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3)
타다다닥─
진짜 마지막화라는 생각에 엔도르핀이 샘솟았다.
최종 빌런은 15부 마지막쯤에 재판장에서 엔딩을 맞으며.
16부에는 전체적으로 힐링하면서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마지막회에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운동 끝나고 에너지 드링크? 건강에는 역시 홍삼 드링크지.”
“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운전? 이왕이면 전동 킥보드로 가자.”
“비서한테 보고 받을 때는 안마의자에서 받는 게 국룰이야.”
이제 보니까 PPL 넣을 구석을 찾으려면 끝도 없다.
꾸역꾸역 넣으려니까 단 한 편에도 전부 다 때려 박을 수 있을 것 같아.
“끝났다!”
하얗게 불태웠어.
작가의 손을 떠난 대본은 감독과 배우의 몫.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내가 본 드라마와 최대한 비슷한 장소를 고르는 정도?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결말이 제 마음에 쏙 드네요.”
“아, 아직 계셨어요?”
“네. 계속 있었던 건 아니고.”
30cm 거리에서 정새롬 실장의 향수 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
세미 덕분에 여성의 외모에는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약속을 지키셨네요. 3주 안에 완결까지 쓰겠다는 말.”
“뭐,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
“아, 그래요?”
“…. 매번 약속 시간에 늦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 실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서 괜한 사족을 덧붙였다.
글 쓰느라 밤낮이 바뀐 건데 이해해 줄만 하지 않나.
이내, 새롬은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운 입술을 달싹였다.
“그나저나, 성호한테는 새드엔딩이군요.”
“음, 그렇긴 한데….”
“너무 좋네요.”
“네?”
“시청자랑 배우가 모두 만족할 수 있겠어요.”
그야, 기본 베이스는 해피엔딩이니까.
“근데…. 몇몇 장면들은 좀 이상한데요?”
“어디요?”
새롬은 정확히 PPL을 집어넣은 특정 장면을 언급했다.
“주인공이 안마의자에서 보고를 받는다고요?”
“돈 벌어야죠. 주인공 헬기 태우려면.”
“….”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해서 그런지 새롬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돈 벌어다 준다는데 왜 이러실까.
전부 계산 하에 집어넣은 PPL이건만.
“거, 걸그룹한테 콜라 원샷? 이거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아, 그런가?”
“네. 그러니까….”
“역시 그 부분은 제로 콜라로 바꿔야겠네요. 땡큐.”
“….”
처음에는 시스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브론즈 등급에 오르니까 마음이 편해졌어.’
시스템은 철저하게 내 능력의 일부이며.
성공하기 위한 주요 수단에 가깝다는 사실.
마지막화에 PPL을 욱여넣어서라도 제작비를 건지는 게 이득이지.
오히려 끝에 넣으니까 작품성도 안 해치고 시청자 이탈도 없을 테지.
“다 봤는데 어떻게 하차하실?”
“???”
이제 대본도 다 썼는데, 배우 변경권도 한 번 써봐야겠지?
“실장님, 재준이 어디 있어요?”
“아, 임재준 배우님이요? 장소 헌팅 끝나고 방금 사옥에 들렀다고….”
“…. 잠깐만 퇴근하지 마세요. 여기 한 번만 더 들를게요.”
다시 들러서 드라마 내용 확인해야 하니까.
* * *
놀라운 경험이었다.
기억이 새로운 기억으로 덮여버리는 현상.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었으니.
“주인공이 바뀌었어.”
시스템이 알려준 임재준의 적합도는 주인공인 천지호 캐릭터와 97% 일치했다.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의 얼굴이나 행동과 말투, 대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흔한 양산형 성형 미남 중 한 명으로.
“주연 배우도 바꿀 수 있구나.”
레벨업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결과를 얻은 기분이다.
삐삐, 삐삑─
그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희정이.
“왔냐?”
“어.”
살짝 피곤해 보이는 모습의 여동생.
방에 들어가려는 그녀를 붙잡고서 물었다.
“희정아, 극단 생활은 할 만해?”
“갑자기?”
“어. 그냥 물어보는 거야.”
“음….”
저번에 오디션에서 본 선배놈 때는 괜히 아는 척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요즘은 좋아. 갑자기 선배들이 쓸데없는 간섭도 안 하고….”
“…. 그래?”
“아, 원래 나쁘다는 건 아니고. 좀 더 착해졌다는 말이야.”
“잘됐네.”
쿵─
희정이는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방에 들어갔다.
두세 작품만 성공하면 살생부에 적힌 놈들한테 제대로 복수해 줘야지.
겨우 이 정도로 원수를 잊어버리면 김씨 가문의 조상님들이 노하실 거야.
“대본도 다 뽑았고, 가정도 평안하고….”
이제 남은 건 단 하나뿐이다.
드라마 촬영, 그리고 성공.
시스템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결국에는 시청률뿐이니까.
여기까지 오는데 6년이나 걸렸다.
이민주 작가의 핍박을 견뎌온 인고의 시간.
달콤한 과실을 취하기까지 오직 한 걸음만 남았다.
이내, 내 방에 들어가서 대본을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퇴고를 반복했다.
* * *
시간이 흘러, 첫 촬영 당일이 되었다.
장소 헌팅, 타이틀 촬영, 대박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는 일정까지.
오랜만에 꽤나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보낸 시간들이었다.
“결국 여기까지 오기는 왔네.”
그동안 수정한 대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몇몇 PPL을 더 넣고 싶었는데, 오히려 정새롬 실장은 극구 반대했다.
“보통 제작사들은 많이 넣을수록 환영하는데….”
분명히 돈 벌려고 드라마 한다고 말해놓고 이제는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JTBS 방송국 순정마초 세트장.
첫 번째 촬영을 위해 연출팀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
이내, 편의점에 들러서 스태프들 간식들을 이것저것 골랐다.
신인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스태프 연봉이랑 비교하면 넘사벽이다.
고작 작품 하나 집필했는데, 반년도 안 되는 시간에 8천만 원을 벌었으니까.
이런 데뷔의 순간을 기다리며 보조 작가 시간을 감내하는 거지만.
반대로, 데뷔작이 망하는 순간 더이상 복구할 수도 없는 타격을 입을 터다.
“성 감독님은….”
바쁘시구나.
철제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인데,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다녀간다.
조명감독, 촬영감독, 소품팀, 의상팀, 주조연급 매니저들까지.
양손 무겁게 들고서 세트장에 들어왔는데.
한쪽에 커다란 화이트 보드에 여러가지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촬영 일정과 관련된 내용인 줄 알았으나.
“첫 방 시청률 내기? 이건 안 하는 데가 없네.”
방송사와 스폰서들을 울고 웃게 하는 수치.
시청률에 따라 광고 효과는 극명하게 갈릴 테니까.
《내기 판돈 입금 계좌번호 : 483402-….》
『최만호 3% 100만 원』
『조연출 우형민──』
『분장팀 예미진──』
『세미 5% 10만 원』
『임재준 2% 5만 원』
『지성호 0.53% 20만 원』
“…. 지성호 이 쉑.”
돈 좀 벌겠다고 0.5%에 걸어?
다른 사람들도 2%가 대부분이고.
케이블 TV에서 성공한 시청률의 기준은 약 3%.
언론에서는 첫 방 시청률이 1%만 넘겨도 선방한 거라고 떠들어 대었으니.
사실상, 신인배우 때문에라도 첫 화 시청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첫 방송 이후, 그다음 주부터는 MBS의 강력한 경쟁작과 붙을 예정인지라.
“하아, 암담하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중, 내 얼굴을 알아본 조연출과 눈을 마주쳤다.
“어? 자, 작가님! 안녕하세요.”
그제서야 주변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밖에서는 기껏해야 신인작가에 불과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거의 감독과 투톱이니까.
“작가님, 여긴 어쩐 일로….”
성 감독의 후배, 조연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거, 간식 좀 샀어요.”
“뭘 이런 걸 다….”
그의 옆에 있던 연출팀 중 한 명이 냉큼 다가와서 내 손에 있던 검은색 봉투를 건네받았다.
“괜히 와서 제가 방해했네요.”
“에이, 무슨 말씀을….”
말은 그렇게 해도 어딘가 급히 가야 하는 눈치였다.
“빨리 가보세요.”
“아, 네! 작가님.”
작품을 위해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는 스탭분들.
한 장면을 위해 몇 시간째 대기 중인 배우님들.
내게는 전부 고마우신 분들이었다.
잠시 후,
첫 번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몇몇 배우들이 대기했다.
최만호 배우님이 연기를 하실 차례였다.
배우들도 짬순으로 촬영에 들어가니까.
그다음 장면도 선생님으로 불리는 조연배우들의 차례.
주연배우들이 다들 신인배우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
‘세미는 분장하고 있으려나.’
아마 호출받을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신인배우들도 많았지만.
터벅, 터벅─
“어….? 자, 작가님. 안녕하세요.”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대본을 보고 있는 배우에게 다가섰다.
아마 6부쯤에 있는 단 한 씬을 찍기 위해 대기 중인 신인 연기자.
“신조훈 배우님, 오늘 얼마나 더 기다리세요?”
“아, 네! 다섯 시간 정도….”
주연배우를 제외하면 시스템에 등록한 유일한 배우.
시스템에서 본 드라마 속, 그의 악역 연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주연이 될 마스크는 아니지만, 명품 조연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았다.
“신 배우님, 혹시 소속사 있으세요?”
“아, 아직은 없습니다.”
“혹시 연기 경력이 얼마나 되시죠?”
“독립영화로 데뷔해서 현재 2년 반 정도….”
아마도 경력 3년 정도까지는 시스템의 범위인 것 같다.
브론즈로 올라서 조금은 폭이 넓어졌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템페스트는 어때요?”
“네에?”
“제가 꽂아줄 수 있는 건 아니고, 오디션 한번 보세요.”
“지금 공개오디션 기간이 아니라….”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미리 말해놓을게요.”
“저, 저 한 명 때문에요?”
“그럼요. 재능이 있으셔서.”
“가, 감사합니다. 작가님!”
초반부에는 임팩트가 없지만 14부에 연기가 물오르니까.
그쯤 되면 이번에도 내 안목이 정확했다고 판단하시겠지.
캐스팅 디렉터로 추천해준 누군가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템페스트 카페 직원 앞에서 나에게 꼽을 준….
“여민서 배우.”
그때 카페에 계셨던 김현지 배우님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정 실장을 통해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 * *
그 시각, 김현지는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현지야.”
“네, 언니.”
신인배우의 매니저치고는 연차가 상당한 템페스트의 직원.
회사에서 김현지를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근처에 JTBS 방송국인데 선배님들한테 인사라도 하고 갈래?”
“그러고 보니까, 오늘 순정마초 첫 촬영일이네요.”
“지성호 배우님 매니저한테 들었는데. 김진우 작가님도 오셨다고 하더라.”
“아….”
“불편한가?”
“아, 아니요! 전혀요.”
여배우 여민서에 의해 퍼진 소문이 있었다.
김진우 작가가 김현지에게 번호를 물어보고 까였다는 소식.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김 작가의 안목을 칭찬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만큼 트레이너들은 김현지 배우의 스타성을 높이 샀으니까.
“가야죠. 저희 소속사에서만 두 명이나 출연하는데.”
“그래. 그럼.”
하지만 방송국에 가까워질수록 현지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준 김진우 작가.
그 덕분에, 지금은 꿈만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그를 처음 본 날 무례하게 했던 행동에 얼굴이 붉어졌다.
‘정중하게 사과드려야지.’
잠시 후,
김현지는 JTBS 방송국 순정마초 세트장에 도착했다.
그런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으니.
두근─
김진우가 세미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기현상.
세트장에서 그녀를 보는 즉시 새로운 작품이 찾아왔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두 번째 작품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