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50)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제한 시간 : 14시간 21분 59초】
“시간도 충분하고, 기현수 배우님도 포섭했고.”
이미 룸 예약까지 완벽하게 세팅해 놨다.
당장 오늘 밤에 가서 클럽만 조지면 되는 거지.
“하룻밤에 200만 원이라니.”
헥사곤 하우스, 돔페리뇽 룸을 하룻밤 예약하는데 드는 비용.
이번 드라마에서 받는 원고료를 생각하면 큰 지출은 아니지만.
“내가 뭐, 클럽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다행인 건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어제 로템 엔터에서 나올 때, 정새롬 실장의 같잖다는 시선이 뇌리에 콕 박혔다.
-작가님은 나이 서른에 아직 클럽도 한 번 안 가보셨어요?
-실장님은 가보셨냐고요.
-참나, 당연하죠! 미국에서 대학 나왔거든요? 거기 파티 문화가….
-그럼 저 한 번만 데려가 주세요.
-제가 왜….?
-대본 쓸 때 필요해요. 자료 조사.
-음….
정 실장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수락했다.
꼭 못 노는 친구를 어쩔 수 없이 데려가는 인싸 친구처럼.
곧이어,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기현수 배우에게 연락했다.
이번 제1차 클럽 원정의 발단이자 원인 제공자.
뚜루루루─
-김진우 작가님? 안녕하세요.
“기 배우님, 오늘 약속 잊지 마시고 시간 맞춰오세요!”
-네? 아, 네! 드라마 미팅 말씀이시죠?
“미팅이라고 하면 너무 무겁고, 가볍게 만나는 거죠.”
-네! 작가님.
“…. 클럽에서 볼 거니까.”
-네? 방금 뭐라고….
“이따 저녁에 보시죠.”
-아니, 잠시만요. 방금 클럽이라고….
“조금 이따가 뵙겠습니다!”
뚝.
아무래도, 시스템에 딱 맞는 배역을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지라.
배역에 맞는 배우로 키워주는 것도 참된 작가의 길이 아닐런지.
“배역에 안 맞으면, 배우를 맞춰야지.”
이번 드라마를 성공시키기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한다고.
정새롬 실장도 이런 내 살신성인 정신을 이해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드디어 그날 저녁.
헥사곤 하우스 내부 예약된 룸.
다행히, 목표로 했던 새하얀 빛무리와는 조우했지만.
“아, 왜 안 와.”
정 실장님, 도망간 거 아냐?
무려 하룻밤에 200만 원짜리 방을 빌렸는데.
남자 둘이서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작가님….?”
“왜요.”
“저 이런 데는 처음이라….”
휘익─
고개를 돌려 기현수 배우를 쳐다봤다.
“기 배우님, 배우가 하고 싶어요?”
“…. 네.”
“그럼 좀 더 열심히 놀고 와요. 열정적으로.”
“???”
“나가서 한 시간만 놀다 오세요.”
“저, 그래도 연예인인데 조금 부담스러워서….”
“조명 어두워서 괜찮아요.”
“으….”
클럽에서 한 번도 안 놀아본 사람이 무슨 클러버 캐릭터를 하겠다고.
저벅, 저벅─
힘이 쭉 빠진 듯한 발걸음의 기현수 배우를 뒤로한 채 일어섰다.
이내, 발걸음을 옮겨 꽤나 넓은 범위의 빛무리에 몸을 맡겼다.
“나는 어차피 대본 쓰러 온 거니까.”
자리에 의자를 끌어당겨 털썩 주저앉았다.
타닥, 타다닥─
「해외영업 3팀 김나연 3부」
이번 화수에서는 상당히 구체적인 회사 생활이 전개되었다.
신입사원 워크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들.
그 속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조연들의 반응을 보여준다.
다만…. 3부 마지막 씬을 보는 순간,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베트남 출장을 왜 가는데.”
지난 1, 2부에서 외국물 먹을 기미가 안 보여서 방심했다.
대기업이 현지에 사업체를 두고 있다는 설정.
주연급 중 한 명이 직접 사업체에 방문했으니.
“음….”
잘 모르겠다. 일단 쓰자.
타닥, 타닥─
다른 건 전부 잊고, 한동안 대본 집필에 몰두했다.
* * *
한편, 정새롬은 어젯밤에 한 약속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내가 왜 그런 약속을 했지?”
지금이라도 무를까.
클럽? 당연히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홈 파티도 꺼리는데 클럽은 무슨.
“그렇다고 김 작가 혼자 보낼 수는 없…. 긴 왜 없어?”
그냥 혼자 보내면 되잖아.
아니지, 지금쯤 도착했겠네.
역시, 지금이라도 무르는 게 좋겠어.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했으나.
어젯밤에 김 작가의 눈빛을 떠올리고는 다시 폰을 내려놓았다.
-정 실장님, 클럽 안 가보신 거 아녜요?
실제로 그렇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그런 식의 뉘앙스로 말을 하니까 발끈했다.
“음, 생각해 보니까 여동생분 프사에….”
클럽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던 것 같던데.
이왕이면 김진우 작가도 본인 동생이랑 같이 가면 더 재밌지 않을까.
얼핏 들었을 때 둘이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였으니.
이내, 새롬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뚜루루루─
-잉, 여보세요! 예쁜 언니?
“…. 정새롬입니다.”
-아, 네! 무슨 일이세요?
“희정 씨, 혹시 지금 바쁘세요?”
-???
* * *
최근, 강준 덕분에 학원의 품격이 드라마틱하게 올라갔다.
공중파 16부작 드라마 주인공이 다니는 강남의 모 학원.
템페스트 제휴 학원이라, 소속 연습생은 값싸게 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학원 측에서도 그 값을 톡톡히 받아낸 셈이다.
강준을 배출했다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상당했다.
웅성웅성─
오랜만에 등장한 강준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최근에 드라마 촬영이 너무 바빠서 학원에 들를 수가 없었으니.
“오늘…. 안 왔네?”
저녁 늦게라도 일부러 짬 내서 온 건데.
이내, 같은 반 여학생이 은근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강준! 누가 안 와?”
“응? 아, 희정이. 오늘 안 와서.”
“아…. 오늘 어디 간다던데.”
“어디?”
“글쎄.”
여학생은 강준에게 묘한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뚜루루루─
곧바로 전화를 걸어 희정이와 통화를 했는데.
-깡준, 웬일?
“희정아, 나 오늘 학원 나왔는데….”
-아, 언니 그거 말고 옆에 옷이 예뻐요.
“…. 바쁜가 보네?”
-미안, 미안! 깡준, 뭐라고?
“오늘 오랜만에 촬영 스케줄 비어서….”
-아니, 언니! 그거 입고 클럽 가면 입구컷 당해요! 아, 이 언니 진짜.
“…. 클럽?”
-아아, 깡준! 담에 전화함. 뿅!
뚝.
강준은 잠시 동안 희정과의 전화를 곱씹었다.
“음…. 클럽….?”
희정이가 클럽에 가든, 나이트클럽에 가든 무슨 상관인가.
그냥 좀, 오늘 일부러 시간 내서 헛걸음한 게 아까울 뿐이다.
오랜만에 친구끼리 한잔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심지어 가벼운 선물도 하나 준비해서 가져왔건만.
“…. 김진우 작가님한테 일러야지.”
같은 시각, 김진우 작가는 클럽에서 대본을 쓰고 있었다.
* * *
어느새 저녁 시간을 넘어 늦은 밤 시간대.
클럽은 이미 피크 타임을 찍은지 오래였다.
“뭐야.”
아직도 안 온 건가.
기현수 배우님은 1시간만 놀다 오라고 했는데, 몇 시간째 안 들어오는 건지.
바깥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머리가 울릴 지경이다.
터벅, 터벅─
발걸음을 옮겨, 룸 바깥 상황을 확인하러 나갔다.
룸이 즐비한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는 풍경.
“뭐냐, 저 사람은.”
어떤 여자는 무대에 올라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제끼고 있었다.
광란의 파티가 펼쳐지는 무대 위에서도 드러나는 압도적인 존재감.
몸짓, 손짓, 발짓이 예사롭지 않은 게 하루 이틀 다녀본 게 아닌 것 같아.
경이로운 춤사위에 주변 사람들은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니.
“어휴, 어느 집 자식인지….”
…. 우리 집 자식이네!?
나는 두 눈을 손등으로 비비고 다시 한번 그 여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평소에 안 입는 옷을 입어서 그런지, 내가 알던 희정이랑 거리가 너무 멀었다.
“저게 돌았나.”
당장이라도 개념 상실한 여동생 모가지를 비틀어 집에 끌고 가려고 했는데.
그 순간, 희정이 옆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멀뚱멀뚱 서 있는 정새롬 실장을 발견했다.
“정새롬…. 실장님?”
그동안 정장 차림만 보다가 처음으로 화려한 복장의 모습을 보니까 느낌이 달랐다.
곧이어, 나는 정신없이 사람들을 헤치고 그녀에게 접근했다.
잠시 후,
나는 정 실장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남자를 본능적으로 막아섰다.
중딩 때 이후로 몸싸움을 해본 적도 없건만, 여기서 밀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덩치 큰 남자에게 밀리지 않고 3초간 눈에 불을 켰는데.
그때, 정 실장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이는 새롬.
“작가님?”
“네. 실장님.”
이내, 포기하고 멀어지는 남자를 보며 승자의 미소를 슬쩍 날려준 뒤.
“여동생 분은 기현수 배우님이 챙길 거예요.”
“네?”
“제가 부탁드렸거든요.”
휘익─
나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그러고 보니까, 기 배우님이 어디에 있나 했는데.
무대 한구석에 멀뚱히 서서 희정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실장님, 일단…. 룸으로 가시죠.”
“네? 아, 네!”
나는 정 실장을 데리고 앞장서서 방으로 향했다.
1층에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2층으로 가는 데에도 한참이었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고, 숨 막히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마치, 먼저 말을 꺼내면 지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 실장님.”
“네.”
“잘 노신다면서요.”
“그, 그게….”
“아까 보니까 클럽 처음인 것 같던데.”
“…. 한국은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하하.”
“???”
“미국보다 훨씬 자유분방하다고 해야 하나.”
누가 보면 미국 사람인 줄.
“그러는 작가님은…. 안 나가고 방에만 있으시게요?”
“아, 저는 원래부터 대본 쓰러 온 거라서요.”
“네….?”
“조금만 더 쓰다가 바로 또 나갈 거예요.”
지우고 다시 써야겠다.
한 자씩 꾹꾹 눌러서.
얼마 후, 다시 룸에 들어와서 합류한 기현수 배우까지.
세 명은 김희정이 지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 * *
새벽녘, 나는 정 실장에게 팔팔 끓는 감자탕 한 국자를 크게 퍼주면서 말했다.
“감자탕 맛있네요.”
“그러게요.”
“오늘 너무 잘 놀아서 그런가.”
“그럴 수도.”
“소주 한 병 시킬까요?”
“저 출근해야 합니다.”
“아, 그건 생각을 못 했네요.”
“딱 한 잔만 받을게요.”
“이모! 여기 소주 한 병이요!!!”
김희정은 하찮은 생물을 보듯이 우리를 바라봤다.
“이럴 거면 클럽은 왜 온 거야?”
“뭐가.”
여동생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음악 들으러 오던가, 춤추러 오던가, 아니면 누구 하나 꼬시러 오던가. 클럽에 왔으면 셋 중에 하나는 해야지.”
“…. 음악은 실컷 들었는데.”
존나 시끄럽던데?
“그냥 밥이나 먹어.”
“감자탕 존맛탱.”
생각해 보니까 나는 조금 억울하다.
클럽 처음이라고 오픈하고 왔잖아요.
“실장님, 진짜 클럽 가본 거 맞아요?”
“네? …. 원래는 잘 노는데, 오늘은 컨디션이 좀….”
“….”
한숨을 크게 쉬는 거 보니까 오늘 일을 조금 후회하는 듯 했다.
옆에 기현수 배우도 마찬가지로 기가 많이 빨린 느낌이다.
“음….”
다시는 안 가야겠다.
나랑 너무 안 맞아. 클럽.
* * *
같은 날, 정 실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후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는 아닌 것 같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대체 얼마 만인가.
그 와중에 김 작가의 여동생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뛰어다녔고.
“그래도 교훈 하나 배웠으니까.”
다시는 안 가야겠다.
나랑 너무 안 맞아. 클럽.
똑, 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변혁수입니다.”
“아, 흠흠. 들어오세요.”
새롬은 다시 목을 가다듬고 변 팀장을 맞았다.
밤새 클럽에서 김진우랑 같이 찌질대었던 정새롬은 다시 정 실장으로 돌아왔다.
“방송국 리스트를 뽑아왔습니다.”
“그래요?”
TVM, MDN, JTBS를 비롯한 케이블 방송사가 대부분이었다.
“조건이 다들 좋은 편입니다. 이미 김 작가님 작품은 검증이 되어서요.”
“그러네요.”
두 번 연속으로 성공했으니 조건이 좋을 수밖에.
여차하면 공중파 방송국을 한 번쯤 더 노려도 될 것 같은데.
“공중파는 쉽지 않겠죠.”
“네. 아무래도….”
KBC는 이미 작업 중이고, SBC는 아직 날이 서 있으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MBS 정도가 남아 있긴 한데.
띠링─
그때, 새롬은 김진우가 보낸 톡에 시선을 옮겼다.
[실장님, 저 지금 MBS 고현래 감독님이랑 같이 있어요]
[어제 1화 보내 드렸더니 꽂혀버리심 ㅎㅎ]
제작사가 할 일을 왜 작가가 하나.
“정말이지….”
김진우 작가는 상식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 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새롬에게 물었다.
“실장님.”
“네?”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왜 그렇게 웃으세요?”
“…. 제가요?”
“아닙니다.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새롬은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업무를 지시했다.
“일단은 MBS 측에 맞춰서 제작비 산정해보죠.”
“아, 네! 실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