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63)
강준은 더이상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숨겨왔던 마음을 인정하니 이렇게 편할 줄이야.
“김희정….!”
처음 만났을 때, 오랜만에 사귄 여사친이라서 잘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하필 김진우 작가님의 여동생이라서 더욱더 그러했다.
‘어쩌면, 나도 꽤 오래된 마음일 수도….’
갓 템페스트와 계약했을 때, 빚더미에 앉아있어도 명품백을 사주고 싶었던 친구.
사실, 이미 그때부터 친구를 대하는 감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최근에 기현수 선배가 들이대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대로 놓치면 평생토록 후회하면서 살아갈 게 분명하다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생전에 잘해주지 못했던 지난날들처럼.
“희정아, 너를 좋아해.”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김진우 작가님처럼, 열애설이 난 김에 고백하고 싶었으니.
“…. 준아?”
“어? 삼촌? 언제 왔어?”
“방금.”
강철중은 한숨을 폭 내쉬더니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기사 났다. 확인해 봐.”
“….”
《템페스트 엔터 측, 강준과 김희정의 열애설 전면 부인!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일 뿐….》
당연한 결과였다.
실제 사귀고 있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지금처럼 애매한 사이에서 인정하는 게 더 이상하지.
“상관 없어. 내 마음은 확고해.”
“희정 씨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 그건.”
똑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심장의 콩닥거림이 일치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겠지.
“기다릴 거야. 희정이가 마음을 정할 때까지.”
“희정 씨가 거절하면?”
“….”
“그래. 일단 새 드라마나 신경 쓰자.”
“드라마?”
“나쁜 남자의 사랑법.”
“아….”
“이게, 웹드라마긴 하지만…. 김 작가님 채널, 420만이니까.”
확실히, 그냥 단순한 웹드라마라고 보긴 어려웠다.
심지어, 강준뿐만 아니라 퍼플걸스 세미까지 캐스팅했으니.
‘이 작품 엄청 오래 준비하셨는데….’
일전에 일본에 있을 때 봤던 기억이 있었다.
오래 준비한 만큼, 수정한 대본의 수준도 상당했다.
“그나저나, 준아! 나 승진했다.”
“어? 삼촌, 축하해!”
“나 이제 팀장이야.”
“와아…. 템페스트 팀장이면 다른 회사 실장급이야. 성공했네.”
“하하. 너한테 로드도 한 명 붙을 거야.”
“응?”
“팀장은 로드 안 뛰어. 나는 이제 사무직.”
“….”
괜히 축하해줬다.
“그럼 이제 삼촌은 무슨 일 해?”
“템페스트 엔터 제휴사에서 일하게 됐어. 전반적인 경영이라든지, 재무라든지, 인사 담당도….”
“오오….! 거의 실세잖아?”
“뭐, 그렇지.”
지금은 망했지만, 한때는 잘 나갔던 회사 대표였으니.
그 경력을 인정받아서 팀장급 대우를 받는 듯했다.
“혹시 천성 그룹 계열사야?”
“아니, 랜덤 스튜디오. 김진우 작가님이 사장이야.”
“…. 아.”
“뭐가.”
“뭐.”
“지금 기분 나빴는데?”
“왜지?”
“음….”
400만 너튜브 채널이면 업계에선 대기업이라고 불린다.
황효주 작가가 랜덤 스튜디오에서 이인자라고 했으니까.
“삼촌, 3인자 됐네. 축하해.”
“아니, 밍쁨 작가님 다음이라서 4인자야.”
“…. 그 정도면 그냥 막내 포지션 아닌가.”
“어허, 채용 중인 직원까지 벌써 10명이라고!”
“….”
강철중은 민은빈 작가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았다.
“음, 그래. 어쨌든 축하해.”
* * *
우리집 현관문이 열리고, 김희정이 로미오를 안고 들어왔다.
여동생은 종종 최원준 배우님을 보러 촬영장에 들르곤 했으니.
“희정아, 너는 요즘 일이 없니?”
“응. 없어.”
애옹─
“어이쿠, 우리 냥배우님 와쪄염?”
나는 급하게 희정이에게서 로미오를 받아들었다.
괜히 털바퀴 녀석 기분 상하게 만들면 나만 손해라서.
애옹─
어느새 애착 장소에 가서 혼자 그루밍하는 로미오.
다행히 오늘은 야옹이 쉑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요즘 연기 빡세게 굴린다고 자꾸 씅질을 부리던데.
“고양이 탐정 메로로 촬영장 다녀왔어?”
“응. 그거 제목 바꾼 거 내 덕분이지?”
“…. 어, 그래.”
“원래 뭐였더라? 인연? 괴한?”
비슷하게라도 말하던가.
“미련, 인마.”
“아, 그치. 다시 들어봐도 구려.”
“됐고. 촬영장은 어때?”
“좋지 뭐, 거의 끝나가니까.”
살며시 희정이를 보고 운을 떼었다.
“희정아.”
“응?”
아무래도 희정이는 강준에 대한 마음이 깊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서로 좋다고 하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같은 소속사에서 만나는 건 별로….’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빠로서 욕심이라는 게 있었다.
“너 강준이랑은 정리한 거지?”
“글쎄.”
“뭐야? 반응이 왜 이래?”
“그냥…. 내 마음을 모르겠어.”
“….”
김희정이랑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날이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나도 친구를 잃고 싶진 않은데, 연애 감정인지는 잘….”
“그런 걸 보통 어장 관리라고 하지.”
“에이, 내가 남자 많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기현수 선배…. 아니다.”
“기 배우님이 왜.”
“내가 깔끔하게 컷 했거든. 나는 어장 관리 같은 거 안 함.”
“…. 쫌 치네?”
그게 작년 연말 유설아 콘서트 때부터였지 아마.
그 당시에 새롬 씨랑, 희정이랑, 기현수 배우님까지 넷이서 공연 보러 갔었는데.
“내가 쉐어 하우스 때부터 느꼈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그보다 훨씬 전…. 클럽 갔을 때부터래.”
“와우.”
기억났다.
「해외 영업 3팀 김나연」의 클럽 죽돌이 캐릭터.
와, 근데 그게 언제적 이야기야.
그때도 실장님이랑 같이 갔었는데.
“새롬이 엄청 귀여웠었지. 헤헤.”
“….”
그나저나, 기 배우님은 괜찮으시려나.
“강준이랑 기사 난 거 보고 연락 안 왔어?”
“오긴 왔는데, 예쁜 사랑 하래.”
“성격 깔끔하네.”
“응. 그건 아니야. 가끔 술 먹고 전화해. 울면서 매달려.”
“…. 그분은 왜 그러고 사냐.”
“그러게.”
그 인기에, 그 실력이면 여자 만나는 게 어렵진 않을 텐데.
“하여튼.”
올해도 벌써 다 지났고, 내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된다.
* * *
얼마 후,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새롬은 사장실에서 정기태 대표와 함께 SBC 연기대상을 시청했다.
“새롬아, 오늘 당연히 대상 타겠지?”
“음, 글쎄요.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타서…. 오늘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이거만 타면 트리플 크라운인데.”
“그렇죠.”
3년 연속 각 방송사에서 대상을 타는 꼴이었으니까.
“그래서, 요즘 연애는 잘 돼 가냐?”
“그럼요.”
“다행이네. 김 작가님 같은 사람 없어.”
“그렇긴 한데….”
삼촌의 속이 뻔히 보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려나.’
김진우 작가 한 명으로 인해 템페스트가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인가.
수많은 배우들을 스타로 만들었고, 수많은 작품으로 탑을 쌓았다.
돈을 충분히 벌었다는 건지, 삼촌은 자꾸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했다.
“이제 할리우드만 진출하면 소원이 없겠네.”
“삼촌은 무슨 콜럼버스예요? 한국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없잖아요.”
“왜지? 로다주 배우님까지 캐스팅했잖아.”
“…. 그건 그냥 진우 씨가 대단한 거죠.”
삼촌이 할리우드에 욕심을 부린지도 1년이 넘었다.
딱히 선을 넘지는 않아서 그냥 두고 보려고 했는데.
“작가님께 부탁 한번 드릴 수는 없으려나?”
“제가요?”
“여자친구잖냐.”
“….”
정기태 대표는 이때다 싶은지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내가 LA에 괜찮은 제작사를 알아봤거든. 계약까지 했어.”
“저는 모르는 일이네요.”
“에이, 좀만 더 들어봐.”
“….”
“그쪽에서 배우 에이전시랑 연결도 해줄 수 있거든.”
결국 할리우드도 큰 틀은 다르지 않았다.
기깔나는 배우를 캐스팅하면 투자사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좋은 대본에 촬영진을 구성하기만 하면.
“안젤라 지부장님이랑 친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맥스 음악감독님 스튜디오랑 제휴했고, 로다주 배우님이랑 안면도 텄겠다. 이제 뭐가 문제야?”
“문제는….”
솔직히 문제는 없지.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김진우 작가님이 하실까요?”
“그건 여친인 네가 설득해야지.”
“…. 제가 왜요.”
굳이 성공 사례도 없는 도전을 사서 할 이유가 있을까?
한국에서 작품을 내기만 하면 대박 행진을 이어갈 텐데?
마침, TV에서는 마지막 시상자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타이밍 맞춰 대상 후보들을 비추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천상의 멜로디’ 팀에서는 김진우를 단독으로 잡고 있었다.
유설아보다, 세미보다, 송권수 감독보다도 그를 높게 쳤으니까.
평온한 눈빛으로 김진우를 바라보는데
마침내, 시상자의 입에서 그의 작품이 호명되었다
-SBC 대상은 천상의 멜로디 자강음천, 축하드립니다!
날아갈 듯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말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맡겨놓은 것도 아닌데.
‘무려 대상을 탔는데 어떻게….’
김진우 작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즉, 한국에서는 더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는 의미였다.
“할리우드 진출, 제가 한번 말해 볼게요.”
“정말!?”
“네. 삼촌.”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우 씨도 당연히 원하시겠지.’
여자는 사랑을 원하고, 남자는 인정을 바란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아니, 어쩌면 인류 역사상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상식적으로 그런 사람이 명예 욕심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잘 생각했어. 하하.”
“제 남자친구니까요.”
“그, 그렇지! 작가님도 얼마나 할리우드 진출하시고 싶겠어?”
“당연히 그러시겠죠.”
“자본은 충분해! 내가 진짜 전 재산이라도 다 투입한다!”
“…. 할리우드가 대체 뭐라고.”
“내 꿈이다!”
미래를 함께 그리고 싶은 남친을 위해 그 정도 노력은 할 수 있어야지.
‘남자의 로망…. 같은 건가.’
* * *
목표로 했던 상도 휩쓸었겠다.
이제 새롬이랑 결혼만 하면 되겠네.
랜덤 스튜디오로 불로 소득까지 챙기면, 글도 안 쓰고 띵까띵까 놀아야지.
원래 어렸을 때 꿈이 돈 많은 백수였거든.
내가 미쳤다고 600억 기부하고, 글만 싸재끼다가 뒤지겠냐.
시스템 조까.
이제 일 안 해.
띵동─
【‘게으르면 못써’ 임무를 발견….】
‘응. 꺼져. 안 해.’
할리우드?
그게 무슨 의미야.
여기서 호의호식 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시장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이유가 없지.
일단 「나쁜 남자의 사랑법」은 순수하게 100% 내 작품이니까 잘 마무리해야겠지만.
“오빠, 대상 축하드려요.”
“어. 효주야, 고맙다.”
《이변은 없었다! 공중파 3사 대상을 거머쥔 김진우 작가는 수상 소감 중에 정새롬 실장과 애정을 과시하며….》
드디어 달성한 트리플 크라운.
2년 전에 MBS에서 ‘김나연’, 그다음 해에 KBC에서 ‘임진년’
그리고 이번 SBC 연말 대상에서 ‘천상의 멜로디’ 까지 대상을 탔다.
“이제 올해로 4년 차구나.”
입봉한지 벌써 3년씩이나 지났으니까.
“오빠, 오늘 편집자 면접 있어요.”
“아, 그래?”
“네! 실력은 다들 어마어마해요.”
“너보다?”
“저는 편집 실력은 그냥저냥이고, 이분들은 찐이에요.”
“프로필 좀 보여줘.”
“여기요.”
몇몇 이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다가 한 여자를 보고 의구심이 들었다.
미국에서 중소 방송국 PD 경력까지 보유한 능력자가 왜 편집자를 지원하지.
“제시…. 이분, 외국인이네?”
“아, 그분은 혼혈인데 자칭 마법소녀 전문가예요.”
“여민서 전문가?”
“아뇨, 마법소녀요! 캐릭터 전문가.”
“….”
곧바로, 편집자 후보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효주.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각종 굿즈와 악세사리들로 치장했다.
“마법소녀 가방도 있었어?”
“네. 초딩들 사이에서는 인기 폭발이에요.”
“…. 마법소녀 병따개는 뭔데.”
“오, 그건 저도 처음 보네요.”
이 정도 정성이면 안 만나보기도 어렵다.
“혼혈이니까 한국말은 좀 하겠지?”
“당연하죠.”
“미팅 한번 잡아봐.”
“넵!”
생각보다 행동력까지 갖춘 인재였다.
부르자마자 30분 거리를 30분 만에 도착하다니.
“제시 씨, 면접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대박!!! 마법소녀 창조주를 제 두 눈에 담을 수 있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뭔가 정상인은 아닌….?”
“작가님! 마법소녀 시즌 투는 언제 나오시옵니까!?”
“여기 면접 자리예요….”
“아, 그렇지.”
일단 제시를 진정시키고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말투가 좀 이상하네요. 일부러 그러시는 거예요?”
“아하, 한국말을 사극 드라마로 배워서 그렇사와요. 헤헤.”
“…. 그래요. 그건 알겠는데, 편집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시다고?”
“네! 미국에서 예능 PD 경력만 5년!”
“흠….”
커리어로 보면 안 뽑을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스펙은 효주나 밍쁨보다 낫지 않나.
성격은 좀 튀긴 하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까.
“합격!”
“홀리, 왓더….!”
뛸 듯이 기뻐하는 제시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연봉 협상은 강철중 씨가 해주실 테니까, 여기 명함 받으시고….”
“저기….”
“네?”
“마법소녀가 탄생했다는 휴게실이 어딘가요!?”
“…. 이 건물 4층이요.”
“기념 촬영 좀 하고 가도 될까요!? 제바알….”
“그래요. 마음껏 하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대체 마법소녀란 뭘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내가 썼지만 진짜 모르겠어.
띠링─
그때, 새롬 씨에게 톡이 날라왔다.
[진우 씨, 우리 얘기 좀 해요]
연말에 바빠서 자주 못 만났는데, 데이트라도 하려는 건가.
‘오늘 호텔각?’
* * *
랜덤 스튜디오에 정식으로 입사한 신임 감독.
유재혁은 주연 배우들과 미팅을 갖기 전에 청심환을 먹었다.
“으으…. 긴장돼서 죽을 것 같다.”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시즌 2」에 조연출로 발탁되었을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씹어먹고, 현재 진행형으로 전설을 써 내려가는 배우, 강준.
아시아권을 바탕으로 유럽이나 북남미에서 여신으로 불리는 걸그룹 센터, 세미.
그들을 현실에서 마주 보는 기회였다.
그것도 무려 감독과 출연진으로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동아리 후배, 이시연이 진우의 선택을 받고 날아오를 때도 그저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했었는데.
고작 1년도 안 돼서 자신의 인생도 바뀌었다.
운 좋게 송권수 감독님 눈에 띄어서 템페스트를 거쳐, 이제는 랜덤 스튜디오까지.
“이번 작품은 진짜 잘해야만 해.”
어쩌면, 갓작가 김진우가 주는 시험일지도 모른다.
웹드라마에 톱스타 두 명을 캐스팅해 줄 테니까 알아서 잘 해보라는 테스트.
‘자격 미달이면…. 눈 밖에 나겠지.’
그동안 송권수, 나지수 감독님들께 열심히 배웠다.
밤을 새워가면서 카메라 무빙과 연출 기법을 공부했으니.
잠시 후, 약속 장소에 두 배우가 등장했다.
“감독님,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미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강준.
“안녕하십니까!”
확실히 보통의 감독과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한 작품의 총 책임자로서 보통은 무게를 잡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이번 작품에 목숨을 걸었어요!”
“…. 그렇게까지?”
“네! 진우 후배님이 특별히 하사한 작품이니까요!”
“….”
김진우 작가의 동아리 선배라고 들었는데.
말하는 걸 보면 꼭 충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음, 일단 작품 이야기부터 하시죠.”
“나쁜 남자의 사랑법, 제목부터 대박 향기가 솔솔 나지 않습니까!?”
“… 그러네요.”
* * *
여친님과 만나 가볍게 근황 토크를 이어갔다.
“진우 씨, 아직 희정이는 마음을 못 정했죠?”
“뭐, 둘이서 알아서 하겠죠.”
“음….”
실장님은 무슨 생각이신 걸까.
당연히 소속 배우가 연애하면 싫은 게 정상인데.
“희정이랑 강준이, 두 명이 공개 연애해도 괜찮아요?”
“성인이잖아요.”
“아니, 배우잖아요. 우리 여친님은 소속사 실장님이시고.”
“그렇긴 한데, 제가 남 말할 처지가 아니라서.”
“…. 그건 인정.”
원래 새롬 씨도 사내 연애 금지를 모토로 삼았었지만.
내로남불은 또 할 수 없어서, 그냥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서로 좋다면 말릴 수 없죠.”
“그래요.”
이어서, 새롬 씨는 나직하게 말을 이어갔다.
조금은 뜬금없으면서도 중요한 말이었으니.
“할리우드 진출, 생각 없으세요?”
전혀 없는데요.
“갑자기 그건 왜요?”
“그냥…. 대표님도 원하시고.”
“….”
은근한 표정을 보니까 정답이 있는 질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거 대답 잘해야 되는 상황이야?’
뭐, 그런 거 있잖아.
여자 언어 같은 거.
“…. 왜 대답이 없으세요?”
“생각 중이에요. 정답이 뭔지.”
“???”
좀처럼 힌트를 안 준다.
역시 실장님은 밀당의 고수야.
“새롬 씨는요?”
“작가님만 원하시면 도전해 봐야죠. 제작사 대표로서.”
“…. 그러니까.”
이거 도전하라고 강요하는 거 맞겠지?
졸라 하기 싫은데.
억지로 갈 수도 없고.
이럴 때는 방법이 있지.
원래 외국 나가면 제일 중요한 게 식사거든.
“근데 어쩌죠?”
“네?”
“제가 미국 밥이 안 맞아서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크으, 다행이다.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는 듯해서.
“일단 LA에 계약한 집은 취소할게요.”
“집이요?”
“네. 저희 같이 살 집.”
“…. 잠깐만 기다려봐.”
“네?”
같이 살 집이라뇨.
제일 중요한 말을 이제 하시면 어떡해요.
“동거?”
“동거는 아니고 주소 공유죠.”
“…. 그게 동거 아닌가?”
“방을 따로 두고, 아파트에서 사는 거예요.”
“그니까, 한집에서?”
“네. 그러려고 했는데….”
그니까 그게 동거잖아요.
“미국 가즈아!!!!!”
“네?”
“할리우드 가즈아!!!!!”
“…. 아니, 갑자기 왜.”
할리우드는 모르겠고, 일단 미국은 가야겠어.
당장 머릿속에서 소재가 마구마구 떠오른다.
김 뿌로의 성 상담소 시즌 2는 혼자서 쓸 수 있을 것 같아.
“새롬 씨, 반드시 성공하겠어요. 할리우드에서 갓작가로.”
“역시 우리 남친, 할리우드도 꽉 잡아버려요. 명예롭게.”
“…. 녜.”
근데 명예 때문만은 아니에요, 새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