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33)
순정마초는 가뿐히 MBS를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제한 시간 : 5분 11초】
3일이라는 제한 시간도 이미 거의 끝나갔으니.
“벌써 사흘째 집에도 안 들어갔네.”
내 개인 사무실에 빛무리가 머무르는 천재일우의 기회.
지난 며칠간, 시스템 외적으로 실력을 키울 방법을 모색했다.
일전에 대부업 사무실에서 했던 방식과 비슷했다.
빛에 머리를 살짝 담근 후, 내 스스로 대본을 작성하는 연습.
“내가 쓴 대본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훗날, 내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장소를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 밖에도, 내가 쓴 것과 시스템의 대본을 비교하는 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회귀라는 코드가 범용성이 너무 좋기 때문일까.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는 꾸준하게 재미를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점검하자.”
시스템을 보며 작성한 3부 초반부, 여주인공은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남자를 피하려고 해봐도 절대 피할 수 없었으니까.
-당신은 어떻게…. 제가 있는 곳을 매번 아는 거예요?
-내가 당신 보려고 몇 번이나 시간을 돌렸는지 알아?
-…. 무슨 소리죠?
-이제 내 주변 사람 중에 나를 기억하는 건 너뿐이야.
-내가 좀 알아듣게 설명해!
끼이이이이익─!
그 순간, 인도에 갑자기 뛰어드는 차량이 두 주인공을 덮쳐버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덮쳐버린 화물트럭.
여주의 등장으로 주인공의 일상이 일그러졌다.
-크으으윽, 쿨럭.
저벅, 저벅─
운전자는 두 명의 상태를 확인해 보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해결했습니다.
박성욱은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떤 남자도 함께 쳤는데, 뒷정리 부탁드립니다.
이내, 몸을 돌려서 사라져 버리는 의문의 암살자.
남자 주인공은 분노에 차서 복수를 다짐했다.
이내, 시간을 역행한다.
세상을 퍼즐 조각으로 분리하였다.
그리고 한 조각씩 순식간에 맞춰지는 모습.
-크윽, 개 같은 놈…. 내가 니 목소리 분명히 기억했다.
이거, 악역의 비중이 상당한 것 같다.
이번에도 최만호 선생님급의 배우를 섭외할 수 있으면 베스튼데.
이후, 4부의 내용도 재차 확인했다.
여주의 호감을 사기 위해 끝없이 회귀를 반복하는 주인공의 여정.
물론, 친해지기 쉽지는 않아서 마지막 장면쯤에 살짝 반응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어떻게 그렇게…. 나에 대해 잘 알아요?
-아니, 회귀한 숫자에 비하면 거의 모르는 편이야.
-네?
그리고,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부산의 검은 조직들.
이제야 진짜 범죄 스릴러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후…. 이제는 진짜 고칠 내용이 없어.”
나는 작업실 한쪽에 있는 간이 침대에 털썩 몸을 맡겼다.
다음 날, 아침.
따르르르르─!
알람이 고막을 관통하며 귀를 괴롭혔다.
이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아…. 졸리네.”
지난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고, 대본에 빠져 살았더니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제 MBS와의 경쟁에서도 선방했으니 다음 작품에만 몰두하면 될 것 같은데.
“하아아암.”
뚜루루루─
곧바로, 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엘리베이터 타고 몇 층만 올라가면 볼 수 있겠지.
-여보세요.
“다 썼어요. 4부까지.”
-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어…. 벌써요!?
“네. 바로 송 감독님 미팅 잡으시죠.”
직접적으로 말하고 나서 새롬의 대답을 기다렸다.
-음, 안 그래도 감독님이랑 오늘 보기로 했어요.
“그래요? 언제요?”
-몇 시간 후에 보기로 했어요. 원래는 저 혼자서 뵈러 갈 생각이었는데….
“같이 가시죠.”
-네. 그럼 오전 9시까지 올 수 있으세요?
“5분이면 갑니다.”
-네?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 여기에 있는 거 아무도 모르나?’
아마 내가 여기에 며칠 동안이나 머물렀다는 건 모르는 것 같다.
오직 강철중이랑 강준만 알고, 먹을 것도 그들이 사 왔으니까.
“지금 템페스트 사옥이에요. 집에 안 들어갔어요.”
-음…. 좀 씻고 오셔도 되는데.
“물 아깝잖아요.”
-…. 세수라도 하세요.
“에이, 시간도 없….”
-아, 하라고.
“오키요.”
뚝.
“여윽시, 템페스트!”
작가 품위까지 신경 써주는 제작사가 어디에 또 있냐고.
* * *
정새롬 실장은 진우에게 세 편의 대본을 받았다.
멈칫─
그런데, 2부의 중반쯤을 읽을 때쯤 걸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재벌가 사생아라….”
물론, 김진우 작가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여주인공의 배경이 못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뭐, 완벽하네.”
원래 감독 다음으로 대본 수정을 많이 요구하는 게 제작사였다.
상업성을 해치는 대사 수정 요구는 기본이었으며.
계약에 따라, PPL 전문 보조 작가를 투입하기도 하니까.
“고칠 것도 없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쓸 수가 있나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여민서가 많이 아쉬워하는 이유도 납득이 되었다.
이전에, 1부만 봐서는 알 수 없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말 그대로 읽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는 대본이었으니까.
게다가,
“현지랑 정말 잘 어울리잖아?”
1부만 봐서는 알 수 없던 메인 여주인공의 매력.
순정마초에서 세미가 보여주는 연기와는 또 다른 방식의 주인공이었다.
남주와 적당한 밀당을 하면서도 자신의 포지션을 꿋꿋이 지키는 캐릭터.
“지금 현지가 단역 들어간 작품이 어디 방송국이더라….?”
시원찮은 작품이긴 한데, 현지가 연기하고 싶어 해서 내버려 뒀으니까.
차라리 단역으로 투입하기 전에 좀만 더 기다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역으로 출연하고 곧바로 다음 작품이 메인 여주인공이면 조금 어색할 수도.
“변 팀장님 말이 맞았어.”
김진우 작가와 계약한 건 올해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와 계약한 이후 회사 사정은 굉장히 좋아졌으니.
특히, 임재준과 지성호의 광고 출연을 극히 제한하는 전략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오히려 희소성 덕분에 그들의 개런티는 탑스타 이상으로 치솟았으니까.
광고 여러 편을 찍는 대신, 하나만 찍어도 같은 수입에 이미지까지 보존할 수 있었기에.
“요즘 다른 작가분들은 제대로 케어도 못 해주네.”
원래는 변 팀장보다 훨씬 더 많은 작가를 관리해도 전혀 무리가 없었는데.
캐스팅에 난항을 겪어서 그런지, 김진우 작가는 신경을 곱절로 써야 했다.
“그래서….”
차기작 계약금은 얼마로 책정하면 되려나.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이례적으로 계약금을 갱신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성공적으로 데뷔했어도 두 번째에 800만 원 선에서 계약하는 게 보통이었으나.
“원고료 기본 천만 원 정도는 깔고 가야겠어.”
솔직히, 김진우 작가에게는 개인적으로도 고마운 점이 있었으니까.
순정마초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표정은 한동안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모순적이게도 작품의 흥행을 누구보다 싫어한 사람이었다.
“일단, 송권수 감독님부터 만나봐야겠지.”
차기작 제작은 조금 순탄하게 흘렀으면 좋겠다.
* * *
송권수는 미리 받아본 대본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허…. 정말 이 대본을 내가 연출하게 되다니.”
처음 템페스트의 연락을 받았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고작 며칠 만에 최고의 팀원들을 구성했다.
자신처럼 SBC를 박차고 뛰쳐나온 촬영감독과 조명감독.
「별을 그리다」로 정상에 우뚝 선 송권수 감독은 굳게 다짐했다.
이번 기회를 반드시 살려, 전작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노라고.
터벅, 터벅─
그때,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한 여자와 함께 걸어왔다.
“실장님, 김현지 배우 매니저님 번호 알려주신 거 무슨 의미예요?”
“작가님이 알려달라면서요. 촬영장 가보고 싶다고.”
“에이, 그건 둘째고. 지금 인정한 거 같은데?”
“….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이내, 송권수 감독은 먼저 일어나서 진우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또 뵙네요.”
“아, 송 감독님!”
송권수 감독과 템페스트 사이의 미팅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김진우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정새롬 실장은 스무스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이 정도 선에서 계약하면 좋을 것 같네요.”
“솔직히…. 저한테는 과분합니다.”
“별을 그리다를 연출하신 송 감독님께는 많이 부족하죠.”
송 감독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 많은 외주 PD 중에 저를 써주신다고 들었을 때는 놀랐어요.”
“저희는 능력만 보니까요.”
“그게, 어쩌면 템페스트 엔터에 큰 피해가 갈지도 모릅니다.”
“이미 각오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싱긋 웃으며 송 감독을 안심시키는 정새롬 실장.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캐스팅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방송국부터 알아봐야겠네요?”
“SBC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KBC나 MBS가 최선이긴 한데.”
그런 방송국에서 굳이 부담을 감수하려고 할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그런 위험을 떠안을 필요가 없는 이들이 아닌가.
“그래도 한번 찔러는 보죠.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일단, KBC는 송 감독에게 예능 제작을 맡긴 만큼, 그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일 테고.
MBS는 순정마초에 후두려 맞고서 진우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저는 KBC 방송국부터 한번 찔러보죠. 일단은, 지금 예능을 찍고 있으니까요.”
“네. 감독님. 저는 MBS에 아는 인맥을 동원해서 연결해 보겠습니다.”
‘음, 그래. 정 실장이 왜 혼자 온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아.’
김진우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깔끔한 미팅이었다.
벌써 대화를 마치고 진우에게 할 말이 있냐는 듯이 쳐다보았으니.
“…. 일어나시죠.”
잠시 후, 진우는 어딘가에 들를 요량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뚜루루루─
“혹시 김현지 씨 매니저님 되십니까?”
-네. 누구….
“김진우 작갑니다.”
* * *
케이블 중에서도 서열은 분명하게 갈린다.
인지도는 낮지만 꾸준히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국도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MDN이었다.
“이제 곧 내 차례구나.”
현지는 한쪽에 덩그러니 서서 대본을 여러 번 읽었다.
최근 드라마 성적이 죽을 쒀서 그런지 스탭들의 신경이 날카로웠다.
‘대사는 다 외웠는데….’
단역일지라도 원래는 오디션으로 뽑을 예정이었던 배역.
주변에 한 번씩 힐끔거리는 제작진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내가 낙하산이라 그런 거겠지….’
템페스트 엔터빨로 꽂아버린 배역.
사실상, 신인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었다.
‘연기할 기회가 있으면 절하고 받아야지.’
촬영일이 고작 하루뿐이지만, 첫 드라마라서 모든 게 낯설었다.
그 와중에 스탭들의 시선도 곱지 않으니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양심도 없네.”
“나 같으면 음료수라도 돌렸다.”
“그냥 무시해.”
자신을 향한 험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격지심은 자신을 더욱더 코너로 몰아갔다.
그때, 현지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며 넘어졌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직원이었기에 시야가 어두웠던 모양이다.
“앗, 아….”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아, 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김현지는 화장실에 들러서 무릎의 상처를 물로 씻어냈다.
“아, 아프아아….”
그런데, 화장실 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험악한 촬영장 분위기에 어쩔 줄을 몰랐다.
“김현지가 누구야!!!”
“아…. 죄, 죄송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촬영 시간을 딜레이했으니.
김현지 같은 신인에게는 대형 참사였다.
“야, 미쳤냐?”
“네? 죄, 죄송….”
“죄송하면 다야? 내가 지금 단역 하나 때문에 촬영을 펑크내야 해? 장난해?”
감독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현지를 닦달했다.
모든 스탭들의 시선을 받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상처가 나서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잠깐 들른 게 전부였는데.
그런 사정을 봐줄 사람은 이 자리에서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서 자신과 부딪힌 사람과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는 사내.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수많은 ‘약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야, 어디를 봐? 어?”
“죄, 죄송….”
“아씨, 이제 개나 소나 나를 무시하네. 너 시발 내가 더럽게 논다고 소문난 기사 보고 나서 이러는 거지?”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고.
확실히 성격은 더러워 보였다.
재차 사과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감독이 먼저 말했다.
“갈아치워. 단역들 널리고 널렸어. 저런 개념 없는 것들은 이 바닥에서 매장시켜야 돼!”
“감독님, 죄송합니다. 제가 더 열심히….”
“나가라고!!!”
핏대를 세우고 소리치는 MDN의 감독.
김현지는 서러움에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이내, 조연출이 다가와서 작게 소곤댔다.
“하…. 김현지 씨, 왜 늦고 그래요. 지금 다들 예민한….”
그때,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현지 씨!! 김현지 씨!!!!”
누군가 우렁찬 목소리로 김현지를 불러대었다.
“기이이임- 혀어어언- 지이이이- 씨이이이이─!!!”
감독은 나사가 하나쯤 뽑힌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떤 미친놈이 내 촬영장에서….”
“어, 요기 잉네?”
김현지는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남자를 슬쩍 올려다봤다.
반곱슬의 더벅머리에 묘하게 반짝거리는 눈빛.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평온한 표정을 보니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