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42)
다음 날, 회귀자 14부를 작성하기 위해 내 작업실에 들었다.
그게 아니라도 회사에 나오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어젯밤, 내 머릿속에는 유설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개인 인지도로만 봐도 퍼플걸스를 훨씬 능가하는 인물이 아닌가.
퍼플걸스는 그래도 아직까진 반짝스타 이미지가 남아 있었으니까.
뭐, 일단은 템페스트 대표와 식사하기로 약속했잖아.
“대표님 만나면 진지하게 말해봐야겠다.”
그동안 정새롬 실장이랑만 일해서 그런지 볼 일이 거의 없었다.
템페스트 엔터 대표, 정기태.
천성 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부회장의 친동생.
솔직히 말해서, 내 부탁을 곧이곧대로 들어줄까 싶긴 하다.
그것도 다짜고짜 국민 여동생을 배역으로 쓰고 싶다고 한다면.
“음….”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요?”
황효주는 뿔테안경을 치켜 올리며 질문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풀메이크업에 샤랄라하는 복장을 입고 다녔는데.
그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츄리닝에 똥머리로 퇴화했다.
변 팀장한테 차였나.
“역시 유전자 탈락설이 정답인가.”
높은 곳에 먹이를 먹지 못한 목 짧은 기린이 멸종한 이유와도 같지.
퇴화의 과정을 거쳐 열등한 유전자가 살아남지 못했다는 이론.
“…. 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은 나쁘네?”
“칭찬이야.”
“아하, 오키!”
“변 팀장님 꼬시는 건 포기?”
“차이긴 했는데, 포기는 아니에요.”
진짜 그새 고백했냐. 완전 노빠꾸 맞네.
“오늘 변 팀장님 오프래요.”
“어, 그래? 전혀 궁금하진 않지만 알려줘서 고마워.”
“갑자기 우울해요.”
“우울할 때는 편집해야지. 대본 오타 검수해.”
“네에….”
말로는 우울하다고 했지만,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저기, 근데 오빠 어제 순정마초 반응 보셨어요?”
“어제 14화였지?”
“네. 반응 장난 아니에요.”
그녀의 말을 듣고 시청률 사이트에 접속했다.
『월화 드라마 시청률 1위 (16.4%) :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는 수치였다.
데뷔작으로 케이블에서 초대박이 터져버렸으니까.
“커뮤니티에서 악역 연기 잘한다고 난리 났어요.”
“악역?”
“신조훈 배우님!”
“아….”
그동안 존재감 없던 인물이 악마 같은 빌런 연기를 제대로 소화했었지.
특히, 내가 미리 본 드라마 14화에서도 그의 포텐이 터질 걸 예상했었으니까.
“덕분에 템페스트 주가 진짜 쭉쭉 오르는 거 아세요?”
“그래?”
“네. 임재준, 지성호, 신조훈 배우님에….”
“곧 강준이랑 김현지까지 터지면 잭팟이겠네.”
“그렇죠!”
“음, 그럼 대본 수정해. 나는 14화 쓸 거니까.”
“네. 오빠.”
그녀를 뒤로한 채 내 작업실 한쪽에 머무르는 하얀 빛무리에 접근했다.
“흠.”
이내, 빛무리가 머릿속에 들어오며 새 드라마의 기억을 주입했다.
타닥, 타다타탁─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4부」
“이제 진짜 끝이 보이는구나.”
이번 화수에서는 거의 최종 빌런급인 신조훈 배우님이 깔끔하게 퇴장한다.
순정마초에서도 정확히 14화에서 퇴장했으니까 시스템의 패턴은 비슷했다.
타닥, 타다닥─
대부분 남주와 악역의 대결로 이어지는 14화 집필을 이어갔다.
* * *
강준은 연기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학원에….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평소에는 고작 네 명이 전부였는데, 오늘따라 학생들이 북적북적했다.
자신만 해도 학원비가 워낙 비싸서 템페스트 엔터의 지원을 받고 다니지 않는가.
“오오, 강준이다!”
“대박이네. 쟤 때문에 학원 떡상한 거지?”
“…. 좀 생겼네?”
터벅, 터벅─
곧이어, 연기 선생이 들어오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다른 강의 학생들은 각자 연습실로 돌아가 주시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중견 배우.
꼰대에 얼차려까지 주는 악명 높은 선생이지만.
실력이든, 경력이든 모든 면에서 1티어 강사였다.
이내, 학생들은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자리를 비웠다.
어떤 이는 부러운 눈초리를 보냈고, 누군가는 대놓고 질투의 감정을 드러냈다.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슨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하네.”
희정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내, 강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나는 진짜 별거 없는데.”
“왜?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조에서 니가 에이스야.”
“나는 그냥….”
강준은 희정을 쳐다보며 말을 삼켰다.
‘니 오빠 덕분에 다시 연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요즘,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으니까.
“깡준, 책이나 챙겨.”
“희정아.”
“응?”
꿈에서 깨면 바름 엔터 시절로 돌아갈까 봐 두렵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빚에 쫓기며 알바로 연명했으니까.
“다 갚을 거야.”
“뭐를?”
“있어. 그런 거.”
“???”
원래도 좋은 친구지만, 희정에게 뭐라도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강준아.”
“응?”
“너 엎드려뻗쳐.”
“어?”
“나 말고 쌤이 너 엎드려뻗치래.”
강준은 고개를 돌려 연기 선생을 바라봤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까딱거리는 그의 모습.
“아, 아니. 선생님, 저는 희정이랑 같이 떠들었….”
“엥? 무슨 소리야.”
“….?”
희정은 한 손에 들고 있는 연습용 대본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니, 희정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세 명의 학생은 전부 같았다.
‘아, 왜 나만….?’
* * *
KBC 방송국.
연출팀과 제작사를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전부 모였다.
화이트보드에 수많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김찬호 배우님은 어떠세요?”
“글쎄요. 김 배우님 이미지는 너무 가벼워서….”
“후우….”
송권수 감독과 정새롬 실장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조연급 캐스팅을 하나씩 맞춰보고 있었다.
“저기요.”
내가 손을 슬쩍 들자마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웬만한 캐스팅 디렉터보다 보는 눈이 정확했으니까.
“차라리 제가 한 번씩 만나보면 안 될까요?”
“네? 언제 전부….”
“엔터 돌아다니면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악수 한 번씩만 하면 대충 감이 올 것 같습니다.”
“….”
“어려울까요?”
벌써 대본은 14부까지 나온 상황이 아닌가.
이제부터 필요한 건 ‘일치율’이 높은 배우였다.
시스템에 의해 일치율이 100%가 될 필요가 없는 배역들.
그래서 등록하지 않아도 해당 배역과 찰떡같이 딱 떨어지는 그런 배우들.
“그냥 가볍게 3분, 아니, 1분만 대화해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순정마초 때는 이렇게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두 번째 작품을 낸, 어엿한 기성작가가 되었으니.
이내, 새롬은 굳은 표정을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죠.”
그녀의 눈빛에는 어떠한 열망이 자리 잡았다.
“고마워요. 믿어주셔서.”
“직접 봐야 배우를 알 수 있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 그쵸. 하하.”
“쓸데없이 제 시간을 뺏으려는 게 아니잖아요. 그쵸?”
“음….”
“이게 다 작품을 위해서니까.”
“…. 그런 셈이죠.”
캐스팅에 이어 누군가 장소에 대해서 의견을 내었다.
KBC 소속 조연출 중에서 한 명이었는데.
“몇몇 장면은 어쩔 수 없이 CG로 채워야 할 것 같은데….”
“네. 말씀하세요.”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게, 촬영비 걱정도 해야 해서….”
“주 국장님이 빵빵하게 지원해 주신다고 들었는데요.”
“그, 그건 그렇지만…. 제작비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네.
“반드시 필요한 장면만 체크해서 걸러 보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송권수 감독은 외부 사람이다 보니까 제작비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하지만, 눈으로는 조연급 배우와 배경 사진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다.
‘연출력 하나로 초대박을 터트린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과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다.
이내, 송 감독은 배경 사진 몇 장을 들고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장소 헌팅을 위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나를 응시하며 말하는 송 감독.
“아, 저는 조연급 배우분들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여태까지 배우 캐스팅을 거의 터치하지 않는 송 감독.
조금 캐릭터가 안 맞는다 싶은 몇몇 배우를 제외하면 굳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송 감독을 비롯한 연출팀이 사라지고 새롬이 말했다.
“아마 자신감일 거예요.”
“네?”
“별을 그리다, 그때 제작사에서 캐스팅을 많이 간섭했다고 들었어요.”
“아, 그럼….”
1화부터 연기력 논란이 있는 배우들을 이끌고 캐리하셨으니까.
“근데 우리 주연급들은 이미 인정하셨어요.”
“강준, 김현지, 미령.”
“네. 작가님이 부산에 가 있는 동안 두 번 세 번 검증하셨어요. 흡족해하셨고.”
“…. 다행이네요.”
이어서, 새롬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도현석 배우님 부터 만나러 가시죠.”
“네?”
“조연급 캐스팅 직접 만나야겠다면서요.”
“아, 네.”
멀어지는 새롬에게 저녁에 잡혀있는 약속을 언급했다.
“저기, 저 오늘 대표님이랑 식사하기로 했습니다.”
“…. 그래요?”
“네.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음, 알겠습니다.”
새롬의 반응을 보니 대표님의 성향을 파악하기 더 어려워졌다.
‘둘이 사이가 좋은 거야, 나쁜 거야?’
* * *
인천국제공항.
금발의 혼혈미인은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렸다.
“흐음, 한국이 얼마 만이야.”
부모님 중 한 분은 한국인이지만, 두 분 다 미국에 거주하시니.
사실상, 마음먹고 방문할 생각이 아니면 올 일이 거의 없었다.
곧이어, 비서 대행으로 따라붙은 제이든이 말했다.
“안젤라, 캐리어가 무슨 3개씩이나….”
“응? 그것도 많이 줄인 건데요?”
“…. 저희 고작 일주일만 머무르는 건 아시죠?”
“그럼요. 한 달이면 해외 배송 알아봤겠죠.”
“….”
주변 사람들은 외국인 미녀를 보고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빴다.
대부분은 언어의 장벽에 막혀 말을 걸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녀가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까.
“제이든, 일단 그 작가분부터 수소문….”
“저기…. 안젤라. 제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네?”
제이든은 조금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지사장님이 저를 이렇게나 인정해주시는지 몰랐습니다.”
“???”
“다른 직원들 다 내버려 두고 해외 출장에 저를 데리고 오실 줄은….”
심지어 제이든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니까.
그는 진심으로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안젤라가 뱉은 말은 그의 좋았던 기분을 깨트렸다.
“다른 직원들은 일해야죠.”
“네?”
“제이든, 올해 일 열심히 안 하면 잘릴걸요?”
“….”
안젤라의 손에는 택시를 잡으면서도 한 부의 대본이 들려있었다.
“순정마초에 회귀자까지….”
두 작품 모두 안젤라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원래 김진우 작가의 기존 작품을 계약하러 한국을 방문했으나.
‘만약에….’
그의 다음 작품을 디지니 플레이에 독점으로 걸 수만 있으면.
물론, 작품 한 두개로 넥플렉스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런 작품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1등에 가까워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벌써 기대되잖아?”
안젤라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으리으리하네.”
평소에는 얼씬도 안 해본 미슐랭 무슨무슨 식당.
대표에게는 이런 곳이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터벅, 터벅─
레스토랑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고급스러운 웨이트리스 복장의 직원 한 명이 깍듯한 태도로 인사했다.
너무 정중한 인사를 받아서 나도 모르게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김진우 님 맞으십니까?”
“아, 네”
“선약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되겠습니다.”
온화한 미소를 짓더니 나를 안내하는 직원.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데, 곧 화려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다른 룸과는 차별화되어 있는 분위기였다.
직원이 방문을 노크하고, 천천히 문을 열고 안에 들었다.
“김진우 작가님.”
한 남성이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템페스트 엔터의 대표.
“안녕하십니까.”
“저쪽에 앉으시겠어요?”
대표는 한 손을 활짝 펴서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김 작가님 덕분에 회사가 굴러가네요.”
“네? 아, 아닙니다.”
정새롬 실장이 신경도 잘 안 쓰고, 팀장 선에서 관리하는 탑스타가 몇 명인가.
그녀는 배우의 급을 보고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성격이 이상한 이들을 관리하는 스타일인지라.
‘아…. 그게 나인가?’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식사 대접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너무 늦게 부른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 아니요. 그보다….”
사실, 오늘 내가 여기에 나온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요리가 나오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을 때쯤 용건을 꺼내었다.
“대표님.”
“네. 작가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무슨 부탁을….”
표정에 의문이 자리 잡은 대표에게 한마디를 추가했다.
“유설아 배우님, 미팅 한 번만 잡아주세요.”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