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41)
KBC 방송국 로비.
오늘은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주연배우 미팅이 있는 날이다.
대본을 최대한 일찍 써서 남는 시간에 음방도 볼 생각이라 마음이 급했다.
이제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다.
보안 요원 옆에서 의자를 하나 가져와서 타자를 쳤으니.
타닥, 타다닥─
“저기, 여기서 왜….”
“가드 형님.”
“네?”
“제가 여기서 써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
얼핏 보면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청년.
그는 살짝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미 편성 날짜까지 확정된 작가임을 증명했기에, 굳이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이제 이거만 쓰면 3회 남았네.’
그런데, 이번 편은 고구마가 확정이었다.
일전에 등록한 신조훈 배우님이 악역 포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전 회차에서 주인공이 간신히 때려잡은 악역이 호송 차량을 탈출했으니까.
그리고 신 배우님은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칼침을 놓는다.
회귀 능력과 함께, 기억을 지우는 능력도 크게 약해졌기에 악역이 각성한 형식이었다.
이내, 주인공은 가족들의 시신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진다.
곧바로 회귀 능력을 쓰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이번 화 너무 고구만데….?”
결국, 악당은 다시 한번 호송 차량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주인공이 그를 막기 위해 움직이면서 마무리되었다.
“….”
너무 고구마만 먹으면 안 되니까.
중간에 신조훈 배우님이 오성 사이다 한 캔 들이켜야겠다.
잠시 후,
타다닥, 타닥─!
“으…. 다 썼다.”
꽤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았더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아침부터 일찍 와서 죽은 듯이 대본만 썼으니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퍼플걸스 매니저에게 톡을 보냈다.
어제도 보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어서.
[매니저님, 진짜로 제가 대기실에 먼저 가도 될까요?]
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네 저희는 아직 가려면 좀 걸릴 것 같아요]
[퍼플걸스라고 써 있는 대기실에 미리 가 있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음…. 가서 좀 쉴까.”
솔직히, 글을 다 쓰고 나니까 이제 그냥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안 그래도 저녁에 주연배우 미팅 있는데, 미령 씨를 또 봐야 하나.
“그래도 세미 씨는 봐야지. 스케줄 비는 날도 얼마 없을 텐데.”
요즘 국내외로 워낙 바쁘신 몸이라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순정마초도 애저녁에 촬영 다 끝나서, 이제 막방만 기다리는 입장이니까.
음악방송 대기실까지 가는 길.
저벅, 저벅─
“안녕하십니까! 저희느은~”
“….”
““별처럼 빛나는 슈팅걸스! 입니다!””
“음, 아, 네. 안녕하세요.”
슈팅이랑 별이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 별을 쏘나.
무려 세 번씩이나 만난 ‘그룹’ 단위의 아이돌들.
걸그룹이든 보이그룹이든 가리지 않고 또 만났다.
그들 중에 내가 누군지 알고 인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아무나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니까.
“되게 불편하네. 진짜.”
민망한 마음에 걸음을 빠르게 하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전 회차에서 1등을 한 가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넓은 대기실.
고개를 들어 대기실 명패에 쓰인 ‘퍼플걸스’라는 글자를 확인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넓은 공간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확인했다.
“멤버들 올 때까지 대본 수정이나 좀 해볼까.”
이내, 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쳤다.
그런데,
타닥, 타다다닥─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트레칭을 하려고 기지개를 켰는데.
“?”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낯선 여인이 반대편에 앉아 어떤 대본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는 둘째치고, 복장이 무척이나 화려했다.
이번 무대 컨셉이 파티장 드레스를 요구하는 듯 하다.
두근─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심장의 울림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띵동─
이내, 새로운 시스템이 찾아왔다.
【새로운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다중 집필(Lv 1)에 베네핏 강화 포인트를 사용하여 재사용 대기시간이 초기화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작품의 주인공을 발견했을 때 발동하는 감각.
카페에서 김현지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경험이었다.
“유설아….?”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듣지 못한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아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한국에 없겠지.
10년차 국민 여동생이자, 이 정글 같은 연예계의 여왕으로 군림한 존재를 모를 수는 없으니까.
노래, 작곡, 연기, 예능까지, 뭐 하나 씹어먹지 않은 장르가 없는 전천후 만렙 연예인이 아닌가.
‘그동안 항상 1등만 해서 대기실을 착각한 건가.’
쿨타임 1년짜리 다중 집필에 아까운 포인트를 써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언제 또 국민 여동생을 우연히 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내 다음 작품에 유설아를 캐스팅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들었기에.
‘아니, 유설아 데리고 웹드라마 찍는다고 하는 게 더 웃기지.’
그때,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아, 저는….”
“여기 아무나 못 들어…. 아, 음방 직원이시구나!”
“아뇨. 저는 작가….”
“아하, 음방 작가님이시구나. 처음 뵙는 분이네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저 아직 리허설 시간까지….. 앗, 벌써 시간이 다 됐구나! 죄송해요.”
나도 말 좀 하자.
사라락─
그녀가 입은 화려한 드레스가 바닥에 끌렸다.
“나중에 또 봐요. 스탭분.”
싱긋 웃으며 멀어지는 유설아.
마지막까지 자신이 방을 잘못 들어왔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저기, 근데 다음부터는 대기실에 기척을 좀 내고 들어와 주세요!”
정말 몰랐구나.
이런 말을 남기는 걸 보니까.
끼이익, 쿵─
“여기 남의 방이에요.”
내 말을 들을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
잠시 후,
나는 퍼플걸스의 대기실에서 벗어나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콘서트도 아니고 무료로 유설아의 라이브를 들을 기회니까.
다양한 스탭들과 매니저, 기자들까지.
현장에는 온갖 사람들이 뒤엉켜 돌아다녔다.
음방은 그 어떤 예능보다도 다양한 종류의 직업이 모이는 장소가 아닐까.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래가 아니라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사랑이라 말하지 말아요~♬」
“오늘 귀 호강하네.”
약 5분간의 노래를 끝으로 유설아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내, 새로운 전주가 흘러나오며 후속곡을 부를 차례가 되었다.
「그대는 내 마음속에….」
첫음절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냥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유설아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전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중 한번은 나를 바라보며 생긋 웃어주기도 하였다.
뭐, 다른 사람이라고 하기엔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아마 대기실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노래…. 좋다.”
이내, 마지막 가사를 끝으로 리허설이 종료되었다.
띵동─
그때,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노래 등록이 발생했다.
【작품의 분위기와 92%만큼 어울리는 음악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음악을 작품에 추가하시겠습니까? (Y/N)】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으니.
곧이어, 추가 알림음이 발생했다.
【‘배우와 가수는 하나!’ 임무를 달성했습니다.】
【히든 미션을 완료하여, 특전이 주어집니다.】
【베네핏 강화 포인트를 1pt 만큼 획득합니다.】
“와…. 미쳤다.”
시스템의 숨겨진 기능은 어디까지일까.
* *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설아를 섭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3년치 스케줄은 가득 차 있을 것 같은데.
터벅, 터벅─
대기실로 가는 길, 혼자서 생각했다.
‘어쨌든 이제 포인트는 2개네.’
아껴두고 있던 포인트를 다중 집필에 투자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필요한 순간에 바로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훗날로 미뤄두었다.
“음, 일단….”
노트북을 놓고 나온 퍼플걸스의 대기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작가님!!”
“오, 우리의 히어로!”
“꺄아아!”
퍼플걸스 멤버들이 한마디씩 던지며 격하게 반응했다.
그중, 세미는 입을 열지 않고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동안 다들 잘 지냈어요?”
레이미가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한 달 넘게 부산에 있었다면서요?”
“네. 그렇게 됐어요.”
“에이, 그래도 연락은 했어야죠. 세미가 얼마나 기달….”
“언니!!!”
“흠흠.”
세미는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하, 한 달이나 연락이 안 됐으니까. 진짜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알아요. 세미 씨.”
“진짠데….”
“네. 앞으로도 종종 연락할게요.”
“네!”
티비 속에서 그려지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퍼플걸스.
그런데, 현실에서 다 모아놓으니까 비글들이나 다름없었다.
“아아, 근데 작가님, 작가님….”
“자까님! 혹시 파일럿 보셨어요?”
“우리 일본 예능 안 보심?”
“대답좀대답좀대답좀.”
그냥 다들 한마디씩만 던져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러던 중, 한 멤버는 테이블에 있는 내 대본을 가져와서 물었다.
“작가님, 이거 대본 놓고 가셨어요?”
“네?”
“우리 오기 전부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데요?”
“음….?”
뭐지, 대본을 가져온 적도 없는데.
그녀의 한 손에는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부 대본이 들려있었다.
바로 그때, 자리에 없던 미령이 문을 벌컥 열고 대기실에 들어왔다.
“미령 씨, 오셨어요?”
“어? 작가님!”
“이따가 저녁에 미팅 잊지 말고…. 아.”
띵동─
그렇지, 미령 씨도 우리 드라마 주인공이지.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4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506호】
【제한 시간 : 1일】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506호…. 내 작업실이네.”
강준이 자주 들러서 그렇구나.
이번 작품에서는 꿀 제대로 빨았네.
* * *
그날 저녁, KBC 방송국 내부 주연급 미팅 현장.
송권수 감독을 필두로 주요 촬영진이 다 모였다.
강준, 미령, 김현지를 포함한 주연배우까지 전부 모인 자리.
송 감독은 제작진을 한 명씩 소개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이제 진짜 제작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은 조명감독이고, 이쪽은 촬영감독….”
업계에 발을 담근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의 이름을 알긴 어렵겠지만.
이민주 보조 작가 시절부터 SBC 주요 인물들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이름도 얼핏 기억하는 것을 보니까.
“김 감독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많이 챙겨봤죠.”
“네? 뭐 보셨는데요?”
“무, 무야….”
“아, 무아지경 삼남매 보셨구나~ 시청률 괜찮았었어요.”
“그만큼 많이들 보셨다는 거죠.”
이내, 시선을 돌려 한 남성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음악감독 송권철이라고 합니다.”
송권…. 철?
옆에서 송권수 감독이 한마디를 추가했다.
“제 친동생입니다.”
“아아, 안녕하세요.”
곧이어, 화기애애한 회식 분위기 속에서 음악감독과 대화를 나눴는데.
“유설아 씨 노래요? 하하.”
“네. 어렵겠지만 부탁이라도 해볼 수는 있잖아요.”
“음…. 진담이시구나.”
“물론이죠.”
“차라리 템페스트 엔터 대표님께 말씀드려보는 건 어때요?”
“네….?”
“아, 모르셨구나.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긴데….”
음악감독의 말을 듣고 내가 생각보더 정보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템 엔터. 템페스트 설립 때 분리됐잖아요. 지금은 완전 별개지만, 어쩌면 형제 회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무려 13년차 가수이자 연기 경력 8년차 베테랑.
유설아는 로템 엔터를 먹여 살리는 소녀 가장이다.
물론, 소녀 가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거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