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51)
MBS 방송사 드라마국.
고현래 감독은 김진우가 보내준 대본을 보며 생각했다.
“김진우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얼마 전에 방송국 카페에서 우연히 보기는 했지만, 진짜로 연락을 할 줄은 몰랐다.
같은 업계 사람끼리 의례적으로 인사치레를 건넨 게 전부였으니.
「해외영업 3팀 김나연」
“처음 보냈을 때는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단숨에 읽고서 먼저 연락을 취한 건 상대가 아니라 본인이었다.
김진우 작가의 작품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존재한다.
대본에 군더더기가 없고 영상으로 바로 찍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연출자로서 해석의 여지를 극도로 제한한다는 점.
“이런 괴물작가가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던 건지….”
제목만 보면 흔한 회사물이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으나.
고작 3부짜리 작품을 보는 순간, 일말의 확신이 들었다.
“이 작품…. 무조건 뜬다.”
캐릭터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심리를 묘사했다.
말로, 대사로, 독백으로 내뱉지 않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실력이 수준급이다.
은유적인 표현방식은 또 어떠한가.
계약을 낚시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미끼를 던져 물고기를 낚아채는 일련의 과정을 부장급 인물의 대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저기…. 감독님.”
그때, 한 연출부 직원이 다가와서 고 감독을 불렀다.
“국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어, 그래? 드디어 회의가 끝나셨나 보네.”
끄응차─
고 감독은 굽은 허리를 펴고, 천천히 걸어가서 국장실에 노크했다.
“들어와.”
이내, 문을 열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국장이 부른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고 감독, 진짜로 이거 꼭 해야겠어?”
“네. 못할 이유가 뭡니까? 지금 템페스트가 유설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 고 감독, 자존심도 없나?”
블록버스터 대작으로 판을 깔아놓고, 순정마초에 무참히 깨진 게 고작 얼마 전인데.
“국장님, 좋은 작품 하는데 자존심이 어딨어요? 작품만 좋으면 하는 거지. 그리고 요즘 김진우 작가는 못 잡아서 안달이에요.”
“…. 그건 우리 생각이고.”
국장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윗분들은 돈보다 자존심이 먼저라고.”
“흐음….”
이내, 국장은 눈길을 돌려 대본을 집어 들었다.
어제 받아서, 하루 종일 몇 번을 본 건지 모르겠다.
‘자극적이지는 않은데…. 계속 눈길이 가.’
개그 요소를 싹 제거한, 감성적인 오피스물 기반의 드라마.
모 케이블 방송국의 「인턴」이라는 드라마 이후, 한 차례도 성공한 적 없는 극현실주의 오피스물.
“PT 발표…. 할 수 있겠어?”
“네?”
“사장님까지는 아니지만, 본부장님은 참여하실 거야.”
“…. 물론입니다. 해야죠.”
눈치 빠른 고 감독은 국장이 얼마큼 노력했는지 바로 캐치했다.
윗선에서 칼 같이 자르기 전에 한 번의 기회를 준 셈이었다.
“김진우 작가님이랑 둘이서…. 잘 해봐.”
“물론입니다.”
“솔직히 이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충분합니다. 국장님.”
고 감독은 입가를 씰룩이며 일어났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
국장은 멀어지는 고현래 감독을 뒤로한 채 다시 대본을 집어 들었다.
“흐음….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단 말이야.”
장르 자체는 나쁘지 않다.
아니, 오피스물이라 좋은 편이지.
하지만, 재벌물도 아니고 막장 요소도 없었으며, 그 흔한 개그 장면조차 없으니.
흥행 공식과는 거리가 먼 작품인지라,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근데 또 끌린단 말이지.”
* * *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네. 고 감독님.”
-그럼, 이만.
뚝.
갑자기 PT 발표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
대학생 때도 몇 번 안 해봤는데.
“정 실장님한테 괜히 말했네.”
발표 때 절어서 MBS 편성 불발되면 개쪽이잖아.
일단, 정정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정 실장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끼이익─
작업실 문이 열리고 황효주가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그녀보다 앞서 내 용건을 꺼냈다.
“효주야, 자료 준비할 거 생겼다.”
“헐, 드디어!?”
“내 대본을 기반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 해.”
“아하.”
효주는 씨익 웃으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건 제 전공이죠. PT 여신이라고 불렸죠.”
“…. 내가 알던 PT 여신들은 전부 무임승차자들인데.”
“에이! 제가 학교 다닐 때도 프레젠테이션은 다 씹어먹었어요.”
“먹어서 없애버린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요.”
“그래?”
“녜!”
진짜 대본 쓰는 거 빼고 다 잘하는구나.
“여튼, 잘됐네.”
“무슨 발표인데요?”
“본부장급 편성 회의야. 고 감독님이랑 내가 발표할 것 같아.”
“…. 괜찮으시겠어요?”
“못할 건 뭐야. 유느님이 우리 편인데.”
“하긴, 그것도 그러네.”
효주는 곧바로 프레젠테이션용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곧이어, 잔잔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의 갬성 PT 샘플이 만들어졌다.
“금방이네.”
“그럼요. 밥 먹고 이것만 했는데.”
“유설아 님 캐스팅을 강조해야 돼.”
“넵. 아….!”
“응?”
갑자기 효주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저기, 근데 저 방금 조연출분께 연락받았는데.”
“조연출?”
“네. KBC 방송국에 오늘 한번 들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네. 이따가 김현지 배우님 촬영 스케줄에 맞춰서 같이 와달라고 하셨어요.”
“김현지 배우님이랑 같이?”
“네.”
“음…. 그래. 한 번쯤 들를 때가 되긴 했지.”
그러고 보면, 순정마초 촬영 때도 선물을 돌렸으니까.
이번에도 스탭들한테 선물 하나씩 돌려야 할 것 같은데.
첫 방송 20프로로 초대박 스타트를 끊었으니.
“자잘한 거 선물하면 주고도 욕 먹겠네.”
인당 10만 원 선에서 상품권이라도 한 장씩 돌려야겠다.
출연진 전체로 치면 천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지만.
공중파 방송국 직원들한테 짠돌이 소리 들을 순 없잖아.
곧이어,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김현지 배우의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뚜루루루─
-여보세요. 김 작가님?
“네. 매니저님, 혹시 김현지 배우님 어디에 계시죠? 이따 촬영갈 때 같이….”
-아, 저기, 제가 지금 밖에 있어서요.
“그래요?”
-네. 아마 현지는 지금쯤 4층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 겁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아,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네.”
뚝.
남녀 구분 없이 배우들이 힐링하면서 휴식하는 4층 휴게실.
사람이 많을 때도 있지만 아무도 없을 때는 종종 쪽잠을 자기도 한다.
“오빠, 저 아까 김현지 배우님 봤어요.”
“그래?”
“네. 파란색 드레스 입고 계시다라고요.”
“휴게실에 계시다는데.”
“네. 저도 4층에서 봤어요.”
조금만 있다가 시간 맞춰서 들러야겠다.
“효주야, PT는 내일까지 같이 만들자.”
“네. 그러면 제가 대충 윤곽만 잡아놓을게요.”
“오키. 땡큐!”
“저도 드디어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 좋은데요?”
“음….”
사실 여기서 일하는 게 개꿀이긴 하지.
아마 템페스트 엔터 전체에서 제일 편할 거야, 네가.
* * *
정새롬 실장은 진우에게 받은 메시지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속보) MBS는 아직 결정 보류 중! 차기작 선택에 난항을 겪고 있어….! 충격 실화!?]
“드디어 미친 건가.”
클럽 때부터 알아봤어.
요즘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똑, 똑─
그때, 실장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새롬의 말을 듣고 화려한 복장의 여인이 천천히 들어왔다.
밝은 파란 계열의 짧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어? 오늘 현지랑 옷이 비슷한….’
굳이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상대방의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하다 보니.
“민서야, 오랜만이네. 잠깐만 앉아 있을래?”
“네. 실장님.”
여민서는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며 소파에 앉았다.
“작품들은 좀 어때?”
“다들 나쁘지 않던데요. 특별히 끌리는 건 없었지만.”
“…. 그래도 하나만 고르자면?”
“해외영업 3팀 김나연.”
“아, 역시….”
“빼고 다 좋아요.”
“….”
…. 안 읽어봤구나.
누가 봐도 그 작품이 최선일 텐데.
“김진우 작가님, 아직 미워하니?”
“에이, 제가 왜요? 오히려 그쪽이 저를 미워하죠.”
“뭐…. 일단, 작품 선택은 신중하게 해.”
“네. 바빠서 아직 못 읽어본 거예요. 오늘 읽어보려고요.”
“오늘 스케줄 있지?”
“네. 아직 세 시간 남아서 좀 쉬려고요. 휴게실에서.”
“그래.”
또각, 또각─
정 실장은 하이힐 소리를 내며 나가려는 민서를 붙잡았다.
“혹시 이번 주말에도 거기 가는 거야?”
“네. 당연히 가야죠. 내일이에요.”
“기부도 많이 했으면서.”
“그거랑 달라요.”
“…. 그래.”
서울의 모 센터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일.
몇 년 전에 이미지 쇄신용으로 방문했었는데, 그 이후로 매주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고, 새롬은 혼자서 읊조렸다.
“민서가 대화할 때 조금만 더 따뜻하게 하면….”
틱틱거리는 말투만 고치면 얼마나 좋을까.
겉보기에 차가운 이미지라 그런가, 선한 모습까지 가려지잖아.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줄 날이 오겠지.”
선행보다 악행이 기삿거리가 되는 연예계지만.
그래도, 꾸준함은 언제나 존중받아 마땅한 법이다.
* * *
템페스트 엔터에서 배우들을 쉬라고 만들어 놓은 4층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한 명이 전부였다.
“김현지 씨?”
효주가 말한 대로 파랑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담요로 머리까지 덮어버리고 곤히 잠에 빠져있었다.
색색거리는 규칙적인 소리에,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히 고민되었다.
“김 배우님, 촬영 시간 다 됐어요.”
일어날 기미가 안 보여서 팔등에 손가락을 대고 조심스럽게 밀었다.
이렇게 깊이 자고 있을 줄 알았으면 매니저를 부를 걸 그랬나.
“저기….”
띵동─
“응….?”
갑작스럽게 발동한 시스템 알림음.
【배역에 99%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민예린’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일치율 실화냐!?”
일은 깐깐하지만 연애는 젬병인 차도녀 역할.
차기작의 신입사원 네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시스템 발동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띵동─
【‘완전한 캐릭터!’ 임무를 발견했습니다.】
【배역을 등록할 경우, 즉시 히든 미션을 완료합니다.】
“완전한 캐릭터….?”
일치율 99프로면 사실상 최고 수치인 듯 싶다.
시스템이 이렇게 나오면 등록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띵동─
【‘완전한 캐릭터!’ 임무를 달성했습니다.】
【히든 미션을 완료하여, 특전이 주어집니다.】
【베네핏 강화 포인트를 1pt 만큼 획득합니다.】
“일단 어쩔 수 없이 등록하긴 했는데….”
김현지 배우는 한창 드라마 촬영 중이라서 곤란하네.
이렇게 된 거, 차기작 제작을 조금만 미뤄달라고 말해 봐야 하나.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며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님….?”
김현지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분명히 내 앞에서 자고 있는데…. 왜 저기서 나오지?
개꿀잼 몰카 뭐 그런 건가.
뭐야 이거…. 무서워.
“매니저 언니한테 들었어요. 촬영장 같이 가신다고….”
“아, 네. 그렇긴 한데…. 아니, 잠깐 그럼 이분은….”
부스럭─
방금 전까지 김현지였던 여인이 몸을 뒤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시끄러.”
“응….?”
“뭐, 뭐야!”
일어나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는 여인.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코앞의 여인에게 말했다.
“김진우요.”
“…. 알겠으니까 뒤로 좀만 물러나 주실래요?”
“아….”
김현지와 같은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민서 배우.
뒤로 슬쩍 물러나며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악몽이라도 꿨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묻긴 묻었지. 쪽팔림.
민망한 듯 입가를 스윽 문지르고 일어나는 여민서.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걸어 나갔다.
또각, 또각─
“음….”
큰일인데.
히든 미션에 넘어가서 홀라당 등록해버렸지 모야.
띵동─
곧이어, 시스템이 추가로 발동하며 새로운 장소를 알렸다.
【내용 : 해외영업 3팀 김나연 4부】
【장르 : 오피스, 회사, 군상】
【장소 : 관악 지역센터, 중앙복지관】
【제한 시간 : 1일 18시간】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뭐지, 이 뜬금없는 장소는?”
일단, 지금 중요한 건 집필 장소가 아니라 여민서지.
솔직히, 전작에서는 그녀를 캐스팅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회귀자의 성공 요인에 퍼플걸스 미령도 분명히 있었고.
“어쩌겠어. 일단 시도라도 해보고 안 되면….”
베네핏 포인트를 써서라도 삭제해야지.
사실상 첫 만남부터 삐걱대서 사이가 틀어진 게 컸다.
평소에도 까칠해서 여기저기 트러블을 만드는 성격이라고 들었으니.
“그래. 이게 다 내 업보로다.”
조금만 더 살갑게 대할 걸 그랬어.
관악 복지센터라…. 오랜만에 등산이라도 하면서 멘탈 좀 추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