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36)
레인보우 엔터의 장경준 대표는 요즘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주 작은 선택으로 그 무엇보다 큰 이득을 취했으니까.
진짜 돈방석이라는 게 이런 걸 의미하는 건가 싶다.
순정마초의 성공와 OST 차트인의 시너지 효과.
퍼플걸스의 떡상은 곧바로 기업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온라인에서 ‘퍼플걸스 코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지 않았던가.
문득, 김진우 작가와 이민주 작가를 함께 마주했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이민주 작가를 선택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이민주 작가가 서브 주연을 제안했었는데.
지금은 10%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니.
혹시라도 이민주 작가의 손을 잡았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2등짜리 복권 한 장과 맞바꿀 뻔했다.
삐이이이──
그때, 비서팀에서 유선 전화로 연락을 했다.
“어. 왜?”
-대표님, 김 작가님 오셨습니다.
“김 작가? 기, 김진우 작가님?”
-네. 근데 복장이….
“어, 어서 들어오시라고 말씀드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진우는 대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그의 복장은 비서의 말마따나 심상치가 않았다.
“아…. 자, 작가님?”
“네.”
배낭과 등산 모자에, 종아리를 전부 덮는 양말까지.
신발도 무슨 전투화 같은 워커를 신고 왔다.
“작가님…. 오늘 어디 가세요?”
“네. 자료 조사차 부산에요.”
“아…. 고생하시네요.”
대표는 진우의 굳은 얼굴을 보며 당황했다.
‘우리 애들이 뭐 잘 못 한 거 있나?’
일본에서 스케줄 중이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을 텐데.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촌지를 드리는 게 매너인지, 오히려 비매너인지 고민했는데.
젊으셔서 그런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받으러 온 모양이다.
“제가 차기작 집필을 시작한 지도 좀 됐거든요.”
“네? 갑자기 그 말씀은 왜….?”
“차기작 같이 하시죠.”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김진우 작가와 송권수 감독이 뭉쳤다는 사실을.
대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령 씨, 요즘 바빠요?”
“네? 미령이요?”
곧이어, 김진우는 송 감독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미령의 캐스팅을 마치자마자 부산으로 떠나버렸다.
* * *
한 달 후,
김진우 작가가 부산으로 떠난 지도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번씩 연락을 하기는 하지만, 일주일씩 연락이 끊기기 일쑤였으니.
“원래 작가는 다 이런가?”
갑자기 섬에 들어가서 글을 써야 한다고 하지를 않나.
남의 회사에 가서 집필할 테니까 도와달라고 하지를 않나.
“후우….”
새롬은 진우가 보낸 10부까지의 대본을 검토했다.
한편, 한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각본이었다.
똑, 똑─
“들어와요.”
정 실장은 자신의 호출을 받고 온 변 팀장에게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변 팀장님, 오늘 일본에서 순정마초 첫 방송에 차질은 없겠죠?”
“네! 후지 티비에서 정상적으로 방영될 겁니다.”
새롬은 최초의 해외 판권 수출국으로 일본을 선택했다.
한류 드라마를 주로 방영하는 후지 티비와 직접 접촉해서 계약을 따냈으니.
‘대체 실장님은 언제 일본에서 연줄을 만드신 걸까….?’
새삼스레, 변혁주 팀장은 새롬을 존경의 시선으로 쳐다봤다.
예로부터 이런 종류의 멜로는 항상 인기가 많던 국가였기에.
아마, 일본에서는 최소 중박 이상은 터질 것으로 기대했다.
“넥플렉스 쪽에서는 아직도 간만 보고 있나요?”
“네.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요구 조건이 조금 과해서…. 지지부진합니다.”
“음, 그래요?”
“…. 자꾸 일본 쪽에 선계약한 걸로 걸고넘어집니다.”
“너무 힘들다 싶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직접 연락해 보죠.”
변 팀장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저기…. 오히려 디지니 플레이는 아주 좋은 조건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쪽은 너무 도박이죠. 일단, 넥플렉스를 우선으로 생각해 보시죠.”
“네. 실장님.”
지이이잉─
그때, KBC 예능국 파일럿 프로그램의 PD가 새롬에게 연락했다.
“예. 이 피디님, 정새롬 실장입니다.”
-저기, 이미 촬영 들어갔는데. 혹시 추가할 배우는 없나 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강준, 김현지, 미령 씨까지 세 명입니다.”
-아…. 송 감독님이 몇 명 추가될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요.
“일단 메인 주인공 세 명으로 잡고, 추가 투입 시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황.
KBC의 중진 두 명이 개입해서 그런지, 2부작 예능 제작은 순식간이었다.
고등학생 아역배우 출신인 강준.
경력이 전무한 신인배우 김현지.
퍼플걸스 리더이자 4년 차 배우 미령.
“저기…. 정말 그 조합으로 대박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요?”
새롬은 변 팀장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했다.
“원래 이 바닥에서 성공하면 작가와 감독 덕이고, 실패하면 제작사 탓이죠.”
“아….”
“일단, 파일럿 관찰 예능에 집중하세요.”
“네! 저기,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서….”
“문제요?”
변 팀장은 SBC 예능국 직원과 나눈 대화를 가감 없이 풀어내었다.
“다른 배우들은 괜찮은데. 강준 배우가 좀….”
“네. 왜요?”
“요즘 강준 배우는 연기 학원이나 회사에 머무르는 게 전부라서요.”
“…. 찍을 게 없다는 거죠?”
“네. 하다못해 신인배우인 김현지 배우님도 화려한 외모의 친구들을 다양하게 만나서 찍을 게 많거든요.”
“….”
이번 드라마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강준이다.
제목부터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가 아닌가.
“그 학원이 어디죠? 강준 배우가 다닌다는.”
“아! 저희 측 제휴 학원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정새롬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예 오늘 하루종일 학원을 대여해 버리죠.”
“네? 아….”
“학생들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해주세요.”
“다들 배우 지망생이라 오히려 환영할 겁니다.”
공중파 티비에 나오는 건 쉬운 기회는 아니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
“제가 직접 가볼게요.”
“시, 실장님이요?”
제휴 학원이라고는 하지만 정 실장이 직접 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한 번도 안 들렀잖아요. 이번 기회에 한 번쯤 구경해 보죠.”
* * *
“진짜 살다 살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이제 익숙하시잖아요.”
바다 한가운데에서 글을 쓰겠다는 또라이가 나 말고 또 있을까.
심지어, 매스꺼움과 사투를 벌이며 배 위에서 노트북을 두들겼으니.
《배터리가 2% 남았습니다.》
“아, 젠장 배터리!!!”
거의 다 썼는데, 오늘은 11부를 마무리해야만 해.
내일 또 배 타고 나오라고 하면 진짜 자살 마려울지도 몰라.
“자, 내가 챙겨왔다. 보조 배터리.”
“오오오!!!”
“나도 내일은 또 나오기 싫거든.”
“아저씨 나이스 샷.”
2주짜리 최장기 미션이었다.
적당히 어두울 때에 새하얗게 빛나는 ‘작업실’을 찾고 글을 쓰는 여정.
쏴아아아아아─
파도에 다시 한번 배가 출렁거렸다.
“아오, 진짜.”
6부를 시작으로 11부까지 이어지는 범죄 스릴러 드라마.
이번 화 수를 끝으로, 부산의 검은 조직들을 완전히 소탕한다.
24시간 회귀 능력자치고 조금 오래 걸렸지만.
코피 복선을 통해 능력의 한계를 미리 깔아두었기에.
“뭐, 로맨스도 진전이 있긴 하네.”
주인공은 여주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다.
무엇보다, 여주 또한 남주의 능력을 완전히 파악했으니.
-이제 그만 회귀를 멈춰!
-안 돼.
-그러다가 나까지 당신을 잊으면 어떡할 건데!
-…. 덕분에 살았잖아.
이어지는 11부의 마무리 작업.
여주의 비서로 위장 취업한 남주는 재벌가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미 자산만 놓고 보면 재벌 회장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으니까.
타닥, 탁─!
“다 썼다!!!!”
빨리 육지로 보내줘. 제발.
이내, 선장님은 뱃머리를 돌려 부두로 향했다.
지난 며칠간 뱃멀미 때문에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아, 힘들어. 죽을 거 같아.”
“젊은 놈이 엄살은.”
“….”
이미 끝났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도 고역이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드라마 작가면 내가 알만한 작품도 썼겠네?”
“순정마초라고 요즘 잘 나가요.”
“그게 뭔데? 모래시계 같은 거 좀 써봐.”
“….”
잠시 후, 아저씨한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사례금을 전달했다.
“작가 양반, 다음에 또 부산 내려오면 말해.”
“생각해 볼게요.”
부디 그럴 일이 없기를.
스윽─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었다.
바다에서는 받지 못한 연락이 밀려들었다
“11부에서 부산 조직 편도 마무리했으니까. 이제 서울 올라가도 되겠지?”
여기에 또 오라 그러면 진짜 죽일 거야.
뚜루루루─
-여보세요.
“실장님, 저예요.”
-후우…. 오랜만에 연락하시네요?
“그러게요. 부산이 공기가 좋네요.”
새롬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와아, 나도 김진우로 하루만 막살아보고 싶다.
“오! 그럼 나만 개이득….?”
-죽을래?
“아, 아뇨.”
-아니, 옆에 파리가 있어서. 파리한테 한 말입니다.
“…. 이 날씨에?”
-네.
혹시 그 파리가 나는 아니겠지?
“음, 어차피 저도 이제 곧 서울에 올라갈 겁니다.”
-잘됐네요. 마침 파일럿 프로그램 촬영 중입니다.
“순정마초는….?”
-이미 시청률은 MBS를 훨씬 뛰어넘은 지 오래예요.
“오, 좋네요. 그럼 올라가서 뵐게요.”
-네. 그러시죠.
뚝.
전화를 끊자마자 순정마초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공지) 시청률 15% 달성 기념 이벤트!』
『(공지) 촬영 마지막 날 제작진 밥차 모금합니다.』
『(공지) 스틸컷 모음』
이거, 내가 알던 디앤씨 갤러리가 아닌데?
“아…. 템페스트 공인 팬카페에서 직접 관리하는구나.”
팬카페에서 파견된 운영진이 통제하는 체계적인 시스템.
욕설이나 뜬금없는 글이 올라오는 순간 칼같이 잘려 나갔다.
“팬들이 밥차 선물까지 하다니.”
반면, 태양을 쏘다는 간신히 10%대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
시작부터 삐걱거렸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잠시 후,
나는 KTX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지이이잉─
한참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어떤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여보세요.”
-형님, 바쁘십니까?
이제는 머리가 커져서 작가님 대신 형이라고 부르는 임재준이.
“방금은 바빴는데. 이제 안 바빠.”
-네?
“니가 깨웠거든.”
-아…. 죄, 죄송.
“아니야, 어쩐 일로?”
재준은 재차 사과를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광고 하나를 찍게 됐는데. 짧은 드라마 형식이에요.
“오, 그래? 축하해.”
-아하하, 그런데 혹시 대본을 써 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광고 대본?”
-네! 제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진짜 오랜만에 순수 내 실력만으로 대본을 쓰는 건가.
“페이는 얼마래?”
-아마 상당할 겁니다!
“너는 인마, 좋은 동생이다.”
평생 가자, 이 자식아.
* * *
“음, 웬 카메라?”
희정은 학원에 와서야 KBC 예능 촬영팀 직원들을 확인했다.
뭔가, 오늘따라 학원의 분위기가 많이 격양되어 있었다.
곧이어, 강준은 희정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희정아, 너 뭐하냐?”
“음, 오늘 무슨 날이야?”
“…. 몰랐어?”
“응? 뭐를?”
“오늘 KBC에서 예능 촬영 왔잖아.”
“갑자기 예능?”
“갑자기는 아니고.”
어쩐지, 오늘따라 사람들이 치장에 공들인 티가 역력했다.
공중파 방송에 한 번 탄다고 안 하던 악세서리들을 주렁주렁.
“사실은 나를 촬영하러 온 거야. 일상 예능 찍게 됐거든.”
“응? 니가 누군데?”
“그게…. KBC에서 16부작 드라마 들어가게 됐어.”
“엥, 진짜? 왜 말 안 했는데?”
“음….”
강준은 한쪽 방향을 보고 말했다.
“저기 계신 분 보여?”
“누구?”
“저쪽에 서 계신 분.”
“오, 엄청 예쁜 언니!?”
그런데 왠지 모르게 얼굴이 익숙했다.
저렇게 예쁜 사람을 기억 못할 리는 없는데.
“우리 소속사 실장님이셔.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헐, 너 템페스트였어? 왜 말 안 했어?”
“니가 안 물어봤잖아.”
희정은 제작진과 대화하고 있는 여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여배우보다 아름다운 외모에, 수트가 잘 어울리는 미인.
또각, 또각─
이내,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걸어왔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열었는데.
“강준 배우님, 이쪽은 누구….?”
희정은 새롬의 얼굴을 보고 확신했다.
자신이 분명히 봤던 사람이라는 것을.
‘오빠가 톡할 때 프사로 봤던 사람….’
작은 사진에 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으니.
“으음, 정새롬 실장님….?”
“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그게, 저희 오빠가 실장님이랑 되게 친…. 아니, 조금 아는 사이 같아서요.”
“오빠라면…. 오빠가 누구신데요?”
희정은 새롬과 강준의 시선을 받으며 어렵게 입을 떼었다.
“김진우 작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