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23)
외전
[23] 죽은자들의 도시(7)미국의 예언자 클로이는 예지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좀비 사태의 종식 이후, 마지막 계시를 받은 게 바로 이틀 전.
그날로부터 자신의 능력이 사라졌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언니, 괜찮아?”
“….”
오랜 친우가 물어도 묵묵부답.
그럴 만도 한 게, 능력을 잃은 상실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언니는 원래 얼음 능력자였잖아! 예지 능력 없이도….”
“미사키, 위로 안 해도 괜찮아.”
“…. 응.”
클로이는 아끼는 동생을 천천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람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헌터, 미사키.
한국에서 예리가 오기 전까진 그녀의 적수가 없었는데.
“좀비 사태를 막은 건 네 덕분이기도 해.”
“응? 나보단 예리….”
“아니, 모두가 잘한 거야.”
사실, 최고의 기여도를 보여준 헌터는 따로 있었다.
그의 천리안이 아니었다면, 좀비 바이러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겠지.
“구원자님은 어디에 계셔?”
“그, 김인공 헌터?”
“응. 지금 어딨어?”
“아마 지금쯤 숙소에 있지 않을까?”
클로이가 받은 마지막 계시는 최근에 헌터로 각성한 윤혜진과 관련이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던전, 레드 게이트로 도주했으니.
그녀의 몸에 깃든 악마를 찾아서 제거하라는 임무.
“마왕조차도 그 사람의 재능을 질투한 거야.”
“아, 윤혜진?”
“응.”
모든 물질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는 성질.
단순히 S급 헌터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최초의 SS급 헌터라고 부르면 될까.”
“…. 그런 게 있었어?”
“없었지. 지금까진.”
아마, 마왕조차도 정면 대결로 윤혜진을 이길 순 없을 터다.
정신 계통의 마법을 이용해 몸의 통제를 빼앗았을 확률이 높았다.
혹시 악마가 윤혜진의 힘을 전부 흡수한다면.
인류는 언젠가 좀비 사태 이상의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겠지.
“레드 게이트로 들어가야 해.”
“…. 거기는.”
시간의 축이 심각하게 비틀린 공간.
그곳의 시간은 지구와 다르게 흐른다.
한번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었다.
돌아왔을 때 미래에 떨어질지, 석기시대로 돌아갈지.
“어쩌면 미래와 과거가 뒤섞인 평행 세계일지도 모르지.”
“….”
그곳에 들어가서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적도 있긴 하지만.
미성년자가 1시간 후에 노인이 되어 복귀한 사례가 전부였다.
“그래도 가야 해.”
“언니, 내가 같이 갈게.”
“괜찮겠어?”
“응. 나는 언니가 좋은걸. 헤헤.”
“….”
참, 바보 같은 동생이었다.
돌아오면 부모도 친구도 전부 사라질 텐데.
“같이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거야?”
“물론이지.”
“….”
잠시 후, 두 사람은 곧장 헌터들의 숙소로 향했다.
워낙 유명한 인물들이라 지나치는 시민들이 모두 알아봤다.
터벅, 터벅─
점차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만약에 천리안을 가진 그 사내가 도움 요청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다른 세상에서 윤혜진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마침, 화염술사 예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인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리야. 너 본명이 복만이었냐??”
“…. 누가 말했어. 죽여버릴 거야.”
“왜 이름을 숨기고 그래, 예쁜데.”
“정말?”
“으응. 풉.”
“웃어? 너부터 죽을래?”
“뭐라고? 복만이가 하는 말이라서 안 들리는데?”
“오키. 안 들리면 귓구녕을 뚫어줄게.”
화르르르─
순간, 예리의 전신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변 공기 중의 수분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아우, 화끈해라. 갑자기 잘 들리는 것 같아.”
“아니야, 너는 안 들려. 지금.”
“….”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걸어도 되는 건지.
‘…. 버리고 갈까.’
허나, 천리안이라는 유일무이한 능력은 필수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에게 동행할지 물어봐야만 했다.
“흠, 시스템도 퀘스트를 아무렇게나 주는 건 아니구나.”
“네?”
“따라갈게요. 저도 혜진이는 구해야 하니까.”
“아.”
두 사람의 친분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일단은 다행이지만 레드 게이트에 대해 설명해야겠지.
“일단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상관없어요.”
“….”
그렇게, 원정팀이 꾸려지는가 싶었는데.
예리는 잔뜩 심술이 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저기요, 왜 저한테는 안 물어봐요?”
“네?”
“저 헬기 운항도 할 줄 알아요. 제가 태워줄게요.”
“그…. 헬기를 태워주는 거 맞죠? 다른 거 말고.”
“???”
예리 정도의 실력자면 아주 큰 도움이 될 터.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먼저 제안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거기 가면 못 돌아온다면서요.”
“네. 맞아요.”
“그럼 인공이가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 아녜요?”
“으음….”
“그럼 당연히 저도 가야죠. 결혼할 사인데.”
“아, 그런 사이였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김인공은 쭈글이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 내 의견은.”
“그럼 총 네 명이네요.”
어차피 더 많은 인원을 데려가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레드 게이트에서 돌아올 때 필요한 마법석까지 생각하면.
“가시죠. 한국으로.”
“한국?”
미국 수뇌부만 알고 있는 레드 게이트의 위치.
한국 동쪽 해협 인근의 어떤 섬 근처에 열린 포탈이었다.
“어서 가시죠.”
“흠….”
* * *
돌아가는 상황이 뭔가 이상했다.
근데, 정확히 뭐가 어떻게 이상한지는 잘 모르겠네.
묘하게 어떤 작품이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어차피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시스템의 미션 때문이라도 갈 수밖에.
“클로이, 게이트 너머에서 다시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긴요. 시공간이 뒤틀린 다른 세계로 돌아오겠죠.”
“다른 세계면 못 돌아오는 거 아닌가.”
“…. 분명히 같은 세계예요. 시간 개념이 틀어질 뿐.”
“흠, 뭔 말인지 모르겠고.”
클로이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로봇이랑 공룡이 사는 세계가 되어있을지도 몰라요.”
“???”
“농담이에요.”
“…. 농담 맞지?”
100년이 지날지, 100만 년 전으로 갈지 모른다.
그러면 돌아와도 딱히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왜요, 그럼 그쪽 세계에 영원히 남아있으려구요?”
“그쪽 세계는 어떤 세계인데요?”
“거기서 돌아온 극소수 헌터들의 보고에 따르면….”
“???”
드래곤과 황제가 나오는 판타지 세계.
문득, 첫 번째 웹소설 작품이 떠올랐다.
‘그래, 뭐가 이상한지 이제 알 것 같아.’
마법소녀와 레전드 오브 더 트라이브를 요상하게 섞었듯이.
시스템은 이번에도 웹소설을 제 마음대로 뒤섞은 게 아닐까.
두두두두─
곧이어, 헬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국의 동쪽 해협에 있는 독도 인근에.
“자자, 도착했으니까 내리세요.”
클로이는 조심스럽게 마법석을 꺼내어 게이트 문을 열기 시작했다.
“다들 살아서 돌아오시길.”
“우리 죽으러 가요?”
주변 인물들의 신체에 주황빛 아우라가 물들었다.
곧이어, 강력한 마력이 게이트와 주변을 집어삼켰다.
‘현실에 돌아갈 생각만 하자.’
마왕에게 영혼을 빼앗긴 윤혜진을 제거하거나 구원하라는 미션.
물론, 그동안 정도 있고 추가 포인트도 있어서 웬만하면 구출할 생각이다.
잠시 후,
동료들과 함께 눈을 뜨자마자 꽤나 익숙한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대자는 힘을 숨기고 싶다」
그때 겪었던 세계와 굉장히 흡사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같은 판타지 세계관을 공유하는구나.
어쩐지, 마왕이라는 설정을 왜 굳이 또 쓰나 싶더라고.
‘절대자 때 최종 보스가 마왕이었지.’
아예 같은 빌런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연관은 있을 터.
마왕성은 다행히 이미 한번 갔던 곳이라서 길을 헤맬 걱정은 없었다.
“복만아,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
“예리라고 부르라고!”
“알겠어, 복만아.”
아무리 같은 세계관이지만, 같은 시간대에 떨어졌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여기엔 시간에 ‘거의’ 구애받지 않는 존재가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그린 드래곤 레어.”
그 친구는 어디 이사 안 가고 지금도 같은 곳에 살고 있으려나.
현지인-, 아니, 현지룡의 도움을 받으면 마왕도 잡을 만하겠지.
* * *
장장 50일여간의 여정.
절대자 시절과 달리, 평범한 헌터들과 함께 하는 마왕퇴치는 쉬운 미션이 아니었다.
아마, 존시나 PTSD가 있는 그린 드래곤의 서포트가 아니었다면 클리어할 수 없었겠지.
그런데, 진짜 전개는 윤혜진을 구출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간 뒤부터 시작이었다.
아무리 1부랑 2부를 나눴다고는 하지만.
이번 분량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시스템, 급전개 뭔데.”
기갑 로봇을 타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히어로들.
던전 속에서 공룡을 길들여서 대항하는 빌런들.
“마법소녀….?”
「죽은자들의 도시」, 이게 마법소녀 프리퀄이었냐고.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갑자기 세계관을 이렇게 틀어버릴 줄이야.
“아니, 그럼….”
다음에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그땐 마법소녀 세계관인 거잖아.
마왕 때문에 기억과 능력을 잃은 윤혜진이 등장하는 그 세계.
“니가 마법소녀 미미였냐.”
지금 보니까 살짝 미스 캐스팅이었네.
윤혜진은 아직 30살 되려면 멀었거든.
현재 최하급 헌터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마법소녀를 선택하는 캐릭터.
조만간 2차 각성 후, ‘코드네임 030’이라는 명칭의 기계팔을 달고 최강의 헌터로 성장한다.
“차라리 잘됐네. 안 그래도 영화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생략한 게 아쉬웠는데.”
애초에 드라마 캐스팅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여민서 말고 마법소녀 미미를 맡을 배우는 없으니까.
다른 마법소녀들도 마찬가지.
예리…. 김복만은 김희정, 미사키는 리코, 클로이는 에바.
“참나, 걔들이 전부 마법소녀였다니….”
그러고 보니, 영화 찍을 때도 오직 영상미를 강조했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마법소녀들의 세세한 과거는 언급한 적도 없었다.
그땐 런닝 타임이 짧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시스템,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혹시 다음에는 공룡이랑 싸우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어쩌면 기갑 로봇이랑 다이다이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 나갈 것 같에.”
내가 살다 살다, 기갑킹룡이랑 싸울 걱정을 하게 될 줄이야.
끼이익─
방문을 열고, 거실에 나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진우 씨?”
“예아.”
“왜 그래요, 갑자기?”
“뭐가요.”
“…. 삶을 포기한 사람 같은데.”
“그럴 리가.”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걸.
“저 이번 작품 3권까지만 쓸까 봐요.”
“네? 왜요?”
“아무래도 이번엔 조기완결을 쳐야 할 것 같아요.”
“…. 많이 힘들어요?”
“아뇨, 힘든 건 아니고.”
여보새롬에게는 「죽은자들의 도시」의 실체를 말해줘야 할 것 같다.
우리 와이프도 나와 함께 마법소녀를 만든 제작사 실장님이니까.
‘일단 웹피아 업로드는 90화까지만….’
윤혜진을 구하고 현실로 돌아가면, 그때부턴 마법소녀의 세계관을 공개해야 하니까.
아니, 그전에도 이미 마법소녀 느낌이 나긴 한다.
불, 얼음, 바람 속성인 것도 그렇고 캐릭터의 성격들도 비슷해서.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겠지. 같은 캐릭터니까.’
지금까지 웹소설 분량은 항상 6권 150화 분량이었다.
이번에 4, 5권을 끝냈으니까 마지막 권만 남겨두고 있….
“아니, 잠깐만.”
“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당연히 6권이라고 생각했지만, 매번 똑같다는 보장이 있을까.
더군다나, 이번 작품은 특이하게 1, 2부로 나뉘어 있잖아.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마지막회 정보열람(Lv 2)을 사용합니다.】
‘이런…. 8권까지였어?’
쎄함은 과학이라고 했던가.
아직 세 권이나 남았을 줄이야.
‘어지럽다. 진짜.’
시나리오 모드로 변경하려면 앞으로 대략 4, 5개월.
어쩔 수 없이 이번 작품은 잘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저기, 새롬쓰.”
“네?”
“이번 작품에 대해 해줄 말이 있거든.”
“무슨….?”
“사실은 마법소녀의 과거 이야기였는데.”
“???”
그러니까, 마법소녀를 전부 캐스팅해야 한다는 말이지.
* * *
강준은 지누 작가의 소설을 두세 번에 걸쳐 읽어봤다.
이미 소속사 측에 출연하겠다고 확실하게 말했으니까.
「죽은자들의 도시」
헌터물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남으며 각성하는 성장형 주인공.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결단력 있는 성격은 마음에 쏙 들었다.
“깡준, 캐스팅 확정이야?”
“아, 희정아.”
연기 연습실에 들어오는 여자친구를 맞았다.
오빠를 닮아서 장난기가 많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도 사랑스러웠으니.
“우리 같이 출연하는 건 어때?”
“됐네요.”
이미 소속사에서는 다른 드라마에 미팅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오빠는 내가 부탁한다고 캐스팅해주는 사람도 아니고.”
“…. 근데 주요 캐릭터가 완전히 너랑 닮았잖아.”
“예리?”
“응. 바로 맞히네.”
사실상, 이 작품에서 가장 메인 히로인에 가까웠다.
초반부터 주인공과 엮이고, 연애 감정을 느끼는 캐릭터였으니.
“흠, 그 캐릭터는 너무 까칠하지 않아?”
“…. 네가 그래.”
“뭐라고?”
“아,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죽을래?”
지금 보니까 더 똑같네.
“하여튼, 나는 독자로도 만족해.”
“지누 작가님은 좋겠네.”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쭉 팬심을 이어왔다.
캐스팅 확정되면 아마 원작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을 텐데.
“내가 만나면 꼭 네 이야기도 할게.”
“응. 고마….”
띠리리링─
그때, 희정의 스마트폰에 새롬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 언니네. 여보세요.”
-희정아, 지금 어디야?
“네? 연기 연습실에 있어요. 준이랑.”
-음, 잘됐네.
“???”
오랜만에 실장실에 직접 호출을 받았다.
느낌상 혼내려고 부르는 것 같진 않았다.
‘새 드라마 미팅 잡혔나.’
곧바로 연습실 문을 나서며 강준에게 손을 흔들었다.
“금방 갔다 올게.”
“응.”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같은 방향에 올라가는 배우와 마주쳤다.
“희정이!”
“리코 언니도 실장실?”
“응! 너두? 야 나두!”
“애들아, 같이 가아아!!!!!”
그때,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며 세이프 한 에바.
실장님은 대체 무슨 일로 배우들을 전부 불러모으는 걸까.
“뭐지, 마법소녀 새 예능 들어가나?”
“그런가 본데?”
“예능 좋아.”
여인들은 의문을 품고 실장실로 향했다.
노크를 두드리고, 문을 열었는데.
“어? 민서 언니까지.”
“어서 와.”
이미 실장실에는 여민서가 가장 먼저 와서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들어온 나지수 감독과 김진우 작가까지.
비좁은 사무실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많이 모이니까 북적거렸다.
“자, 일단 제가 전부 다 불렀어요.”
진우는 두어 번 헛기침하며 좌중을 둘러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부 캐스팅할 생각입니다.”
“…. 하필이면 이 조합을요?”
“너무 마법소녀 삘 아닌가?”
마법소녀 프리퀄.
이제는 솔직하게 전부 밝힐 차례였다.
“사실은 죽은자들의 도시가 마법….”
“작가님, 잠시만요.”
순간, 나지수는 진우를 제지하고 마법소녀들에게 말했다.
“이번 캐스팅은 이미 결정했으니까.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주세요.”
“으음….”
이내, 배우들을 물리고 나 감독은 대화를 이어갔다.
“본인이 마법소녀인지 모르고 연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나지수는 진우가 보여준 시놉시스를 보고 흥행을 확신했다.
좀비물에 해당하는 1부에 이어, 마법소녀로 넘어가는 2부까지.
“윤혜진이나 예리는 자신이 마법소녀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아직 마법소녀도 아닌데.”
“네. 그래서 지금은 모르고 연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감독이 원한다고 하니까 맞춰 줄 수는 있지만.
“진우 씨, 그렇게 해요.”
정새롬 실장까지 나 감독의 의견에 거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혼자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캐스팅 거절하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음?”
“다들 얼마나 기대했는데요. 작가님 차기작을!”
* * *
최근, 방상구는 추악한 질투심에 빠져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지누 작가의 급작스러운 성공은 그의 못난 마음에 불을 지폈다.
데뷔한지 1년도 안 된 신인이 웹툰도 아니고 드라마화까지.
놈이 프로모션을 빼앗은 악연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필이면 같은 회사의 새파란 신인에게 밀려 회사에서도 쫓겨났으니.
딸깍─
오늘도 그의 조회수를 확인하는 게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젠장, 그새 또 올랐네.”
드라마화 소식에 이어서 들려오는 캐스팅 소식.
솔직히, 조회수가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했다.
오늘따라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대체 얼마나 재밌게 썼으면 공모전을 떠나 디지니에서 제작하려고 했을까.
“칫, 그냥 평범한 좀비물이잖아.”
재벌 좀비가 낫지 않나.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눈은 계속 지누의 작품을 읽고 있었다.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
그게 이 바닥에서 말하는 필력이 아닐까.
“흐음….”
어느새 최신화까지 읽고 노트북을 덮었다.
드럽게 재밌다.
짜증 나지만 그게 사실이다.
“근데…. 이거 뭔가 비슷한데.”
순간, 뇌리에 어떤 작품이 스쳐 지나갔다.
불과 얼음, 바람 마법을 쓰는 여인들.
게다가 캐릭터까지 묘하게 겹쳐 보였으니.
“미친, 이거 마법소녀잖아!”
순간, 방상구의 입가에 가느다란 실선이 생겼다.
“이 새끼, 김진우 작가랑 친하게 지내더니 정신 나갔네.”
마법소녀 팬들이 얼마나 극성인데.
알량한 친분 따위로 표절을 봐줄 것 같냐.
아니, 김진우 작가도 지누에게 실망하게 되겠지.
타닥, 타다닥─
실로 오랜만에 생기를 찾고 작업을 시작했다.
소설 집필이 아니라 표절 근거 자료를 만드는 과정.
몇 날 며칠 동안 밤을 새워서라도 그를 파멸시킬 수 있다면.
“지누야, 나락가자.”
며칠 뒤, 방 작가는 퀭한 눈으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방상구라는 필명까지 오픈하고, 지누 작가를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국민적인 대작가의 대표작, 마법소녀의 표절.
절대 웹소설 시장에서만 머무를 논란이 아니었다.
* * *
나지수 감독의 예상대로 배우들은 캐스팅 제의를 수락했다.
내 차기작에 출연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그게 꼭 나만의 작품이 아니라, 각색한 작품일지라도.
모든 배우의 개런티 협상을 끝내고, 드라마 제작에 돌입했다.
“웹소설 1부는 오늘로 끝나겠네.”
일단, 판타지로 넘어가서 마왕을 퇴치하는 내용까지.
그 과정에서 마법소녀 떡밥을 무수히 흘렸으니.
아마 눈치 빠른 독자는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마법소녀 세계로 이어지는 내용은 비축을 천천히 쌓기로 하고.
「죽은자들의 도시」와 트타디 작가님의 작품.
두 작품의 각색을 맡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띠링─
대본 집필에 여념이 없던 와중에, 와이프에게서 톡이 날라왔다.
[진우 씨, 트타디 작가님 작품 캐스팅도 확정 났어요]
이 작품 또한 랜덤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내가 각색하는 만큼, 전부 1티어 배우들로 세팅했다.
“당분간 웹소설은 휴재하자.”
아직까진 대중에 밝힐 때가 아니었다.
김희정만 해도 원작 작가를 언제 볼 수 있느냐고 성화였으니.
마법소녀 배우들도 모르고 있는데,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최근 대본 작업하느라 바빠서 시스템이 많이 봐주는 느낌이다.
벌써 몇 주 동안에는 저쪽 세계로 데려갈 기미가 없는 걸 보면.
“이대로 석 달만 더 버티면….”
띠리리링─
그때, 레이블 미디어의 도준배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내 본명을 밝힌 뒤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웬일로 연락했나.
“여보세요. 대표님.”
-저기…. 작가님.
“네?”
도 대표는 이전과 달리 훨씬 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아직 91화 업로드가 안 올라와서요.
“…. 거기까지 1부 완결입니다.”
-아, 그러신가요?
마법소녀 떡밥을 잔뜩 뿌리고, 기갑킹룡의 세계로 가기 직전까지.
당분간 마법소녀 프리퀄이라는 사실은 숨겨야지.
좀비물 촬영을 마친 뒤에 발표할 계획이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비축 쌓고 있어서 한 번에 업로드하면 되니까.”
-음, 근데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네?”
-캐릭터들이 마법소녀랑 너무 비슷해요.
“…. 비슷한 게 아니라 같은 캐릭터예요.”
-????
마법소녀는 디지니 플레이 최고 아웃풋.
도 대표는 그 작품의 프리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 비축분 쌓고 있어요.”
-와아…. 우리 회사와 계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새삼스럽게….”
-우리 편집자가 작가님 완전 팬이에요!
“그래요? 고마워요.”
레이블 미디어 직원들과 소소하게 식사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 대표의 기우는 현실이 되었다.
《김진우 작가가 각색하는 웹소설 원작, 「죽은자들의 도시」 마법소녀 표절 논란!》
방상구 작가의 공개 저격에 이은 인터넷 기사를 보고 생각했다.
김진우가 난데, 그럼 지누가 김진우를 표절한 건가.
아니면, 김진우가 지누를 표절한 건가.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뭐야, 이거.
표절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