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53)
스마트폰으로 효주가 보낸 자료를 열람했다.
“…. 지금 장난해?”
보노보노 배경 뭔데.
한글 배경은 어케 바꾼 거야.
온갖 이모티콘이 난무하는 20 페이지 분량의 자료.
가독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빼곡히 늘어선 벽돌체의 한글 파일.
“와아….”
일단은 참을성을 가지고 내용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자료가 부족한 게 더 문제지, 많아서 나쁜 건 없으니까.
“내용만 보면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집중할 만하면 이모티콘이 튀어나와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톡, 토톡─
곧바로 효주에게 톡을 보냈다.
[4페이지부터 9페이지까지 삭제]
[배우분들 설명은 키포인트만 남겨]
[14-17페이지 내용 반으로 줄여]
[쓸데없는 이모티콘 다 빼고 ;;;]
띠링─
곧바로 효주에게 답장이 왔다.
[넹]
“어휴, 대답은 잘해.”
곧이어, 작업실에 들르기 전에 다시 한번 톡을 보냈다
[족같은 보노보노도 빼고]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띠링─
[ㅇㅋ]
“…. 아닌 것 같긴 한데. 뭐 어차피 곧 도착하긴 하니까.”
잠시 후,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나는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자료를 확인했다.
“효주야, 여덟 번째 페이지에 이모티콘은 안 지웠네?”
“그건 엄청 자연스러운….”
“…. 지워.”
“예쁜뎅….?”
“지워라.”
“넵.”
어지러운 정신을 부여잡고 자료를 확인했다.
《유설아 : 감성연기의 여왕. OST 직접 참여 가능. 인지도를 바탕으로….》
《기현수 : 대외적으로 매력적인 이미지. 캐릭터에 부합하는 강아지상의….》
“일단 이것만 수정하고 정 실장님께 보내드려. 알아서 해주시겠지.”
“네. 오빠.”
기현수 배우는 이미 정 실장님이 레인보우 엔터와 미팅을 잡았다고 들었다.
고 감독님도 두 팔 벌려 환영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했으니까.
“오빠, 근데 나머지 두 캐릭터는 배역 안 정해두셨어요?”
“글쎄. 오늘 고 감독님 만나서 이야기해볼 거야.”
“원래 배역 혼자 다 정하시잖아요.”
“내가….?”
“네. 오빠 별명이 캐틀러예요.”
“???”
“캐스팅 히틀러.”
“그 별명…. 니가 방금 막 지은 거지?”
“네니요.”
총 네 명의 주연배우들 중에서 여민서는 아직까지 보류 상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의 근육질 남성 캐릭터 같은 경우에는.
“서브 여주는 염두에 둔 사람이 있고….”
“오, 그래요?”
있긴 한데, 안 될거야 아마.
“두 번째 서브 남주는 드라마 미팅 끝나면 그때 생각해보자.”
“근육질에 순하게 생긴 사람을 어디서 찾게요?”
“음…. 찾으면 있지 않을까?”
* * *
딸랑, 딸랑─
MBS 방송국 근처의 모 카페.
강준은 약속장소인 카페에 도착하고, 누군가를 찾았다.
“깡! 여기야!”
두 글자 이름을 반으로 줄여서 부르나.
“…. 희정아, 우리 둘이서 보는 거 아니었어?”
“응. 내 후밴데. 네 팬이래.”
이진호는 우락부락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님! 팬입니다!”
“아, 알겠으니까 조용히 좀…. 말하세요.”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이쪽을 연신 쳐다봤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
“자 선물.”
강준은 툭 던지듯이 선물을 내려놓았다.
“뭔데 이거?”
“명품 양말.”
“…. 참신한데? 처음 받아봐. 명품 선물.”
“어, 음…. 가벼운 선물이야.”
“땡큐!”
희정은 명품 양말 선물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세 사람은 ‘연기’라는 공통 관심사 덕분에 할 이야기가 넘쳐났다.
특히,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을 가졌으니.
“저, 정말로 희정 선배님 친오빠가…..”
“뭐래. 그냥 오빠는 오빠일 뿐이야.”
“와…. 순정마초에 회귀자 두 작품 다 요즘 엄청나잖아요.”
“야야, 됐어. 그러지 마.”
“요즘 순정마초는 디지니 플레이에서 인기 순위 탑쓰리예요! 조만간 1위 찍을 것 같던데!?”
“누가 넥플렉스 말고 디지니 쓰냐.”
“저요! 거의 반값이라.”
이진호는 우람한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내 오빠 때문에 나를 존경한다고?”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손사래를 치던 이진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식사 전에 MBS 방송국 좀 들려도 될까요?”
희정은 이진호를 쳐다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거긴 갑자기 왜?”
“바로 앞이긴 한데….”
이진호는 쓰게 웃으며 손에 든 것을 슬쩍 들어올렸다.
“아버지 도시락입니다. 어머니가 부탁하셔서.”
“아….”
희정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호의 아버지는 유명한 배우에, 현재 라디오 진행자니까.
“마침 잘 됐네. 나도 MBS 방송국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 그럼 같이 가요. 선배님.”
“그래도 되나?”
“당연하죠.”
당장 스케줄 때문에 가봐야 하는 강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 * *
여자 혼자 살기에 좋은 아늑한 보금자리.
한 여인은 드라마를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와…. 미령….!”
여민서는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의 1화를 다시보기로 시청했다.
절대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사방에서 떠들어대니 어쩔 수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신보다 배역에 어울렸다.
그냥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제 옷을 입은 느낌이니까.
표정이나 손짓 하나에도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느껴졌다.
“…. 3화에서 망해라.”
습관처럼 저주를 퍼붓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소파 옆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대본을 대충 아무거나 집었는데.
「해외영업 3팀 김나연 1부」
“우씨.”
다시 제자리에 아무렇게나 놓아두고서 다른 대본을 집어 들었다.
“아니지, 잠깐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러면 일부러 피하는 것 같잖아.
잘못한 적이 없는데 굳이 대본을 피할 이유가 어디에 있어.
이내, 여민서는 자세를 고쳐잡고 해당 대본을 집었다.
문득, 얼마 전에 김진우 작가가 센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번만 읽어보면 좋은 배역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나.
“…. 내가 딱 한 번만 읽어준다.”
원래 드라마 작가는 세 번째 작품부터가 아닌가.
두 번째까지 쥐어 짜내고 더이상 재밌는 소재가 없는 작가들은 셀 수도 없다.
그래서 스타작가 타이틀이 세 번째쯤 달리는 거고.
어쩌면, 탑스타 이상으로 극히 희소한 법이니까.
스르륵─
첫 장을 펼치고, 이전 김진우 작가의 작품과 비교하며 대본을 읽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
순정마초처럼 발랄하지도, 회귀자만큼 신선하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도박에 가까운 감성 오피스물 장르에 도전했으니.
“모르는 건지, 아니면 과감한 건지….”
정확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민서가 다시 한번 김진우의 작품에 빠져들기까지.
“끄앙, 여기서 고구마를 먹여? 목 막혀 죽겠네.”
이상하게 한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며 대본을 따라갔다.
일은 똑 부러지지만 안 좋은 뒷소문으로 고생하는 캐릭터.
안 그래도 연애에 젬병인 캐릭터인데,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어휴, 불쌍해.”
꼭 누구를 보는 것 같다.
연애는 쥐뿔도 못 하면서 일은 또 곧 잘하는 모습.
거기에, 현실과 정반대의 나쁜 소문으로 이미지가 땅바닥을 구르는 게.
여민서는 대본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 이거 나잖아!?”
이 정도면 사실적시 명예훼손 감인데.
잠시 후,
여민서는 정새롬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여보세요.”
-응. 민서야,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뭐, 그냥요.”
-???
“혹시 오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그럼. 물론이지.
“네. 그럼 바로 들를게요.”
뚝.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걸어서 약속까지 잡아버렸다.
김진우 작가가 수락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배우인가….”
두 번이나 차였는데, 자존심도 없이 세 번째 들이대는 거 보면.
이내, 여배우 여민서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 * *
MBS 방송국, 로비.
고현래 감독과의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시스템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네.”
관악 복지관에서 4부까지 끝마쳤으니까.
이제 슬슬 다음 회차가 뜰 때도 되었는데.
“유설아 배우님이라도 찾아갈까. 아니면 여민…. 음.”
조만간 정 실장님께 슬쩍 물어나 볼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가능성은 그다지 높을 것 같지가 않다.
이내, 로비를 벗어나 MBS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순간, MBS 로비로 들어오는 인물과 정면에서 마주쳤다.
“뭐냐, 너.”
“오빠?”
여기서 희정이를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나야 볼 일이 있으니까….”
옆에 근육맨은 보디가드 같은 건가.
설마 클럽에서 만난 남친 후보는 아니겠지?
“오늘 라디오 촬영 구경하러 왔어.”
“라디오?”
“이형곤 선생님…. 아드님이셔. 이쪽이”
순간, 옆에 있던 근육남이 큰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목소리 한번 장군감이네.
“네. 안녕하세요.”
“기, 김진우 작가님, 팬입니다!”
“아…. 예.”
“희정 선배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선배?”
“아, 네! 장그래 극단 신입입니다!”
그 말은 현역 배우거나, 배우지망생이라는 뜻.
당연히 악수 품앗이 대상에 포함되는 귀한 인재.
게다가, 안 그래도 근육맨 캐릭터를 찾고 있던 와중이니까.
“반가워요. 김진우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리 큰 기대를 하고서 악수를 요청했던 건 아닌데.
띵동─
“이게 되네?”
【배역에 76%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배우를 ‘소상훈’ 역할에 등록하시겠습니까? (Y/N)】
일치율이 높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적어도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배우님,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희정이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나를 보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가.”
“아니, 누가 보면 우리 장그래 극단 에이스 빼가려는 줄.”
“…. 거기 아직 안 망했냐?”
“안 망했어!”
이진호 배우의 번호를 등록하고서, 사라지는 그 둘을 멀찍이 지켜보았다.
“좋은데?”
* * *
뚜루루루─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 실장님께 연락했다.
-여보세요. 작가님?
“정 실장님, 이번에 신인 배우 없어서 심심하셨죠?”
-…. 없는 게 좋죠. 불안하게 왜 그래요.
“에이, 심심하셨으면서.“
-안 심심했다고.
“…. 녜.”
정새롬 실장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 그건 그렇고 내일 잠깐 보실래요?
“네? 아, 네.”
-괜찮으시면 민서랑 같이 봐도 될까요?
오! 드디어 미끼를 물어버린 것인가.
“그럼요.”
-네. 그럼 내일 뵙는 걸로 하겠습니다.
뚝.
“이렇게 되면…. 벌써 주연급 다 모았잖아.”
물론, 아직까지 캐스팅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네 명의 주연배우를 입맛에 골라서 선별했다.
“이제 시스템만 뜨면 완벽한데….”
띵동─
“말하는 대로….?”
그때, 시스템이 발동하며 새로운 집필 장소를 알렸다.
【내용 : 해외영업 3팀 김나연 5부】
【장르 : 오피스, 회사, 군상】
【장소 : 베트남 하노이, 바비 국립공원】
【제한 시간 : 8일 5시간】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베트남….”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마음의 준비는 항상 하고 있었지.
언젠간 나올 줄 알았기에,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저, 스마트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톡을 하나 보냈을 뿐.
톡, 토독─
[효주야 너 여권 있지?]
[없으면 지금이라도 만들자]
우리는 전우잖아.
죽어도 같이 죽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