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7)
주연 미팅이 끝나고 일주일이 흘렀다.
“하하하…. 좆됐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3주 만에 쓰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벌써 일주일째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쩌라는 거지.
“시스템 고장 났냐.”
어쩔 수 없이 내 힘으로 13, 14화를 대충 끄적이긴 했는데.
확실히 이전 내용과 비교하면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이.
그나마 미리 써둔 대본을 한 편씩만 풀어놓으니까 아직은 살 만하지만.
이렇게 일주일만 더 지나면 비축분이 오링나고 정 실장 독촉에 시달리겠지.
“이럴 거면 차라리….”
제주도에 다시 돌아가면 시스템이 발동하지 않을까.
거기서 몸은 좀 고생했지만 시스템은 자주 발동했는데.
띠링─
그때, 정새롬 실장에게 톡이 날아왔다.
[작가님, 조연급 배우님들 최종 명단 아직도 확인 안 하셨네요. 내일이 대본리딩 날인 건 아시죠?]
“에이 사람을 뭘로 보고.”
몰랐던 건 아니고, 까먹고 있었다.
아마 옆에 있었다면 욕 한 바가지를 퍼부었을 것 같다.
“일단은 대본이 제일 중요하지.”
오랜만에 내 힘으로 대본을 두 편쯤 써서 그런지.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예술인의 고통을 몸소 체험 중이다.
곧이어, 정 실장이 보낸 조연급 배우들을 스윽 훑어봤는데.
조연급으로 머물기엔 아까운 배우들이 수두룩 빽빽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바로, 최만호 배우님.
“이분이 내 드라마에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진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이러할까.
템페스트 엔터가 최 배우의 전 소속사였다고 들었다.
제작사를 잘 만난 덕분에 과분한 배우도 섭외하네.
역시 제작비는 다다익선이야.
지금 보니까 국장한테 개기길 참 잘했어.
그중에서는, 퍼플걸스의 리더인 미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퍼플걸스 내에서는 나름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연기돌이었으니.
“단역으로 그치기엔 아깝지만….”
같은 그룹 멤버 두 명의 비중이 높으면 몰입도를 해칠 테니까.
문득, 미령이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드라마가 제작되기만 하면 단역이든 조연이든 출연하겠다고 했었던가.
한번 내뱉은 약속은 칼 같이 지키는 모습.
“그럼 나도 지켜야지.”
OST 관련해서 감독에게 말해준다고 약속했으니.
지체없이 성기훈 감독에게 톡을 보냈는데.
[안 그래도 퍼플걸스 멤버들이 OST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오, 잘됐네.”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괜히 어깨가 올라갔다.
[제가 연락 한번 해보겠습니다 ㅎㅎ]
뚜루루루─
나는 곧바로 세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와의 통화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여보세요? 작가님!
“세미 씨 잘 지냈어요?”
-그럼요. 이틀 전에도 전화하셨잖아요.
“아, 그런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대본리딩 전에 점검해 주시려고 전화하신 거예요?
“아….? 아마도?”
-역시 제 생각해 주는 사람은 작가님밖에 없어요!
“그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뚝.
“음, 세미가 기다리는 사람이라….”
이런 게 바로 업계포상이지.
나에게 시스템을 처음 발견하게 해 준 감사한 사람.
내가 음악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녀가 나의 뮤즈가 아닐까.
띵동─
“진짜 뮤즈 맞네!?”
한동안 발동하지 않았던 시스템이 다시 작동했다.
【내용 :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 13부】
【장르 : 로맨스, 재벌】
【장소 : 레인보우 엔터테인먼트 음악 작업실 401호】
【제한 시간 : 15시간】
【※ 브론즈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000만 원】
‘일주일 동안 내가 쓴 건 버려야겠지?’
지난 일주일 동안 13화, 14화는 거의 다 써놨는데.
시스템과 내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비교해 볼 기회.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잠시 후,
나는 노트북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레인보우 엔터로 향하는 길.
일주일 동안 집에만 처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쐬는 바깥 공기였다.
이런 날에는 한 번씩 제주도에서 보낸 2주일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 템페스트 측에서 제주도 촬영지 헌팅을 마쳤다고 하던데.
원래 나도 참여해야 하지만 대본이나 쓰라면서 빼버렸다고 들었다.
“나도 좀 데려가지.”
작가가 촬영지 헌팅에 빠지는 게 말이 되냐.
가만 보면 정 실장은 나를 글 쓰는 기계로 보는 경향이 있어.
심지어, 시청자들 반응도 보지 말라고 하니까 말 다 했지.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곧이곧대로 다 들을 것 같에?
“생각난 김에 드라마 반응이나 볼까.”
나는 곧바로 폐쇄적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부모님 안부도 편하게 묻는다는 디앤씨 사이드 갤러리.
“오, 벌써 순정마초갤이 생겼구먼. 아주 빨라.”
거의 2시간에 게시글 하나씩 리젠되는 죽은 갤러리.
정 실장이 요딴 거 신경 쓰지 말고 대본 집필에 집중하라고 하긴 했는데.
시간 나는 김에 살짝 하나씩 확인하는 정도는 괜찮….
-16부작 남주가 신인? 돈 낭비 지리네 ㅋㅋㅋㅋㅋㅋㅋ
-ㅅㅂ 세미는 그냥 예쁜 백댄서지 무슨 배우야ㅑㅑ
-퍼플걸스에서 연기는 재은 미만잡인데 ㅡㅡ
-최만호가 캐리하면 됨 ㅅㄱ
-ㄴ븅신아 작가련이 버스에서 처뛰어내리는데 그게 되겠냐?
-ㄴ동네 조기축구하는데 메시가 있는꼴 ㅋㅋㅋㅋ
“음, 처음부터 너무 강한 적을 만났다.”
수위를 조금만 낮춰서 네이바 카페에 접속하는 걸로.
온갖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는 인터넷 카페.
보조 작가 때는 시청자 반응 살피겠다고 수시로 접속하던 곳이었는데.
-작가도 신인인데 메인 남주도 신인…. 실화냐?
-지성호 불쌍해 ㅠㅠ
-최만호가 더 불쌍함;;; 전 소속사에 약점 잡힌 듯
-MBS 먹으라고 JTBS가 제물 던져준 거 아님? ㅋㅋㅋ
-또 재벌에 또 로코??? 으휴 지겹다 정말
-안 보고 하차합니다.
“심장 아파. 그만 좀 때려라.”
게시글을 읽는 내내 팩력배들한테 후드려 맞은 기분이다.
이래서 정 실장이 반응 살피지 말라고 했었구나.
“나쁜 것들…. 내가 던져준 업계 소식 받아먹을 때는 언제고.”
자연스럽게 부캐로 접속해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게시물이 총 82개니까 대충 30분 정도면 충분하네.
-올해 최고의 기대작 ㅎㅎㅎ
-이거 MBS 이길지도 ㄷㄷ
-개꿀잼각임 ㅎ 기대된다 ^^
-세미 짱짱걸 >_<
* * *
나는 레인보우 엔터에 도착하자마자 작업실을 찾았다.
『401호는 방음부스 공사 예정입니다. 옆 방을 이용해 주세요.』
문 앞에 붙어있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안에 들어섰는데.
역대급으로 거대한 빛무리가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성능의 차이는 없겠지만, 그래도 편한 자세로 집필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정도 크기면 옆방에서도 닿겠는데?”
곧이어, 노트북을 펼쳐서 대본 작업을 진행했다.
본격적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순정마초.
악당 재벌이 여주를 납치하고 두 명의 남주가 이를 해결하는 내용.
그 과정에서 남주는 여주를 구하고, 서브 남주는 희생해서 병원에 실려 간다.
전개상 자연스러운 클리셰였지만 현실에서는 서브 남주의 반응이 더 좋을 것 같다.
“이제 막바지라 그런가….”
내가 예상했던 내용이랑 큰 차이가 없네.
다만, 대사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앞으로도 미리 써 놓고 나서 비교하면 공부가 될 것 같아.
대략 1시간 정도 썼을까.
잠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는데.
바로 옆 방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와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내 마음을 전해요~♬」
“음…. 노래 좋은데?”
방음부스 공사 예정이라고 하더니 사실이었다.
집필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소음이 상당했다.
“소음이야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띵동─
그런데, 다시 집필에 집중하려고 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새로운 시스템의 기능이 발동했다.
【작품의 분위기와 84%만큼 어울리는 음악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음악을 작품에 추가하시겠습니까? (Y/N)】
“시스템이 이걸….?”
나는 곧장 YES를 떠올려서 음악을 추가했다.
사실, 처음에는 음악이 어떤 식으로 추가될지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새하얀 빛무리는 자연스럽게 머리에 스며들어 ‘기억’ 속에 음악을 삽입했다.
특정 장면에 맞춰 주연배우들이 대사를 뱉고, 잔잔하게 OST가 깔렸다.
대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음악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진짜 혜자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시스템의 세계.
머릿속에서 영상화되어 내 기억에 간섭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턱─
노트북을 챙겨서 옆 방에 누가 있는지 확인했는데.
“레이미 씨?”
“어? 김진우 작가님!”
작업설에서 레이미는 유나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뭉쳐있는 빛무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401호의 빛무리가 워낙 커서 이쪽 방에도 작게나마 닿은 것 같다.
‘오, 그럼….’
아예 여기서 집필 마무리해도 되겠는데?
“작가님, 대표님께 들었어요. OST 추천해 주셨다고….”
“아, 네. 맞아요.”
진짜 소식이 빠른 동네구나.
“제가 좀 있다가 음악감독님 번호 알려드릴게요.”
“아, 네!”
“아마 내일쯤 연락하시면 될 거예요. 성 감독님께는 미리 말씀드릴게요.”
“감사해요. 작가님.”
“제가 더 감사하죠.”
녹음 부스 안에서는 유나가 나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유나가 녹음하고 있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네. 방금 들었던 노래로 부탁해요.”
이내, 나는 눈을 감은 채 감상모드로 유나의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귀여운 인상과 달리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그녀.
한참 동안 달콤한 목소리에 취해서 멍하니 서 있었다.
* * *
한편, 진우가 작업실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그 시각.
세미는 누군가를 한참 동안 기다리다 지쳐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 왤케 안 와아아.”
혼자서 연습은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둘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 시간이 넘도록 진우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때, 퍼플걸스의 리더 미령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미야, 아까부터 누굴 그렇게 기다려?”
“언니!”
세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령에게 물었다.
“혹시 언니도 오늘 작가님 오신다는 소식 들었어?”
“김진우 작가님? 방금 레이미가 톡으로 같이 있다고 하던데.”
“응? 뭐라고!?”
“거의 한 시간째 음악 작업실에서 같이 작업 중일 텐데….?”
“고마워!”
타다다닥─
세미는 감사 인사를 하자마자 음악 작업실로 달려갔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적극적인 모습에 미령이 웃음을 지었다.
“드라마 주연이 좋긴 좋은가 보네.”
미령의 말을 듣고 음악 작업실까지 잰걸음으로 이동한 세미.
이내,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음악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하아, 하아….”
창문 너머로 김진우 작가를 볼 수 있었는데.
“으음….”
마치 취한 사람처럼 유나의 음악을 들으며 멍하게 서 있는 김진우 작가.
자신과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집필에 방해될까 봐 거의 연락도 안 했는데….”
묘한 감정이 불쑥 올라오는데, 그렇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이 기분을 무슨 단어로 정의해야 할지.
비로 그때, 김진우 작가는 레이미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번호를 알려주는 듯 싶었다.
“앗, 아 왜 번호까지 알려주는 거예요!”
평소에 드라마 작가와 OST 작곡가의 업무가 겹치는 일이 있을까?
보통은 그들 사이에 이렇게 만나는 경우도 거의 없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생각을 거치지도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벌컥─
“작가님!!!”
세미는 급하게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했다.
그런데, 김진우 작가는 벌써 번호를 전달한 듯 스마트폰을 회수했다.
“세미 씨, 오셨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김진우 작가.
세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오늘…. 저랑 연습하기로 했잖아요.”
“아, 그랬지.”
“그, 그랬지….?”
까먹고 있었다는 뜻인가.
“…. 저 오늘은 연습 안 할래요.”
“갑자기?”
“원래 오늘은 연습하기 싫었어요.”
“아니, 왜 그러시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레이미가 눈치 없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음, 마침 잘됐네. 작가님, 그럼 제 다음 곡도 한번 들어보실래요?”
“오, 완전 듣고 싶죠.”
이내, 세미는 다시 몸을 돌리는 김진우 작가를 불렀다.
“작가님!!!”
“…. 귀청 떨어질 뻔.”
“빨리 나와요. 대본 연습해야죠!”
“아니, 방금은 안 하신다고….”
“할 거예요! 빨리 나와요. 빨리!”
세미는 진우의 한쪽 팔을 붙잡고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