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38)
일주일 후, 광고 촬영 당일.
임재준이 출연하는 음료 광고 촬영 현장, 연지대학교.
CF 감독은 대본을 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작가님, 이거 아무리 봐도 광고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데요?”
나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안 아까울 만큼 잘 찍으면 되죠.”
“아, 네! 근데 여기 배경을 좀 설명을….”
송 감독이나 성 감독 정도면 바로 알 수 있을 법한 내용도 재차 질문했다.
어디까지나 광고와 드라마의 감독은 다른 종류의 연출을 필요로 하니까.
“저기,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그냥 제가 계속 옆에 있겠습니다.”
“오!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하.”
“돈 받고 하는 일인데요.”
촬영 현장에 계속 붙어있어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지만.
그래도 시스템으로 작성한 대본이라 완성도를 지키고 싶었다.
“슛 들어갑니다. 레디.”
연출을 공부한 건 아니었으나, 나 혼자서 드라마를 봤으니까.
카메라의 구도나 포커싱 정도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액션!”
이내, 재준은 후배에게 음료를 건네준다.
후배는 얼굴을 붉히고 두 손으로 음료를 받았다.
진짜 드라마를 찍는 듯이 세심하게 관찰했다.
카메라의 높이라던지, 좌우 대칭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감독님 여기서는 줌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뭔가 너무 드라마 느낌이긴 한데….”
“퀼리티 높으면 좋잖아요. 일단 이거저거 찍어보고 편집 잘하면 되죠.”
“아, 네.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옆에서 너무 세세하게 간섭을 해서 그런지 촬영 시간이 길어졌다.
총 스무 씬, 10분짜리 4회분 분량이라 하루 만에 찍는 건 불가능했기에.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감독 옆에서 세세하게 연출을 도와줘야만 했다.
사흘 후,
업무상으로 피곤한 작업이었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러웠으니.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너무 귀찮게 했죠? 죄송하네요.”
“아,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감독은 애써 미소를 짓고 촬영분을 확인했다.
“제가 찍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네요.”
“감독님이 다 하셨죠.”
“와, 임재준 씨 잘생긴 건 알았지만 이 광고는….”
그때, 재준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형님, 오늘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고생 많았다.”
멀리서 촬영 현장을 구경하는 연지대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은 재준이 눈길 한 번만 주어도 자지러졌다.
아니, 그냥 놀리는 거 같기도 하고.
“오빠 멋있어요!”
“꺄아아아!!”
“재준 오빠!!”
오빠라고 부르는 이들 중 몇 명은 임재준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았다.
“형님, 주말에 쫑파티 때 오실 거죠?”
“응? 아, 당연하지.”
“아마 세미는 못 올 거예요. 또 일본에 스케줄 있다고….”
“세미 씨는 촬영 끝났어?”
“네. 세미는 벌써 촬영분 다 찍었어요.”
처음부터 대본을 완결까지 써서 그런가.
순정마초의 촬영 동선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효율적이었다.
덕분에, 배우 한 명의 촬영분을 미리 찍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으니.
“요즘 일본에서 퍼플걸스 엄청 잘 나간다며?”
“정확히는…. 일본에서 순정마초 반응이 뜨겁다던데요?”
재준은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민망한지 두어번 헛기침을 했다.
“일본에서는 지금 4화까지 방영됐나?”
“네, 형님. 그렇게 들었습니다.”
확실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퍼플걸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 * *
“벌써 순정마초 촬영도 끝날 때가 다 됐구나.”
어느새, 순정마초 마지막 촬영까지 하루를 남겨두었다.
삐삐삐─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희정이는 음악 방송을 보고 있었다.
“너는 백수냐? 왜 집에만 붙어있어?”
“뭐래. 오늘 학원도 가고 촬영도 하고 얼마나 바빴는데.”
“촬영?”
“음…. 몰라도 돼. 히히.”
“….”
마침, 음방에서는 퍼플걸스가 등장했다.
“와, 1위 후보네?”
“당연하지. 요즘 일본에서 핫하잖아. 국뽕 코인 모르냐?”
“…. 나랑 친함.”
“병신.”
그동안 음방 1위는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퍼플걸스였다.
근데,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1티어 걸그룹 대열에 합류할 줄이야.
-자, 모든 점수를 합산한 이번 주 1위는?
국민 여동생이자 원톱 솔로 여가수로 장기집권한 유설아.
이제는 대세 걸그룹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퍼플걸스.
“이거…. 상대가 너무 나쁜데?”
“그러게, 유설아를 어떻게 이기냐.”
그런데, MC의 발표는 모두의 예상을 보란 듯이 깨버렸다.
-이번 주 1위는 퍼플걸스! 축하드립니다!
“이걸 이겨? 어케 했누.”
“와아…. 대단하네. 퍼플걸스.”
“이러다 오리콘 차트도 1위 하는 거 아냐?”
“글쎄. 한국어 노래로 그게 될까?”
“유설아도 이겼잖아!”
퍼플걸스의 첫 음방 1등.
몇몇 멤버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축했다.
꽤 오랜 시간 무명 시절을 겪고 나서 2티어 걸그룹에 올랐는데.
순정마초와 일본 활동에 힘입어, 마침내 정상을 찍은 것이다.
-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장님, 매니저 오빠, 레인보우 가족들….
곧이어, 마이크를 건네받은 세미가 한마디를 추가했다.
-항상 저를 믿어주신 분….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허리를 숙이는 세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빛이 났다.
“호올리, 세미 진짜 여신 같아.”
“음…. 그러게.”
“오빠가 저런 분이랑 갠톡을 했다니….!”
“지금도 가끔 해. 멍청아.”
희정은 눈을 멍하니 뜨고 TV 속 여자 아이돌을 바라봤다.
원샷을 받은 세미의 얼굴에 청초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일이 많아서 힘들 텐데, 피곤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으니.
“레인보우 엔터, 일 잘하네.”
멤버들을 고생시키는 업무 방식은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기회를 잡고 판 키우는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
순정마초가 방영되기 직전부터 일본 활동을 시작한 퍼플걸스.
어찌 보면 선견지명이고, 어쩌면 시류를 잘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퍼플걸스의 성공도….”
전부 정새롬 실장 덕분이 아닐까.
내가 부산에서 대본을 쓰는 동안 일본 시장을 개척했으니까.
순정마초의 성적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밀어붙였다고 들었다.
“내 입장에선 개이득이지.”
차기작을 위해서도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퍼플걸스 리더, 미령이 서브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니까.
스마트폰을 들고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일본의 안방극장을 점령한 순정마초! K-문화 침략!》
국뽕 기사답게, 네티즌들은 설레발은 자연스레 뒤따랐다.
-일본 4대 천왕 드디어 바뀌려나 ㅋㅋㅋ
-아직 그정도는 아니얔ㅋㅋㅋㅋ
-4화 방영한 거 치고 인기 개쩌는 건 트루
-용사마는 레전드니까 이제 명예의 전당 보내드리자
-임사마 vs 지사마 선택존 ㅋㅋㅋ
-아마 5대 천왕으로 합의볼듯 ㅎ
그때였다.
띵동─
다중 집필 때문에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걱정이 무색했다.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2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1층 카페】
【제한 시간 : 23시간】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드디어 카페….”
부산에서 고생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이렇게 무난한 장소가 얼마 만에 등장한 건지 모르겠네.
“내일이 마지막 촬영이니까.”
일단은 대본부터 쓰고 촬영장에 들를까.
* * *
다음 날,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이제는 익숙한 카페에서 빛무리를 확인했다.
“벌써 12부구나.”
편성이 확정된 작품을 쓰는 상황이라 상당히 여유로웠다.
그도 그럴 게, KBC 방송국에서 파일럿 예능까지 만들어줬으니.
오히려 드라마 제작이 엎어지는 게 더 이상하다.
터벅, 터벅─
아마도, 주연급 배우 미팅 이전에 내가 집필할 마지막 분량.
“아….!”
빛무리가 머릿속에 침투하는 순간 탄성을 흘렸다.
타닥, 타타탁─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2부」
이번 화수에 화물트럭 운전자는 악당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남자 주인공은 상대와 혈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제압했으니.
-쿨럭.
결국, 피를 토하고 쓰러져 버린다.
회귀 능력을 쓸까 하지만, 회귀해도 악역을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 쓰러진 주인공을 케어해 주는 사람은 서브 여주인공이었다.
“미령이 기억을 회복하는구나…. 이러면 감정 표현이 정말 중요할 텐데.”
부상당한 주인공은 회귀 능력을 일부 상실했으며.
기억을 지우는 능력 또한 어느 정도 봉인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령의 심리 변화가 이 장면의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악역의 비중이 너무 높은 거 아닌가.
웬만한 연기력으로는 저 배역을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울 텐데.
문득, 순정마초에서 인연을 쌓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당시에 주연급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시스템에 등록했던 배우.
“신조훈 배우님.”
아직 순정마초가 14화까지 방영되지 않아서 그렇지.
조만간 포텐이 터지고 몸값이 오를 게 분명하다.
오늘 쫑파티 때 무조건 말해봐야겠어.
타닥, 타다닥─
어느새 대본 수정까지 마치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을 무렵.
“여기 계셨네요?”
“응?”
또각, 또각─
단정한 갈색 머리칼의 여인이 천천히 걸어왔다.
“정 실장님.”
“오늘 마지막 촬영인 거 아시죠?”
“아, 물론이죠.”
“여기 협찬사 하나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왔….”
“저기, 정 실장님.”
“네?”
나는 곧바로 신조훈 배우에 대해 물었다.
분명히 템페스트에 오디션을 권했던 기억이 있었으니.
“아, 네. 이미 계약했습니다.”
다행이다.
“사실 직원들이 다들 반대했어요.”
“네?”
“제가 김 작가님 안목을 한 번 더 믿기로 했거든요.”
“…. 영광입니다.”
아마 순정마초 종영 이후에는 계약하고 싶어도 못 했을 터다.
각종 엔터에서 수억 대의 계약금을 내밀며 서로 데려가려고 할 테니까.
“근데 아까 협찬사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아, 저희가 컨택한 적도 없는 협찬사가 뜬금없이 먼저 제안을 해서요.”
“어딘데요?”
“오성 식품에서 협찬해 주겠다고 해서요. 혹시 아시나 해서.”
“음, 오성 식품이면 재준이 음료 광고 찍은 데잖아요.”
“…. 차기작은 임재준 배우와 전혀 연관이 없을 텐데요?”
맞는 말이다.
그래도 굳이 상관이 있다고 한다면.
“내 대본이 좋아서?”
“대본이요?”
“아, 그 광고 대본….”
그때, 변 팀장이 천천히 접근했다.
“실장님, 작가님. 이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JTBS 앞 고기집 예약해 놨습니다.”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쫑파티도 제작사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순정마초처럼 대박 난 드라마는 그런 파티조차 하나의 컨텐츠로 제작되니까.
템페스트 공식 너튜브에 올리기만 해도 수익은 자동으로 뒤따른다.
“그럼, 작가님 같이 가시죠.”
“네.”
* * *
순정마초 마지막 촬영 현장.
세트장을 정리하는 스탭들을 지나쳐 누군가를 찾았다.
“신조훈 배우님.”
“아, 작가님!”
악당처럼 분장을 해서 그런지, 진짜 조폭을 연상케 하는 인상이었다.
“작가님 덕분에 요즘 연기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 덕분이요?”
“네! 소속사 없이 연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요.”
“아….”
조금 생뚱맞지만 신 배우에게 악수를 제안했다.
“우리 한솥밥 먹는 사이네요.”
“아, 아, 네.”
띵동─
이내, 시스템이 그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배역에 91%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금시혁’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배역의 일치율이 90퍼를 넘기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차피 시스템에 등록하면 예외 없이 100%로 일치율이 고정되지만.
이미 집필이 끝나서 지나친 대본들을 고려하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
“신 배우님, 아직 차기작 결정 안 하셨죠?”
“네? 그야, 소속사에서….”
차기작에서 화물트럭으로 주인공을 밀어버리는 메인 빌런.
오랫동안 재벌가 밑에서 더러운 일 처리를 해주는 해결사 역할.
악역 전문 배우로 굳어질 수도 있지만, 본인만 괜찮다면.
두 작품 연속으로 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또 한 번 저랑 가시죠.”
“네? 아….”
이번 작품에서 악역의 카리스마는 전작 이상으로 중요하니까.
사실상, 주연급 배우들 다음으로 비중 있는 배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때, 한 남성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걸쳤다.
“김 작가, 오늘도 한잔해야지?”
“아…. 최 선생님.”
나를 보며 씨익 웃음을 짓는 최만호 배우님.
진작에 촬영 분량을 다 찍었으면서, 회식을 위해 온 것이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을 찾아봤지만 이미 전부 도망갔다.
“음….?”
신조훈 배우도 그 짧은 사이에 사라져 버렸으니.
최 배우님은 내 어깨에 올린 손을 떼지도 않고 회식 자리로 직행했다.
선생님이 주는 잔을 감히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최 배우님의 주량은 소주로 5병 반이었다.
* * *
다음 날, 술 때문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필름이 끊겼다.
이내, 내 방문을 열고 소파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소파에 몸을 뉘이는 순간까지 머리가 울리는 느낌이다.
“오빠, 입 닫고 숨 쉬면 안 될까? 내 코 걱정도 해줘야지.”
“…. 너무 힘들어.”
“그럼 그냥 방에 들어가도 되는데.”
희정이는 스마트폰으로 어떤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 뭐 보냐?”
“나 지성호에서 임재준으로 갈아타려고.”
“걔들은 니가 태어났는지도 몰라.”
“아 씨, 오빠가 내 맘을 알아!?”
“별로 알고 싶지….”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지성호 열혈팬이었던 거 같은데?’
영상 편지에 10만 원까지 쓰던 팬심이 아니던가.
스륵─
고개를 돌려 여동생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너튜브에 오른 임재준 원탑 주연의 짧은 드라마 한 편.
《캠퍼스 커플 사이다 1화. Full Version. (feat. 오성 사이다)》
-22시간 전
-조회수 95만 회
-좋아요 6만, 싫어요 5백
-댓글 8천
“…. 뭐냐 이거.”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