대본리딩 당일.
이시연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무려, 최원준의 와이프 역할!
오스카상이 크긴 컸나 보다.
고작 영화 한 편 찍은 신인 배우를 얼마나 높게 쳐주는 건지.
솔직히, 「월드 클래스 미식가」는 대단한 연기력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음식점에 방문하고, 맛을 풍요롭게 표현하는 정도.
그마저도 대본과 연출이 90% 이상이었다고 생각했다.
레전드 배우, 최원준이 10년 만에 복귀하게 만든 작품이 아닌가.
게다가, 이 영화 때문에 템페스트 엔터와 계약까지 했으니.
‘나 때문에 망치면 어떡하지.’
심지어, 조연들조차 자신보다는 연기 경력이 화려했다.
“언니, 나 잘 할 수 있겠지?”
“시연아, 너는 최고야!”
“…. 잘할 자신이 없는데.”
매니저는 여유롭게 운전대를 꺾으면서 시연에게 말했다.
“에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응?”
“김진우 작가님의 실력은 무조건 믿어.”
“….”
템페스트 엔터 소속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믿음이었다.
김진우 작가와 정새롬 실장의 조합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에.
“작가님이 너를 선택했다면 그건 정답이라는 뜻이야.”
“아….”
“다른 어떤 배우나 직원도 이의제기하지 않았잖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럼 그냥 다들 인정한다는 거지.”
시연은 매니저의 응원을 들으며 대본리딩 현장에 도착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최원준 배우는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또 뵙네요.”
“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다른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김진우 작가와 눈을 마주쳤다.
곧바로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시연 씨, 잠시만요.”
“네?”
야옹─
고양이를 품에 안고,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거는 김진우 작가님.
“그 사이에 표현력이 반 토막 났네.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흠, 일단 급한 대로 조언이라도 몇 마디 해드릴게요.”
대본리딩 직전에 듣는 말치고는 조금 황당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슬픈 감정을 잡는 연습을 하라니.
“속성으로 하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감정이라는 게 태도의 문제거든요.”
“네에….”
이시연은 진우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
그리고, 그의 요청에 따라 30분 동안 한 장면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그저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작은 불안감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 이 뜻이었구나.’
시간이 흘러, 최원준 배우와의 티키타카가 이어졌는데.
감정선이 뚜렷한 씬에서는 급격하게 몰입이 깨지는 게 아닌가.
“당신, 이미 죽었어요.”
뇌사 상태의 아내가 힘겹게 입을 떼는 독백.
이미 병실을 떠난 최원준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범인은 제가 반드시 잡을 테니까….!”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의 연기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이시연 본인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족한 감정선을 반복 훈련으로 덮어버렸으니.
아니, 오히려 송 감독님은 담백한 연기라며 칭찬을 곁들였다.
‘아까 연습하지 않았다면….’
주연배우로서 부족함을 깨닫고 크게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오는 길에 매니저 언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역시 김진우 작가님은….’
배우와 어울리는 역할을 정확히 부여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멱살 잡고 끌어 올린다.
‘고마워요. 작가님.’
시연은 진우와 눈을 마주쳤을 때 입 모양으로 감사를 표했다.
* * *
오늘 있었던 대본리딩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야옹─
로미오를 데리고, 새롬 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배우 평가 쿨타임 아까워서 쓴 건데,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금방 컨디션 회복한 거 보면 연습 부족은 아닌 것 같고.
‘많이 긴장했나 보네.’
경력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니었다.
아직은 고작 영화 한 편 찍은 신인배우에 불과했으니.
그때, 멀리서 새롬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저기, 작가님.”
“네?”
이내, 실장님께 들은 충격적인 말.
내가 회장님 제주도 별장에 초대를 받았다는 소식.
“거짓말하지 마세요.”
“진담입니다.”
“….”
새 영화의 대본리딩도 무사히 마치고, 이제 행복 집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늘.
“회장님이 저를 직접 보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말이죠?”
“네. 혹시 불편하시면….”
“아뇨, 안 불편해요!”
사실 불편하지. 나도 사람인데.
근데 어떻게 불편하다고 말해.
‘정덕수 회장님.’
수십 개의 계열사를 가진 천성 그룹을 세운 인물.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봤었는데 실제로 보게 된다니.
‘실화냐.’
새삼, 정새롬 실장님과 나의 격차가 멀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면전에서 반대하기 위해 부르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생각 하세요?”
“아, 너무 좋아서요.”
“정말요?”
“네. 행복하네.”
“고마워요 진우 씨.”
이거 가만히 있다가는 헤어지는 거 아냐?
그렇다고 당장 무슨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띵동─
【두 편 연속 집필이 발동했습니다.】
어, 그래. 니가 생각한 방법이 뭔지는 알겠는데.
‘…. 이건 아니야. 제발 넣어둬.’
【내용 : 김 프로의 성 상담소 3-4부】
【장르 : 성인, 시트콤, 코미디, 19금, 교육】
【장소 : 제주도 애월읍 소정리 145】
【제한 시간 : 5일】
【※ 레전드리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600억 원】
느낌상, 어디인 줄은 뻔했다.
“할아버지 별장이라고 했죠?”
“네! 제주도 애월읍에 있는데….”
“그래요.”
일단 어쩔 수 없이 대본은 쓰러 가야겠지.
“저기, 새롬 씨.”
“네?”
“우리 5시간만 먼저 가서 제주도 구경 좀 할까요? 데이트도 하고.”
“네, 좋아요!”
뭔가 기대하는 눈빛의 정새롬 실장님.
근데 나는 가서 대본이나 써야 한다고.
“대본 데이트!?”
“….”
갑자기 존귀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할아버지 댁에 먼저 가서 놀아드리면 좋잖아요. 적적하실 텐데.”
“알겠어요. 대신 제주도 데이트도 하는 걸로.”
“콜!”
* * *
제주도의 한 골프장.
백발의 노인은 골프채를 내려놓고 허리를 곧게 폈다.
휘익─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서 은밀한 폴더에 접속했는데.
“흐음. 그래서 오늘은 뭐를….”
은퇴하고 나서 생긴 생기발랄한 취미 생활.
영상 속에서는 신체 건장한 성인 남녀가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
“회장님….?”
“뭐, 뭐야!”
“네?”
어느새, 근처까지 와서 말을 거는 김 비서.
“언제 왔어!?”
“방금 왔습니다.”
“김 비서, 자네는 기척도 낼 줄 모르나?”
“죄송합니다.”
비서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그만 들어가지.”
“네. 회장님.”
라운딩을 마치고, 나이 든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차에 탑승하는 인물.
한때, 정재계를 아우르며 천성 그룹을 키우고 부를 축적한 사업가.
당시에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건재했지만.
“나도 이제 많이 늙었어.”
“아닙니다. 회장님.”
정덕수 회장은 기계처럼 대답하는 비서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마인가.
어느새 김 비서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회사에 좋은 자리를 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 정착했으니.
“자네도 이번 주말엔 가족이랑 시간 좀 보내.”
“그래도….”
“됐어, 주말엔 그냥 집에서 쉴 테니까.”
“…. 감사합니다. 회장님.”
노년에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막내 손녀딸이 시집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
‘솔직히 10년만 젊었으면….’
어쩌면 새롬의 혼삿길을 막았을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아니라, 재벌집 귀한 아들이라도 마찬가지였을 터.
스윽─
정 회장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너튜브 어플에 접속했다.
얼마 전에 비서에게 사용법을 들었기에.
곧바로 김진우라는 이름을 검색해 봤는데.
《진우 TV》
《구독자 : 381.2만》
얼핏 봐도 어마어마한 팔로워를 보유한 채널.
그를 칭하는 수식어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천재 작가.
히트작 제조기.
100억 기부천사.
국뽕 스테로이드.
그리고, 며칠 전에 만들어진 별명.
“야쓰 머신….?”
야쓰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이 별로 좋지는 않다.
일단 기부천사 타이틀만 보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지만.
“흘흘….”
정 회장은 얼마 전에도 봤던 영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근에 김진우가 지성호와 함께 찍은 라이브 방송.
-제가 들어가려는 작품이….
설명을 쉽게 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한국의 성 문화 발전을 위한 포부가 느껴졌다.
“김 비서.”
“네?”
“새롬이 남자친구 말이야.”
“네, 회장님.”
“이번 드라마에 적당한 이름으로 투자해.”
“알겠습니다.”
“…. 새롬이 남자친구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네. 회장님.”
원래 드라마를 보는 취미는 없었지만.
장르를 보니까 한 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여러분, 건강한 성생활은 절대 문란한 게 아니에요! 야쓰란 무엇인지 제가 제대로 알려드릴게요. 특히 이번 드라마에서는….
거참, 누구 손녀딸 남자친구인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방적인 친구였다.
“고놈 참, 재밌는 친구구만.”
근데 아직도 야쓰가 뭔지는 모르겠다.
예쓰를 바꿔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김 비서, 자네 혹시 야쓰가 뭔지 아나?”
“아…. 음, 그게, 보통 야구장에 쓰레기를 많이 버리지 않습니까?”
“허허, 관중들을 빗대어 사회를 풍자하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작가는 작가인 모양이야.”
정 회장은 어떻게든 진우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저 손녀딸이 좋아하는 사내와 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으니.
‘흠, 얼마 전에 전화로 애교도 부리던데.’
전화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고 해주면 더 좋을 텐데.
그럼 손녀딸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허허, 주말이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