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04)
외전
[4] 이상한 세계의 김진우(4)투베에 오르는 동시에, 수많은 매니지먼트에서 계약 쪽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작품이 투베 끄트머리에 있었다면 이 정돈 아니겠지만.
고작 두어 시간 만에 2페이지 내, 40위권에 안착했으니.
“일단, 유료화하려면 계약을 하긴 해야겠지?”
마음만 먹으면 랜덤 스튜디오에서 웹툰 겸 웹소 스튜디오를 차릴 수도 있겠지만.
‘내 소설이라고 홍보할 일 있나.’
김진우라는 이름을 팔면 유료 구매수 10만도 금방 찍을 텐데.
그럼 당연히 미션 보상은 10pt에서 순식간에 1pt로 바뀌겠지.
똑, 똑─
그때, 작업실 문이 열리고 강철중 팀장이 들어왔다.
“작가님, 혹시 준이 못 보셨나요?”
“강준이요? 희정이랑 나가던데.”
“아, 갑자기 스케줄 바껴서 말해줘야 하는데.”
“음…. 고생이 많으시네.”
문득, 철중 아저씨가 추진한 사업이 떠올라서 질문을 건넸다.
“요즘 밍쁨이랑 웹툰 회사 차렸다면서요?”
“아하하, 회사를 차린 게 아니라 랜덤 스튜디오 내에 조그맣게….”
“잘하셨어요.”
마법소녀랑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
두 작품은 다른 회사에 파이를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들이다.
디지니 플레이 측에서도 랜덤 스튜디오니까 인정해 주는 거라서.
“저기, 김진우 작가님.”
“네?”
“네이바 웹툰 담당자분이 한번 만나 뵙고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고….”
“그래요?”
웹툰 스튜디오랑 네이바 플랫폼.
제작사랑 방송국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아닌가.
“알겠습니다. 날짜 알려주시면 한번 들를게요.”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작업실을 벗어나는 철중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일단 주간미션을 깨려면 당장 웹소설 계약부터 해야겠네.’
구매수 1만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순정마초 때도 첫 작품부터 대박 났으니까.
계약할 때 꼭 만나서 해야 하는 건 아니라서 정체를 들킬 염려는 거의 없었다.
‘김진우…. 흔한 이름이니까 상관없겠지.’
솔직히, 김진우 작가가 뜬금없이 장르 소설을 쓴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같은 시간 동안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돈을 쓸어 담을 텐데.
뚜루루루─
처음 내게 컨택 쪽지를 보낸 레이블 미디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안녕하세요, 지누 작가님!
“네. 또 연락드리네요.”
-얼마든지요! 투베 1페 축하드립니다!
“아직 2페이진데요.”
-아마 두 시간만 기다리면 바로 1페이지에 드실 겁니다!
“그래요?”
-네! 틀림없이!
투데이 베스트에 들자마자 1페이지까지 직행.
확실히 성장세가 일반적인 글이랑 판이했다.
“댓글에 욕이 많던데.”
-원래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순 없어요. 작가님!
“흠….”
어쨌든, 투베 들기도 전에 나한테 먼저 관심을 표시했으니까.
“계약 말인데요.”
-계, 계약이요! 저희랑요!?
“네.”
-감사합니다. 최고의 조건으로 모시겠습니다!
“계약서는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가능하겠죠?”
-물론입니다!
첫 번째 드라마 때랑은 또 다른 기분이다.
그때는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는데.
지금은 포인트 벌어서 판타지 세계에서 살아남겠다는 욕심뿐이다.
다음 작품 때 지금처럼 강한 캐릭터로 빙의한다는 보장은 없을 테니.
‘그 세계에서 죽으면….’
아무래도, 끔찍한 상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필 장소만 늦게 가도 현실에서 기절하는데.
야만적인 세계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어찌 될지.
‘일단 포인트를 더 벌어야 해.’
그쪽 세계에서 베네핏 포인트의 힘은 절대적이다.
없던 능력을 새로 만들거나, 약자를 강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대표님, 제가 목표가 하나 있거든요.”
-네? 어떤….
“유료 전환 구매수 1만이요.”
-아….
“어려울까요?”
-그, 제가 무료 때 반드시 최고의 프로모션을 따내겠습니다!
“그래요. 믿을게요.”
-네, 작가님!
지이잉─
도 대표와 유료화 일정에 대해 논의하던 중 톡이 날아왔다.
[진우 씨 어디예요?]
첫 번째 결혼기념일.
새롬이랑 저녁 약속을 잡아놨다.
“대표님, 제가 지금 와이프 보러 가야 해서….”
-아, 결혼하셨구나.
“네. 작년에 결혼하고 아이도 있어요. 하하.”
-와, 대학까지 보내려면 이번 작품 대박 나셔야겠네!
저번 작품에서 벌써 대박 났어요.
-작가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전작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웹소설은 처음이에요.”
-아…. 그, 그러시구나. 천재셨군요.
“그건 아니고, 제가 곧 나가봐야 해서….”
-넵! 그럼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작가님!
“네. 대표님.”
* * *
단 하루 만에, 웹피아의 독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느슨해진 웹피아에 긴장을 주는 작품.
《절대자는 힘을 숨기고 싶다》
그 유치한 제목은 진입장벽이 꽤나 높은 편이었지만.
일단 1화를 누르는 순간 어느새 시간이 사라져버린다.
“부장님, 그 작품 벌써 1페 뚫었어요.”
“와, 미쳤네.”
웹피아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작품에 꽂혀서 업무도 잊어버렸다.
“투베에 들자마자 20위권이야?”
“네. 하루 만에.”
“진짜 대단하네.”
박 부장은 직원이 언급한 작품의 시간별 성장세를 지켜봤는데.
확실히, 시간대별 성장세가 일반적인 작품과 궤를 크게 달리했다.
“이거…. 조만간 탑 5 안에 들겠는데?”
“네. 며칠 안에.”
“장난 아니구만.”
“지금쯤 매니지들 난리 났겠어요.”
“누가 데려갈까?”
“음…. 아마 빅 쓰리 중에 하나가 데려가겠죠.”
“그러려나.”
투베에 오르는 동시에 순식간에 1페까지 뚫어버리다니.
대박작을 보유한 기존의 작가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진짜 신인작가 맞을까요?”
“아무래도 누가 필명을 바꾼 거 같아.”
“그렇겠죠?”
“당연하지, 100프로야.”
박 부장은 직원들을 물리고 혼자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했다.
‘오늘도 또 세 편 올렸어.’
무료 때 연참은 독이지만, 이런 재미를 계속 유지한다면 상관없겠지.
기본적으로 필력 자체가 미친 수준이라 몰입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진짜 기성 작가 같은데, 누구지?’
소재만 놓고 보면 평범한 양판소가 따로 없는데.
오직 글 쓰는 실력, 단 하나만으로 씹어 먹어버렸다.
특히 엘프 공주 엘레이나가 우아하게 업혀서 성국에 지원 요청을 하러 가는 장면.
‘와우, 이 작품 물건이네.’
절대자 존과 아름다운 엘프 공주의 조합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엘프 공주 엘레이나!?
-동맹국이잖아.
-청년이 잘생겨서 그런가. 그림이 따로 없구만.
-근데 로엔 왕국에는 어쩐 일로….
빠르게 지나치는 두 사람을 보며 감탄하는 엑스트라들.
엘레이나는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 구경하지 말고 살려달라고 시발.
힘을 숨기면서도 귀찮은 건 질색하는 절대자.
그의 정체를 알고, 의식주를 제공하는 엘프.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이들이 함께 동행할뿐인데.
주위에서는 그들을 선남선녀 간의 아름다운 로맨스로 바라봤다.
“역시, 요즘은 착각계가 대세인….”
똑, 똑─
그때, 한 직원이 부장실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 무슨 일이야?”
“지누 작가님, 매니지 측에서 배너 요청 연락이 왔습니다.”
“오, 그래?”
“네!”
지누 작가가 드디어 계약할 회사를 선택한 모양이다.
“매니지가 어디야?”
“레이블 미디어입니다.”
“와우, 거기가 데려갔어?”
“네. 부장님.”
당연히 빅 3에서 데려갈 줄 알았는데.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푸시를 받기는 더 좋을 수도 있었다.
“레이블….. 거기 방상구 작가님이 전속이잖아.”
“네. 여태까진 방 작가님 원툴 매니지였죠.”
“흠, 지누 작가가 제2의 방상구가 될 수 있으려나.”
“쉽진 않겠죠.”
“그치, 방 작가님은 1만 전환 작품만 3개니까.”
“근데 지누 작가님도 진짜 글 잘 써요.”
“잠깐만. 근데….”
지누 작가의 배너 요청이 왔다고 했잖아.
그럼 원래 프로모션 예정이었던 작품은 어쩌라고.
“방상구 작가 까버리고 지누 작가 배너 요청한 거 맞아?”
“네. 레이블 메인 배너, 지누 작가님 작품으로 변경했습니다.”
“…. 방 작가, 그 양반 성격 더러운데 어쩌려고.”
이번 레이블 미디어에 배정된 메인 배너 자리는 하나뿐.
그 자리를 신인작가에게 밀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솔직히, 방 작가님이 레이블 미디어에 갑질을 많이 했잖아요.”
“그치. 거기 신인작가들 다 말려 죽여버렸지.”
“그래서 좀 변화를 시도하는 거 같아요.”
“….”
사실, 이번 메인 배너도 원래는 다른 작가에게 예정된 프로모션.
방상구 작가가 억지를 부려서 강제로 빼앗았다고 들었다.
“나는 모르겠다.”
“네? 그럼….”
“절대자, 그거 메인에 걸어. 날짜 맞춰서.”
“넵.”
* * *
새롬이는 내가 준비한 이벤트에 꽤나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미슐랭 레스토랑.
장미꽃과 풍선으로 여기저기 장식한 내부 인테리어.
물론, 오늘 예약한 손님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뭐예요, 목걸이네요?”
“네. 새롬 씨, 저랑 결혼해줘서 고마워요.”
“아이, 참.”
한껏 꾸미고 데이트하러 나온 우리 와이프.
새삼스럽지만 나랑은 비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엔터 업계에 있다 보니 외모로 사람을 가르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요즘 주은이 키우느라 정신 없죠? 밤에 잠도 많이 깨고….”
“진우 씨가 많이 도와주잖아요.”
“많이 부족하죠. 미안.”
“저는 괜찮아요.”
역시, 보모 아주머니를 구하는 게 좋겠어.
이제 주은이도 신생아 티는 벗어났으니까.
“제가 오늘 저녁에 자동차 극장도 예약했어요.”
“설마 극장까지 전세 낸 거 아니죠?”
“음, 원래는 그럴까 했는데.”
자동차 극장이 너무 휑하면 오히려 분위기가 이상할 것 같아서 참았다.
“에휴,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네?”
“이렇게 식당 전세 내면 다른 손님들이 불편하잖아요.”
“음….”
백번 맞는 말이지만.
원래 이런 건 돈 쓰는 사람 마음 아닌가.
“이렇게 안 하면 사람들이 얼굴 알아봐서 제대로 식사도 못 할 텐데….”
“그래도 제 말 들어요.”
“알겠어요.”
이래서 내가 새롬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천성 그룹 따님이 사치 부릴 줄도 모르니까.
“저는 그냥 진우 씨가 오늘 기념해줘서 그게 너무 좋네요.”
“아하하.”
오늘 까먹었으면 뒤졌겠네.
돌려차기 한 대 맞고 이세계 환생할 뻔.
“진우 씨, 요즘 쓰는 작품은 장르가 뭐예요?”
“장르? 음,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랑 비슷한….”
“판타지?”
“뭐, 그렇죠.”
“재밌겠네요.”
근데 그거랑은 갬성이 너무 다른데.
웹소랑 영화랑 같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저한테는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음…. 글쎄요.”
“기다리고 있는데.”
“….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보여주려구요.”
“왜요?”
새롬이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깜짝 놀란 듯했다.
여태까지 안 보여준 작품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냥 취미 같은 거예요.”
“…. 그래요?”
끄덕─
나를 빤히 응시하더니 배시시 미소를 짓는 와이프.
“진우 씨 편하실 대로.”
“…. 고마워요.”
새롬이는 항상 그랬다.
언제나 나를 믿고 따라왔으니까.
“사랑….”
띵동─
시스템의 알림음과 함께.
“…. 해요.”
내가 건넨 말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와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뭐냐.”
“왜 그러세요?”
새롬이 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물론, 소설 속 캐릭터 따위에 관심은 전혀 없었지만.
“성녀?”
“네. 오클레아예요.”
“그래, 그건 알겠는데.”
멀리서 식사를 준비하는 엘프 공주님까지.
“왜 우리 셋이서 노숙 준비를 하고 있니?”
“노숙이 아니라 야영이죠!”
“어휴, 그게 그거지.”
“저기, 근데….”
성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사투리를 안 쓰시는 거 보면 정신이 돌아오셨네요.”
“….”
“아니면, 지금이 비정상인가요?”
“손님, 맞을래요?”
시야에 닿는 곳에서 성기사 무리가 천천히 뒤따라오고 있었다.
“흠, 근데 너 눈빛이 왜 그래?”
“제가 왜요?”
“…. 우리 안 친했잖아.”
대체 이 사람은 왜 나를 따뜻하게 바라볼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스템이 보여주는 갓테창을 확인했다.
【내용 : 절대자는 힘을 숨기고 싶다 3권】
【장르 : 판타지, 먼치킨, 힘순찐】
【장소 : 조르덴 제국의 황궁, 랜덤 지정】
【제한 시간 : 12일】
음, 내가 대충 이런 상태구나.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아, 조르덴 제국 수도에 가고 있어요.”
“그래?”
다행히 가는 방향은 일치하는 것 같은데.
“내가 거기를 왜 따라가?”
“그, 그야…. 약속하셨잖아요.”
“아 내가 언제.”
…. 는 호구 쉑이 도와주기로 했나 보네.
“제국의 황제에게 직접 할 말이 있으시다고….”
“내가 그랬어?”
“네에…. 조용히 살고 싶은데 귀찮게 한다고 하셨어요.”
“흠.”
느낌상 황제 뚝배기 깨러 가는 길인 것 같다.
* * *
“평화 사절이라….”
조르덴 제국의 황제, 로드리게스 알렉산드로.
철혈의 정복자는 책사들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녀와 엘프 공주가 함께 오고 있다지?”
“예. 폐하.”
“꼭 평화 협정을 맺어야 하는가? 힘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폐, 폐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제국은 두 세력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했다.
전쟁광인 군부의 인사들과 더이상의 전쟁은 피하고자 하는 책사들.
영토를 확장할 때 지대한 공헌을 한 두 집단은 격하게 논쟁을 벌였다.
“지금 조르덴은 최강이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대륙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하오!”
“로엔 신성 왕국은 무시하면 안 됩니다! 종교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쯧, 겁쟁이들.”
“말씀을 삼가시오!”
“…. 그만.”
황제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대신들을 둘러봤다.
현 조르덴 제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대륙 10강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무려 네 명.
막말로 드래곤이라도 등장하지 않는 이상, 대륙 통일은 절대 꿈으로 끝나지 않을 터.
“일단 사절단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판단하지.”
잠시 후,
황제는 신하들을 물리고 홀로 편전에 남아 사색에 잠겼다.
“후우, 이번 대에서 반드시 대륙 통일의 꿈을 이루려고 했거늘….”
어릴 적 스승님이자 제1 책사까지 극구 반대하니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은 언제나 정답이었고, 단 한 번도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았기에.
“하지만 드래곤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누, 누구냐!”
“내가 도와주지.”
그때, 뒤쪽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후미를 잡혔으니.
“감히….!”
황제의 편전에 잠입하다니, 호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인간, 이 대륙에서 내게 감히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허허, 네가 진짜 드래곤이라도 된다는 뜻이더냐.”
“말했잖나.”
초록빛 머리칼에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사내.
눈빛에 날카로운 예기를 풍기며 황제를 마주 보았다.
“…. 설마.”
“찐이야.”
르센 대륙에서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위대한 존재.
그랜드 마스터이자 제국의 황제조차 한 수 접어줘야 하는 상대였다.
드래곤이라서 호위망을 뚫고 자신의 등뒤에 있는 것도 납득이 되겠지.
“혹시, 나를 해치려고 오셨소?”
“아니, 그 반대지.”
꼬리를 잃고, 레어를 털린 그린 드래곤은 분노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지금 평화 사절단으로 오는 이들을 전부 죽여라.”
“무슨….?”
“아니, 내가 반드시 죽일 테니까 놈들을 이곳으로 유인해.”
“…. 하지만.”
“인간,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다!”
“허허….”
조르덴 제국의 대마법사와 세 명의 강자가 모두 모인다면.
어쩌면 드래곤과 일전을 벌여도 승산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잘 됐군.’
이런 상황이라면 스승님도 어쩔 수 없을 테지.
어차피 자신 역시 전쟁을 원하는 쪽이었으니까.
“…. 그리 하겠소.”
드래곤은 뒤뚱뒤뚱 어색한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똥 마려운 개새끼도 아니고 왜 저렇게 걷는 걸까.
‘거참, 저 종족은 언제나 제멋대로군.’
황제는 완전히 사라진 그린 드래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 근데 잠깐만.”
드래곤은 대체 왜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까.
인간이나 엘프쯤은 눈 감고도 죽일 수 있을 텐데.
* * *
조르덴 제국의 수도.
대로를 따라 상인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사절단인 우리는 그들을 지나쳐 정문으로 직행해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곧바로 집필 장소를 찾아 움직일 생각이다.
아직 제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지만, 판타지 세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일단, 오늘 새롬이랑 데이트하고 있었는데 나 혼자만 분위기가 확 깨져서.
‘오늘 밤에 둘째 만들어야지.’
예쁜 주은이는 엄마가 봐주고 계시니까.
오늘은 하늘이 내려주신 절호의 쎅스, 아니, 찬스.
“성녀야, 우리 수도에 가면 황궁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되나?”
“네?”
【장소 : 조르덴 제국의 황궁, 랜덤 지정】
그놈의 랜덤 지정.
한때, 방송국을 다 찾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근데 황궁이면 그보다도 훨씬 넓고 복잡하겠지.
“으음, 지금 저희가 손님 신분으로 가는 거라….”
“그래서?”
“사절단이 막 돌아다니면 곤란해서….”
“거기서 안 돌아다니면 내가 곤란해.”
“제발….”
내가 없는 동안 존시나가 무슨 호구짓을 했길래.
“너네 그새 머리가 좀 컸다?”
“….”
그나마 성녀는 아직도 나를 좀 경외시 하는데.
엘프 공주는 납치당하더니 진짜 정신줄을 놨는지.
“에이, 사투리 안 쓰는 존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
“…. 킹받네.”
“헤헤.”
“야, 너도 집 나오면 그냥 일반인이야.”
“아뇨, 공주는 밖에서도 공주예요.”
“….”
얘는 아직도 지가 공주인 줄 알아.
꼭 망나니 김희정을 보는 것 같아.
다그닥, 다그닥─
마차는 어느새 제국의 초입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인물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반갑소, 로널드 백작이라고 하오.”
“반가워요, 저는 성녀 오클레아입니다.”
마차의 창을 열고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성녀.
“허허, 대륙의 성녀를 직접 보다니, 가문의 영광이오.”
“저 역시 대륙 10강 중에 한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럼 입궁하실…. 흠?”
이내, 로널드 아재는 마차 안쪽을 스윽 훑어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대는 버릇이 없군. 성녀께서 계시는데 감히 상석에 앉다니.”
“뭐냐. 갑자기 시비 털고 지랄.”
“뭐라?”
스르릉─
길잡이 아저씨는 본분도 잊고서 닥치고 검부터 뽑아 들었다.
과연, 칼 한 자루로 밥 빌어먹는 야만과 낭만의 세계다웠다.
“네 놈, 죽고 싶은 것이냐!”
이런 그지 같은 판타지 세상.
어차피 깽판 안 치면 내 맘대로 아무것도 못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