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02)
외전
[2] 이상한 세계의 김진우(2)김희정은 뉴스 기사를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집에서 요양 중인 국보급 작가 김진우.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 : 최후의 전쟁」을 끝으로 한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할 예정으로….》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야.”
“그러게.”
그녀는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며 스케줄 장소로 이동했다.
“희정이 너, 요즘 작가님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지?”
“응. 오빠가 이런 내 노고를 알아줘야 하는데.”
“당연히 아실 거야.”
“뭐, 하여튼…. 가는 동안 소설이나 볼래.”
“그래. 도착하면 말해줄게.”
희정은 오늘도 웹피아에 접속해 활자의 파도를 헤엄쳤다.
공부는 못 하지만 대본 외우는 실력은 대한민국 배우들 중 1티어.
덕분에, 글을 읽고 해석하는 실력과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휴, 내가 그냥 작가 할까? 요즘 읽을 게 없네.”
“네가? 직접?”
희정은 매니저의 가벼운 무시에 발끈했다.
“내가 오빠 글을 얼마나 오래 읽었는데? 서당개 풍월이면 3년을 읊는다던데.”
“풍월을 읊…. 아니, 됐고. 어쨌든 이상한 거 하기 전에 나한테 미리 말해.”
“방금 나 무시했지.”
“그런 거 아냐.”
“….”
매니저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급하게 말을 돌렸다.
“오늘 방송 소채담 배우님이랑 같이 하는 거 알지?”
“응. 저번 주에도 만났잖아.”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
두 사람은 함께 3부작 촬영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엘프로 출연한 소채담과 마법소녀 역할의 김희정.
촬영 중에서 은근히 케미를 드러낸 두 사람이 아니던가.
“세 번째 영화 개봉하면…. 진짜 대박일 거야.”
“너무 띄어주지 마.”
띠링─
그때, 희정이 설정한 웹피아의 알림 설정이 울렸다.
‘오, 이거 또 3연참했네.’
자유연재란을 살펴보다가 올라오자마자 캐치한 작품.
요즘 보기 드문 수작을 발견하고 쓴소리를 조금 했었다.
‘으휴, 이렇게 연참하는 거 아닌데. 초보 작가는 티를 낸다니까.’
글을 얼마나 어떻게 써서 밥 빌어먹고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료 연재 때 연참은 독이라고 말해주는 선배도 없는 건가.
[절대자는 힘을 숨기고 싶다 14화]
‘비축을 100편쯤 쌓아둔 거 같은데.’
하루에 세 편, 종종 네 편씩 올리는 신인 작가.
빼곡히 쌓인 벽돌체만 봐도 초보티를 풀풀 풍겼다.
그것만 아니면 진작에 떡상했을 텐데, 말을 해줘도 잠깐 고치는 척만 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또 활자 고인물께서 읽어줘야겠네’
이런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치 직접 판타지 세계에 들어가서 글을 쓰는 듯한 신들린 필력.
김진우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후두부를 강타했다.
‘와, 그린 드래곤 전투씬 화끈한 거 실화냐.’
맨손으로 꼬리를 잡아 뜯는 절대자를 이렇게 표현하다니.
고작 몇 단어로 현장을 상상케 하는 몰입감에 전율이 흘렀다.
‘장난 아닌데? 이건 철중이 아저씨한테 보여줘야겠다.’
강준의 삼촌이자 랜덤 스튜디오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강철중 팀장.
최근 랜덤 스튜디오는 밍쁨 작가를 주축으로 웹툰 부서를 추가했다.
마법소녀 웹툰을 마감하고,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 웹툰화 추진까지.
‘이것도 웹툰화하면 좋을 텐데.’
좋은 작품을 읽으면 같은 작가로서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
“희정아, 다 왔어. 내려.”
“어어.”
희정은 스마트폰을 들고서 매니저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희정아….?”
“아, 채담 언니!”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근황을 물었다.
“뭐야, 또 웹소?”
“응. 이거 진짜진짜 장난 아냐.”
“…. 나는 웹소설은 취미가 없어. 너튜브면 모를까.”
“에이, 진짜 재밌는데.”
“다음에 읽어볼게.”
희정이는 댓글창에 들어가서 키패드를 두드렸다.
토톡, 토도독─
[Comment ’ 0]
-글희저아 : 금방 늘었네요 거봐 하면 되잖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담은 희정을 막아섰다.
“뭐 하는 거지?”
“응?”
“그 작가, 많이 아끼는 거 아니었어?”
“응. 이 사람은 평생 절필하면 안 돼.”
“하아…. 착하지만 모자란 우리 희정아.”
“으응….?”
채담은 한숨을 폭 내쉬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100만 너튜버 키울 썰 안 풀어줬나?”
“???”
“하꼬 때부터 채찍질을 날마다 해줬거든.”
“아, 그래?”
“응. 크리에이티브들은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진다고. 이를 악물고 컨텐츠 개발을 한다니까?”
“오오….!”
“그게 지금의 지성호 오빠야.”
“크으….! 그럼 언니가 성호 오빠를 키운 거네?”
“거의 뭐, 너튜브 채널은 내가 다 키웠다고 봐야지.”
“대박!”
희정은 스마트폰을 다시 들고 댓글을 수정했다.
재밌다고 칭찬하는 다른 가짜 독자들은 가볍게 무시했다.
[Comment ’ 1]
-글희저아 : 노잼
채담은 희정의 짧고 굵직한 댓글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야, 짧고 간결하네. 우리 희정이 잘 배운다.”
“다 언니 덕분이죠. 헤헤.”
* * *
글희저아, 얘 때문에 진짜 암 걸릴 것 같다.
분명히 니가 말한 버릇 다 고쳤는데 왜 그러는 거야.
“글희저아….!”
톡, 토토톡─
[Comment ’ 1]
-글희저아 : 노잼
ㄴ지누 : 잼이 없으셨군요. 혹시 부모님은 있으신분노의 키보드 배틀을 뜨려다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간신히 견뎌냈다.
남의 부모님 안부를 묻기 전에는 삼세번 생각하라고 부모님께 배웠으니까.
“우리 엄마 생각해서 참는다.”
톡, 토토톡─
[Comment ’ 2]
-글희저아 : 노잼
ㄴ지누 : 더 재밌게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대한민국 1타 작가의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졌다.
한국에서 할리우드 명감독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유일한 극본가.
1티어나 최상위권 작가가 아니라, 그저 독보적인 ‘1등’이 아닌가.
“후우….”
현실에선 탑급 스타작가인 내가 웹피아에선 하꼬 작가!?
다른 독자들의 칭찬 릴레이는 별다른 감흥이 들지도 않았다.
그래봤자 한 편당 한두 개, 많아야 두세 명이 달아준 댓글일 뿐.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주간 미션과 보상이었다.
【미션 : ‘글희저아’에게 선플을 받으세요. 작품 외적인 활동 수단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보상 : 베네핏 강화 포인트 6pt】
“두고 봐라.”
내가 반드시 네 뇨속에게 인정받고야 말겠어.
주간미션은 한 달 안에만 클리어하면 되니까.
‘작품 외적인 활동 수단이라….’
아마 천만 너튜브 채널에 홍보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초보 작가를 벗어나겠지.
다만, 내가 쓰는 소설이라고 광고하면 주간 미션 난이도는 극악으로 바뀔 터.
그럼 다시 필명 갈고 새 작품을 써야만 한다.
“음, 잠깐만.”
근데 댓글이나 작가의 말은 작품 내부 활동에 포함이잖아.
그냥 절필하고 싶다고 징징대면 우쭈쭈해주지 않으려나.
‘에이, 글희저아 같은 빌런이 그럴 리는….’
응애, 응애─
그때, 문밖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작업실에서 나와 주은이를 확인했다.
“새롬 씨, 내가 아기 안고 있을까요?”
“아니에요. 몸도 안 좋은데.”
“아, 아니. 이제 괜찮은데.”
배시시 웃으며 아이를 달래주는 새롬이가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
혹시 이런 게 신혼 버프인가.
우리 와이프는 화장기 없이 헐거운 옷을 입고 있는 모습도 사랑스럽구나.
아무 말 없이 다가가서 내 손으로 주은이를 안아 들었다.
“응?”
의문 가득한 표정의 새롬이에게 넌지시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제가 주은이 볼게요.”
“에이, 그래도….”
낮에는 베이비 시터를 고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은 너무 갓난아이라 미루고 있지만.
“주말에 엄마가 주은이 봐준다니까, 우리 같이 영화라도 보고 와요.”
“음, 좋아요.”
듣자 하니, 변혁주 팀장이 매일 같이 볼멘소리를 낸다고 들었다.
정 실장님이 언제 돌아오고 업무 대행을 마칠 수 있겠느냐고.
“효주가 매일 뭐라고 해요.”
“진우 씨한테요?”
“네. 남친 불쌍하다고.”
“…. 음, 어쩌나.”
중간 단계나 직원들 중 유능한 인재는 넘쳐나지만.
결재하고 총괄을 맡을 인물은 살짝 부족한 편이었다.
“그렇게 인재가 없나.”
“대표님….”
“….”
정기태 대표님도 무능하진 않지만 뭔가 2% 아쉽다.
당장 실장급이 총괄을 맡는 직급 체계부터 바꿀 필요가 있지.
“일단 강철중 팀장님을 기용할 생각이에요.”
“아, 그분도 한때 대표였죠.”
“네. 영업력이 상당해요.”
아무튼, 그분 덕분에 랜덤 스튜디오도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띠링─
그때, 웹피아 어플에서 알림음이 발생했다.
‘음, 쪽지?’
[안녕하세요. 레이블 미디어입니다. 지금까지는 작가님의 소설 ‘절대자는 힘을 숨기고 싶다’를 재밌게 보고 있는 독자로 만족했지만 앞으로는….]장황하게 풀어놨지만, 대충 계약하자는 내용의 메시지.
고작 조회수 200따리 소설에 컨택을 하기도 하는구나.
“진우 씨?”
“네?”
“무슨 내용이길래 그렇게 심각해요?”
“아, 별거 아니에요.”
정말 미안하지만 새롬이에게도 숨길 생각이다.
‘내가 이름을 숨기고 소설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연히 전 세계 팬들이 알면 순식간에 몰려들겠지.
그럼 베네핏 포인트 하나 받으려고 조회수 천만 찍어야겠지.
일단, 한번 들키면 필명을 갈아도 다시 들킬 테니.
‘레이블 미디어라….’
일단 계약은 제쳐두고 전화라도 한번 해볼까.
솔직히 나한테는 푼돈이라 유료화할 마음이 안 들지만.
조만간 시스템이 구매수 얼마 이상 미션을 주던가 하겠지.
‘뻔하지, 뭐.’
스마트폰을 들고 번호를 누르는 순간.
배경이 소용돌이처럼 휙휙 스쳐 지나갔다.
띵동─
“어….?”
새롬이 앞에서 또 기절하라고?
* * *
그로부터 약 30분 전,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민은빈은 오늘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마법소녀 웹툰도 끝나서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요즘만 같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템페스트의 성공과 함께 그림 작가로서 밍쁨의 커리어는 차곡차곡 쌓였으니.
뿐만 아니라, 재벌 3세이자 배우인 남친은 얼마 전에 전역했다.
해병대 나오고 나서 요즘 이상하게 가오를 잡고 다니긴 하지만.
‘오늘도 형식이랑 데이트를….’
드르륵─
가벼운 고민을 하며 작업실 문을 열었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효주 언니!”
“응. 빨리 왔네?”
“오늘은 나오셨네요!”
“응.”
아무래도 효주는 아이 때문에 자택에서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낮에는 고용인 분이 맡아주시기로 했어.”
“요즘 지석이는 어때요!?”
“천재인 거 같아.”
“네?”
“엄마라고 했다니까?”
“….”
아직 돌도 안 지났잖아요.
“언니도 참, 아들 바보구나.”
“헤헤.”
작년에는 변지석, 올해는 김주은.
고작 1년 사이에 새 생명이 태어났으니.
경사도 이런 겹경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은빈이 너도 이제 새 작품 준비해야하는 거 아냐?”
“웹툰 스튜디오 관리하는 게 은근히 빡세요. 강철중 팀장님은 경영만 담당하셔서….”
“음, 웹툰 부서는 얼마 전에 신설했으니까. 네가 좀만 더 고생해.”
“네. 뭐, 아무튼…. 언니도 이제 새 작품 준비해야죠.”
작년 SBC 방송국에서 방영한 「변호사이코패스」
그 작품으로 연기대상에서 극본상과 대상을 수상했으니.
“여민서 배우님은 대상 타자마자 부족 전쟁까지…. 진짜 바쁘시네요.”
“그야 뭐….”
“이제 템페스트에서도 여배우로는 원탑이네요.”
“마법소녀는 다 떴지.”
“아…. 인정.”
마법소녀의 굿즈와 상품성은 디지니 플레이에서도 수위에 들었다.
각자 독특한 매력을 가졌기에 캐릭터로 만들어서 팔아도 수요층이 다양했다.
“요즘 김희정 배우님이 인기 많다던데.”
“근데 활동은 제일 안 하잖아요.”
“음….”
마법소녀들 중에서도 김희정의 존재는 특별했다.
다름 아닌, 그 친오빠의 존재가 워낙 대단했기에.
“러닝 개런티만으로도 평생 먹고살 만하지.”
“네. 근데….”
띠리리링─
그때, 밍쁨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기, 김희정 배우님?”
“아, 오늘 들른다고 했는데.”
“정말요?”
“응. 근데 왜 전화했지.”
효주와 희정은 템페스트에서도 유명한 단짝이었지만.
“왜 저한테….?”
“한번 받아봐.”
“아, 네.”
은빈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은빈이! 잘 지냈나?
“네? 아, 네!”
-내가 요즘 기가 막힌 웹소설을 찾았거든.
“아…. 그래요?”
-일단 링크 보낼 테니까 읽어봐봐봐.
“네. 알겠습니다.”
너무 뜬금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희정이가 소설 추천했어?”
“네. 언니.”
황효주는 꽤나 놀란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나한테도 웹소설 재밌다고 한 적은 많은데.”
“그래요?”
“응. 근데 그중에 작품 하나를 콕 찍어서 추천한 적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어.”
“오….”
거의 1년 넘는 시간 동안 가진 취미일 텐데.
그동안 절친에게 추천한 적이 한번도 없다니.
“엄청 재밌나 봐요.”
“나한테도 한번 보내봐.”
“네. 언니.”
뚝.
그 순간, 시간이 정지했다.
고립된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엘프 왕국의 화려한 침실.
새로운 몸에 깃든 김진우는 부스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봤다.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 보정으로 눈빛에 영롱한 이채가 돌았다.
“여기는….”
1권 분량의 마지막 결말부에 나오는 배경인 것 같긴 한데.
그린 드래곤 레어가 아니라, 생소한 풍경이라 당황스러웠다.
【내용 : 절대자는 힘을 숨기고 싶다 2권】
【장르 : 판타지, 먼치킨, 힘순찐】
【장소 : 신성 왕국 로엔, 성녀 오클레아의 침실】
【제한 시간 : 5일】
“성녀든 성인 배우든 관심 없고, 새롬이 앞에서 또 기절하게 생겼다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발생한 시스템의 변덕.
앞으로 5일 안에, 반드시 원하는 장소로 가야만 할 것 같다.
* * *
다섯 부족의 하이엘프들이 세운 왕국, 세이안.
엘레이나 공주가 쫓기듯이 가져온 충격적인 소식은 왕실을 뒤흔들었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세이안의 엘프 왕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되물었다.
“조르덴 제국에서…. 노예상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네. 아버지.”
“증명할 수 있겠느냐? 이건 중대한 사안이야.”
“증좌를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노예 시장에서 구한 서류를 건네며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놈들은 저까지 살인멸구하려고 했습니다.”
“허허, 어찌 사신단을 해한단 말인가….”
이 사실이 르센 대륙에 널리 퍼지면 어떻게 될까.
조르덴 제국의 평판과 국제 관계는 단숨에 어그러지겠지.
“전쟁을 피할 수는 없겠구나.”
“지금 당장 다른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시면….!”
“이미 늦었다. 조르덴 제국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하, 하지만….”
“신성 왕국 로엔, 그곳이 마지막 희망이겠지. 오랜 우방국이니까.”
“제가 직접 사절로 방문하겠습니다.”
“…. 그래. 생각해 보자꾸나.”
엘레이나는 문득 귀빈으로 초청한 어떤 사내를 떠올렸다.
드래곤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인 그의 실력이라면.
‘으음….’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린 드래곤 레어를 벗어나, 엘프 왕국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완벽한 르센 대륙 공용어를 구사했었는데.
‘갑자기 사투리를 쓰더니…. 성격이 무서워졌어.’
-너,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죽인다. 쓸데없이 나에 대해서 나불대도 죽인다. 귀찮게 하지 마라.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겨서 형체도 남길 수 없을 것 같은 날카로운 살기.
그의 서늘하고 흉포한 눈을 보면, 마치 영혼이 소멸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 사람은 대체 뭐 하는….’
귀찮아질까 봐 힘을 숨기는 건 좋은데.
그럴 거면 왜 자신의 앞에서 드래곤을 때려잡았냐고.
“후우….”
그때, 하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공주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공주님, 손님께서 찾으셨습니다.”
“지금?”
“네.”
“알겠어. 바로 가겠다고 전해라.”
“네.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국왕은 일어나려는 엘레이나를 붙잡고 말을 이었다.
“존이라고 했나? 그 건방진 인간을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냐?”
“네?”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인간이던데. 적당한 때를 봐서 쫓아내는 게….”
“아, 안 돼요!”
엘레이나는 진땀을 흘리며 아버지를 말렸다.
드래곤을 가볍게 제압하는 인간의 심기를 건드리겠다니.
“제, 제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만….”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오늘 왕국은 제국의 공격을 받기도 전에 멸망할 뻔했다.
잠시 후, 엘레이나는 손님을 맞으러 움직였다.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는 인간 남자.
“존 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
“됐고, 빨리 나가야 해.”
“네?”
순간, 사내와 눈을 마주하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초롱초롱 생기 가득한 눈동자.
순박하면서도 똑부러지는 말투.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가벼운 몸짓.
처음 그와 마주했을 때처럼 사투리가 아닌 르센 대륙의 표준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돌아왔구나! 존태식이!”
“뭔 개소리야?”
“너무 반갑다구!”
상대는 정말로 이중인격자가 확실했다.
드래곤보다 흉포한 성질이 씻을 듯이 사라졌으니.
“저기, 제가 말씀드릴게….”
엘레이나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에 앞서, 진우는 상대의 말을 끊고 먼저 할 말을 뱉었다.
“나가자. 5일 안에 도착해야 해.”
“네? 어디를….”
“신성 왕국 로엔. 성녀의 침실.”
“….”
마침, 그곳에 지원군을 요청하러 갈 생각이었지만.
잠깐 잊고 있었다.
사나운 존 이전에도, 이 인간은 정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을 타고 가도 최소 일주일은 걸릴 테니….”
“그건 걱정 마.”
“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튼튼한 두 다리가 있잖아.”
“….”
진우는 열심히 뛰어갈 생각이었다.
말보다 빠르고 지치지 않는 강철 같은 몸뚱이가 있으니까.
“업혀.”
“어찌 외간 남자에게….”
“나도 유부남이야. 닥치고 빨리 업혀.”
“…. 전 미혼인데요.”
정신병자가 돌아왔다.
.
.
.
.
사흘 뒤.
“놔아아! 제발 놔조요! 후에엥.”
“이제 이틀 남았나?”
“이런 악마 새뀌야!!!”
사내에게 납치당한 엘레이나는 콧물과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자신을 한쪽 어깨에 들쳐메고,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악마.
지치기는커녕 숨 한번도 헐떡이지 않으면서 어찌 속도를 유지하는 걸까.
“니가 너무 느려서 그러잖아. 빨리 가야 한다고.”
“엄마아아….”
“울지 말고 방향이나 잘 좀 가리켜봐.”
“으아아앙. 저쪽이에여어….”
“오키.”
그들의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