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8)
‘오늘 로또 살까?’
팔을 잡아당기는 세미에게서 샴푸향이 느껴진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콧등을 간지럽혔다.
“대본 연습이 그렇게 중요해요?”
“네? 아, 네! 당연하죠!”
내일 대본리딩이 있어서 그런지, 세미의 연기 투혼이 불타올랐다.
당장 데려가서 대본을 봐달라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래서 입덕하는 건가.
“세미 씨도 음악 같이 들으실래요? 우리 드라마 OST….”
“아니요. 저는 안 들을 거예요.”
“에이, 그래도 같은 멤버인데.”
“내일 대본리딩이 더 중요하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역시, 천상 배우가 따로 없네.
배우는 연기에만 집중하겠다는 마인드.
이런 인재를 여태까지 썩히고 뭐 했던 거야.
멤버들 하나하나 모아놓으면 각자 개성도 있고 실력도 좋은데.
처음부터 완전체보다는 개인 활동에 집중했으면 훨씬 더 떴을 것 같다.
“세미 씨?”
“네. 작가님.”
솔직히 나도 같이 있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음악 작업이 중요하니까.
“음, 어떡하죠? 저는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네? 어디를…..”
“방금 나온 음악 작업실이요.”
“거, 거긴 안 되는데….!”
“왜 안 되는데요?”
“그럼 차라리 같이 갈래요!”
“???”
음악 안 듣겠다면서요.
잠시 후,
내가 녹음실에 다시 들어갔을 때.
레이미는 유나와 함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 작가님, 다시 오셨네요?”
“네. 노래가 좋아서요.”
“치….”
옆에서 세미가 살짝 한마디를 덧붙였지만 한 귀로 흘렸다.
같이 연기 연습해 주기로 했는데 안 해준다고 삐친 모습.
이내, 한쪽에 빛이 새어 나오는 자리에 털썩 앉아서 노트북을 펼쳤는데.
레이미가 깜짝 놀라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 거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노래도 들을 겸 집필도 여기서 하려고요.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지만…. 이왕이면 소파에 앉으시지. 왜 바닥에서 그렇게….?”
“제가 원래 벽에 기대는 걸 좋아해서요.”
“그, 그래요?”
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반응했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초월적인 시스템 능력에 이해를 바라는 것도 넌센스니까.
그런데, 굳이 내 옆에 쪼그려 앉은 세미.
“저도 여기서 대본 읽으려고요. 저도 벽에 붙어 있는 거 좋아해서.”
레이미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 새로운 노래도 한번 들려드릴까요?”
“네. 들려주세요.”
다른 노래도 시스템에 등록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두 번째로 듣는 노래 역시 시스템이 발동했다.
띵동─
【작품의 분위기와 81%만큼 어울리는 음악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음악을 작품에 추가하시겠습니까? (Y/N)】
‘레이미는 천잰가.’
인기 드라마 OST 곡을 참여하는 작업.
무명 작곡가가 쉽게 차트인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특히, 퍼플걸스 노래의 상당수를 작곡한 레이미의 실력이라면.
‘서로 윈윈이지.’
그뿐만이 아니라, 음색과 보컬이 드라마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
“유나 씨도 노래 정말 잘하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아직 음방에서 1위를 하지 못해서 심하게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퍼플걸스 뿐만이 아니라, 걸그룹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의 가수였다.
‘우리 드라마만 성공하면 1등도 금방이겠는데?’
작곡가 레이미와 가수 유나가 함께 떡상각이다.
음알못인 내가 들어도 상당히 노래가 좋았으니까.
“이거 제 드라마에 쓰기엔 너무 아까운데요?”
“에이, 그게 무슨 말이세요.”
고퀄리티 음악 드라마에서 쓰일 법한 고오급 뮤직.
느낌 있는 분위기에 중독적인 멜로디가 일품이었다.
얼마 전에 OST 올킬한 가수 장범중 노래가 연상된다.
‘퍼플걸스에는 인재가 넘쳐나는구나.’
괜히 인기 걸그룹이 아니었다.
왜 아직 1위를 못했는지 이해가 안 되네.
“레이미 씨가 퍼플걸스 노래 대부분 작곡하지 않아요?”
“네. 수록곡에 대부분은….”
“앨범 타이틀은?”
“아, 아직 제 노래로 타이틀은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음, 1위 못한 이유가 딱 그거 같은데.
이후, 레이미는 추가로 열 곡 정도의 노래를 더 들려주었다.
그 정도의 곡을 추가로 들으면서 깨달은 사실.
대략 80% 이상 어울리는 음악일 경우에만 시스템이 발동한다.
‘지성호를 등록했을 때도 비슷했어.’
특정 배우를 5초간 터치하면 작동하는 기능과 같은 방식.
라이브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으면 시스템이 작동했다.
“레이미씨, 네 번째랑 일곱 번째 노래도 음악감독님께 전달해 주세요.”
“와, 저도 그 두 개가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요?”
“음악도 조예가 있으신 건가요?”
“아하하, 그런 건 아니고….”
옆에서 세미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어서 부담이 된다.
‘이제 슬슬 대본도 마무리하는 게….’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저녁이 가까워 오고 있었으니.
음악도 얼추 정리가 되었기에, 다시금 대본 집필에 집중했다.
특히 내가 미리 써둔 화수와 비교하면서 전개를 비교했는데.
잠시 후,
타닥, 타다다닥─
거의 이번 회차의 중반까지 대본 집필을 진행했을 때쯤.
주변에서 소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고개를 들었다.
“세미 씨?”
내 옆에 쪼그려 앉아서 색색- 소리를 내며 얌전하게 자고 있는 세미.
그녀 이외에 다른 두 멤버들은 이미 작업실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자는 거예요….?”
같은 멤버 좀 챙겨가지, 은근히 의리가 없는 건가.
세미 씨도 지루할 텐데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잖아.
스르르─
조심스럽게 그녀의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대도록 만들었다.
절반쯤은 사심을 채우려는 마음이지만, 고개가 불편해 보이기도 했으니까.
‘작가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이내, 작업실에는 노트북 소리와 새근거리는 여자아이의 소리로 채워졌다.
작업이 끝나고 한참이 지났지만 그녀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녀를 깨울 생각이 없는 것처럼.
결국, 매니저가 부를 때까지 그녀는 꿀잠을 잘 수 있었다.
* * *
구독자 300만을 보유한 너튜브 채널의 촬영 현장.
롱터뷰라는 이름의, 탑스타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개그맨 출신 진행자는 중년의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이제 작품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많은 팬분들이 궁금해하거든요.”
“흠, 배우가 작품 하는데 특별할 게 있겠습니까.”
영화배우로 유명한 배우가 드라마에 출연해서 화제를 낳았으니.
이번 인터뷰도 그에 대한 질문이 가장 핵심이 될 터였다.
“이번에 스크린이 아니라 드라마에 출연하시는 계기가 뭔가요?”
“글쎄요. 템페스트 엔터랑 인연이 있기도 하고….”
“아, 그럼 전 소속사에 대한 배려라는 말씀이세요?”
“아니요. 솔직히 저도 드라마에 출연할 마음은 없었어요.”
“네? 그러면….”
“저도 배우니까요. 대본이 정말 좋더군요. 하하.”
선생님 소리를 듣는 대배우, 최만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평소에 형식적인 칭찬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으니.
이에, 진행자가 눈빛을 빛내고 한 마디를 추가했다.
“와우, 최만호 배우님께 그런 말을 듣다니. 작가님이 기분이 좋으시겠네요.”
“좋은 대본을 받았으니 제가 더 기분이 좋지요.”
순정마초의 주연급 배우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
사실상, 이번 드라마에서 주연급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였다.
“풀네임이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 맞나요?”
“네. 맞습니다.”
“거기서 정확히 맡은 배역이….”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 재벌 회장 역할이죠.”
“와…. 최만호 배우님이 회장역을 맡았으니, 벌써 드라마 대박 날 것 같은걸요?”
“저보다는 주연배우분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묘하게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제가 알기로 내일이 대본리딩 날이라고 하던데.”
“네. 아마 그럴 겁니다.”
“혹시, 후배 배우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거 방송이 곧바로 나가나요?”
“편집자님께 말씀드려서 내일 아침에는 꼭 업로드하라고 하겠습니다.”
“흠….”
최만호는 씨익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무명 시절이 27년이었어요.”
“네? 갑자기 그 말씀은 왜….”
“후배님들이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가 어떤 기회인지 잘 아는 분들이었으면 좋겠군요.”
“아하하. 그, 그렇죠. 당연한 말이네요.”
“그리고, 저는 연기를 장난으로 하는 배우를 아주 싫어합니다.”
“아…. 그런가요.”
노빠꾸 상남자식 화법.
진행자가 수습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최만호는 한마디를 추가했다.
마지막 멘트를 절대 편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으니.
“그럼, 지금까지 믿고 보는 배우 최만호 님의 롱터뷰였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1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야 한다는 히든 미션.
다섯 명의 편집자들은 영상을 찢어서 각자 3분씩 편집을 담당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을 담당하는 편집자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최 배우의 공격적인 멘트를 조금이라도 순화해야만 했기에.
* * *
다음 날, 대본리딩 당일.
나는 하품을 하며 내 방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아암, 어제는 연습 한 번도 못 해줬네.”
세미가 곤히 자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찰나.
매니저에게 온 스마트폰 벨소리에 그녀가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각에, 왜 깨우지 않았냐며 울상을 지었던 세미.
그녀는 밤을 새워서라도 대본리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다짐했다.
“음, 진짜 밤새도록 연습한 건 아니겠지.”
뭔가 시험 전날 공부했던 내 모습과 겹쳐서 낯설지가 않다.
그 모습도 나처럼 입덕한 팬들이 보기에는 귀여워 보이지 않을까.
이번 드라마만 잘 되면 한국에서 세미를 사랑하는 팬들이 순식간에 불어날 것이다.
아니, 요즘은 외국에서 K드라마 판권이 불티나게 팔리니까 해외팬들도 기대할만하지.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이슈를 살펴봤는데.
“아침부터 난리네.”
최만호 배우님의 인터뷰 영상이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니까.
아마 대부분의 배우들은 영상을 보고 올 텐데 긴장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세미는 성격이 외부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서.
띠링─
그때, 성 감독에게 톡이 하나 날아왔다.
[작가님, 1시간만 일찍 오셔서 잠깐 회의하시죠. 방 국장님께서 부르시네요.]
“방 국장님?”
국장이 대본리딩에 올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별로 기대도 않는 드라마에.
굳이 이유를 하나 찾아보자면 원인은 단 하나뿐일 터였다.
“최만호 배우님.”
템페스트에서 탑급 영화배우를 섭외했으니 얼굴을 보고 싶은 거겠지.
어쩌면…. 부디 아니길 바라지만, 나에게 불똥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가령, 대본을 수정하라고 한다거나.
* * *
“수정하게.”
“….”
방 국장님은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이 정도면 그냥 내가 미운 게 아닐까.
“국장님, 혹시 대본 전부 읽어보셨습니까?”
“물론이지. 최만호 배우님이 JTBS 드라마에 나오는데 안 봤겠나?”
“이미 완성도 측면에서 손댈 내용이 없습니다.”
“허 참, 최신화만 봐도 최만호 배우님 씬이 고작 20씬 뿐이던데. 비싼 몸값 지불하고 그게 무슨 헛짓거리지?”
“아니,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번 드라마 성패는 최 배우님께 달렸다고 보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초중반부터는 주연배우들 포텐이 터질 겁니다. 그건 성 강독님도 동의하신….”
슬쩍 눈을 돌려서 성 감독을 쳐다봤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이런.’
이미 중립을 지키기로 약속한 모양이다.
아니면, 국장과 의견이 일치할지도 모르겠다.
귀한 배우님을 누추한 곳에 모셨더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아니꼬와서 성공해야지. 진짜.’
시스템 능력으로 딱 세 번째 작품까지만 성공하면 이런 수모를 겪지는 않겠지.
끼이이익─
그때 문이 열리며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천천히 걸어오면서 말을 꺼냈는데.
“저는 대본 수정 반대입니다.”
중후한 음성을 듣고서 고개를 휙 돌리니, 최만호 배우님이었다.
그는 가장 선배였으면서 제일 먼저 대본리딩 현장에 도착했다.
“오오, 최 배우님 안녕하셨습니까?”
“예. 국장님은요.”
“하하. 내가 KBC에 있을 때 같이 촬영했었는데.”
“아, 그때 조연출이셨죠? 기억합니다.”
“어휴, 최 배우님께서 기억해 주실 줄 몰랐네.”
“그때는 저도 무명이었으니까. 모든 스태프 이름을 외우는 게 당연했죠.”
최만호 배우는 한동안 덕담을 주고받더니 다시 본론을 꺼냈다.
“제 배역 비중이 늘어나면 드라마의 매력이 떨어집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분량이 너무….”
“영화에서는 짧은 장면에서 오히려 큰 임팩트를 주는 경우가 많지요. 제 배역이 딱 그런 경우 같은데요.”
“아, 그, 그런가?”
“예. 국장님.”
“뭐, 배우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하.”
최만호는 꼬리를 내리는 방 국장에게 한 마디를 추가했다.
“오늘 한잔하시죠. 대본리딩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나야 좋지요.”
덕분에, 방 국장은 기분 좋게 자리를 벗어났다.
내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했다.
“작가님, 대본은 잘 봤어요. 재밌던데요.”
“가, 감사합니다.”
대배우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심지어 번호까지 교환하자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다음에 영화 시나리오도 재밌게 써주셨으면 좋겠네.”
“그럼요. 그때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왕이면 로맨스 말고…. 범죄나 느와르 쪽이면 더 좋고.”
“아, 하하….”
그건 제가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은데유.
잠시 후, 배우들은 한 명씩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대부분은 가장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최만호를 보고 얼어붙었지만.
오히려 임재준이나 지성호 같은 새파란 신인들은 열정을 불태웠다.
그들의 패기 넘치는 눈빛을 보니, 칼을 제대로 갈고 온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세미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퍼, 퍼플걸스 세미입니다. 서, 선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아….”
응? 뭔가 이상한데?
어제도 세미가 대본리딩에 대해 많이 걱정하긴 했지만.
‘…. 결국 밤새웠나 보네.’
충혈된 눈이 피로함을 증명했고, 떨리는 손끝이 불안 증세를 표했다.
평소에도 멘탈이 약해 보이는 세미였는데, 오늘은 특히나 긴장을 많이 하는 모습.
“저기…. 아직 20분 남았으니까 그 전에 다시 오겠습니다!”
결국, 매니저가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벗어났지만.
얼핏 봐도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조금 걱정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