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32)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의 3화차 방송 한 시간 전.
템페스트의 가족들은 커다란 스크린을 앞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서 광고를 시청했다.
그사이에 짬을 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태양을 쏘다’ 제작진 ‘스포일러’ 엄중 대처할 예정. 한편, 본인을 관계자라고 주장하는 스포일러는 1화 마지막 씬에서 성인 배우들 출연을 예고하며….》
방송 직전에 어떤 커뮤니티에서 퍼진 스포 내용.
만약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오늘 성인 배우가 나온다는 뜻인데.
“제정신인가….?”
결국, 그들은 초반부 빌드업을 도려내는 강수를 두었다.
2화 말에나 등장하는 주연배우들이 1화 만에 등장하도록 편집했으니.
그들도 우리의 순정마초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분명했다.
기껏해야 케이블에서 5프로 먹고 시작한 드라마를 다 신경 써주시고.
“거참, 저쪽은 상도가 없으시네.”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닌가.
이쪽은 주연급 세 명을 합쳐도 회당 4천을 넘지 않는 갓성비.
저쪽은 탑스타만 서너 명씩 포진한 블록버스터 초호화 군단.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팬들끼리 갑론을박이 이어졌는데.
-순정마초 팬들 좋아요 ㄱㄱ
-흔해 빠진 로코 안봄 ㅋㅋ
-솔직히 배우든 작가든 차이 너무 심함 ㅠ
-근데 개재밌는데? ㅋㅋㅋㅋ
-태양을 쏘다 너무 기대돼ㅐㅐㅐㅐ
-저번 주에 순정마초 빈집털이 지렸죠? ㅋㅋㅋㅋ
MBS와 JTBS의 대결 결과를 예측하는 궁예들이 넘쳐났다.
잠시 후,
임재준이 나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작가님 언제 오셨어요?”
“저는 방금….”
“자, 작가님, 존댓말은 왜….?”
“아, 나도 모르게.”
요즘 임재준의 인지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뒤바뀐 수준이다.
템페스트 측에서 이미지 소모를 극단적으로 제한해서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딱 하나 찍은 광고가 화장품 CF였는데, 하루 만에 매출이 7배로 뛰었다고 들었다.
신인배우가 이렇게 떡상하는 케이스를 보기도 드물다.
“요즘 인기 체감돼?”
“네? 아, 아….”
민망한 표정을 짓는 임재준.
고깃집 알바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냥 너만 열심히 하면 내가 고맙지.”
“아니에요! 정말 감사해요. 작가님이 회사 차리면 저는 계약기간 끝나자마자 무조건 거기로 갈게요.”
“뭐? 여기 템페스트야.”
“앗.”
다행히 주변에 직원이 없어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재준이 계약기간도 끝나면, 강준처럼 지분을 요구하는 건….’
지금 당장은 너무 큰 먹이라서 소화가 안 될 것 같지만.
“나중에 계약기간 끝나면 얘기해.”
“아, 네.”
“한동안 나도 템페스트에서만 일할 거야.”
“넵. 알겠습니다.”
템페스트가 크는 게 내가 크는 거지.
* * *
연예계만큼 좁은 업계가 또 있을까?
이곳은 정말 비밀이 없는 동네였다.
방송국에서 잠깐 만나서 대화한 정도만으로도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 만큼.
“김진우, 이 새끼…. 나를 깐 게 설마 송권수 때문이야?”
차충헌은 분노에 차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과의 미팅을 잡기 고작 하루 전에 KBC에서 그 둘이 만났다는 제보.
퍼플걸스의 미령인지 뭔지, 걸그룹 때문에 금세 퍼져버린 정보였다.
물론, 두 명이 그저 우연히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송권수, 또 너냐? 왜 또 너야!”
SBC를 박차고 나간 송 감독과는 지독한 악연이 있지 않던가.
까마득한 후배의 초대형 히트작에 엄청난 패배감을 맛보고 열등감에 빠져 지낸 시간들.
회사에서 동기들이 그를 괴롭힐 때도 일부러 무시했다.
그런데, 그는 속 편하게 퇴사를 해버리고 SBC를 등졌으니.
이후, 차충헌 역시 히트작들을 내면서 동급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올랐지만 갈증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송 감독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으니까.
성적이든, 연출력이든, 아직도 송 감독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이 바로 순정마초가 깨지는 날이잖아?”
지금 시계를 확인해 보니, 좀 전에 방송을 시작했을 것이다.
끝도 없이 추락해서 아무 방송국에서도 안 받아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이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이내, 스마트폰을 들어서 시청률을 확인했는데.
“뭐, 뭐야 이거?”
김진우와 만나기 전에 그의 성적은 딱 5%였다.
그런데,
“왜…. 8프로야?”
강팀이랑 붙으면 당연히 떨어져야 하는데 어째서 오른 거지?
그것도 이렇게 많이 오르다니….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한 말인가?
“거짓말….!”
본인을 깐 김진우와 송권수가 같은 작품이라도 하면.
그래서 그 둘이 다시 한번 대박 작품을 뽑아낸다면.
그때, 자신은 그 박탈감을 견뎌낼 용기가 있을까?
문득, 김진우와 악연이 있는 스타작가를 떠올렸다.
최근에 시청률 10%대를 유지하고 있는 이민주 작가.
SBC와 인연이 있는 작가였으니, 번호는 당연히 저장되어 있었다.
뚜루루루루─
-여보세요.
“순정마초 시청률 보셨어요?”
-지금…. 저한테 시비 거는 거예요?
“아니요, 그 반대예요. 이번 거 집필 마감했다고 들었는데, 저랑 같이 드라마 하시죠.”
-제가 왜요? 저는 당분간 쉴 테니까….
“김진우랑 붙을 겁니다. 동시간대에.”
-….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차 감독의 시선의 끝에는 순정마초의 시청률 그래프가 있었다.
절대 내려가지 않고 끝없이 올라가는 빨간빛 상향 곡선이.
* * *
“5프로에서 안 떨어져서 다행이야.”
“자, 작가님. 지금 5프로가 문제가 아니에요.”
오늘 시청률은 분명히 5프로에서 시작했다.
템페스트 직원들은 다들 내 쪽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임재준과 지성호, 나까지 전부 한자리에 모여있었으니까.
하지만, 고작 30분 만에 시청률은 회복되었다.
금세 5%대를 뛰어넘어 8%까지 오르는데 정확히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시청자 이탈이 없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지난 일주일간 인터넷에서 입소문을 타고 SNS에서 짤도 돌아다니더니.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와아…. 이게 얼마나 오른 거예요?”
지성호가 덜덜 덜리는 입술로 말했다.
“이거 망하면 저도 망할 뻔했어요. 우리 엄마 저 몰래 아파트 샀어요.”
“뭐라는 거야. 저번에 내기에 0.53프로에 걸었던데.”
“…. 5.3퍼를 잘못 보신 거 아닐까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임재준이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태양을 쏘다는 지금 몇 프로예요?”
“아….”
그렇지. 경쟁작 성적표도 확인해 봐야지.
내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이트에 접속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 한 명이 냉큼 폰을 건네었다.
곧바로, 그들의 시청률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 13프로네?”
“오, 그 정도면 걔들 입장에서는 완전 망한 거 아니에요?”
성호의 질문을 듣고, 다시 말을 정정해 주었다.
“20프로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13프로야.”
“….”
드라마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시청률 그래프는 요동쳤다.
“대박! 순정마초 10프로….! 찍었어요!!!”
“와아….”
결국, 마의 십프로의 벽을 뚫고 11%에서 화려하게 마감한 순정마초.
반면에, ‘태양을 쏘다’의 시청률은 또 한 번 떨어져 12%에서 멈췄다.
“11대 12…. 아슬아슬했어.”
아쉽게 지긴 했지만, 고작 1프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압도적으로 질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깬 충격적인 결과.
“아니, 대체 태양을 쏘다는 어쩌다 저렇게 망한 거야?”
드라마가 망하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법.
문득, 아까 본 기사 내용이 떠올라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순정마초 보러감 ㅅㄱ
-세계관 안 궁금하다고 ㅡㅡ
-1시간짜리 프롤로그네
-두 편을 한 편에 몰아넣으니까 이딴 식이지 ㅉ
시청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정보제공 목적으로 배경을 설명하기 바빴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재밌는 부분만 모아서 한 편에 넣은 게 아니라….”
나중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전부 욱여넣었구나.
빌드업을 줄이려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격이다.
“저는 예상했어요! 아역 씬 두 편을 1화에 압축하니까 망할 수밖에 없죠.”
“그러게. 덕분에 이겼네.”
한 번 등을 돌린 시청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화를 보지 않고 2화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띵동─
그때, 뜬금없이 시스템이 발동했다.
【두 편 연속 집필 확률에 당첨되었습니다.】
시선을 돌렸는데, 멀리서 김현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편 연속….?”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3-4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506호】
【제한 시간 : 3일】
【※ 실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억 원】
“음….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시간도 널널해서 연구하기 딱 좋은 환경.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의 506호는 내 작업실이니까.
“선배님들 축하드려요.”
김현지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지금이라도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정 실장이 4편을 다 쓰면 말하라고 했으니까.’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완벽히 쓰고 주인공을 픽스해야겠어.
그때였다.
“작가님!”
멀리서 나를 부르더니 쪼르르 달려오는 여인.
“어, 세미 씨? 여긴 어쩐 일로?”
“으…. 드라마 같이 보려고 했는데. 끝나 버렸네요.”
“우리 대박 났어요. 하하.”
“네. 알아요. 전부 작가님 덕분이에요!”
싱그러운 미소에 템페스트 직원들은 다들 세미를 쳐다보았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을 수없이 봐온 그들이지만.
방금 본 드라마의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현실에서 보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세미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 있어도 돼요?”
“아, 매니저 오빠가 좀 있다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저는 이제 대본 쓰러 가려고요.”
“네, 헤헤.”
“응….?”
* * *
나만의 공간…. 아니, 강 씨 패밀리까지 세 명의 공간.
내 사무실에 빛무리가 휩싸인 광경은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와아! 여기가 작가님 사무실이구나.”
세미는 천진난만하게 비좁은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너무…. 편해 보이는데.’
세미는 짧은 시간 동안 명실상부한 탑스타가 되어버렸다.
아주 작은 가십조차 치명적인 독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만큼.
‘음….’
세미는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착하고, 밝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래 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여기서 매일 작업하세요?”
“아뇨. 보통은 날마다 끌리는 곳에서 쓰는데, 오늘은 여기서 쓰려고요.”
“아….”
세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의자에 앉았다.
“작가님은 앞으로도 계속 템페스트랑 계약하시는 거예요?”
“네. 대우도 좋고, 굳이 나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음, 그럼 저도 계약기간 끝나면….”
“세미 씨.”
“네?”
당연히 내 착각이고, 말도 안 되는 오해겠지만.
“앞으로도 좋은 배우로 남아주실 수 있으시죠?”
“네? 그야 당연히…. 아.”
“….”
“네에….”
세미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작가님.”
“네. 세미 씨.”
“….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그때, 바깥에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미야─!”
곧이어, 세미는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조만간 촬영장에서 봬요.”
“고맙습니다!”
세미는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는, 문을 나섰다.
덜컥─
문이 닫히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길게 젖혀 뉘었다.
“후우….”
아무리 봐도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한 것 같아서.
오늘을 떠올리면 앞으로 30년 동안 이불킥할 것 같다.
노트북을 펼쳐 대본을 쓰려고 했으나, 쉽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새롬 실장과 이야기했던 약속의 4부.
분명히 여기까지만 보고 김현지의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었지.
며칠 뒤에는 송 감독님과 미팅도 잡힐 테니까, 빨리 써야 하는데.
“딱 오늘만 쉬고 내일부터 대본 쓰자.”
문 밖에서 템페스트 식구들은 순정마초의 성공에 축배를 들었지만.
그냥…. 오늘 밤은 머리가 아파서 조금 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