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40)
티비 속에서 여동생의 얼굴을 본다는 건 이색적인 경험이다.
화면 너머, 강준의 옆자리에서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희정이.
아무리 생각해도 희정이랑 강준이 한 프로그램에 나올 이유가 없잖아.
“야, 강준이 왜 니 어깨에 손 올려.”
“나 강준이랑 친한데?”
“…. 강준, 이 쉑.”
작가 여동생을 건드려?
이거 선빵 갈긴 거 맞지?
“너는 왜 나한테 미리 말을 안 했냐.”
“크으, 나 카메라빨 잘 받는 거 봐.”
나를 가볍게 무시하는 여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거울 안 보냐? 너는 그냥 머리 긴 타이슨이야.”
“뭐?”
여동생은 나를 쏘아보며 입을 쭉 내밀었다.
“그거 하지 마. 더 못생겼어.”
드라마 작가의 여동생이 공중파 예능에 나오다니.
그것도 이 예능의 성격은 드라마 홍보가 메인이잖아.
나중에 밝혀지면 주작 논란 나오기 딱 좋은 상황 같은데.
‘음….’
솔직히, 언젠가 여동생을 단역부터 천천히 키워줄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타작가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생기면 가족을 챙기고 싶은 게 당연한 거니까.
‘근데, 그게 지금은 아니라고….!’
처음부터 학원 등록해 준 게 실수였던 건가.
“후…. 정 실장님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응? 그분은 벌써 아는데? 내가 김진우 동생이라고 말했어.”
“…. 잘했다.”
근데 왜 그걸 나한테는 말 안 했냐고.
이내, 여동생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툭툭 두드리더니 내게 내밀었다.
“오빠, 이거 봐 반응 엄청 좋아.”
예능 프로그램 갤러리, 일명 옢갤에서 실시간으로 글이 리젠되는 모습.
뿔뿔이 흩어진 드라마와는 달리, 모든 예능을 취급하는 대형 사이트였다.
『예능에서 대놓고 드라마 홍보하냐 ㅡㅡ』
『킹진우 작가는 믿고 본닼ㅋㅋㅋㅋ』
『오성 사이다 대본 누가 쓴지 모르는 흑우 없제?』
『드라마 제목이 회귀잨ㅋㅋㅋㅋㅋ』
『미령? 퍼플걸스 코인 가즈아 ㅋㅋㅋㅋ』
『주인공들 매력있는데? ㅎㅎ』
『강준 여사친 SNS 공유 좀』
“그래. 뭐, 이 정도면 반응은 호의적이네.”
“그치? 그치? 내 SNS가 궁금하대!”
“너는 니가 보고 싶은 것만 보냐?”
“히히.”
생각 없이 처웃고 있는 여동생을 무시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스윽─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새롬에게 무슨 톡을 보낼지 생각했다.
[실장님 멍충이 같은 여동생이 제멋대ㄹ]
“흠….”
탁, 탁탁─
다시 톡을 지우면서 천천히 고민했다.
“뭐라고 보내야 잘 보냈다고 소문날까.”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내가 대신 이쁘게 말해줌.”
쉬이익─
그때, 희정이가 손을 뻗어 내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야야, 뭐, 뭐해!”
“앗, 실수로 전송 눌렀…. 음.”
희정이가 스마트폰을 잡으면서 전송 버튼이 눌러졌다.
순간, 여동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곧바로 톡을 확인했는데.
“아, 빠, 빨리 취소해야….”
[실장님 멍충이]
읽었다. 시발.
타다다닥─
여동생은 자신의 실수를 확인하자마자 방으로 냉큼 도주했다.
“…. 진짜 죽일까?”
저거 죽이고 오늘부터 외동아들 해야겠다.
* * *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실장님 멍충이]
새롬은 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했다.
“음….”
결투 신청인가.
태권도 6단인데.
똑, 똑─
“들어와요.”
변혁주 팀장이 실장실에 들어왔다.
“실장님, 신조훈 배우님에 대해 말씀드릴게….”
“아, 저도 알아요. 요즘 반응이 보통이 아니던데요.”
“네. 범죄시티 이후 최고의 악역이라는 평입니다.”
김진우의 안목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그의 제안으로 신 배우가 직접 템페스트를 찾았으니.
만약 김진우의 추천을 받고도 그를 놓쳤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직원들은 반대했었는데 새롬과 변 팀장이 강행했다.
혹시, 직원들의 선택을 따랐다면 눈앞에서 보석을 놓칠뻔하지 않았는가.
“실장님, 얼마 전에 쫑파티 때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네? 어떤….”
“김진우 작가님이 신 배우님을 차기작 악역으로 낙점하셨다고….”
“아….”
캐스팅에 한해서는 거의 독재자나 다름없다.
놀라운 건, 단 한 순간도 예외 없이 완벽한 캐스팅이라는 점.
‘아예 대본을 쓸 때부터 배우에 맞춰 쓰는 방식일지도….’
변 팀장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기, 너무 악역 캐릭터에만 매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마동식 배우님도 싸움꾼 역할만 맡는데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아….! 그럼 다음번에 송 감독님과의 미팅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뇨. 감독님께는 제가 따로 말씀드릴게요.”
“넵. 실장님. 이건 마지막 건인데….”
변 팀장은 쭈뼛거리며 결재 서류를 새롬에게 건넸다.
“넥플렉스네요. 근데 조건이 이게 뭡니까?”
“아, 요즘 그쪽이 독점벽을 너무 쳐서 이 이상은….”
사실상, 해외 시청자를 유입하기 위해서 넥플렉스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아시아, 동남아, 중동 국가까지 한류 드라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으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익 배분 9대 1은 심하네요.”
“그, 그게…. 이미 일본 방송국에 판권을 팔아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명백한 갑질이었다.
다름 아닌 넥플렉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갑질이기도 하다.
순정마초라는 먹이가 아깝긴 하지만, 그들에겐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일 뿐이니까.
글로벌 드라마로 뻗어 나가는데 넥플렉스를 대체할 플랫폼은 없기에.
“아니, 디지니 플레이도 있구나.”
“아! 안 그래도 디지니 쪽에서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했습니다. 특히 김진우 작가님께….”
“음….”
아무래도, 업계 1, 2위 간에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까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산술적으로 평가되는 넥플렉스와 디지니 플레이 사이의 격차는 2배 이상.
물론, 고작 몇 년 만에 폭풍성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디지니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너무 도박인데….”
김진우 작가의 첫 작품이 해외시장에서 주춤하는 건 너무 손해였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넥플렉스에 숙이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턱─
새롬은 계약서 파일을 덮고 변 팀장에게 말했다.
“디지니 측에 미팅 준비해 주세요.”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냥 미팅 한번 하는 거니까 경거망동하지 마시고.”
“아…. 넵.”
“김진우 작가님께는 제가 바로 연락하죠.”
“알겠습니다.”
이내, 변 팀장은 고개를 숙이고 실장실 문을 나섰다.
“넥플렉스 측에서는 관심이 없는 건가….”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충분히 궤도에 오른 드라마였으니.
해외로 뻗어 나가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작품이 아닌가.
이런 조건을 걸었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유리한 조건을 가져가기 위해 기선제압을 하려고 하거나.
“계약할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을 수도.”
숨길 것도 없이 대놓고 경쟁사와 미팅을 가진다면.
아마, 넥플렉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지.
“슬쩍 정보를 흘려야겠네.”
새롬은 스마트폰에서 적당한 나팔수의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 * *
정새롬 실장의 호출을 받고 템페스트 엔터로 향하는 길.
“음, 그냥 실수라고 보낼 걸 그랬나.”
타이밍을 한번 놓쳐버리니까 이제는 해명하기도 이상하다.
차라리 그럴싸한 변명을 하나 만들어 놓는 게 낫지 싶다.
가령,
“고양이가 잘못 보냈어요.”
“네….?”
“아까 톡 보낸 거…. 멍충이.”
“….”
표정 보니까 더 빡친 거 같은데.
고양이 말고 사촌 갓난아기를 팔걸.
“됐고, 여기 계약서를 한 번 읽어보세요.”
“흠.”
생각보다 쿨한데?
“이게 무슨 계약서….?”
“넥플렉스요.”
“키야.”
내 작품이 그런 거대 플랫폼에 걸리는 날이 오다니.
이민주 작가도 여섯 번째 작품에서야 간신히 들어갔는데.
‘뭐, 그 이전에는 넥플렉스가 성장하기도 전이었지만.’
스윽─
대충 훑어보니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조건은,
“9대 1이면 조금 심하네요. 요즘 순정마초 인기가 얼만데.”
“동의합니다.”
다른 조건은 그냥 무난무난해 보였다.
굳이 갑을 관계를 따지면, 제작사가 대형 플랫폼을 이길 순 없겠지만.
“조건이야 협상을 통해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건 모르겠고, 다른 곳이랑 미팅을 가져볼 생각이에요.”
“네?”
“디지니 플레이에서는 좋은 조건을 걸었으니까요.”
“음….”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정새롬 실장 말 따라야겠다.
“미팅 때 함께 하시죠.”
“저도요?”
“네. 디지니 측에서 먼저 요구했어요. 함께 미팅했으면 한다고.”
“그래요?”
스윽─
새롬은 디지니 측에서 보낸 메일을 해석한 내용을 보여주었다.
옆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그녀의 머리카락이 코를 스쳤다.
‘샴푸 뭐 쓰냐.’
대충, 나를 만나서 작품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하고 싶다는 내용.
“오, 저를 너무 좋아하는데요?”
“적어도 한국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쳤으니까요.”
“???”
“임재준 광고.”
“아….”
업계 관계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대중과 미묘하게 달랐다.
시청자가 작가를 보고 드라마를 선택할 때는, 몇 작품에서 성공했는지가 우선이지만.
제작사나 협찬사 등의 업계 사람들은 돈은 벌어다 줄 수 있는지 아닌지가 최우선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진우 작가님은 신인작가 중에선 최고의 흥행 카드가 된 거죠.”
음, 좋은데?
“오성 사이다 광고 효과를 대략 매출 15배까지 예측하고 있어요.”
“나 좀 하네요?”
“…. 장난하지 마시고.”
새롬은 연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디지니 플레이에 들어가는 건 신중해야 해요.”
“그쪽도 요즘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혹시 망하면 커리어에 치명적이라고요.”
“음….”
전속계약도 아니건만, 커리어까지 걱정해준다.
“맞는 말이죠.”
나는 이제 고작 두 번째 작품 제작에 들어가는 신인이니까.
‘대신 성공하면….’
등급을 금세 또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후우…. 일단 만나고 결정하죠.”
“누구를요?”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지부장.”
이민주 작가 밑에 있을 때는 만나볼 엄두도 낼 수 없던 인물이다.
* * *
시간이 흘러, KBC 방송국에서 편성 날짜를 확정했다.
“넉 달 후….”
시간은 전혀 촉박하지 않고 여유로웠다.
벌써 주요 배역 캐스팅은 전부 마쳤으니.
“그래도 완벽한 게 좋지.”
이번에는 조연급 캐스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자.
템페스트 엔터에 전부 맡기는 것보단 그게 낫겠어.
그래야 일치율이 조금이라도 높은 배우를 찾을 수 있으니까.
이미 대본은 거의 다 썼으니까 그런 배우를 찾는 게 중요하다.
이내, 스마트폰을 들어 관련 기사를 찾았다.
몇몇 기자들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었는데.
《이민주 vs 김진우! 사제 간에 선의의 경쟁!》
“선의의 경쟁은 무슨.”
드라마 들어간다고 하니까 날름 끼어드는 게 ‘그’ 인간의 선의인가.
그것도 하필이면 SBC의 차충헌 감독이 연출 책임을 맡았으니.
“주 국장님 말이 사실이구나.”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유치한 사람들이었나.
차충헌이든, 이민주든 둘 다 마찬가지로.
“같이 드라마 하는 배우들이 그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분 더러울까.”
두 어른들이 옹졸한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에 합류한 꼴이니까.
내가 배우는 아니지만, 혹시나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기분 잡치는 정도로 안 끝났다.
나는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제작진의 단톡방을 확인했다.
[이번 주말에 주연배우 미팅 있습니다. 장소는 KBC 방송국 내부…. ]
대본 리딩 이전에 작가, 감독, 주연배우가 전부 모이는 공식 행사.
드디어, 내가 뽑은 배우들로 두 번째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다.
띵동─
그때, 시스템 알림음이 발동하며 다음 작품의 장소를 알렸다.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3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KBC 방송국 본관 로비】
【제한 시간 : 19시간】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KBC 방송국.”
그러고 보니 내일 음악 방송에 퍼플걸스도 나올 텐데.
가는 김에 미령 씨랑 세미 씨한테 인사라도 해야겠네.
“음방이라….”
평소에 가수들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콘서트를 찾거나, 방송 관계자가 아닌 이상.
그게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예상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