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9)
대본리딩 현장.
공식적인 첫 번째 일정이자, 처음으로 내 이름을 대중에 알리는 날.
연출진은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주조연 배우들을 촬영했다.
“반갑습니다. 김진우 작가입니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저기, 신조훈 배우님. 얼마 전에 조카 얻으셨죠?”
“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하하. 제 배우님이니까 당연히 알아야죠.”
신 배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신인배우라서 당연히 본인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띵동─
‘좋았어!’
【배역에 82%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오지석’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거의 모든 배우들과 덕담을 나누며 5초씩 악수를 나누었다.
최소 80% 이상 어울려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신 배우가 유일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시스템의 또 다른 한계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경력이 짧은 배우에게만 적용된다….!’
지성호를 포함한 세미와 임재준까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최대한으로 잡아도 2, 3년 이내에 데뷔한 신인배우.
최만호 배우님께 적용이 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겠지.
‘이래서…. 등급을 올려야겠구나.’
잠시 후, 조연출이 대본리딩의 시작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성기훈 감독입니다. 저는 이번에….”
성 감독이 짧은 소감을 마치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주연배우들을 시작으로, 신인배우나 짬바이브 경력직 배우들까지.
“김진우 작가입니다. 저는 딱히 할 말은 없고, 음…. 그저 대본에 충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스템이 내려준 신성한 대본에 애드립은 사절이다.
물론, 드라마 역사에 남을 기가 막힌 드립이라면 인정하겠지만.
이어지는 주조연급 배우들의 자기소개.
세미나 임재준을 비롯한 몇몇 배우들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오늘 반드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
몇몇 배우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는데.
특히, 사람들은 논란의 신인배우 임재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빴다.
생각보다 실물이 잘생긴 그의 모습에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이어서, 지성호가 본인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서형민 역을 맡은 지성호입니다! 최만호 배우님, 존경합니다!”
“하하하.”
그는 가볍지만 촐싹거리지 않는 선에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잠시 후,
성 감독은 드디어 대본리딩의 시작을 알렸다.
조연출이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1부 첫 장면입니다. 천성호, 스포츠차에 탑승하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시계를 푼다.”
임재준이 첫 번째 대사를 치기 위해 입을 떼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고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 * *
‘어, 엄청 잘하잖아!?’
세미는 그 누구보다 본인이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했다.
안무 연습 시간을 제외하면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대본만 봤으니까.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너덜너덜해진 대본.
각 페이지에는 연필로 끄적인 해석과 형광펜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뭐야, 임재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같이 웹드라마를 찍었을 때는 왜 저런 실력을 못 알아봤을까.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고 연기 실력에 감탄했다.
최만호 배우님조차 놀란 표정을 지었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나도…. 나도 할 수 있어.’
제주도의 한 호텔 로비에서 마주치는 첫 장면.
임재준은 여전히 감정선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어이 그쪽! 파킹 직원 불러서 차 대기 시켜 놔.”
“나, 나는 여기 직원이 아니라…. 아!”
수백수천 번을 연습했는데, 어떻게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틀릴 수가 있었을까.
“야, 야! 어디 가냐고! 아니, 뭐야, 저 남자!?”
망했다.
임재준의 포스에 밀려서 그랬는지.
결국 크게 실수해 버리고 말았다.
억양도 무너지고, 타이밍도 어긋났다.
마음을 다잡고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저, 저기 저는 직원이 아니라니까…. 아, 안 돼! 이, 이거 비싼 차 같은데….!”
한번 실수하니까 당황해서 더욱더 말이 안 나왔다.
이미 어색해진 말투는 돌아올 생각을 안 했으며.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크흠.”
최만호 선배님의 헛기침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페이스는 급속도로 무너져버렸다.
‘어, 어떡해….’
헝클어진 정신은 무슨 수를 써도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는 다른 실수를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고개를 숙인 채 그저 대본을 읽기에 급급했다.
반면, 임재준이 대사를 뱉는 순간에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들의 감탄사에 비례하여 자신의 차례 때 다가오는 탄식이 두려울 뿐이었으니.
‘이 다음 씬이 내 차례….’
또다시 차례가 다가온다.
누가 제발 이 순간을 멈춰주기만을 간절하게 바랐다.
또 한 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 너무 두려웠는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주위를 환기했다.
“여기까지 하고, 30분만 쉬고 다시 하시죠.”
김진우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서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는 눈빛조차 주지 않는 그의 모습.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수치심이 몰려왔다.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게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사람들이 속으로 자신을 얼마나 조롱하고 있을지.
김진우 작가는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을 했을지.
이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결국…. 내가 전부 망쳐버렸어….”
매일 12시간씩 연습했는데.
춤추는 시간만 빼고 매일 연습했는데.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끝내, 붉어진 눈시울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져 내렸다.
“세미야…. 괜찮아?”
“아니.”
매니저의 목소리였다.
어딜 봐서 괜찮아 보이는 걸까.
“저기, 너무 상심하지 말고….”
“나 혼자 있고 싶은데.”
“아, 어. 그래! 근처에 있을 테니까 꼭 연락해! 아, 알았지?”
“….”
긴장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불가능한 심장의 두근거림.
이러한 떨림의 발단은 고작 한 줄짜리 악플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세미가 신인작가 머리끄덩이 잡고 땅바닥에 처박아 버릴 듯 ㅋㅋㅋㅋㅋ
아침부터 너튜브에 올라온 최만호 배우님의 인터뷰 영상.
그 밑에 달린 댓글을 보는 순간, 세미의 자신감은 곤두박질쳤다.
그동안 욕설이나 패드립 댓글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는데.
어째선지, 그 댓글은 그저 편한 마음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정말 자신 때문에 김진우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이 나락으로 떨어질까 봐.
“나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신을 믿어준 김진우 작가에게 피해를 주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차라리 재능도 없는 자신의 커리어에 문제가 생기는 게 나을 텐데.
그때,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
“내가 혼자 있고 싶다고 했잖…. 자, 작가님….?”
“세미 씨, 옆에 앉아도 될까요?”
“….”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세미가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르네.’
연기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과한 중압감에 짓눌려 제 실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으니.
“왜 이렇게 기가 죽어 있어요?”
“죄송해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
김진우는 잠깐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세미 씨. 제가 이 드라마를 어쩌다가 쓰게 됐는지 아세요?”
“네….?”
“전부 세미 씨 덕분이에요.”
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세미는 어리둥절했다.
“처음부터 세미 씨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고요.”
“아…. 그런데 제가 다 망쳐버릴지도….”
“글쎄요. 솔직히 세미 씨라면 저는 망쳐도 전혀 상관없어요.”
“네? 그게 무슨….”
당연히 따뜻한 위로를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위로치고는 굉장히 이상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 다 잘라도 상관없어요. 세미 씨만 남아있으면 저는 이 드라마 계속 찍을 거예요.”
“….”
“세미 씨 캐스팅 못 했으면, 저 이 드라마 안 했어요. 아니지, 못 했겠죠. 아마.”
“아….”
“그냥 이 드라마는 세미를 위한 무대일 뿐이에요.”
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세미에게 말했다.
그저, 당연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 놓는 모습.
그의 진지한 표정에는 한 점의 가식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작가님, 저 이제 편해졌어요.”
“정말요?”
“네. 작가님만 저 믿어주시면 돼요.”
“그건 당연하죠.”
“그럼 됐어요.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으니까.”
세미는 다시 본래의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 * *
다시 대본리딩 현장에 모인 배우들과 연출진.
성 감독은 내 쪽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1부 39씬부터 다시 갈게요.”
세미의 표정은 이전과 달리 활기가 넘쳤는데.
그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저러니까 기가 죽지.’
세미가 실수할 때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린 조연 배우들.
애초에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걸그룹 출신이라고 선입견을 품은 이들이다.
하지만, 다행히 세미는 전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나를 힐끔거리는 정도를 제외하면 평소의 세미와 다를 게 없었으니.
잠시 후,
드디어, 세미의 차례가 또다시 다가왔다.
임재준의 대사에 이어서 크게 반응하는 장면.
“내 차 수리비, 당장 물어줘야겠는데?”
“놀고 있네.”
“뭐, 뭐라고?”
“차키 맡길 때도 마음대로 하더니, 이제 와서 뭐?”
“너…. 지금 실수하는 거 같은데?”
“실수는 지금 네가 하는 게 실수지!”
임재준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받아치는 모습.
내가 본 드라마 속 차예주가 세미였고, 세미가 차예주였으니.
‘크으. 취한다.’
이어지는 대사에서도 통통 튀는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세미.
한 번씩 힐끔 나를 바라볼 때마다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게 느껴졌다.
종래에 와서는,
순정마초 드라마의 진주인공은 임재준이 아니라 세미처럼 느껴졌으니.
오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걸그룹 꼬리표를 입에 담을 수 없을 터였다.
“허허,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안 묻히려면 열심히 해야겠어.”
최만호의 너스레에 배우들이 웃음을 흘렸다.
그중, 지성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마디를 던졌다.
“아휴, 선생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럼 나랑도 어울려 주고 그러는 건가?”
“에이, 그럼요. 당연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그 순간, 최만호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늘 방 국장님이랑 술자리 같이 갈래?”
“네? 그, 그건 좀….”
“너무 좋다고?”
“네에. 너무 좋아요…. 근데. 재준이도 가고 싶다는데요?”
거머리 마냥 불편한 자리에 재준을 끌어당기는 지성호.
“제, 제가요? 그…. 렇죠. 근데 작가님도…. 하하.”
“저도! 작가님 가시면 저도 갈래요!”
결국, 재준과 세미를 포함해서 주연배우 전원이 참석했다.
‘지성호 이 쉑.’
그뿐만이 아니라, 나랑 성 감독까지 술자리에 끌려갔으니.
그날 저녁, 최만호의 SNS 계정에는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최만호 배우는 나이에 맞지 않는 단어 사용으로 어그로를 끌었다.
[우리 주연배우님들 덕분에 버스타겠네 ㅎㅎ]
최만호 배우의 SNS 계정에는 각자의 의견을 담은 댓글들이 줄을 지었다.
-진짜 버스인듯? 마을버스 ㅋㅋㅋㅋㅋㅋ
-대본리딩에서 임재준 연기 미쳤다고 하더라
-ㄴ계자임. 중반부터는 세미가 더 쩔었다 ㄹㅇ
-선생님 그런 단어 어디서 배우심 ㅋㅋㅋㅋ
순정마초의 작감배가 모여있는 한 장의 사진.
훗날, 전설이 될 인물들이 한 컷에 담겨있었다.
첫 촬영까지 3주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 * *
“아, 죽을 것 같다.”
어제 술을 얼마나 처먹은 거지.
솔직히 집에 어떻게 기어들어 왔는지도 잘 모르겠어.
끼이익─
방문을 열고 소파에 좀비처럼 걸어가서 누워버렸다.
이미 소파에 앉아 있던 여동생은 불쌍한 사람 보듯이 나를 바라봤다.
“오빠, 술을 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두 병쯤 먹었나. 아니, 세 병인가….”
“뭐어? 주량이 한 병이잖아!”
“어. 죽을 것 같아.”
“으휴…. 해장국 해놨으니까 밥만 퍼서 먹어.”
“니가 했어?”
“응.”
크으, 업어키운 보람이 있잖아?
바쁘신 부모님보다 오히려 여동생이 나을 때도 있구나.
띵동─
그 순간, 시스템 알림음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내용 :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 14부】
【장르 : 로맨스, 재벌】
【장소 : JTBS 방송국 랜덤 지정】
【제한 시간 : 10일】
【※ 브론즈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000만 원】
여동생 앞이라는 사실도 잊고 혼잣말을 뇌까렸다.
“랜덤….? 이거 실화냐.”
방송국 내에 랜덤 지정이라는 게 말이 되냐?
그 넓은 방송국을 어떻게 전부 돌아다니라고.
10일이라는 시간이 오히려 너무 짧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