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4)
김현지는 넋을 잃고 주연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감상했다.
“와, 퍼플걸스 세미 님….”
인기 아이돌, 그중에서도 센터라고 불리는 비주얼 멤버.
그런 사람이 배우 화장까지 하니까 매력이 엄청났다.
게다가, 16부작 드라마의 원탑 여주인공이었으니.
신인배우에게는 너무나도 높아 보이는 경지였다.
아무리 빨라도 5년, 어쩌면 10년이 걸려도 도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화려한 외모만큼, 그녀의 연기도 반짝거렸다.
도저히 흠결을 찾을 수 없는 연기를 가뿐히 소화했기에.
“너무 완벽해서 부럽다는 생각조차 안 드네.”
한차례의 NG도 없이 가볍게 감독의 사인을 받아내는 모습.
김현지는 그저 동경의 시선으로 세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천재구나.”
배우로서 연기 경력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여타 아이돌 멤버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그냥 캐릭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압도적인 재능.
“컷. 다음 장면.”
세미는 매니저가 둘러주는 외투를 걸치고 천천히 걸어왔다.
‘어, 이, 이쪽으로 오고 있….!’
현지는 천천히 다가오는 세미를 보며 당황했다.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을 현실에서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아, 안녕하세요!”
“네?”
“그, 그게…. 템페스트 엔터 신인배우 김현지입니다!”
“아…. 김현지 배우님, 반가워요.”
싱긋─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은 여신이 따로 없었다.
“저, 저기…. 혹시 사인 한 장만….”
“그럼요! 열 장도 해드려야죠.”
대외적인 이미지와 100% 일치하는 모습.
현실에서도 세미는 천사, 그 자체였다.
김현지는 급하게 종이와 펜을 찾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세미는 누군가를 부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작가님!!!”
그녀는 환한 미소로 자신의 뒤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누가 세미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할 수 있을까.
여자였음에도 그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낄 만큼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뒤를 돌아 그게 누군지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김진우 작가님….?’
현지는 깜짝 놀라서 진우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현지라고 합니다!”
이전에 카페에서 만났던 그때와는 상황이 180도 뒤바뀌었다.
그는 이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 드라마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으니.
‘왜…. 왜 저런 눈으로 나를 보시는 거지?’
김진우는 대답을 받지도 않고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봤다.
심지어 세미에게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번에 뵈었죠?”
“아, 카페에서….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작가님이신 줄도 모르고….”
“김현지 배우님.”
“아, 넵! 작가님.”
김현지는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대답했다.
세미와 임재준이라는 배우를 발굴하고, 자신을 템페스트에 추천해준 사람.
그에게 밉보인다면 배우 인생이 꼬여도 한참 꼬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네?”
“덕분에 공백기 없이 글 쓸 수 있겠네요.”
“???”
한편, 옆에서 지켜보던 세미는 김현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 *
이렇게 갑자기 두 번째 드라마가 생겨버릴 줄이야.
사실, 처음 김현지 배우를 만났을 때도 이런 날을 예상했었지만.
‘여기 오기 잘했네.’
괜히 돌아다니다가 다른 배우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
이상한 배우한테 잘못 걸려서 작품이 묶여버릴지도 모르잖아.
예를 들어, 여민서처럼 까칠한 배우라던가.
그때였다.
“세미야! 다음 스케줄 바로 가야 하는데.”
“아, 응.”
레인보우 엔터의 매니저가 멀리서 세미를 불렀다.
“아! 세미 씨, 방금은 미안해요. 오늘 촬영은 어땠어요?”
“…. 괜찮았어요.”
“가보셔야 하겠네요.”
“네에….”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어깨가 축 처져있는 세미.
그녀는 김현지 배우를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연기할 때는 좋았는데…. 갑자기 기운이 없어 보이네. 무슨 일 있나?’
옆에서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김현지.
그녀를 내버려 두고 시스템이 내려준 다음 작품을 확인했다.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금천빌딩 403호】
【제한 시간 : 34일】
【※ 실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억 원】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라….’
장르는 마음에 드네. 날짜도 많이 남았고.
로맨스만 쓰는 작가로 못 박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지금까지 시스템은 항상 날짜를 여유롭게 책정했으니.
제주도에 갈 때도 그랬고, 두 편 연속 쓸 때도 마찬가지.
아직 첫 방송도 나가지 않아서 그런지, 기한이 한 달이 넘게 주어졌으니.
이래서 보통은 시간보다 장소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장소에 한 번 들러볼까.
그때, 김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작가님….?”
내가 너무 빤히 쳐다봤던 모양이다.
곧이어, 그녀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혹시 최근에 구로에 가신 적 있으세요? 아니면 옛날에라도.”
“네? 아니요. 잘 기억이….”
당연히 주연배우가 방문한 장소일 확률이 높을 터.
김현지 배우와 상관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남자 주인공이랑 관련이 있을 수도.’
주말에 제작발표회 스케줄이 있으니까.
그 전에 잠깐 들러서 확인해 봐야겠다.
* * *
“이번 남자 주인공…. 설마 현실에서 깡패는 아니지?”
어쩐지, 뭔가 잘 풀린다 싶더라니.
장르도 범죄 스릴러라고 하니까 괜히 쫄리잖아.
스윽─
사무실 앞에 널브러진 전단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돈 빌려드립니다! 최저 이자율 보장!!!』
왠지 모르게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금천빌딩 내부.
특히, 건물의 403호는 대부업 사무실이었으니.
“이게 말이 되냐.”
이거 그냥 조폭사무실 같은데.
그 안에서 드라마 대본을 쓰라는 건 누구 아이디어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빛이 있는지 확인은 해보고 싶은데.
그래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때였다.
“뭐여.”
험상궂게 생긴 떡대 형님이 삐딱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음…. 상담을 좀 받으러….”
“들어오슈.”
끼이익─
떡대는 앞장서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치겠네.’
시스템 때문에 깡패 사무실에도 들어와 보고, 별일이 다 있다.
“얼마 정도 빌리러 왔는가?”
“그게….”
나에게 묻는 말을 뒤로한 채 한 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형광등 하나가 나갔지만 오히려 그 어느 곳보다 환하게 빛이 났다.
털썩─
일단은 소파에 앉아 무식하게 빛에 몸을 맡겼다.
대본은 못 쓸지언정 드라마 내용은 미리 보고 싶어서.
순간, 새하얀 빛무리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단숨에 드라마를 전부 본 것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와, 미쳤네….’
새로운 드라마의 1부를 기억하는 순간,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기 이자를 보시면….”
“정말 죄송한데. 일단 명함만 받고 다음에 다시 찾아도 될까요?”
“지금 나랑 장난하는…. 흠, 그려. 그러시든가.”
“죄송합니다!”
사내는 인상을 팍 쓰더니 손을 휘적거렸다.
나 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끼이익─
이내, 금천빌딩을 벗어나 근처에 카페에 들어갔다.
“일단…. 생각나는대로 써야 해.”
드라마 한 편을 봤다고 그 안의 대사를 하나하나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미리 충분히 써놓고 다시 찾으면 시간이 절반 이하로 단축될 테니까.
빛에 휩싸일 때처럼 생생하게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장면들이 드문드문하게 떠올랐다.
타다, 타다다닥─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24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능력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주인공.
처음 능력을 각성했을 때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남용했다.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익명의 천재 투자자로 명성을 떨쳤지만.
주변 사람들은 점차 그를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가까운 지인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을 때는 의문을 가졌고.
친한 친구가 자신을 잊어버렸을 때는 위기감을 느꼈으며.
가족을 전부 잃어버리고 나서야 회귀 능력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후, 5년 동안 회귀 능력을 자체 봉인하며 살아간다.
본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친한 이웃처럼 지내면서.
“김현지 배우는 마지막에 등장하는구나.”
늦은 밤, 남자가 교통사고 뺑소니를 목격하는 장면을 끝으로 1부가 마무리되었다.
김현지가 차에 치여서 10m 밖으로 튕겨 나가자마자 주인공이 회귀하는 엔딩 씬.
“근데…. 이 남자 누구냐.”
이번에도 어김없이 무명배우라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어디서 한 번쯤은 본 것 같아서 살짝 의문스러웠다.
“기억이 잘 안 나네.”
한물간 배우거나, 아역배우 출신이거나, 아니면 신인배우 같기도 하고.
슬픔과 감정선이 드러나는 연기에 최적화된 마스크.
불쌍한 연기를 할 때 나오는 배우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잠깐만.”
내가 들렀던 사무실이 대부업을 하는 곳이잖아.
그런 사무실에 조폭만 들어가라는 법이 있나?
오늘 나처럼 돈을 빌리겠다고 들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손님들 명단 확인하면 그중에서 배우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한 번은 만나보고…. 노답이다 싶으면 스킬로 바꾸든가 해야지.”
아, 근데 그 사무실에는 어떻게 또 들어가냐.
어쨌든 대본도 써야 하니까 다시 가긴 해야겠는데.
아까 떡대 형님이 내 얼굴을 딱 기억한 거 같다고.
“에이, 아직 한 달이나 남았으니까.”
얼굴 까먹을 때쯤 다시 들러야겠다.
* * *
며칠 후, 제작발표회장.
정새롬 실장은 어김없이 지각하는 김진우 작가에게 톡을 보냈다.
“아,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야 한다니까.”
띠링─
이내, 진우에게 톡이 도착했다.
[늦잠 ㅠㅠ]
[택시 타고 가고 있어요 ;;;]
[어젯밤에 대본 쓰느라…. ㅎ]
“대본? 또 수정할 게 남으셨나.”
제주도 때도 느꼈는데 시간 개념이 여느 스타작가 못지않았다.
대본 뽑는 실력만 아니었으면 상종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중요한 날마다 매번 늦냐고!”
잠시 후,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김진우 작가를 발견했으니.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완전히 지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김 작가님, 지금 빨리 대기실 가서 메이크업 받으시면 됩니다.”
“아, 넵.”
돌아서는 진우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렸다.
이내, 대충 집어넣어서 꾸깃꾸깃해진 A4 용지 열댓 장을 꺼내었는데.
“이거 어젯밤에 쓴 건데 한번 읽어보세요.”
“네?”
“여주인공이 템페스트 배우님이니까.”
“???”
이상한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김진우 작가.
새롬은 궁금한 마음에 대본을 펼쳐보려고 했으나.
“실장님, 포스터 관련해서 말씀드릴게….”
어떤 직원의 요청을 듣고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
“변 팀장님,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네?”
“우리 배우들 중에 괜찮은 배역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정 실장의 뒤에서 다양하게 일을 처리하는 변혁준 팀장.
작품을 보는 눈 하나는 새롬 만큼 정확한 인물이었다.
“이거….”
변혁주 팀장은 여민서 배우와 가장 친한 직원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신인 시절부터 로드매니저 생활을 4년씩이나 했었기에.
“여주인공은 딱 한 장면뿐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서브 여자 주인공의 매력이 두드러졌다.
이번 작품에서 대박의 향기가 솔솔 나고 있었으니.
이 작품의 주역들은 찬란한 영광을 누릴 게 분명했다.
“실장님이 김진우 작가님을 괜히 아끼는 게 아니구나.”
그의 머릿속에는 김진우와는 완전히 다른 로드맵이 펼쳐져 있었다.
남자주인공부터 여자주인공까지 최적의 인물들을 떠올려 보았다.
시스템이 아닌, 김진우가 ‘스스로’ 작성한 대본 한 부.
그 누가 작품의 주역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