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194)
나는 대본 수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광고 영상을 시청했다.
12월 한 달 내내 열심히 만들어낸 결과물.
광고 찍고 벌어들인 개린티 50억 보다도 값졌다.
“오빠 연기 되게 못 해. 헤헿.”
“나도 알아.”
아니, 근데 오늘따라 김희정은 왜 이렇게 텐션이 높은 거야.
“나한테 맨날 구박만 하더니. 오빠도 연기 개몬허네.”
“야, 나는 배우가…. 됐고, 댓글 안 봤냐? 욕은 거의 없어.”
“에이, 이런 발연기를 보고?”
“참나.”
곧바로 댓글창을 열어서 김희정에게 보여주었다.
-지누킴 할아버지 버전 ㅋㅋㅋㅋㅋ
ㄴ분장이 몬가몬가임 ㅋㅋㅋ
ㄴ킹작가 연기도 잘하네 ㅋㅋㅋㅋㅋ
ㄴ솔직히 잘하는 건 아님
ㄴ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 ㅉ
ㄴ그래서 부족 전쟁 영화는 언제 개봉함
ㄴ5월 예상
ㄴㅈㄴ 기대된다
ㄴ한국인이 엘프 연기가 가능함?
ㄴ에바일 확률 2000%
-정새롬이는 나이 들어도 미모가 ㄷㄷ
ㄴ재벌이라서 그럼
ㄴ논리 무엇 ㅋㅋㅋㅋㅋㅋ
ㄴ아무리 돈이 많아도 본판 안 되면…. 알지?
ㄴ생얼 사진도 여신이더라
ㄴ인생…. ㅠㅠ
ㄴ다음 생엔 김진우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ㄴ나라 구해도 불가능
대부분은 노인으로 분장한 나와 새롬에게 초점을 맞췄다.
분장이 어색하다는 사람과 자연스럽다는 의견은 갈렸지만.
“요즘 너튜브 댓글 순해졌다니까.”
“진짜 연기로는 거의 욕 안 먹었네?”
“봤냐. 니 오빠 연기도 잘 하는 거.”
“이거슨 역시 편집의 힘!?”
“….”
솔직히,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해.
내 연기 실력이 얼마나 구린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연기 잘하는 배우를 정말 많이 봤으니까.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였거든.
“와아, 이걸 사네.”
“내가 인복이 좀 많아.”
어디까지나 드라마가 아니라 광고 영상이었으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분산 시켜 포커싱을 흐렸다.
“심주원 감독님은 진짜 못 하는 촬영이 없어.”
“인정. 연출 개잘핵.”
과연, 나지수 감독님과 함께 랜덤 스튜디오를 먹여 살릴 인재.
아직 송권수 감독님이나 잭 니콜슨 감독님 실력에는 못 미치지만.
아마 조만간 두 사람이 은퇴하면, 그땐 원탑 감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드라마 형식의 광고 효과는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
시청자 입장에서 홍보 당한 줄도 모르고 광고에 노출되니까.
“광고치고는 되게 자연스러워.”
“응. 그게 포인트야.”
“이래서 기업들이 잘 나가는 작품에 PPL 붙이려고 하는구나.”
대놓고 유료 광고 딱지 붙이고 시작했는데.
드라마에 부드럽게 녹아들어서 광고 같지가 않았다.
“아무튼, 50억이 아깝지 않았기를….”
“어, 여보세요?”
“???”
그때, 희정이는 쾌활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뭐냐, 너 딱 걸렸어.”
“뭐래.”
나를 스윽 훑어보더니, 다시 전화를 받는 김희정이.
입꼬리 올라간 모습만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 연애하냐?”
“아, 아니거든!”
내가 너를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모를 줄 알았냐.
“여배우가 연애나 하고 말이야.”
“아니, 아니라니까. 왜 그러는데.”
뭐 낀 놈이 성낸다지.
‘강준인가.’
설마 이진호는 아니겠지?
* * *
다음 날,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희정은 대본을 쓰고 있는 효주의 옆에서 입을 쉬지 않고 나불거렸다.
“그래서, 어제 우리 오빠가….”
“희정아.”
“응?”
“같은 얘기만 대체 몇 번째 하는 거야.”
“아, 내가 그랬나….?”
“요즘 무슨 기분 좋은 일 있나 보네.”
“티가 나?”
“누가 보면 짝사랑하는 남자한테 고백받은 줄 알겠어.”
“헐.”
“…. 찐이야?”
요즘 대세 중의 대세인 마법소녀 김희정의 열애설이라니.
연예부 기자가 알면 당장 거품 물고 달려들 법한 화제였다.
“대체 어쩌려고 그래?”
“어쩌긴,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걸?”
“…. 그건 아닐 텐데.”
이렇게 티를 내면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일단 반지는 빼고 말하자.”
“…. 으으, 약속했는데. 안 빼기로.”
“돌았네.”
임산부도 욕이 나올 만큼 조심성이 없었다.
이 순진한 마법소녀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강준 배우님이겠지.’
서로 호감이 있다는 사실은 진작에 예상했지만.
그러기엔 두 사람 모두 템페스트의 간판스타들이라.
“에이, 난 모르겠다.”
어차피 요즘 드라마 준비하느라 바빠서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냥 응원해줘. 헤헤.”
“…. 그래. 안 그래도 사내 연애는 힘들 텐데.”
“어? 사내 연애인 거 어떻게 알았어!?”
“모르겠냐고.”
“천잰데?”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김희정이.
개인적으로, 친구의 비밀은 숨겨주고 싶다.
“여민서 배우님은 모르지?”
“우리 리더 언니가 알면 엄청 혼낼 거야.”
“그래, 그럼 당분간 피해 다녀.”
“응? 말만 안 하면 되지, 뭘 피해.”
“넌 가만히 있어도 말하는 거랑 똑같아.”
“됐고, 나 데이트하러 간당. 남친이 할 말 있대.”
“…. 억.”
뭐가 이렇게 행복하고 해맑아.
누가 보면 연애 처음 하는 사람인 줄….
“잠깐만, 설마 진짜 처음이야?”
“…. 가볼게.”
효주는 한숨을 내쉬며 멀어지는 희정이를 바라봤다.
새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만 조심하라는 조언과 함께.
“나도 잘 모르겠다.”
미국 대통령도 결혼은 하는데, 여배우가 뭐 대수냐.
똑, 똑─
그때, 작업실에 누군가 노크를 두드렸다.
“누구세요….?”
김희정이 다시 돌아온 건가 싶었는데, 상대는 이진호 배우.
“저기, 김진우 작가님 안 계세요?”
“아, 안녕하세요. 이 배우님.”
“안 계시네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돌아서려는 진호를 붙잡았다.
“곧 오실 텐데, 들어와서 기다려요.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네, 그럼….”
“응….?”
황효주는 눈을 크게 뜨고 이진호의 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방금 작업실을 벗어난 김희정의 반지와 정확히 일치했으니.
“그 반지….!”
“아, 이거. 원래 끼고 다니면 안 되는데.”
“뭐, 뭐예요. 그럼 설마….?”
“강준 형한테는 비밀로 해줘요.”
“…. 미쳤다.”
설마하니, 촉이 틀렸다는 건가.
이 사실을 강준이 알면 당연히 실망하겠지.
“와아….”
“네? 왜 그러세요?”
“…. 저는 참견하지 않을게요.”
“???”
“두 분 예쁜 사랑 하세요.”
같은 시각, 템페스트 지하 주차장.
강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얼마 전부터 사귀는 사이로 돌아선 친구이자 연인.
“깡준, 일찍 왔네?”
“…. 남친한테 깡준은 너무한 거 아닌가.”
“뭐야, 우정이 먼저라며.”
“그렇긴 한데….”
피식 웃으며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김희정.
키도 작으면서 왜 이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귀엽네.’
강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정은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효주한테 말해버렸어.”
“응?”
“우리 연애하는 거.”
“…. 니가 먼저 비밀 연애하자며.”
“그렇게 됐어.”
“….”
사실 공개해도 상관없지만, 회사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다.
“우리 오빠도 뭔가 눈치챈 것 같아.”
“벌써?”
“응, 역시 눈치가 엄청 빨라. 조심해야겠어.”
“…. 자강두천인가.”
“뭐?”
“너도 눈치 빠르잖아.”
“음, 뭐 그런 편이지.”
‘…. 대체 얼마나 티를 많이 낸 거야.’
김진우 작가님, 눈치 없는 거 회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보다, 오늘 할 말 있다며.”
“아, 그게….”
희정이에겐 조금 미안한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두세 달 정도만 참고 기다려줘.”
“응?”
“해외 촬영 있어서 이제 가야 해.”
“아….”
순간의 달콤함에 취해 잊고 있었던 현실.
이미 알래스카와 노르웨이에서 촬영 준비를 마치고, 배우들만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가는데?”
“이번 주말에….”
“멍청아, 그걸 왜 이제 말해!”
“미안.”
원래 영화 찍고 돌아오면 고백하려고 했었는데.
우정반지 덕분에 갑작스럽게 사귀게 되어서.
“너 대신 이진호랑 놀 거야!”
“그래.”
“뭐냐, 질투 안 해? 죽을래?”
“….”
인위적인 질투를 바라는 건가.
“갑자기 질투 난다.”
“이진호랑 놀지 말까?”
“어, 제발.”
“그래, 특별히 내가 네 말은 들어줄게. 남친이니까”
“…. 코마워.”
“코마우면 밥 사.”
“응.”
회사 사람들을 포함해서, 아무도 모르게 하는 비밀 연애.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
‘돌아오면 공개 연애해야지.’
강준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희정을 바라봤다.
* * *
천성 전자 본사, 부사장실.
정조준은 비서에게 보고를 받으며 입가의 미소를 지었다.
“매출이 눈에 띄게 올랐어.”
“네. 놀라울 만큼 대단한 성과입니다.”
“고작 며칠 만에….”
이게 바로 김진우 효과.
그의 영향력은 더이상 연예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심지어 여자친구인 새롬의 인기도 엄청난 수준이 아닌가.
“지금 생산량이 못 따라가는 거지?”
“네. 스마트폰 구매 예약이 일주일이나 걸린다고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추가 생산 라인은 언제쯤 완공되나?”
“다음 달 중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보름 내로 마무리해.”
“네? 그렇게 빨리는 어려울….”
“무조건 해.”
“아, 네! 알겠습니다!”
솔직히, 예상보다 광고 효과가 너무 좋아서 놀라운 지경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광고 개런티 아까워하지 말고 퍼줄 걸 그랬나.
‘아니지, 덕분에 새롬이도 출연하고 대본도 써준 거니까.’
결국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셈이 아닌가.
대신, 두 사람에게 괜찮은 선물이라도 해줄 참이었다.
삐이이─
이어서, 조준은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
“영업 실적 메일로 보내.”
“네. 부사장님.”
지난 반년 동안 쌓은 영업실적에 이번 성과를 더하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마 큰 이변이 없는 이상, 형제들이 이보다 더한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진우 영화까지 대박 나면 더할 나위가 없겠어.’
기업 차원에서 큰돈을 투자했으니, 쫄딱 망하면 곤란했다.
적어도 한국에서 김진우 영화가 망할 일은 없다고 확신했기에.
띠리리링─
그때, 할아버지의 비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저씨!”
-김석필입니다.
“네. 혹시 미국에서 뭔가 발견하셨어요?”
-음, 그게….
김 비서는 안젤라에게 듣고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조준에게 전달했다.
“그런 거였구만.”
-네. 어쩌시겠습니까?
“뭐가요?”
-그야, 당연히….
“정영준, 그 사람은 실수한 거예요.”
-네?
“김진우 영화를 성적으로 이기려고 하다니. 멍청한 거죠.”
-…. 하지만 미국에서 배급차이는 월등합니다.
미국에서 「베히모스」를 상영할 영화관은 셀 수도 없었다.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와 비교하면 최소 두 배 이상.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일단 성공하면 배급은 계속해서 늘어나겠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자본주의 논리는 다를 게 없다.
‘아예 상영하는 영화관이 한 군데도 없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반드시 역전할 것이다.
“촬영 전까지만 조심하면 됩니다. 혹시 지저분한 수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당연하죠.”
MDN 방송국에 몸담았던 입장으로서 단언할 수 있었다.
연예계에서 김진우는 적수가 없는 백전불패의 탑작가.
작년에 할리우드에서 연달아 성공한 그의 실력은 절대 우연 따위가 아니었으니.
삐이이─
정조준은 내선 전화를 이용해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해외 촬영장에 경호 인력 배치해.”
-네?
“진우 영화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정영준, 그의 더러운 성격에 무슨 짓을 할지는 알 수 없었다.
* * *
무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에미상.
매번 날짜가 바뀌는데, 이번 시상식은 초대 시상식과 정확히 같은 날짜에 열렸다.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후보, 「맨 vs 스페이스」
그 외, 연기나 각본상 및 기술상을 포함한 9개 부문.
“경쟁작이 또 유니버스 스튜디오네.”
“워낙 거대한 제작사니까요.”
“…. 찝찝한데.”
미국 방송인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그곳에 초청받은 최초의 한국인.
아니, 애초에 한국의 제작사와 배우가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이제 5일밖에 안 남았네요.”
“내일 저녁 비행기로 LA에 방문할 거예요. 아시죠?”
“알아요.”
새롬이는 두 번, 세 번 말하며 내게 확인을 요구했다.
“알아도 또 확인하세요.”
“오키. 내일 저녁 9시 비행기.”
“8시라고.”
“….”
새롬이 아니었으면 비행기 놓칠 뻔했네.
“뭐, 하여튼 오랜만에 미국에서 직원들 얼굴 좀 보죠.”
“그래요.”
미국의 랜덤 스튜디오에도 회사 식구들이 살고 있다.
편집자 제시와 잭 니콜슨 감독님을 비롯한 여러 직원들.
그중에 제시랑은 편집 때문에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만.
“잭 니콜슨 감독님께는 죄송하네요.”
“네? 뭐가요?”
“저 때문에 누추한 랜덤 스튜디오로 모셨는데 신경도 못 써드려서.”
“….”
새롬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한테 얼마 전에 은퇴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레알?”
“네.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 2부 편집까지만 관여하고요.”
“…. 뭔가 슬프네.”
“가볍게 은퇴식이라도 치러 드리는 게 어떨까요?”
“당연히 그래야죠.”
박물관에 잘 다니는 관장님을 억지로 데려왔으니까.
시스템이 시키기는 했지만, 내 책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어?”
띵동─
그 순간, 시스템이 내게 경고 사인을 보냈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 내에 위험 인자를 감지했습니다. 위험 요소를 탐색합니다.】
드디어 방화 미수범이 활동을 시작했나.
이번에도 똑같은 짓을 할 것 같진 않고.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탐색 범위 Max를 사용합니다.】
사실, 시스템에게 천리안쯤은 별것도 아니었다.
무려 미래까지 내다보는 전지적인 존재가 아닌가.
‘양아치 쉑, 감히 배급사를 건드려?’
이건 급식 먹는데 숟가락 훔쳐 가는 거랑 똑같은 거야.
다행히야, 그래도 아직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새롬 씨.”
“네?”
“우리 배급사를 새로 구해야겠어요.”
“무슨 소리예요. 이미 제너럴 베이 필름스랑 계약을 맺었….”
“거기 말고 새로 구하시죠.”
“갑자기 왜 그래요?”
새롬이가 이럴 때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꼭 들어주더라고.
“오빠 믿지?”
“…. 안 되겠다. 스파링 한번 붙어야겠어.”
“?????”
이게 안 먹히네.
* * *
유니버스 스튜디오.
톰 스미스는 촬영을 마치고 제작사에서 휴식을 취했다.
“톰 감독, 고생 많았네.”
“네. 대표님.”
“여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어휴, 감사합니다.”
대형 제작사 대표가 직접 마중 나와서 커피를 타주는 인생.
이런 삶을 살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던가.
김진우라는 걸림돌은 기껏해야 탱크 앞의 조약돌에 불과했다.
바퀴에 낄까 봐 귀찮아서 내버려 두지만, 언제라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먼지 같은 존재.
“흥, 기고만장해서는.”
할리우드에서 두 작품 성공했다고 꼴에 에미상 후보에 오르다니.
광고도 찍고 너튜브도 관리하는 걸 보면 여유가 있는 모양인데.
“톰 감독, 맨 대 스페이스가 1억 뷰를 넘었다던데….”
“그래서요.”
“디즈니 플레이 역사상 최고 조회수라네.”
“….”
톰은 삐딱한 시선으로 대표를 바라봤다.
“저 오늘 힘들게 촬영하고 왔는데 그런 말을 왜 하시는 겁니까?”
“아, 아니. 그냥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서….”
“그래서요?”
“덜컥 수상이라도 할까 봐….”
“대표님!”
“아, 음….”
톰 스미스는 한숨을 폭 내쉬고 대화를 이어갔다.
“배급 문제는 끝난 거죠?”
“그럼, 이미 말 끝났지.”
“흠,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요.”
“하하. 솔직히 자네가 왜 그렇게 신경 쓰는지도 모르겠어.”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 한다죠?”
“…. 좋은 말이네.”
사실, 에미상 후보에서 끌어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유니버스의 영향력이 영화판이 아닌, 방송계까지 무소불위는 아니었기에.
‘시상식이나 쫓아다니고, 광고나 계속 찍으라지.’
미국의 영화관에 레전든지, 트라이븐지 이상한 제목의 영화가 걸릴 일은 없을 테니까.
* * *
미국 로스앤젤레스, 에미상 시상식 당일.
지난 며칠간 진우는 여친과 함께 수많은 배급사를 돌아다녔다.
“역시 쉽지 않네요.”
“성과는 있었잖아요.”
“그쵸. 이전 계약의 반의반도 안 되지만.”
“더 늘려야죠.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지금이라도 안젤라 이사님께….”
“아뇨, 그쪽도 안심할 수 없어요.”
“….”
“괜히 계약서에 비밀 엄수 조항을 넣은 게 아니죠.”
새롬은 복잡한 시선으로 남친을 바라봤다.
“정말 확신해요? 그 배급사가 배신할 거라고.”
“네. 확실해요.”
“말도 안 돼요. 계약금이 얼만데….”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였다.
“혹시라도 그런 짓을 하면 그 배급사는 업계에서 퇴출당할 지도 몰라요.”
“그니까 아무도 의심 못 하겠죠.”
“….”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남친의 눈빛을 보니 하려던 말도 쏙 들어갔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때는 언제나 그의 말이 정답이었으니까.
‘말도 안 돼. 위약금이 얼만데….’
이건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남친이 아니었다면, 아니, 김진우의 말이 아니었다면.
‘에휴, 나도 잘 모르겠다.’
4개월 후에 반드시 밝혀지겠지.
“일단 저는 시상식 갔다 올게요.”
“그래요.”
랜덤 스튜디오와 김진우에게 정말 중요한 날이었다.
혹시 에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를 수상한다면.
“에이, 말도 안 돼.”
후보에 오른 것도 최초인데 수상이라니.
그럼 배급 문제 정도는 바로 해결하겠지.
.
.
.
.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최우수 드라마 작품상은…. 축하드립니다! 맨 대 스페이스!
“말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