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37)
새롬은 희정의 말을 듣고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정마초의 김진우 작가님?”
“네. 헤헤.”
“….”
여동생이 배우 지망생이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여태까지 수많은 배역을 멋대로 꽂았으면서.
‘여동생은 단역으로도 들이민 적이 없었잖아.’
솔직히,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법도 한데.
“그쪽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김희정이라고….”
“번호도 알려 주실 수 있어요?”
“네? 아, 네!”
김진우 작가가 원체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잦았으니.
가족의 번호를 알아서 나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휴, 내가 이렇게까지….’
…. 하긴 해야지.
순정마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으니까.
고작 석 달도 안 돼서 뽑아낸 대본이라고 생각하면 경이로운 성적이다.
무엇보다, 김진우 작가는 그동안 겪은 어떤 작가보다 특이한 성격이 아닌가.
꾸벅─
새롬은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와…. 진짜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다.”
“그건 나도 인정.”
강준은 대답을 하며 재차 질문을 이어갔다.
“희정아, 김진우 작가님 신작…. 내가 주인공인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방금 알았지.”
“…. 진짜 멋있는 오빠를 뒀네.”
“으음?”
“카리스마도 장난 아니고, 포용력도 넓고.”
“우, 우리 오빠가?”
“응. 대본은 10년쯤 준비한 것처럼 완벽하잖아.”
그녀는 이상한 사람을 보듯이 강준을 쳐다봤다.
“사회생활 잘하네.”
“내, 내가? 아니야, 사회생활이 아니라….”
“너 말고. 우리 오빠.”
대외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했으면 사람들의 리액션이 한결같을까.
강준은 둘째치더라도, 정 실장이라는 분이 번호까지 물어본 걸 보면.
“쫌 치네?”
이후, 강준을 중심으로 하는 예능 촬영이 시작되었다.
유명 배우 출신 연기 선생과 일반인 4명이 소소하게 토크하는 방송.
특히, 학생들은 다들 배우 지망생이라 선남선녀가 한데 모여있었으니.
“편집 잘하면 재밌게 잘 나오겠네요.”
“그러게요.”
새롬은 팔짱을 낀 채 강준과 희정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 * *
나는 마침내 템페스트의 사옥에 도착했다.
띠링─
그때, 임재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가님, 아까 말씀드린 광고 대본 관련해서 연락처 알려드립니다! 010-21….]
[내일 저랑 같이 광고주님 뵈러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오, 부수입은 처음이로구나.”
얼마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통장에 5천은 있으니까.
“나도 이제 실버….!”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로비.
익숙한 환경을 스윽 둘러보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작업실로 향하기 전에 여동생에게 연락을 걸었다.
-여보세요. 오빠?
“희정아, 나 오늘 서울 왔는데. 오늘은 회사에서 자고, 아마 내일 집에 갈 거야.”
-벌써 한 달이나 지난 건 알지?
“어, 부모님은 잘 계시지? 며칠 전에 연락은 드렸는데.”
-당연하지.
“일단 알겠어.”
-저기, 오빠. 근데 나 아까….
“응? 왜.”
-에이, 아니다. 됐어.
“???”
한껏 뜸을 들이고서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이거, 희정이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말해라. 좋은 말로 할 때.”
-엄마! 오빠가 나보고 미친년이래!!
“내가 언제, 미친년아!!!”
엄마 치트키는 반칙이지.
뚝.
여동생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러기 위해 내가 업어 키운 것이 아니거늘.
“용돈 컷.”
템페스트 엔터 사옥 내에 주어진 작업실.
한 달 만에 나만의 공간에 들어오니 감흥이 남달랐다.
드르륵─
작업실에는 황효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왔어요?”
“아, 내가 데려왔는데 그동안 너무 신경을…. 근데 말이야.”
“네?”
효주는 화장부터 복장까지 풀 세팅을 해놓은 상태였다.
이민주 작업실에 있을 때는 이러고 다닌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여기 엔터라서 신경 쓰는 거냐?”
“아니요, 변 팀장님.”
“응?”
“제가 꼬시려고요.”
“….”
이 친구, 노빠꾸 상여자였구나.
그래, 취향은 존중한다.
“어어, 화이팅.”
“오빠 없는 동안 순정마초 자료 편집해서 JTBS 웹기획팀에 넘겼어요.”
“응? 어떤 거?”
“시놉이랑 등장인물, 인맥도까지. 디테일이 좀 부족해서 다시 보내 달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 잘했네.”
“앞으로 자잘한 건 저한테 주세요. 신경 안 쓰시도록 제가 처리할게요.”
“거, 일 잘하네.”
역시 보조 작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해.
그래야 지금보다 더 많이 꿀 빨지.
“근데 오빠, 지금 일본에서 순정마초 1, 2화 방송 나간 거 아세요?”
“어, 반응 괜찮다며.”
“시청률보다는…. SNS에서 엄청 퍼졌어요.”
“그래?”
그녀의 말을 듣고 인터넷을 켜서 일본과 순정마초에 관한 기사를 확인했다.
온갖 국뽕 뉴스로 도배가 되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가늠이 안 된다.
“음…. 다음 주쯤에나 확실히 견적이 나올 것 같은데.”
곧이어, 나는 노트북을 펴서 그동안 집필한 대본을 확인했다.
지난 한 달간 부산 각지를 돌아다니며 써온 5편의 대본.
오랜 시간 작업실에 콕 박혀서 대본을 수정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바다에 섬까지 돌아다니며 글을 써서 오타나 편집점이 넘쳐났으니.
* * *
다음 날,
임재준과 함께 광고주를 찾아가 미팅을 진행했다.
“하하, 요즘 순정마초 정말 잘 보고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광고주님.”
“임재준 씨가 작가님을 너무 추천하지 뭔가요? 허허.”
“아, 그런가요?”
옆을 슬쩍 보니까 재준이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광고 컨셉에 대사가 중요하거든요.”
“네.”
“순정마초처럼 생생하고 살아있는 대사로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쇼!”
연이어, 광고주는 짧은 광고 시놉시스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광고치고는 정말 심하다 싶을 만큼 대본의 비중이 높았다.
첫 장면에서 캠퍼스에서 후배에게 음료수를 건네는 임재준.
여인은 부끄러워하며 음료수를 받으려고 하는데.
그때, 다른 여인이 등장하며 질투심을 표시한다.
질투녀는 재준과 썸을 타는 여자였으니, 둘 사이에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그 과정에서 달콤했던 추억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야만 했으며.
본격적으로 삼각관계 멜로 형식의 연애 서사가 쭉 이어진다.
끝내, 짠 하고 나타난 재준이 썸녀에게 음료를 건네며 화해하는 마무리.
“음….? 광고가 아니라 진짜 드라마 같은데요?”
“네. 말씀드렸다시피….”
더이상 그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 부담된다.’
그냥 단순한 광고 두세 씬 정도로 생각했지만.
10분 단위로 네 편에 걸친 시리즈형 광고였다.
이거, 지금이라도 물러야 될 것 같은데.
스윽─
슬쩍 계약서를 보여주는 광고주님.
서류에 쓰여있는 계약금은 무려.
“8천 만원…. 선지급이요?”
“네. 혹시 부족하시면….”
“아, 아니요. 제가 광고 모델도 아닌데요.”
“허허. 그럼 사인을 하시는 건가요?”
계약서를 앞에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시스템이 만들어낸 드라마의 퀄리티와 내가 쓴 대본이 같을지에 대한.
프로의 세계에서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보통의 작가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으니.
“…. 해보겠습니다.”
순정마초로 번 돈과 계약금을 합치면 급수를 올릴 수 있었기에.
시스템 등급을 빨리 올리고 싶은 마음에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최근에 내가 고른 최고의 선택이었다.
* * *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엌에 가서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다.
부모님이 산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희정이가 산 맥주일 텐데.
“개꿀.”
지갑에서 3천 원을 꺼내어 냉장고 안에 집어넣었다.
만 원에 맥주 네 캔이니까, 500원은 배달비라 치고.
끼이익─
실로 오랜만에 내 방문을 열었다.
“후우….”
양말을 벗고 몸 상태를 확인해 보았는데 성한 곳이 없었다.
“다음 작품은 그냥 서울에서 시작해서 서울에서 끝났으면 좋겠네.”
혹시 해외 로케라도 뛰어야 되면.
부르르─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가정이었다.
여태까지 전부 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가.
“퉤퉤퉤.”
좆될 뻔했다.
나쁜 생각하지 말고 일단 이번 작품에 집중하자.
두 번째 작품 만에 공중파에서 제작되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전에….”
스윽─
광고주님께 받은 시놉시스를 꺼내서 다시 훑어보았다.
대략 스무 씬 정도를 써야 하기에 며칠 만에 쓰기에는 빠듯했다.
타닥타닥─
#1 음료수를 받은 후배가 부끄러워하며 인사를 받는다.
-선배, 저는 음료수 말고 다른 게 좋은데.
-무슨 말이야?
-저 예전부터….
-잠깐! 지금 둘이 뭐 하는 거야?
멈칫─
타자를 치다가 잠시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시놉을 읽어보았다.
“음, 뭔가 좀 무난한데. 다른 임팩트를 줄 수는 없을까?”
사실상, 대사로 변주를 주기에는 시놉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그러면 소품이나 주변 상황을 이용해서 드라마 느낌을 살려야 하는데.
띠링─
그때, 광고주님께서 이번 광고비를 입금해 주었다.
곧바로,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았는데.
순정마초로 번 돈을 합치면 벌써 1억 원을 넘었으니까.
“오, 실버! 드디어 가는 건가?”
스마트폰을 들어서 바로 시스템에 입금했다.
【※ 실버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1억 원 / 1억 원】
순간, 익숙한 시스템의 내용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띵동─
【실버 등급으로 승급하셨습니다.】
【시스템이 적용되는 배우의 폭이 증가합니다.】
【두 편 이상 연속으로 집필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추가 베네핏을 획득합니다. 】
【베네핏 강화 포인트를 1pt 만큼 획득합니다.】
“베네핏 강화 포인트?”
배우 변경권이나 새로운 스킬의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건가.
역시, 스킬 레벨업을 하려면 등급을 올리는 게 정답이었다.
“이번 베네핏은 과연….!”
【다중 집필 Lv 1 : 동시에 여러 작품을 집필할 수 있습니다. ‘서브 작품’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갱신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년)】
언젠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능이다.
등급을 올리면 동시에 두 개의 작품을 쓸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일정한 시간이라…. 쿨타임 1년은 좀 심하네.”
강화 포인트를 쓰면 쿨타임이 줄어들 것 같긴 한데.
게다가, 명확하게 ‘서브 작품’이라고 못을 박아 놓은 것을 보면.
기존의 작품과 비교해서 뭔가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하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다중 집필(Lv 1)을 사용합니다.】
재고 따질 것도 없이, 곧바로 다중 집필 기능을 사용했으니.
띵동─
그 순간, 시스템이 다시 한번 발동했다.
【최근에 마주친 배우와 어울리는 작품을 탐색합니다.】
“그래, 이거 기억난다.”
세미를 처음 봤을 때도 이 문구였어.
이내, 시스템이 내게 준 드라마의 제목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내용 : 캠퍼스 로맨스 1-4부】
【장르 : 로맨스, 대학교, 삼각관계】
【장소 : 신촌역 근처, 연지대학교 캠퍼스】
【제한 시간 : 무기한】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골드 승급에 10억 원까지는 아니었구나.
혹시나 매번 열 배씩 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캠퍼스 로맨스….!”
* * *
서울의 한 대학교 캠퍼스.
나는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두고 대본을 집필했다.
“서브 작품이라고 콕 찍어 말한 게 이런 이유였구나.”
딱 20분 분량의 4부작 드라마.
주인공은 최근에 내가 만난 임재준 원탑이었으니.
“포인트를 다중 집필에 쓰는 게 맞나.”
분량이 적어도 너무 적어서 웹드라마로 쓰기에도 불가능하다.
포인트를 쓰면 스킬 쿨타임을 단축하거나 서브 작품의 분량이 늘어날지도 모르니까.
타닥, 타다닥─
나는 숨을 죽이고 드라마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내가 필요한 대본은 딱 10분짜리, 네 편 분량뿐이다.
“오오, 이 장면은 아주 좋은데?”
임재준이 여인에게 간식을 건네는 장면.
음료수는 아니지만, 분위기는 시놉에서 봤던 내용과 흡사했다.
“음, 이 정도면 시스템이 다 했네.”
임재준이 간식을 주는 장면을 목격하는 여주.
이내, 돌아서는 뒷모습까지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 중에서 쓸 거는 쓰고 버릴 건 버리자.”
나는 드라마를 그대로 옮겨 적어서 광고에 맞춰 수정했다.
처음의 시놉시스와 상당히 달라졌지만, 개의치 않고 나만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대본이 광고판에서 얼마나 중요하냐고.
하지만,
얼마 후, 광고 업계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큰 충격에 빠졌다.
드라마 광고계는 임재준의 광고 이전과 이후로 판도가 바뀌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