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45)
조연출은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대본리딩의 시작을 알렸다.
밖에서 대기하던 제작진이나 배우들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주조연급 배우들을 슬쩍 둘러보았다.
‘최만호 선생님처럼 탑스타는 없지만….’
시스템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대한 등록을 마친 배우들.
실버로 승급하고 나서 최대 10년차 배우까지 적용되었으니.
대부분 일치율이 80% 이상이라, 이번 드라마의 완성도는 전작을 능가할 터.
게다가, KBC 공중파 방송국에서 방영되면 케이블보다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이건 기회야….!’
시청자 님들께 깊은 인상을 남겨줄 수 있는 기회야!
곧이어, 송권수 감독은 자기소개를 하며 짧은 소감을 밝혔다.
“송권수입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사람 아니니까, 가족처럼 편하게 생각해주세요.”
촬영 현장에서 성기훈 감독이 가‘족’같은 사람이라면.
송권수 감독은 진짜 가족 같은 감독으로 알려졌으니까.
짝짝짝─
이어서, 내가 일어나서 간단한 소감을 밝혔다.
“김진우입니다. 그냥 평소처럼만 하시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평소처럼만 연기해도 수작이 될 여건을 전부 갖추지 않았는가.
특히, 주연배우들에게 나름대로 노하우도 전달해 주었다.
‘그것도 꽤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주었지.’
내가 드라마에서 본 그대로.
너무 자잘한 내용이라 대본에는 없지만 따로 기록해둔 메모들.
가령, 누군가와의 대화 중에 오른쪽 귀를 만지는 습관이라든가.
말투에서 일부러 어눌한 듯한 느낌이 나는 부분까지 짚어주기도 했다.
‘배우들 컨디션은 다들 좋아 보이네.’
이후, 주연배우들을 시작으로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각자 소개를 마치고,
강준이 대사를 읊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본리딩이 시작되었다.
* * *
대본리딩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활자로는 수백 번 읽고 고쳤지만, 실제로 배우들의 입을 통해 들으니 기분이 남달랐다.
특히, 주 국장님 못지않게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기에 느낌이 묘했다.
“다음 장면은 두 주인공이 다투는 장면입니다.”
조연출의 말을 듣자마자, 김현지의 눈빛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범접할 수 없는 김현지 배우만의 아우라가 있다고 해야 할까.
신인이지만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그녀만의 장점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제가 있는 곳을 매번 아는 거예요?”
“내가 당신 보려고 몇 번이나 시간을 돌렸는지 알아?”
“…. 무슨 소리죠?”
“이제 내 주변 사람 중에 나를 기억하는 건 너뿐이야.”
“내가 좀 알아듣게 설명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김현지와 강준의 티키타카.
주연배우들의 연기에, 촬영진은 감탄사를 흘렸다.
김현지는 내가 메시지로 요구한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했으며.
강준은 아역 때부터 인정받은 만큼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했다.
‘크으…. 발성 좋고!’
귀에 꽂히는 게 래퍼인 줄.
이대로면 촬영까지 전혀 문제없이 스무스하게 흘러갈 듯.
이어지는 장면은,
갑작스레 등장한 화물트럭에 주인공들이 치이는 내용.
메인 빌런이자, 베일에 싸인 재벌가의 히트맨이 등장하는 씬이다.
신조훈 배우는 목소리를 착 내리깔고 말했다.
“…. 처리했습니다.”
과연, 순정마초를 통해 검증된 차세대 악당 연기자였으니.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남자도 함께 쳤는데, 뒷정리 부탁드립니다.”
화물트럭으로 사람을 받아버리고서, 나지막하게 내뱉는 음성.
잠시 후, 강준은 분노에 찬 음성으로 씹어먹듯이 복수를 다짐한다.
“개 같은 놈…. 내가 니 목소리 분명히 기억했다.”
대본리딩 현장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으니.
주어진 씬을 전부 마친 이후에도,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곧이어, 제작진은 연기를 마친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
“이거, 우리 드라마 진짜 대박 나겠는데?”
“대본리딩에서 무슨 힘을 그렇게 주는 거야.”
“그게 진짜 프로지. 하하하.”
“와…. 저 방금 소름 돋았잖아요.”
스탭들의 찬사에 강준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무지막지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치고는 순박한 미소였다.
이내, 이 자리에서 최고령인 김지선 배우님이 주연배우들의 연기를 극찬했다.
“요즘 아이들 같지가 않네. 너네 연기 정말 잘하는구나?”
“감사합니다. 하하.”
강준의 너스레에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강준이 스타덤에 오르면….!’
템페스트 엔터에서 내 지분이 생기는 셈인가.
스톡옵션으로 지급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배분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주태홍 국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김 작가, 이번에 진짜 걸작 하나 만들었네.”
“아, 네…. 하하.”
“연말에 정말 기대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
“에이, 국장님! 저는 그런 기대 안 합니다.”
사실은 합니다.
매일 자기 전에 30분씩 해요.
“송 감독, 촬영은 언제부터지?”
국장의 질문을 듣고 감독이 대답했다.
“장소만 확정되면 바로 들어갈 겁니다.”
“인력 더 필요하면 말하고.”
“네. 국장님.”
주태홍 국장님의 말 한마디가 천군만마보다 든든했다.
JTBS 때도 이 정도로 방송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는 못했는데.
이후, 송 감독과 함께 장소 헌팅에 대해 토론을 해야만 했다.
대본 리딩에 참여한 템페스트 제작사 직원들도 함께였지만.
‘정 실장님은 오늘 하루종일 안 보이시네.’
바쁘신가.
* * *
지이이잉─
대본리딩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정새롬 실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작가님, 바쁘세요?
“아니요. 말씀하세요.”
-넥플렉스 측에서 조건을 바꿀 마음이 없네요.
아, 오늘 하루종일 정 실장이 왜 안 보이나 했는데.
-디지니 플레이 측과 계약할 예정입니다. 제일 먼저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오오, 그럼 이제 제 드라마를 영상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것!?”
-뭐, 그렇죠.
“순정마초만?”
-네. 회귀자는 KBC 측과 협의가 필요해서. 디지니 독점은 힘들고.
“아하.”
이야, 결국 이런 날이 오긴 하는구나.
“그럼 앞으로도 계속 디지니 측만 계약할 생각이신지….?”
-봐서요.
“???”
-작가님 말투 따라해 봤어요. 재밌네.
“…..”
-그럼.
뚝.
“…. 여튼, 내 작품이 대형 플랫폼에서 재생된다니.”
최근 몇 년 만에 폭풍성장한 플랫폼.
또한,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했다.
넥플렉스의 아성을 넘기엔 아직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거대한 플랫폼인 건 확실하다.
“독점은 아직 보류.”
요즘 시스템이 또 먹통이 되었는지 발동을 안 하니까.
빨리 이번 작품을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을 확인하고 싶은데.
띠링─
“응? 아….”
스마트폰을 들어서 강준이 보낸 톡을 확인했다.
내가 타이틀 사진 찍으면 갠톡으로 보내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임재준처럼 말은 잘 들어서 기특하네.
곧바로 강준이 보낸 사진을 확인했는데.
상당히 느낌 있는 배경 앞에 주연배우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벌써 타이틀 촬영도 마쳤고.”
이제 장소 헌팅도 얼추 다 끝났으니까, 진짜 마지막 파트 대본만 남은 상황이다.
“그럼 나 혼자 15부를 써보는 건….”
띵동─
【두 편 연속 집필이 발동했습니다.】
“니가 원치 않는구나.”
등급을 올린 덕분인지 두 편 연속 집필이 발동되었다.
【내용 :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5-16부】
【장르 : 타임루프, 로맨스, 범죄 스릴러】
【장소 : JTBS 방송국 로비】
【제한 시간 : 1일 17시간】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JTBS 방송국이라….”
이미 순정마초는 종영했는데, 또 가야겠네.
시스템에 너무 많은 배우를 등록해서 그런가.
장소가 진짜 랜덤이 되어버렸다는 단점이 생겼다.
* *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JTBS 방송국에 방문했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오늘이면…. 벌써 두 번째 작품까지 완결인가.”
방송국 곳곳에는 순정마초의 표지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대박작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전부 내 드라마를 믿어준 사람들 덕분이다.
정새롬 실장님, 성기훈 감독님, JTBS 드라마제작국장님까지.
로비를 스윽 훑어보고 내 자리를 발견했다.
새하얀 빛무리가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장소.
다행히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진 테라스 형식이었다.
“자리 좋고.”
아침부터 써도 최소 8시간은 죽치고 앉아 있어야만 하는 작업.
조금 오래 걸리면 10시간까지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사를 제외하고 배경이나 행동, 상황 묘사 등은 오로지 내 머릿속에 있는 표현을 꺼내어 대본을 채워야만 한다.
시스템에 의해 표현력이 증가하기는 하나, 수많은 단어 중에 필요한 묘사를 콕 집어서 선택할 필요는 있었다.
“여유 있을 때는 틈틈이 책도 봐야겠네.”
타닥, 타다다닥─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15부」
그동안 빌드업한 여러 악당들을 처단할 시간.
남자주인공, 강준은 재벌가에 물밑작업을 시작한다.
정치권이나 법조계 인사들에게 약을 치는 주인공.
그리고 그를 돕는 두 명의 여자주인공들의 비중이 상당했다.
“이정도면….”
김현지와 미령의 비중이 비등비등한 수준.
여주인공들은 스토리 진행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냥 닥치고 로맨스 판이었던 순정마초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16부에서는 쌓아놓은 빌드업이 터지는 마무리.
주인공은 오랫동안 쌓아놓은 재산과 인맥을 이용해 순식간에 대기업을 집어삼켰다.
그 과정에서 김현지는 재벌가 내부 스파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마무리 깔끔하고.”
남자주인공의 가족들이 기억을 살짝 되찾는 내용을 보여주며 열린 결말을 암시했다.
이내, 돌아서는 강준에게 김현지가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타다닥, 탁─
【제한 시간 : 43분 23초】
“아직 시간 남았네.”
드라마 내용은 더이상 손댈 게 없었으나 조금 더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이왕이면 시간이 남아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확인하는 게 좋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제한 시간이 전부 소진되어 거의 남지 않았을 때쯤.
방송국에서 퇴근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 작가님.”
“아, 서 감독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글 쓰세요?”
“아, 네. 하하.”
JTBS 때 안면을 익힌 사람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서는 예능국의 아는동네형님의 진 PD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오! 김 작가님. 여기서 뵐 줄이야.”
“진 PD님, 또 뵙네요.”
“저번에 예능국에서 뵈었죠?”
“네…. 하하.”
예능국장실에서 글도 쓰고, 지난 과거지만 조금은 민망했다.
“저기, 그럼 다음에 또….”
진 PD와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 찰나.
그 순간, 방송국 한쪽에서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곧이어, 한 연예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출구로 향했는데.
“오, 유설아 씨네요. 오늘 방송국에 인터뷰하러 왔다고 들었어요.”
“음? 유설아 님이요?”
“네! 연예인 중에서도 연예인이죠.”
“….”
나는 진 PD와 함께 멍- 하니 유설아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고개를 돌려 이쪽에 시선을 주었다.
두근─
“어….? 이 느낌은….”
유설아는 3초 정도 이쪽을 바라보더니, 매니저의 안내를 받고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사랑….?”
띵동─
…. 이 아니라, 시스템이 새 작품을 알리는 신호.
【내용 : 해외영업 3팀 김나연 1부】
【장르 : 오피스, 회사, 군상】
【장소 : MBS 방송국 1층 카페, 홀리스】
【제한 시간 : 20일】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MBS 방송국이라….”
기본적으로 방송국은 연예인들이 자주 들리니까.
등록된 배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주 등장하는 장소긴 하지.
“내가 가도 되려나.”
지금 MBS 모 작품은 순정마초 때문에 쫄딱 망해서 초상집이잖아.
게다가, 일단 그건 둘째치고 장르랑 제목을 보니까.
“해외영업 3팀 김나연….?”
이거 제목이 너무 살벌한 거 아니냐.
단어만으로도 벌써 느낌이 쎄한데.
“어차피 회사는 한국에 있을 테니까.”
시스템이 해외 뺑뺑이 돌리고 그러지는 않을 거야.
요즘 해외영업 다 전화로 하지 누가 발로 뛰어다녀.
“…. 그렇겠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