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29)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내 두 번째 작품의 첫 번째 작업실.
“흠, 이렇게 한 번에 돈을 갚을 줄은 몰랐네?”
“제가 약속은 찰떡같이 지킵니다.”
타닥, 타다닥─
이미 한번 들렀던 빌딩에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근디 니 지금 뭐허냐?”
“어깨 형님, 제 덕분에 바름 엔터가 돈 다 갚았잖아요.”
“…. 그래서?”
“그럼 제가 손님 아닙니까?”
“음, 아마도?”
“여기 딱 두시간만 있을게요.”
“….”
커피 한 잔만 타달라고 할 뻔했네.
타다닥, 타다다닥─
오랜만에 느껴보는 시스템 뽕맛.
타자를 치는 동안 고향을 찾은 것처럼 편안했다.
‘강준이 연기는 일품이야.’
정말 몸에 딱 막는 옷을 걸친 것처럼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
회귀 능력을 이용해 쌓은 부를 과시하면서.
남들에게 잊혀져가는 고독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미 작성해 놓은 대본을 수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두 시간.
곧이어, 1부를 마무리하고 금천빌딩을 빠져나왔다.
바름 엔터의 강 대표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생명의 은인을 보는 듯 했다.
“사업을 얼마나 크게 벌여놨으면 빚이 3억입니까?”
“사기를 좀 당해서….”
자랑이다.
“이제 그쪽한테 사채업자가 찾아올 일은 없을 겁니다.”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강 대표에게 말했다.
“저한테 왜 감사해요?”
“네? 그, 그야 빚을 갚아주셨으니까….”
“무슨 소리세요.”
“???”
강 대표가 뭔가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교정해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자율은 법정 최고이자율이니까 연 24프로에요. 뭐, 어깨 형님들이랑 비교하면 천사죠.”
“서, 설마 갚아주시는 게 아니라….”
사채업자에게 건네받은 채무이행서를 한 손에 들고 말했다.
“당연히 돈 갚으셔야죠. 저는 지금 차기작까지 걸고 보증 섰는데.”
“아….”
“오늘부터 이쪽이 채권자고 그쪽은 채무자입니다.”
“…. 악마냐?”
“지금 뭐라고 하신….?”
“아, 아닙니다.”
이제 강준은 내 배우다.
내 작품의 배우가 아니라 진짜 내 배우.
비록 템페스트 소속이지만, 그 안에서 내 영향력을 무럭무럭 키워줄 사람.
“강철중 씨도 내일부터는 템페스트 사옥으로 출근하세요. 돈 벌어야죠.”
“네?”
“응? 변 팀장님한테 못 들었어요? 그쪽도 이제 템페스트 소속입니다.”
“그, 그 말씀은….”
왕년에 잘나갔던 바름 엔터의 대표는 일개 매니저로 전락했다.
솔직히, 도박도 안 하고 빚을 3억이나 졌으면 사업 수완은 쓰레기잖아.
“당신은 사장보다 매니저가 잘 어울려.”
* * *
며칠 뒤, 퍼플걸스 숙소.
“미령 언니! 언니도 순정마초에 단역으로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응. 맞아. 내일이 촬영이야.”
“빨리 보고 싶다. 히힛.”
레이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만 같으면 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 그건 세미한테 너무 가혹한데?”
세미는 늦은 시각까지 스케줄 때문에 숙소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잠시 후에 본인이 출연하는 예능이 방영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바쁜 게 낫지. 우리 무명 때 생각해 봐.”
“그렇긴 한데.”
레이미는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음악 차트를 확인했다.
고작 며칠 만에 5위권에 무난하게 안착한 순정마초 OST.
퍼플걸스가 완전체로 컴백했을 때보다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곧이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 유나가 말했다.
“언니! 우리 유정열의 스케치북 스케줄 잡혔어!”
“뭐?”
“방금 매니저 오빠가 단톡방에 올렸잖아. 확인해봐.”
“와아….”
아직 음악 차트나 음악 방송에서도 1위를 찍어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유나가 부른 솔로곡이 처음으로 정상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 방송에서도 시청률이 유지되면….!”
사실, 이미 화제성으로는 모든 드라마 중에서 최상위권이다.
그 증거로 이 늦은 시각까지 세미는 스케줄 소화하고 있었으니.
삐, 삐삐삐─
그때, 현관문 소리가 들리며 세미가 들어왔다.
“세미야!”
“으응.”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더니, 소파에 털썩 엎어졌다.
“괘, 괜찮아?”
“으으.”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뻗어버린 세미.
멤버들은 장난처럼 그녀의 몸을 꾹꾹 누르며 안마를 해주었다.
곧이어, 세미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곧 아는동네형님 할 시간이지?”
“응. 너 나오는 거. 그래도 대표님이 방송은 보라고 스케줄 빼주셨나 보네.”
“그건 아니고, 내일로 미뤄주셨어.”
“….”
템페스트와 달리, 레인보우 엔터는 살인적인 스케줄로 꽉꽉 채웠다.
잠시 후,
멤버들은 다 함께 모여 앉아서 예능을 시청했다.
“역시, 성호 오빠는 진짜 멋있네.”
“개인적으로 나는 임재준.”
세미의 차례가 왔을 때, 한 MC가 질문을 던졌다.
-첫 주연작이죠?
-네.
-지금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작가님이요.
-응?
-아, 그, 작가님이랑 있을 때 가장 대본 연습이 잘 돼서….
그때, MC 중 한 명인 이수훈이 급하게 둘러댔다.
-사실, 제가 제작발표회 때 사회를 봤는데. 배우님들이 전부 다 작가바라기예요.
-머선일이고. 이거 너무 부러븐데? 그분 존함이….?
-있어요. 김진우 작가님이라고.
세미는 녹화 중에 자신이 했던 대화를 기억하며 얼굴을 붉혔다.
“음, 편집 조금 이상한데?”
“맞아. 다른 배우분들도 다 작가님 좋아하잖아.”
“그러게. 누가 보면 세미 혼자 짝사랑하는 줄 알겠네.”
멤버들이 한 마디씩 던졌지만, 세미는 계속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안 읽씹….”
네 시간 전에 김진우 작가에게 보낸 톡에 아직도 읽음 표시가 없었다.
바쁜 스케줄 중에 딱 한 번 시간 났을 때 보낸 메시지였는데.
[작가님! 오늘 아는동네형님 꼭 모니터링해주세요! 꼭이요! ㅎㅎ]
* * *
다음 날,
《순정마초의 여주인공 세미의 짝사랑은 작가님?》
아침부터 수많은 기자들이 어그로성 기사를 쏟아내었다.
물론, 기사를 눌러서 확인해보면 예능용 개그일 뿐이라고 씨부렸지만.
“미쳤나.”
어차피 네티즌들은 제목만 보고 뉴스를 보잖아.
절반쯤은 내용도 안 보고 바로 댓글을 달고 있다고.
-작가 씹새끼야
-김진우 죽어
-세미야 제발 그르지마 ㅠㅠ
-ㄴ씹덕들아 본문을 좀 읽어라 ㅋㅋㅋ
사실, 아직도 끊이지 않고 톡이나 전화가 오는 통에 스마트폰을 제대로 못 쓰고 있었다.
축하나 격려, 밥 한번 먹자는 식의 메시지도 많지만.
대부분은 뭔가 뜯어먹거나 섭외하려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며칠은 지나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어?”
톡을 확인하던 중에 세미 씨가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
요즘 바름 엔터나 새로운 배우님들 걱정에 신경을 통 못 쓴 것 같다.
“괜히 미안하네.”
내 답장을 기다렸을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일단 사과와 함께, 재방으로 예능을 챙겨 보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때, 옆에 스윽 다가온 그림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오빠 세미랑 갠톡하는 사이?”
“야, 죽을래? 누가 보래.”
“본 게 아니라 보인 건데?”
“…. 가라.”
띠링─
그때, 정새롬 실장에게 연락이 왔다.
[작가님 오늘 시간 되시면 잠깐 회사에서 보시죠]
“잘됐네.”
마침 강철중 매니저를 만나러 템페스트에 갈 생각이었는데.
“오, 이번에는 회사원? 예쁘냐?”
“이런, 씨.”
“프사 예쁜데? 그냥 꼬셔버려!”
“….”
오늘 희정이가 날 제대로 잡았다.
스윽─
여동생은 일어나는 순간까지도 입을 놀렸다.
“뭔데, 뭔데? 어디 가는데?”
“회사.”
“그 여자 만나러?”
“어.”
“화이팅!”
나는 문을 나서기 직전, 여동생에게 말했다.
“니 연기 학원 환불하고 오는 길에 메로나 사올까?”
“…. 까불어서 죄송합니다.”
“잘해라.”
“넵! 살펴가십쇼!”
잠시 후,
템페스트 엔터 전략기획실.
정 실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내게 말했다.
“이번 작품 캐스팅도 쉽지가 않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현지와 강준, 일전에 여민서가 노리고 있던 배역까지.
캐스팅 보드를 채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감독의 의견은 작가 이상으로 중요하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골똘히 생각했다.
‘이왕이면 내 말 잘 들어주는 감독으로 가자.’
캐스팅이나 연출에 간섭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성기훈 감독처럼 스타감독이 아니어도 전혀 상관없었다.
“정 실장님. 제 다음 작품은….”
띠링─
그때, 새롬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작가님, SBC의 차 감독님이랑 미팅 잡혔습니다.”
“네?”
“차충헌 감독님이요. 유명하시잖아요.”
“….”
뭐가 이렇게 빨라.
조금 천천히 해도 되는데.
“…. 하필이면 SBC네요.”
“알아요. 이민주 작가님이랑 악연이라는 거.”
“….”
“하지만 아까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죠. 지상파니까요.”
SBC는 이민주 작가의 본진이자 주요 출몰지역.
지금 그녀의 작품은 연일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한때, 내 새끼라고 생각했던 작품이라 기분이 묘했다.
‘편안….’
이래서 자식은 부모를 잘 만나야 해.
이곳 템페스트 엔터 정기태 대표만 봐도 천성 그룹 회장님 아들래미잖아.
금수저 물고 태어났으니 정 실장 같은 유능한 사람이 알아서 돈도 벌어주지.
“응? 지금 그 눈빛 뭐예요?”
“아, 아니에요.”
“혹시 이민주 작가 때문에 걱정이세요?”
“그야, 조금은….”
“저만 믿으세요. 다음 작품에 이민주 씨가 개입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믿기는 하는데.”
SBC 차충헌 감독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성기훈 감독만큼이나 유명한 프로듀서.
그리고 그 이상으로 까탈스러운 권위주의자.
“뭐, 일단 만나보기는 해야죠.”
“작가님, 혹시 마음에 안 드시면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아닙니다. 어렵게 섭외하셨을 텐데요.”
“….”
결국, 한번 만나보고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 *
내 생각에 강철중은 후방이 든든해야 일을 잘하는 타입이다.
애초에 경영자가 아니라 딱 매니저 타입인 거지.
바름 엔터가 잘 나갈 때는 배우 영업이나 대외적인 업무도 막힘 없이 잘 굴러갔는데.
회사의 경영 전반을 담당했던 공동 대표가 사망하고, 회사가 크게 휘청거렸다고 들었다.
‘그때 죽은 사람이….’
강 매니저의 친형이자, 강준 배우의 아버지.
드르륵─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강철중은 반색하며 말했다.
“아, 김 작가님!”
“네. 제가 좀 늦었네요.”
템페스트 엔터에서 내 앞으로 내어준 작은 작업실.
강철중 대표는 우물쭈물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강준 배우만 케어하시면 될 겁니다. 자세한 건 변 팀장님한테 여쭤보시고.”
“아…. 네.”
“대체 그동안 엔터는 어떻게 유지하신 겁니까?”
“매일 방송국이나 제작사 돌아다니면서 프로필 뿌리고, 또….”
JTBS 방송국에서 봤던 수십 개의 프로필이 기억났다.
그렇게 대충 쌓아놓은 프로필 중에서도 바름 엔터의 취급은.
“그거 버려져요.”
“네?”
“JTBS에서 버린 프로필을 제가 주웠다고요.”
“아….”
절망에 빠진 눈빛의 강 매니저에게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강준 배우, 스타 만들 생각은 있어요?”
“당연하죠!”
“그럼 앞으로 다른 생각 마시고, 강준 배우님 연기 연습에만 집중하세요.”
“넵.”
드르륵─
그때, 강준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 들어가도 되는 거 맞죠?”
그 순간, 다시 한번 시스템이 발동했다.
띵동─
그냥 뜸금없이 시스템이 발동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역시 주인공을 마주치니까 확률이 올라간다.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2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KBC 피스쿠찌 카페, 방송국 본관점】
【제한 시간 : 18시간】
【※ 실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억 원】
“강철중 매니저님.”
“네?”
아무래도, 강 매니저는 방송국이란 방송국을 다 돌아다닌 모양이다.
“혹시 강준 배우님이랑 같이 방송국 다닌 적도 있어요?”
“네. 종종 함께 다니면서 인사도 시키고….”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관계자들의 비웃음을 샀을까.
쫄딱 망한 엔터라며 뒤에서 깎아내리기 좋았겠지.
“저는 방송국 다녀올 테니까. 강준 배우님 연기 선생 알아보세요.”
“네! 맡겨만 주십쇼!”
템페스트라는 울타리 안에선 강 매니저도 전성기 때의 실력이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한때 정말 잘나갔던 바름 엔터의 대표 중 한 명이니까.
곧이어, 발걸음을 옮겨 KBC 방송국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스템 덕분에 들른 방송국에서 인생 감독을 만나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