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48)
얼마 후, 제작발표회 당일.
나는 효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제작발표회장으로 향했다.
“운전 잘하네.”
“사실 제가 대본 쓰는 거 빼고는 다 잘해요.”
“…. 그러고 보니까 너 3개 국어 하지 않냐?”
“네. 영어, 일본어.”
학벌도 낭낭하고, 현실 속 ‘김나연’이네.
“너도 입봉해야지.”
“아직 멀었죠. 오빠 발끝이라도 따라가려면.”
“음….”
이내, 효주는 얼마 전에 있었던 미팅을 언급했다.
“오빠, 근데 우리 진짜 유설아 님이랑 드라마 하는 거예요?”
“모르지. 작품을 좋게 봐주실지.”
“에이, 너무 겸손하시네. 대본 완전 좋잖아요.”
효주 말대로, 대본만 보면 어지간한 오피스 드라마 뺨따귀를 날린다.
능력 있는 김나연의 시야를 통해 현실 회사생활의 고충을 잘 표현했으니.
“어디 방송국일지는 모르겠지만…. 편성만 잘 받으면 좋을 텐데.”
“솔직히, 유설아 배우님만 잡으면 일도 아닐걸요?”
끼이이익─
이내, 효주가 운전하는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터벅, 터벅─
오픈된 극장처럼 수많은 좌석이 있는, 넓은 제작발표회장에 발을 들였는데.
전면에는 강준을 포함한 주연배우들의 타이틀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두 여자가 아련하게 한 남자를 바라보는 모습.
미령은 서브 여주였지만, 인지도 덕분에 김현지와 동일한 비율이었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구나. 제작발표회.”
* * *
곧이어, 행사는 지체없이 진행되었다.
첫 방송의 알짜 장면을 편집한 예고편이 스크린에 걸렸는데.
사이드에 서서 영상을 보는 기자들의 표정들을 천천히 살폈다.
“반응들이 나쁘진 않네.”
“좋은 거죠.”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 실장님. 오셨네요.”
“네. 작가님.”
오늘 바빠서 못 온다고 하지 않았나.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들른 모양이다.
“작가님은 아무리 봐도 신기해요.”
“네?”
“어떻게 매번 이맘때쯤 새로운 작품을 들고 오시는지.”
“아….”
정 실장은 한 손을 들어 올려 대본 한 부를 보여주었다.
“저번에는 순정마초 제작발표회 날이었어요. 근데 이번엔 그보다도 빨리 1부를 준비하셨네요.”
“허허. 그렇게 됐습니다.”
사실, 정 실장님의 반응이 궁금하긴 했다.
얼마 전 유설아 미팅 이후로 처음 이야기를 꺼내 보는지라.
“재밌어요.”
“오오!”
“…. 근데, 유설아 배우님이 수락하실지는 장담을 못 하겠네요.”
“예? 왜요!”
재밌다면서!
“로맨스도 아니고. 공주님 캐릭터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
“이렇게 감정선이 널뛰는 캐릭터는 더이상 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
사실, 나도 인터뷰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이전 작품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다시는 이렇게 아픈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지 않으시다고.
“어렵네.”
언제나 그랬지만.
잠시 후, 절차대로 감독과 작가를 포함한 주연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MC와 기자들의 질문을 가볍게 받아넘기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때, 변 팀장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작가님, 수고하셨어요.”
“네. 팀장님도요.”
“오늘 뒤풀이 가실 거죠?”
“그건….”
원래 이런 자리에 빠지는 성격은 아니지만.
지금은 조금 힘들어서 쉬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 다른 엔터에서 손님들이 뒤풀이에 오시기로 했습니다.”
“손님들이요?”
“네. 주조연 배우님들이랑 한솥밥 먹는 동료분들.”
“아, 그럼….”
아무래도 뒤풀이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템페스트랑 퍼플걸스만 빼면 거의 아는 사람도 없고.
아직은 딱히 안면 있는 배우풀이 넓은 게 아니라서.
“갈게요.”
시스템이 있는 이상, 배우 인맥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았다.
* * *
덜컥─
매니저는 차에 오르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스케줄이 화보 하나랑, 라디오 전화 연결도 있어. 그리고…. 음.”
그는 대답 없는 연예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빨간 리본이 달린 대본을 들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얼핏 봐도, 대본에는 각종 형광펜 밑줄이나 직접 적어놓은 첨언이 수두룩했다.
‘대본 한 부를 몇 번이나 보는 건지….’
한 번 집중하면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종종 길을 헤매거나 다른 방에 들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러니까 유설아지.’
거의 서른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20대 초반처럼 청초한 미모를 뽐내는 여인.
음악 작업에, 연기에, 가창력까지 인정받은 아티스트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집중력의 깊이에서 차원이 다르니까.
“어, 아, 어! 오빠 왔어?”
“…. 다음 스케줄 가고 있어.”
“응!”
한편, 대본에 푹 빠진 유설아는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그녀도 나름 대본을 여러 번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무슨 영화 대본 같아.’
장면 전환에도 품격이 있었으며, 대사 한 줄에도 해석이 필요하다.
가난을 극복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는 여인.
동료의 질투를 가볍게 넘기고, 절대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주인공.
마지막 씬, 힐을 벗고 맨발로 집에 가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아래에서 위로 포커싱이 움직이며, 고지대에 오르는 장면.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은 개인의 열망을 표현하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올라도 결국 달동네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
‘게다가….’
굳이 맨발로 오르는 건, 그만큼 고된 역경이 주인공을 옭아매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회사의 동료와 타 부서 상사들이 주인공의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그 밖에도, 장면마다 해석의 여지가 무수히 많이 숨어있었다.
‘얼마나 오래 준비했으면 이런 대본이 나왔을까?’
이건 수년 전부터 칼을 갈고 준비한 작품이 분명했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를 쓰고 나서 쓴 건 절대 아니야.
“운이 좋네.”
사실, 메소드 연기를 요구하는 작품은 한동안 피하고 싶었지만.
이런 작품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응?”
“나도 김진우 작가님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
“평소 같으면 신인작가가 어떻게 너랑 미팅을 잡겠어?”
본인 아티스트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하다.
설아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오빠. 내가 운이 좋은 거야.”
“응?”
“출발해.”
그러고 보니까, 이제 그 드라마 방송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대본을 읽었는데도, 영상으로는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했다.
* * *
제작발표회 뒤풀이 현장.
유명한 배우들이 여럿 모여있는 자리라서 그런가.
다들 조용히 술 먹고 친목을 다지는 자리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깔끔하지.”
“그쵸? 형님. 한잔 받아주십쇼!”
강준이 톤이 올라간 걸 보니까 술 더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때였다.
딸랑, 딸랑─
회식 자리에 문이 열리며 유명 인사들이 들어왔다.
퍼플걸스를 비롯한, 레인보우의 식구들이었는데.
“어? 저분도 오셨네.”
강준이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한 배우가 자리 잡았다.
“기현수 배우님.”
레인보우 엔터에서 밀어주는 신예 연기자.
아이돌 엔터 출신이라 그런지 미남형 배우였다.
터벅, 터벅─
나는 언제나처럼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새로운 배우를 만나면 시스템에 등록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어서.
“세미 씨, 오랜만이에요.”
“아, 작가님! 안녕하세요!”
“요즘 잘 지내세요?”
“네! 얼마 전에 오디션도 봤고….”
“오디션이요?”
오디션 보기에는 세미의 급이 너무 높아지지 않았나.
특히 최근에는 서로 모셔가고 싶어서 난리일 텐데.
“봉진호 감독님 영화에요.”
“아….!”
세계적인 클래스의 거장이니까.
오디션의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이미 급이 올랐다는 증거지.
“잘 됐으면 좋겠네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작가님.”
퍼플걸스의 등장은 뒤풀이 분위기를 한층 띄워주었다.
최근, 그녀들의 주가는 말 그대로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까.
특히, 순정마초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에서 세미의 인기는 말이 필요 없었다.
‘지예히메’에 이어 ‘세미히메’라고 불리며,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까.
‘음…. 뿌듯하다.’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지만, 세미라도 성공해서 다행이야.
강준이랑 지성호는 내가 받아주지 않아도 서로 쿵짝이 맞아서 떠들어댔다.
“작가님, 소 발굽이 얼었으면 머게여. 헤헤헿.”
“먼데먼데.”
“소신발언!”
“와….”
“별로야?”
“개꿀잼!”
주변에 두 녀석들이 쌍으로 술 취해서 나를 귀찮게 했다.
얘네들 쌍으로 묶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버리고 오고 싶어.
‘아, 그러고 보니….’
문득, 내가 아직 악수하지 않은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세미랑 이야기하느라 레인보우 출신 배우들과는 인사도 못 했네.
한쪽에서 미령과 김현지, 기현수 배우가 함께 잔을 주고받는 모습.
시끄러운 뒤풀이 현장에서 그나마 조용조용히 술만 홀짝거리고 있었다.
기현수 배우.
아이돌 판인 레인보우에서 오직 연기만으로 살아남은 배우.
굳이 급수를 매기자면, 순정마초 이전의 지성호와 비슷하지 않을까.
터벅, 터벅─
내가 천천히 다가서자, 미령과 김현지가 나를 의식했다.
이내, 기 배우님은 일어서서 내 악수를 받아주었는데.
“기현수 배우님, 반가워요.”
“안녕하십니까! 동생들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다가온 건 아니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시스템이 발동하지 않았으니까.
띵동─
그런데, 시스템은 내 예상을 종종 피해간다.
【배역에 90%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주민환’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찾았다!’
얼마 전에 1부 집필 중에 캐스팅을 포기한 그 배역.
낮에는 젠틀맨, 밤에는 클럽 죽돌이 캐릭터.
“기 배우님, 전화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어요?”
“네? 아, 네!”
아직 캐스팅을 언급하기에는 너무 성급했기에 한 발짝 물러섰다.
“다음에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임재준 고기집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막말로, 그때는 둘이서 웹드라마라도 찍을 생각이었으니까.
* * *
시간이 흘러, 그날의 아침이 밝았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첫 방송 당일.
정새롬 실장은 유설아와의 두 번째 미팅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네. 그럼 내일 로템 엔터에서 보시죠.”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유설아 배우님이 바쁘시니까요. 저희가 감수해야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는 걸로….”
-네. 그럼.
뚝.
이내, 추가적인 조건을 확인하던 중 누군가 실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들어오세요.”
변혁주 팀장은 실장의 허락을 구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실장님, 두 분 SNS 파급력이 예상보다 훨씬 대단합니다.”
“저는 딱 예상한 정도인걸요?”
임재준과 지성호의 SNS에 올라온,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홍보 게시물.
오늘 밤 10시에는 꼭 집에서 본방사수를 해야겠다는 내용이었으니.
“세미 씨도 똑같이 올려주실 줄은 몰랐네요.”
“미령 님도 주연급이니까요.”
“아, 그렇긴 하죠.”
“덕분에 일본에서도 기대하는 팬층이 생겼다더군요.”
뻔하지만, 효과는 좋은 바이럴 마케팅.
시청자도 홍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라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지만.
최근 순정마초 주연급 배우들의 인기를 생각하면 의미가 없는 걱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울상을 지을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만.
“오늘 결판이 나겠군요. 그 대결의 승자가.”
“이민주 작가…. 말씀이시죠?”
이제 이 바닥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몇 달 전부터 사제 간의 경쟁이라고 떠들어 대었으니.
차충헌 감독과 이민주 작가의 새 작품.
그쪽 역시 탑스타로 판이 깔린 상황이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소속사나 인맥을 동원해서 자사의 드라마를 보라고 홍보를 했으니.
“그쪽 반응은 영 시원치 않다고 합니다.”
“활동 안 한 지 오래된 연예인들이 SNS에 글을 올리니까 그렇죠.”
“네. 그 때문에, 드라마 자체를 욕하는 시청자들도 생겨났다고….”
“아직 모릅니다.”
오늘 드라마의 성적이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오늘만 지나면….”
“네?”
“아니, 아니에요. 그만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네, 실장님.”
김진우 작가의 차기작, 「해외영업 3팀 김나연」의 방송국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방송사들 입장에서 이번 작품의 성적에 따라 편성 여부를 결정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끼이익, 쿵─
이내, 변 팀장이 사라지고 새롬은 나직하게 읊조렸다.
“오늘만 지나면, 진짜 판가름이 나겠네.”
김진우 작가의 진가가 드러나는 중요한 분기점.
새롬은 그 누구보다 오늘을 기다렸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잘 되면 좋을 텐데.”
성적표를 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는 시장이니까.
아무래도, 공을 많이 들였기에 기대가 되는 건 당연했다.
* * *
한편, 같은 시각.
띵동─
나는 집에서 뜬금없이 발동된 시스템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내용 : 해외영업 3팀 김나연 2부】
【장르 : 오피스, 회사, 군상】
【장소 : 로템 엔터테인먼트 로비】
【제한 시간 : 1일 8시간】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로템 엔터….?”
스타들의 인별그램을 확인하던 중 발동한 시스템.
지금 SNS 상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나는 내 드라마, 다른 하나는 이민주의 작품.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탑스타들 간의 추천 릴레이.
“음….? 이건….”
《유설아 : 게시물 412 / 팔로워 20.1백만 / 팔로잉 87명》
[빨리 보고 싶어요! ㅎㅎ]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KBC 본방사수 #최애작가님]
누군가 이 전쟁을 끝내러 전장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