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2)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브론즈로 승급한 지도 벌써 일주일.
“이제 딱 하루 남았네.”
오늘은 성 감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호기롭게 말한 마감일이다.
그냥 한 달 안에 쓰라고 할 때 알겠다고 얌전히 말했으면 좋았을걸.
아직도 남은 편수는 두 편씩이나 되었는데.
시스템이 내 마음대로 발동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나저나….”
나는 얼마 전에 얻은 추가 베네핏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배우 변경
[Lv 1] : 다른 배우로 캐스팅을 작품당 ‘1회’ 변경할 수 있습니다.】이제는 대본 집필을 쓰지 않을 때도 시스템 언어를 볼 수 있었다.
고작 한 줄짜리 내용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은 보통이 아니었다.
“시스템에 이런 것도 있다니.”
스킬이잖아.
무려 스킬 레벨까지 있는.
“진짜 게임 시스템에 가까운데?”
이제 배우가 확정되더라도 한 명쯤은 바꿀 수 있는 건가.
학폭이나 부상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배역 더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을 때 바꿀 수도 있고.
“근데 레벨은 어떻게 올리는 거야.”
언제나 그렇듯 시스템은 불친절했다.
스킬을 쓰면 쓸수록 숙련도가 오른다던가.
레벨업의 힌트를 얻을지도 모르니까.
“이번 작품에서도 배우 변경권을 써보기는 해야지.”
당연히 시스템상에서 배우가 바뀌기야 하겠지만.
내 ‘기억’에 어떤 간섭을 하게 될지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띠링─
그때, 누군가에게 톡이 왔다.
“재준이네.”
[작가님 오늘 감독님이랑 장소 헌팅 다니신다고 하셨죠?]
보통 배우들은 작감 스케줄에 관심도 없을 텐데.
첫 주연작이라 그런가, 조연출 마냥 일정을 꿰고 있다.
재준은 연이어 내게 톡을 보냈다.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응?”
배우가 촬영지를 미리 체크해서 나쁜 건 없겠지.
시스템에 등록된 배우를 보면 시스템이 발동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래 그럼. 성 감독님께는 내가 말해 놓을게]
답장을 보내고, 나갈 준비를 했다.
끼이익─
방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또 나가는 거냐?”
“아, 네. 집에 계셨네요.”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는 어머니가 나를 배웅했다.
직원이 5명도 채 안 되는, 언제라도 망할지 모르는 작은 기업.
아버지가 경영하시는 소규모 회사에서 회계 관리를 맡고 계신다.
“요즘 드라마 잘 되고 있어서 다행이네.”
“아, 뭐. 잘 되는 건 아니고….”
“여기, 외투 하나 샀으니까 입어봐.”
“…. 감사해요.”
어머니가 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가려다가 다시 뒤를 돌았다.
“엄마, 일하기 힘드시면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뭐?”
“이제 제가 돈 벌 테니까. 아버지 연세도 있으신데, 그만 회사도 정리하시고….”
“진우야.”
“네?”
“엄마는 네가 드라마로 밥벌이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자랑스러워.”
“아….”
“늦겠다. 어서 나가봐.”
“네. 엄마.”
거의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수준으로 바쁘시니까.
덕분에 퇴근도 제때 못하시니까 걱정이 되었는데.
나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작품 서너 개 정도만 성공시키면 적당한 가게라도 차려드려야지.”
직원들 임금 지불하기도 힘든 지금의 사업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왕이면 돈은 못 벌어도 일이 편한 가게로 차려드리고 싶다.
* * *
성 감독님을 비롯한 촬영감독과 연출진.
거기에 템페스트 엔터에서 나온 제작사 직원들.
열댓 명의 사람들은 두 차로 나눠서 이동했다.
‘이번에 가는 장소는 주로 여주인공이 들르는 장소네.’
재벌가 주요 촬영지는 미리 섭외를 해놨지만.
남주들과 달리 여주인공은 평범한 캐릭터였으니.
세미가 돌아다니는 촬영 장소들은 협찬이 필수였다.
‘벌써 도착했다고?’
촬영지에 미리 도착했다는 재준의 톡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 신인은 신인긴가, 열정적으로 작품에 신경 쓰는 모습이 보기 좋네.
시스템이 배우 하나…. 아니, 세미까지 두 명을 정말 기가 막히게 정해주셨다.
“저기…. 작가님.”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변혁주라는 이름의 템페스트의 직원.
정 실장을 비서처럼 따라다니는 사람이었다.
“네. 변 팀장님.”
“이번 작품에 대해 말씀드릴게 있는데….”
변 팀장은 조심스럽게 PPL을 입에 담았다.
“홍삼….? 이제 와서요?”
“원래는 저희도 장소나 주변 소품으로 전부 채우려고 하긴 했는데….”
괜히 연출진 버리고 제작사 차 얻어 탔다가 피 보게 생겼네.
이래서 사람은 라인을 잘 서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이거 하나만 넣어주셔도 조금 편해질 것 같아서요.”
“음….”
생각해 보니까 그동안 PPL 요구가 너무 없긴 했다.
요즘 드라마 시장에서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인데.
“작가님, 그동안 정새롬 실장님께서 말씀드리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를 배려해 주신 거네요.”
“네. 사실 제가 이런 말씀 드렸다는 거 실장님이 아시면 저 죽어요.”
“음….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얼마 전부터 정새롬 실장의 표정이 어두운 것 같다는 변 팀장.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녀의 대본 독촉이 훨씬 심해졌다.
원래는 전혀 그런 게 없던 그녀였는데, 최근 들어서 갑자기.
“신인 작품치고는 너무 과하게 공을 들이신다는 거죠?”
“그, 그게…. 작가님 앞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맞아요.”
캐스팅에 대한 부분이라든가, 예능에 바로 꽂아 넣는 것도 그렇고.
그냥 내 작품이 좋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너무 행복회로를 돌렸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일단 알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네?”
“PPL 줄 수 있는 거 메일로 다 보내 주세요.”
“저, 전부요?”
“네.”
이내, 혼자서 천천히 생각했다.
‘사실 작품성보다는 돈이 먼저지.’
솔직히,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작품에서 예술성을 찾는 것도 코메디 아닌가.
마지막 파트 15, 16화쯤에서는 돈 좀 버는 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잠시 후,
촬영지에 도착하자마자 재준을 발견했다.
워낙 외모가 뛰어나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었으니.
천천히 다가서며 그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시스템이 발동해서 걸음을 멈췄다.
띵동─
“와아, 진짜 등록된 배우를 보면 시스템이 발동하는구나.”
【두 편 연속 집필 확률에 당첨되었습니다.】
두 편 연속….?
【내용 :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 15-16부】
【장르 : 로맨스, 재벌】
【장소 :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사옥 전략기획실】
【제한 시간 : 2일】
【※ 실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억 원】
“1억? 미친….”
그러면 설마 다음은 10억이냐?
금액 단위가 황당하게 오르네.
“하아, 참나.”
대신 두 편을 연속으로 집필하게 해주는 건 큰 혜택이다.
덕분에 마지막 화까지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전략기획실이면…. 정새롬 실장 집무실인가?”
아마 지성호 배우가 종종 들르는 장소겠지.
마침, 연출진들이 타고 온 차에서 성기훈 감독이 내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터벅, 터벅─
곧바로,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감독님. 죄송한데요.”
“아, 네. 김 작가님. 무슨 일로….?”
“오늘 촬영지 헌팅은 저 빼고 해주세요.”
“예? 갑자기 그러시면 어떡해요.”
“내일부터는 성실하게 참여할게요.”
“흠…. 그럼 오늘은 미리 봐둔 장소 위주로 돌아다니죠.”
“네. 감사합니다.”
어쩌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약속이지만 지키는 게 마음이 편했다.
오늘까지 16부 대본을 완성할 기회가 찾아왔으니.
“감독님, 제가 대본 언제까지 완성한다고 말씀드렸죠?”
“예?”
“오늘이에요. 이따 톡 할게요.”
“허, 그럼 하루 만에 두 편을 쓰시겠다는….?”
그렇게, 성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부지런하게 쓰면 8시간컷도 가능하지.”
* * *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는데….”
정새롬은 14부까지의 대본을 한자씩 곱씹어가면서 읽었다.
“진짜 3주 만에 거의 완결까지 쓸 뻔했네.”
사실, 처음 1부를 봤을 때도 느꼈던 감정인데.
요즘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매력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신들린 듯한 속도로 글을 뽑아내는 김진우 작가.
이 정도 퀄리티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런 작품을 가지고 흥행에 실패하면 무능한 거지.”
해외 판권을 팔아넘기면 제작비 회수는 일도 아니겠지만.
이왕이면 본방 때 시청률을 충분히 땡겨서 아버지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다.
그냥 성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초대박이 나서 깜짝 놀래킬 만큼.
“일단 홍보팀장이랑 얘기를 좀 더….”
삐이이이──
그때, 사무실 유선으로 신호가 왔다.
“네. 무슨 일이시죠.”
-실장님, 김진우 작가님 오셨습니다.
“…. 오늘 촬영지 헌팅일 아닌가요?”
-그, 그건 제가 알아보겠….
“됐어요. 들어오시라고 전해주세요.”
-네. 실장님.
뚝.
“뭐지? 갑자기 무슨 일로….”
용건은 잘 모르겠지만 할 말도 있었는데 잘 됐다.
새롬은 오른쪽 서랍에 넣어둔 계약서 한 장을 꺼내었다.
그리고 계약서를 다시 한번 스윽 훑어봤는데.
전속계약 5년에 연봉 1억.
보조작가 네 명 지원.
시청률과 비례하는 개런티.
세 작품쯤 크게 성공한 작가들에게 내미는 계약서.
신인작가에게는 과분하다 못해 넘치는 조건들이었다.
잠시 후,
김진우 작가는 천천히 들어와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실장님, 실례하겠습니다.”
“실례요?”
“네. 여기서 집필을 좀 하고 싶어서요.”
“으응….?”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잠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그의 행동을 지켜봤는데.
소파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펼치는 모습이 꽤나 자연스럽다.
“지금 뭐 하시는….”
타다닥, 타다다닥─
미친놈인가.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저게 뭐 하는 짓거린지 모르겠다.
순간,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그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래…. 그때도 딱 저 모습이었어.’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 쪽지를 남기고 사라진 작가.
그 작가의 1부짜리 작품을 보고 믿음이 생겨서 지금까지 이렇게 달려왔는데.
그때, 자신이 반해버린 작품을 썼던 그 사람은 이제 자신의 사무실에서 대본을 쓰고 있었다.
피식─
“그래도 허락 정도는 맡으시지….”
새롬은 슬쩍 말을 흐렸는데, 상대는 대답할 정신도 없는 듯 했다.
타닥, 타다다닥─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서 대본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정새롬은 천천히 걸어서 그의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 3분 동안 그의 타이핑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니, 무슨 속도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머릿속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기는 모습.
단순히 집필 속도가 빠르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마치 타자 연습을 하듯이 미친 듯한 속도로 글을 뽑아내고 있었다.
‘계약 조건은 다시 수정해야겠네.’
이런 속도로 쓰는데 대본의 질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퇴고가 전혀 필요 없을 것 같은 완성도를 유지했으니.
아니, 오히려 마지막 파트라 그런지 더 힘을 줘서 쓰는 느낌이었다.
「작가님 완전 천재예요. 그냥 믿어도 될 것 같은데.」
언젠가 지성호 배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네. 진짜 천재 맞구나….”
새롬은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음성을 뱉었는데.
그는 전혀 듣지 못한 듯이 대본을 쓰는 데에만 집중했다.
‘머릿속에서 구상을 끝내놓고 한 번에 글로 옮기는 거였어.’
이후, 그의 옆에 앉아서 하염없이 노트북을 쳐다봤다.
언제까지 그런 집중력과 속도를 유지하는지 지켜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