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5)
제작발표회 관계자 대기실.
아마, 작가로서 공식적인 자리는 오늘이 유일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문가의 분장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조금 떨리네.”
옆에서 주연배우님들이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임재준에, 지성호, 세미까지.
마치 동물원에 온 것 같아.
세미는 분위기를 깨고 싶었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작가님 완전 잘생겼어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진짠데….”
선남선녀들이 모여서 민간인 괴롭히는 느낌이다.
옆에 있던 지성호는 굳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세미야, 일부러 그러지 마. 작가님 무안하게.”
“으음….”
니가 제일 나빠.
이내, 의상을 준비하러 배우들이 전부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그때, 뒤에서 낯선 남자가 말을 걸었다.
‘이수훈?’
이미 1군으로 취급받는 MC로, 각종 방송에서 활약하는 예능인.
개그맨 출신으로 어디에서나 기복 없이 제 역할을 소화하는 인물이었다.
“원래 신철이가 오기로 했는데, 대타로 왔습니다. 같은 소속사라….”
“아, 대타로 더 대단하신 분이 오셨네요.”
강화 성공인가.
“사실 저도 작가님 대본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MC를 호출했다.
“그럼, 저는 먼저….”
사라지는 이수훈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상대가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번호는 물어봤어야 했는데.
인맥이 실력인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니까.
“아니, 됐어. 글만 잘 쓰면 됐지.”
사실, 내가 그토록 인맥에 신경 쓰는 이유는 ‘그’ 여자 때문이었다.
이민주 작가.
나 같은 건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JTBS에 압력을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혹시,
“저번에 녹음 파일로 협박한 게 유효했나?”
겨우 그 정도로 무너질 이민주가 아니지만.
멘탈만 놓고 보면 그렇게 단단한 사람은 아니니까.
* * *
“김 기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자, 작가님 그 작품은 절대 못 건드려요.
“그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하아…. 그거 말씀드렸다가 저한테 불똥이라도 튀면….
“나 진짜 미치는 꼴 보고 싶어?”
-….
이민주는 성질을 부리며 김성태 기자를 닦달했다.
이대로 순정마초가 순탄하게 방영되는 꼴은 볼 수 없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수없이 도움을 받은 김 기자.
독점 인터뷰라든지, 작품 정보를 가장 먼저 받아먹지 않았던가.
이내, 기자는 한숨을 푹 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그럼 제가 말했다고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시면 안 돼요.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천성 그룹.
“…. 뭐?”
김 기자는 갑자기 뜬금없이 대기업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 작품 투자사 줄 타고 올라가면 천성 그룹 꼭대기까지 닿아요.
“이런 미친….! 그게 말이 돼?”
투자에도 상식이 있고, 제작에도 체급이 있는 법이다.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라도 어이가 없을 텐데, 16부작 멜로 드라마에 무슨.
-하여튼,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
뚝.
상대는 이민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끊어버렸다.
“김진우…. 설마 재벌이었어?”
이내, 이민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주머니 사정은 훤히 알고 있었으니.
오히려 템페스트 엔터를 의심해 보는 게 합리적이다.
천성 그룹에서 투자해서 제작사로 성장한 회사니까.
다만 의문이 남는 건,
“템페스트가 굳이?”
고작 신인작가의 작품 하나가 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하물며, 천성 그룹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케이블 드라마에 투자할까.
“…. 운이 좋네. 김진우.”
어차피 이번 작품도 성공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경쟁작이 버젓이 존재하고, 시청자들도 보는 눈이 있을 테니.
똑같이 16부작 드라마를 방송에 내보낸다고 같은 위치가 아니었다.
적어도 세 작품은 성공해야 스타작가로 인정받는 세계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대기업도 끼었는데, 괜히 건드리면 나만 손해지.”
이내, 이민주는 그에 대한 관심을 끄고 자신의 대본에 집중했다.
사실, 첫 방송 이후로 시청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기에 고민이 많았다.
* * *
새롬이 다시 자리에 돌아왔을 때, 이미 제작발표회는 시작된 이후였다.
짧은 예고편을 보고 박수를 쏟아내는 기자와 논평가들.
그들의 표정들을 살펴보니, 예고편이 꽤나 괜찮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 MC는 무대 위에 있는 주연들에게 질문을 쏟아내었다.
“세미 씨, 이번 드라마 배역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하던데.”
“네? 아…. 대본을 많이 봐서 그런가 봐요.”
세미는 무대 반대쪽에 있는 김진우 작가를 쳐다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대본을 얼마나 많이 보시길래?”
“음….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대본을 봐요.”
“하하. 좋은 습관이네요. 혹시 이번 작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건 아니죠?”
“아, 아니에요! 다들 정말 잘해주세요!”
“오, 그럼 그중에서 특히 누가….?”
“작가님이요.”
세미의 발언에 모든 이들의 시선은 김진우에게 향했다.
“아, 가끔 대본 연습을 같이하는 정도….”
갑작스러운 시선 집중에 김 작가도 당황한 듯 보였다.
이어지는 MC의 질문에, 다른 주연배우들은 입을 맞춘 것처럼 김진우를 지칭했다.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김 작가로 끝이 났으니.
“아니, 이거 감독님이 서운하시겠네요. 다들 작가님만 이렇게 좋아하시면.”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 아직 배우님들이랑 촬영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보네요.”
“그만큼 대본이 좋으니까요.”
“아….”
무뚝뚝한 성기훈 감독은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는데.
오히려 MC가 피의 실드를 치며 성 감독을 포장했다.
임재준 배우야 말할 것도 없고, 지성호조차도 김진우 작가를 칭찬하기 바빴으니.
기자들이 이제는 궁금증이 생겨서 김진우 작가에게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음, 이 질문은 넘어가야겠네요.”
MC의 반응에 정새롬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다음 질문은 성 감독이 악마 감독으로 불린다는 내용이었는데.
지금 그런 질문이 나오면 분위기가 많이 어색해질 것 같다.
다들 김 작가만 칭찬하는데, 감독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어떻게 하겠어.
‘아, 그러고 보니까….’
문득, 김진우 작가가 던져준 대본이 떠올랐다.
곧바로 변 팀장이 서 있는 곳에 다가가서 물었다.
“변 팀장님, 아까 준 대본은 봤어요?”
“아, 실장님. 그게….”
“음….?”
변 팀장의 리액션을 보니까 심상치 않았다.
새롬이 작품 선별을 맡기는 몇 안 되는 직원 중 하나.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대박 혹은 쪽박.
너무 대단한 작품이라서 뜸을 들이거나.
김 작가를 신경 써서 쓴소리를 못 하거나.
“그냥 편히 말씀해 보세요.”
“그게, 일단 한번 읽어보세요. 그다음에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대체 어떻길래….”
촤라락─
새롬은 첫 번째 페이지를 펼쳐 대본을 확인했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확실히 순정마초와는 다른 장르였다.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슬픈 감성을 자극하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가족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남자.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고독함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마치 영화처럼 탄탄한 구성으로 짜여진 새 드라마 대본.
멜로 드라마를 쓰던 사람이 갑자기 장르를 이렇게 틀어버릴 줄이야.
“이 작품은….”
순정마초에서 보여준 깔끔하게 정제된 대본과는 달랐다.
그런데 전개와 스토리만으로도 매력이 살아있으니까.
이내, 새롬은 힐끔 무대 위쪽을 쳐다보았다.
한창 MC가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김진우 작가.’
어찌 되었든, 그가 템페스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확신한 것 같다.
곧이어, 옆에서 눈치를 살피던 변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장님, 김진우 작가와 계약한 건 올해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게요.”
다시 말하면, 일찍이 전속계약을 하지 않은 건 최악의 선택일지도.
“…. 저기, 이번 작품 서브 여주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여민서 배우는 어떨까요?”
“음, 서브 여주를 민서가 하려고 할까요?”
사실, 1부에서 메인 여주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서브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건 팩트니까.
“캐릭터가 좋아서요. 여민서 배우한테는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그야, 뭐…. 작가님이나 새 감독님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죠.”
“아, 물론입니다.”
“음…. 일단 알겠어요.”
마침, 무대 위에서 MC는 김진우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예. 그럼 계속해서 김진우 작가님께 여쭤보겠습니다.”
“네.”
배우들의 관심 덕분인지, 그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신인작가로서 공모전을 거치지 않고 단숨에 데뷔하게 되셨죠.”
“네. 그랬죠. 운이 좋았어요.”
“6년의 결실을 맺고 데뷔하셨는데,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소감이야…. 뭐, 당연히 좋죠. 이런 기회가 누구에게 오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재능의 벽에 부딪히고 고꾸라지니까.
그러한 작품들 중에 드라마로 제작되는 각본은 딱 방송국 숫자만큼 적었다.
“그런데, 특히 어떤 분을 만나서 이렇게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네요.”
“오! 그래요? 그분이 누구죠?”
“글쎄요.”
싱긋 웃으며 새롬과 눈을 마주치는 김진우 작가.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시스템을 발견하게 해준 세미죠.’
진우는 마음속으로 세미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그 사실을 정새롬 실장이 알 수는 없었다.
“실장님, 뿌듯하시겠네요.”
“그야, 뭐….”
변 팀장은 옆에서 새롬을 띄어주었다.
그녀가 어떤 카페에서 우연히 김 작가를 만났다는 건.
템페스트 직원들 사이에서 딱히 비밀은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인정.’
연예인처럼 화장해서 그런지, 아니면 대단한 작품을 봐서 그런지.
오늘의 김진우 작가는…. 아주 조금은 멋있어 보였다.
어쨌든, 그의 작품 또한 그의 일부분이니까.
* * *
제작발표회를 마쳤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산재했다.
두 번째 작품을 어떻게 작성할 것이며, 새로운 남자 주인공은 누구인지.
성기훈 감독은 내가 시스템에서 본 드라마를 온전하게 연출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
첫 번째 작품의 성공 여부에 대한 걱정으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으니.
“드디어 오늘이구나. 첫 방송.”
이제 두 번째 작품의 남은 집필 기한도 얼마 안 남았다.
사실, 한 번쯤은 다시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번 작품의 성공이니까.
성기훈 감독 옆에 붙어서 내가 본 드라마와 비교하며 구도나 배경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성 감독님, 생각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었네.’
어찌 보면 감독의 영역을 건드렸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나를 굉장히 좋게 봐주었기에 가능한 간섭이었다.
아니, 오히려 월권이 아니라 좋은 의견으로 받아줘서 고마울 따름.
덕분에, 시스템에서 본 드라마와 거의 일치하는 장면들을 마구 뽑아내었다.
“오빠, 빨리 나와─!”
거실에서 희정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끼이익─
부모님과 여동생에 나까지, 4인 가족.
오랜만에 바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벌써 시간 됐나?”
“이제 광고 두세 편 남았어.”
“으…. 떨리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
어머니는 내 모습을 확인하더니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지금까지 잘했잖아. 시청률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
“…. 네.”
제작사나 방송국 생각은 다를 텐데.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을 삼키며,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쯤 방송국 측 제작진은 다 함께 모여있겠네.
혹시나 표정 관리를 못 할까 봐 가족들이랑 본다고 했는데.
띠링, 띠링─
드라마가 시작하는 동시에 몇몇 제작진만 모여있는 단톡방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으악 떨립니다ㅏㅏㅏ]
[제가 분당 시청률 바로 올리겠습니다]
[담주에 MBS 붙기 전에 시청률 잡아버리죠 ㅎㅎ]
[작가님도 방송국에서 같이 보셨으면 좋았을걸 ㅠㅠ]
[시작한다 ㄷㄷ]
젊은 사람들끼리만 모여있는 톡방이라 별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분위기를 보니까 나랑 안 맞아서 그냥 적당한 때에 나가는 게 좋겠다.
띠링, 띠링─
‘음, 알겠으니까 드라마 좀 보자.’
곧이어, 오프닝 컷을 시작으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연출 성기훈, 극본 김진우》
내 이름 석 자를 드라마 첫 장면에 새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마치 꿈을 꾸듯이, 지난 6년 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톡방에서 누군가 분당 시청률 기록표를 공지로 등록했다.
솔직히, 우리에게 드라마 내용보다 더 중요한 건 성적이니까.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자료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