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34)
김현지의 눈을 지긋이 응시하기를 3초.
흔들리던 그녀의 동공은 점차 평온함을 유지했다.
‘후…. 다행이야. 멘탈 안 흔들려서.’
촬영장에서 감독보다 목소리를 높이는 존재는 없는 법이다.
곧이어, MDN의 드라마 감독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소리쳤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작간데요.”
“하 씨, 작가면 작가지. 왜 남의 촬영장에서….”
“촬영 중이 아니라 누구 하나 쥐 잡듯이 잡고 있던데, 아닙니까?”
“뭐야? 네가 뭔 상관인데?”
솔직히, 단역 배우라고 무시하는 감독과는 더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에게 쌍욕을 뱉는 감독을 대우해 줄 이유는 없잖아.
“김현지 배우님. 저랑 가시죠.”
“네?”
“여기 감독이 나가라고 하잖아요.”
“아….”
웅성웅성─
제작진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본 모양이다.
“순, 순정마초 작가….?”
“제작발표회 영상 봤는데.”
“기, 김진우 작가잖아.”
들리는 음성들을 뒤로한 채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님, 그쪽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지가 아니라 처음 보는 배우였어도 화가 났을 것 같다.
단역 배우든 엑스트라든 감독의 원색적인 모욕을 받아줄 이유는 없으니까.
“김현지 배우님은 제 차기작 메인 여주인공입니다.”
“뭐, 뭐요!?”
“아까 현지 씨한테 소리쳤잖아요. 이 바닥에서 매장시킨다면서요?”
“아니, 그건….”
“뿌린 만큼 거두는 바닥이니까. 조만간 누가 후회할지 두고 봅시다.”
“….”
더이상 상종할 이유가 없었기에, 감독을 무시하고 김현지에게 말했다.
“가시죠. 배우님.”
“네? 아, 네….”
그녀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를 따랐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그녀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작가님, 고마워요.”
“네? 뭐가요?”
“주인공이라고 거짓말해 줘서.”
“거짓말 아닌데요.”
천천히 뒤를 돌았는데, 그녀는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말해줘도 될 것 같았으니까.
“곧 정 실장님이 말씀해 주실 겁니다. 제 차기작 주인공은 김현지 씨라고.”
“네….?”
“정말로 김현지 씨가 제 다음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얼마나 놀란 건지,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김 배우님.
띵동─
그때, 시스템 알림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예쓰!”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5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1층 카페】
【제한 시간 : 1일】
【※ 실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1억 원】
“장소 좋고.”
“???”
템페스트 소속 배우들로 세팅해 놓으니까 이런 장점이 있네.
이상한 장소에 떨어질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잠시 후, 밴을 끌고 온 매니저가 내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일단 정 실장님께는 제가 오늘 말씀드릴게요.”
“아뇨. 벌써 연락드렸습니다. 코디한테 소식 들어서요.”
“그래요?”
“MDN 측이랑은 원만하게 넘어갈 것 같습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드라마 제목 정도는 기억해 놔야겠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지켜봐야지.
곧이어, 차를 타려는 김현지 배우에게 해야할 말을 잊지 않았다.
“당분간 4부까지 대본을 숙지해 주세요.”
“네! 작가님.”
방금 전까지는 조금 소심해 보였는데.
이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드르르륵─
매니저가 운전하는 밴을 타고 멀어지는 김 배우님.
“바로 대본을 쓰러 가볼까.”
본격적으로 범죄 조직이 등장하는 4부 후반부.
아마 앞으로 남주가 조직을 파훼하는 전개로 이어질 것 같다.
그런데,
지이이잉─
그 순간, 순정마초의 성기훈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은 참 보기 드물게 바쁜 날이다.
한 번에 일이 몰아치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네. 여보세요.”
-김 작가님, 바쁘신가?
“아니요. 말씀하세요.”
-10화에 저녁 데이트 씬, 조금 수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아….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가 너무 평탄했다.
현장에서 대본을 고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인데.
아직까진 시스템상의 적절한 위치 선정 덕분인지, 전부 커버가 되었으니까.
“일단 빨리 가야겠네.”
시스템이 밥상을 차려줬으면 떠먹는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생각해 보니까 초반부 촬영 때 이후로 방문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동안 너무 안 들렀으니까…. 가는 김에 선물이라도 싹 돌려야겠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강준은 연기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인사했다.
함께 연기하는 학생들은 겨우 서너 명이 전부였는데.
그중 한 명은 친화력이 좋은 편이라 벌써 번호를 아는 사이가 되었다.
“깡준! 오늘 한잔?”
“삼촌이 부르시네.”
“에이, 맨날 빼고.”
학원에서도 유일하게 말을 튼 여사친이었다.
성별이 다른데도 이렇게 금세 친해진 친구가 얼마 만인지.
“어쩔 수 없어. 어쩌면 작품 들어갈 것 같아서.”
“오! 왜 말 안 했어. 누나한테만 말해봐. 무슨 작품인데?”
“동갑이잖아.”
“아, 알고 있었냐?”
밖에 나이랑 프로필 다 적혀있는데.
“그냥…. 운이 좋아서 어떤 작가님이 좋게 봐주셨어.”
“그으래?”
최근 회사에서 강준을 대하는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공중파 16부작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괜히 이런 말을 하면….’
오랜만에 얻은 친구를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이 바닥에서는 친구 사이에도 질투를 하는 게 일상이니까.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에이, 아깝네. 내가 너 점 찍어 뒀었는데.”
“뭐, 뭐?”
강준은 살짝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우리 극단에 오면 딱 좋을 것 같았거든.”
“아…. 극단이면….”
“있어. 장그래 극단이라고, 아주 대단한 곳이지.”
“….?”
“그래도 한 번 생각해봐. 나중에 우리 오빠한테 추천도 해줄게.”
“오빠가 누군데.”
“음, 순정….”
그때, 학원 앞에 삼촌이 도착했다.
“아, 희정아. 다음에 얘기하자.”
“오키! 너는 오늘부터 명예 장그래단이야. 알겠어?”
“…. 어.”
뭔가 이상한 친구긴 한데, 왠지 모르게 누군가가 떠올랐다.
분위기가 익숙하다고 해야 하나.
“누가 보면 남매인 줄.”
지금 보니까 얼굴도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렇게 말하면 둘 중 한 명은 기분 나쁠지도.
강 매니저는 갑자기 피식 웃음을 흘리는 강준에게 물었다.
“너 왜 그러냐?”
“뭐가요.”
“아니, 됐다.”
부르르릉─
그들은 템페스트에서 내어준 중고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삼촌, 우리 어디 가요?”
“스케줄.”
“네에?”
“나 강철중이야. 안 죽었어.”
“어딘데요.”
“케이블 게임 방송.”
무명 배우가 케이블 방송국 게임 방송을 잡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렇게 빨리 스케줄을 잡은 걸 보면 확실히 삼촌의 영업력은 대단했다.
“저기, 작가님이 삼촌한테 한 번씩 하는 말 있잖아요.”
“응?”
“삼촌은 정말로 사장 말고 매니저만 하는 게 나은 것 같아.”
“….”
“좋은 뜻이에요.”
요즘, 삼촌이 잃어버린 자신감이 부쩍 올라간 것 같다.
마치, 바름 엔터가 잘 나갔을 당시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처럼….’
김진우 작가님 덕분에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기분이다.
역시, 삼촌에게 든든한 배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 * *
순정마초 촬영 현장.
“성 감독님, 이거 문제가 많은데요?”
“…. 압니다.”
오색찬란한 다리 아래에서 데이트하는 장면.
주인공이 재력을 과시하지 않고 처음으로 여주에게 다가가는 씬이었다.
그런데, 다리에서 화려한 불빛이 꺼져버렸으니.
이 장면의 매력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지자체에 미리 양해를 구했으면 되었을 텐데요.”
“아, 그게…. 죄송합니다.”
템페스트의 직원 한 명이 고개를 떨구고 사과했다.
“정 실장님은 모르시죠?”
“네? 제, 제발 실장님께는….”
나한테는 꽤 친절한 성격인 것 같은데.
직원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인가 보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어.’
시스템이 친절하게 수정된 파트를 고쳐주면 모를까.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세미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스탭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히려 작은 불빛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
“그, 그냥 제가 차예주라면…. 작은 후레쉬 불빛으로도 감동받을 것 같아서.”
“아….”
맞아, 내가 본 드라마에서도 배경은 부가적인 장치였다.
얼마든지 배우들의 연기와 소품으로 채울 수 있는 도구.
내가 느낀 감동은 다리의 불빛이 아니라 세미의 표정에서 나왔으니까.
타닥, 타다다닥─
내가 본 드라마를 토대로 즉석으로 드라마를 수정했다.
100%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여기서 미래의 드라마를 본 사람은 나뿐이니까.
[차예주의 왼쪽 면에서 부드러운 조명이 켜지며 천지호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다.]
잠시 후, 내가 수정한 대본을 토대로 촬영이 재개되었다.
“크으, 완벽하네.”
이번에도, 내가 본 모습과 거의 일치했다.
세미와 임재준의 케미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니.
배경의 차이를 표정 연기로 극복하는 배우님들의 모습.
역시, 시스템으로 본 드라마는 내가 작성한 대본 이상의 자산이었다.
그때, 한 스태프가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작가님, 스탭들이 선물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요.”
“아니요. 오히려 촬영장에 너무 안 들러서 죄송해요.”
직접 커피라도 사 올까 하다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서 쿠폰으로 대신했다.
조연출 PD에게 2만 원 상당의 100명치 쿠폰을 돌렸으니 지출이 상당했다.
나처럼 신인작가가 돌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원래 돈 많이 버는 작가가 이렇게 선물을 하기도 하니까.
나중에 스타작가 되면 패딩 하나씩 사 주는 것도 생각해 봐야지.
“작가님,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사랑해요─!!!”
순정마초 촬영장 분위기는 상당히 밝은 편이었다.
김현지 배우님이 찍었던 망한 드라마와는 상반된 환경.
곧이어, 촬영을 마치고 배우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했다.
터벅, 터벅─
의자에 앉아 있는 세미에게 다가갔다.
“세미 씨, 오늘 촬영은 끝난 거예요?”
“아, 네. 작가님! 내일부터 일본에 스케줄 있어요. 이틀간.”
“일본이요?”
“네. 그룹 활동이에요. 감독님이 제 씬을 미리 찍어주셔서.”
“음…. 고생하시네요.”
그때, 매니저가 멀리서 세미를 불렀다.
“세미야! 바로 가야 될 것 같아.”
“아, 응. 오빠.”
어린 나이에 힘들게 고생하면서도 싱그러운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
역시, 내 배우님이야.
“저는 그만 가볼게요!”
“네. 세미 씨. 다음에 촬영 현장에 또 들를게요.”
“네에. 헤헤.”
* * *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동안에 감독 미팅에 촬영 현장까지 돌아다녔으니.
“너무 힘들었다.”
【제한 시간 : 19시간 43분 30초】
늦은 시각이라 5부는 내일 써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오늘 밤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아.
소파에 널브러진 내 옆에 여동생이 다가왔다.
“살았냐?”
“죽었어.”
“살았네.”
여동생은 옆에서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가 요즘 학원에서 만나는 애가 있는데.”
“뭐!?”
어떤 놈이 감히 내 여동생을.
“존나 착한 사람이네!”
“…. 아니, 그런 만나는 게 아니라 같이 수업 듣는다고.”
“아…. 까비.”
털썩─
나는 다시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근데 그 친구 연기가 진짜 기가 막혀.”
“나는 연기 보고 안 뽑아.”
“그럼?”
“시스템의 간택을 받아야 돼.”
“응….?”
희정은 뭔가 아쉬운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치이, 배우 한 명 추천하려고 했는데.”
“응. 비리 추천 꺼져.”
퍽─
여동생은 내 엉덩이를 걷어차고 달아났다.
“저거 죽일까?”
하나뿐인 여동생이라고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지이이잉─
그때, 정새롬 실장에게 연락이 왔다.
“아, 일 좀 그만하고 싶은데.”
중요한 일이면 어떡해. 받아야지.
“여보새롬.”
-…. 송 감독님께 연락이 왔어요.
“네? 무슨 연락이요?”
-KBC 쪽에서 지금 반응이 왔거든요.
“오! 정말요? 허락을 해줬어요?”
-허락이라고 하기엔…. 오히려 환영하던데요.
“이야, 실장님 진짜 능력자시네.”
KBC 드라마국이랑 몇 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제작사가 얼마나 될까?
-아니, 진짜 그쪽이 환영했다니까요.
“여윽시 우리 정 실장님….!”
-…. 그만해라.
놀리는 거 눈치챘구나.
-내일이니까 준비 단단히 하세요.
“네?”
-주 국장님, 절대 호락호락하신 분 아니에요.
방송국에서 그 위치까지 오르려면 사내 정치인이나 다름없겠지.
“…. 내일이라고 했죠?”
아무래도, 나 역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작가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