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30)
JTBS 순정마초 세트장.
“자, 슛 들어갈게요!”
주말이지만 스탭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코앞까지 다가온 대결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내일 MBS의 블록버스터 ‘태양을 쏘다’와 결전을 벌여야만 하니까.
“언니, 왔어?”
세미는 미령에게 달려와 그녀의 품에 쏙 안겼다.
“응. 오늘 단역 촬영하는 날이라.”
“오늘 하루만?”
“아…. 한 씬밖에 안 돼.”
사실, 미령이 배역을 하게 된 경위는 아주 특이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김진우 작가에게 했던 말이 씨가 되었다.
그때, 제작이 되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세미를 흔들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서 드라마를 찍게 된다면 단역이든 뭐든 출연하겠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스탭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성급한 실수였다.
‘이제 보니까 단역이라도 커리어에 남겠네.’
성공한 드라마에서 맡은 임팩트 있는 단역은 오히려 연기 경력에 도움이 되었다.
한 씬이기는 하지만 엑스트라와 달리, 대사도 많고 포커스도 본인 위주였으니까.
재은도 그렇고, 세미도 배우로 자리 잡는 모습이 언니로서 뿌듯했다.
‘김진우 작가님 덕분인가.’
최근, 드라마와 OST의 성공으로 퍼플걸스의 전체적인 스케줄은 늘어나는 추세였다.
지금처럼 비활동기에 이렇게 스케줄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멤버들은 개인 활동에 집중했다.
띠링─
그때, 매니저가 스케줄과 관련하여 개인 톡을 보냈다.
“KBC? 아 예능…. 찍기로 했었지.”
SBC에서 대박 작품을 터트리고 퇴사한 어떤 감독님이 자신을 섭외했다고 들었는데.
대단한 감독님에, 단독으로 출연하는 예능은 처음이라서 묘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세미가 물었다.
“언니, 오늘 어디 가는데?”
“KBC 방송국.”
“어, 어? 오늘 작가님이랑 톡 했었는데.”
“작가님이라니?”
“아, 아니야….”
그때, 분장팀에서 미령을 급하게 불렀다.
“세미야, 나 세팅하러 갈게. 촬영 잘해!”
“응. 언니.”
미령이 떠나가고, 세미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 작가님도 오늘 KBC 가신다고 하던데. 차라리 내가 언니 대신 가고 싶다.”
우연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요즘 통 볼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기에.
세미는 생각난 김에 폰을 들어 톡을 하나 보냈다.
[작가님! 오늘 미령 언니도 KBC 방송국 간다던데]
부디 오늘은 조금 빠른 답변이 오기를 기다리던 찰나.
띠링─
[정말요? 우연히 보면 인사해야겠네요 ㅎㅎ]
“대박.”
이렇게 칼답을 받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바로 답변을 보내려고 스마트폰 타자를 두드렸는데.
바로 그때, 조연출이 큰 소리로 세미를 불렀다.
“세미 씨, 다음 씬 가겠습니다!”
“아, 네….”
어쩔 수 없이, 세미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아야 했다.
잠시 후,
촬영을 마친 주연배우 세 명은 한자리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순정마초가 이렇게 대박 날 줄은….”
“요즘 꿈만 같다.”
“전부 작가님 덕분이지.”
재준과 성호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스마트폰을 하는 세미.
그런데, 다음에 흘러나오는 대화 내용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 근데 들었어? 김진우 작가님이 제대로 깠다고 하더라고.”
“여민서 배우님? 알지. 오늘도 화가 많이 나셨던데.”
세미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 계속 말해.”
“응?”
“빨리 말해봐. 작가님이 왜?”
그녀의 재촉에 지성호가 입을 열었다.
“아…. 이게 확실하진 않아. 소문으로는 민서 누나가 까였다고….”
“무슨 배역?”
“작가님 신작 서브 여주인공.”
“그래….? 그럼 공석이겠네?”
“너, 너가 하게? 순정마초 버려!?”
“뭔 소리야. 꼭 내가 할 필요는 없지.”
“???”
세미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언니들 중에 한 명이 하면 최곤데.’
그럼 앞으로도 지금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 * *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죽 쑤고 있는 KBC.
그나마 대하드라마라던가, 신파극으로 틈새시장을 노리고는 있지만.
신선함이나 대중픽에서는 언제나 MBS와 SBC에 많이 밀리는 형세였다.
국영 방송이니만큼 자극적인 소재나 막장 드라마는 멀리해야만 했기에.
상업성보다는 작품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안고 가야만 했다.
“요즘 순정마초 진짜 잘 나가네.”
“그러게. 드라마 엄청 잘 뽑혔던데.”
KBC의 드라마제작국의 주태홍 국장.
그는 예능국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케이블을 떠나서 작품성이 상당해.”
“우리 방송국에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최소 시청률 10%로 시작했을 텐데. 푸시도 엄청 해줬을 테고….”
“그런 가정이 의미 있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내, 주 국장은 예능국장에게 물었다.
“너도 퍼플걸스 코인 타려는 거 아니야? 4부작 예능 하나 들어간다며.”
“어허,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 외주감독이 좋으니까 가는 거지.”
“감독? 그게 누군데?”
“들으면 깜짝 놀랄걸?”
“누구길래….?”
“송권수.”
“…. 내가 아는 그 송권수?”
“맞아.”
이내, 주 국장은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안 그래도 실력 있는 감독들 줄줄이 나갔는데….. 어떻게 안 될까?”
“꿈 깨셔. 누가 송 감독이랑 같이 드라마 찍으려고 하겠어?”
“아….”
SBC와 대판 싸우고 퇴사한 감독인지라.
그 어떤 작가도 그와 작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아…. 송 감독한테 외주 맡기면 진짜 제대로 뽑아낼 수 있는데.”
“아무 작가도 안 붙을 거라는 게 문제지. SBC랑 척을 질 생각이면 모를까.”
“아, 아….”
주 국장은 아쉬운 듯이 연심 입맛을 다셨다.
“어떻게 안 되나….? 내가 진짜 그 작품 업어 키울 텐데.”
“일단 말은 해볼게. 근데…. 자네도 부탁 하나만 들어주지?”
“흠….?”
“파일럿으로 2부짜리 땜빵할 게 필요한데. 배우 몇 명만 꽂아줘.”
“그 정도야 뭐.”
한편, 같은 시각.
김진우는 그들과 같은 건물에 위치한 어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있었다.
* * *
매번 오늘처럼 대본 쓰기 좋은 환경만 나오면 행복할 것 같다.
“아주 그냥 깔끔하고 좋네.”
탁─
이내, 주문한 커피 한잔 받아서 테이블에 놓고 빛무리에 몸을 맡겼다.
어김없이 2부에 대한 기억이 콕 박힌 채 머릿속에서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런 내용이었구나.”
타닥, 타타탁─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2부」
결국, 주인공은 여주를 뺑소니로부터 구해준다.
끼이이이익─!
뺑소니 차량은 여주인공을 스치듯이 지나쳐 그대로 달아났다.
-번호 알려주세요. 꼭 사례하겠습니다.
-고마울 필요 없어. 어차피 기억도 못 할 텐데.
-네?
-당신을 구해주지 않으면 의미 없이 가족들을 잃어버린 게 되니까.
-???
그 후로 주인공은 브레이크 없이 회귀 능력을 남용한다.
5년 동안 이웃사촌으로 지낸 가족은 더이상 자신을 기억하지 못 하니까.
한동안 두 명은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는데.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인사했다.
“이래서 이 여자가 주인공이었어.”
1부에 고작 한 씬밖에 안 나온 김현지의 배역이 메인 히로인인 이유.
그녀는 주인공을 기억에서 지우지 않고 온전히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 당신…. 정말로 내 얼굴을 기억해?
-당연히 기억나죠. 얼마나 지났다고.
-아니, 그 후에도 분명히 회귀했는데….?
-어떡하죠? 제가 조금 바빠서….
-자, 잠깐만! 나는 아직 할 말 남았다고!
“오, 재밌는데?”
이내, 여자 주인공은 비서의 안내를 받아 저택으로 향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몰래 키운 사생아라는 설정.
능력남과 재벌녀는 순식간에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제 남주는 여주를 반드시 찾아야만 하고, 여주는 남주를 볼 때마다 피했다.
그리고 2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밝혀지는 떡밥.
“뺑소니가 아니라….”
여주인공의 이복 남매가 조폭 출신 비서에게 호통치는 장면.
회장이 데려온 사생아를 암살하려는 재벌가의 암투였다.
“개꿀잼이네. 다음 화 갖고 와. 당장.”
이번 화에서 김현지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단순히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는 의미랑은 다른 차원이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비련의 여주인공 이미지랑 부합하니까.
“거 봐, 주인공 잘 뽑았잖아.”
탁─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카페 한쪽에서 두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앉아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한 쌍의 남녀는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퍼플걸스의 리더인 미령과, 퍼플걸스 매니저.
“아는 척은 해야지.”
이미 음악부터 시작해서 퍼플걸스와 많이도 얽혀 있으니까.
아니, 미령만 놓고 봐도 순정마초에 단역으로 나와주시잖아.
저벅, 저벅─
“저기, 안녕하세요?”
“어, 어? 작가님!”
미령은 깜짝 놀라서 일어섰다.
“흠, 그쪽은….?”
매니저를 제외한 중년 남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김진우 작가입니다. 순정마초 극본을 집필했습니다.”
“아! 재밌게 보고 있어요. 저는 송권수 감독이라고 합니다. 미령 씨랑 예능을 찍고 있어요.”
어,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설마…. SBC 송 감독님….?”
“네. 퇴사한 지는 좀 됐지만.”
레전드 감독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별을 그리다!! 저는 처음부터 세 바퀴 정주행했어요.”
“아하하. 그런가요? 고맙네요.”
그해 SBC에서 상을 10개 이상 싹쓸이한 작품.
미친 연출력으로 아쉬운 대본과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킨 명작.
“존경합니다. 감독님.”
“존경은요. 저야 뭐, 이제 드라마를 찍고 싶어도 못 찍는 사람인걸요.”
“네? 에이, 무슨 말씀을…. 그런 실력으로….”
“저랑 같이하면 SBC에 완전히 찍힐 테니까요.”
“아….”
“단발성 예능이긴 하지만, KBC에서는 일을 주더군요.”
“….”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입봉한지 반년 만에 퇴사한 송 감독.
즉, 첫 번째 드라마가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원히트원더였다.
‘송 감독님이 예능이라니….’
드라마와 예능은 연출하는 방식 자체가 많이 다른데.
드라마 스타감독을 모셔다가 재능 낭비하는 느낌이다.
음악도 감성적인 노래가 있고, 펑키한 노래가 있듯이 아예 장르부터가 다르니까.
“작가님,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거…. 혹시 대본인가요?”
“네? 아, 네!”
나는 차기작 1부 대본을 들고 민망해서 웃음을 흘렸다.
“벌써부터 차기작이라…. 기대 되네요.”
“저기, 혹시 실례가 안 되면 봐주실 수 있을까요?”
나처럼 가짜가 아닌 ‘진짜’ 천재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오, 물론입니다. 순정마초도 정말 재밌게 봤으니까요.”
이내, 미령이 다가와서 여전히 멀뚱멀뚱 서 있는 내 소매를 잡았다.
문득, 세미가 내 옷깃을 잡던 순간이 떠올라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작가님, 여기 앉으세요.”
“네. 미령 씨.”
띵똥─
그때, 머릿속에 들려오는 시스템의 알림음.
【배역에 78%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심유진’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응….?”
여민서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서브 여주인공 배역.
등급을 올리고 배우 풀이 늘어나서 그런지 시스템이 쉽게 반응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당연히 빛무리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제한 시간 : 12시간 50분 59초】
‘일단 등록하자. 변경권도 있으니까.’
낮은 일치율이야, 시스템이 커버해 줄 테니.
누구보다 미령을 1순위 후보로 고려해볼 만하다.
“저기….”
그때,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특히, 묘한 눈빛을 보내는 미령을 뒤로한 채 자리를 잡았다.
“아, 여기 대본부터 보여드릴게요.”
이내, 송 감독은 진중한 표정으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천재 감독은 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