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54)
[여권 없는데요 ㅠㅠ]
황효주의 톡을 받고서 김이 팍 새는 기분이었다.
나야 혹시나 해서 미리 만들었지만, 보통 여권이 없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일단…. 베트남은 혼자 가지 뭐.”
베트남은 영어권 국가도 아니잖아.
이번 딱 한 번만 봐준다.
효주에게 여권을 만들어 놓으라고 답장하고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5월 특가 : 270,524원]
지이이잉─
집에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JTBS 드라마국의 성기훈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여보세요, 감독님?”
-김 작가님. 잘 지내세요?
“그럼요. 감독님은요?”
-저도 잘 지냅니다. 허허.
“그런데, 어쩐 일로….?”
-다름이 아니라….
매년 5월 JTBS에서 중계하는 백술예술대상 시상식.
대종상, 청룡영화상과 함께 3대 영화제에 초청하는 연락이었다.
“제가요?”
-그냥 자리만 빛내달라는 거죠. 게다가….
“아….”
-우리 순정마초도 후보에 많이 올랐거든요.
“네?”
-임재준 배우님이랑 세미 배우님. 둘 다 최우수상 후보예요.
“와…. 후보만으로도 대단하네요.”
신인상을 건너뛰고 최우수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는 건 대단한 의미였다.
그만큼 순정마초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컸다는 방증이기도 했고.
-남자 신인상에는 우리 신조훈 배우님이 후보로 올랐고요.
“좋네요. 그렇게가 끝….?”
-네.
…. 지성호 화이팅.
-사실, 대상 수상이 유력한 후보는 TVM의 「하늘빛」이겠죠.
“그쵸. 작년 겨울에 진짜 어마어마했으니까.
-근데 남녀 최우수연기상은 또 몰라요. 특히 여자 부문은요.
“음…. 일단 알겠습니다.
-예. 날짜와 일시는 톡으로 보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뚝.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과 달리 TV 부문까지 포함하는 시상식.
아마, TV 부문 대상을 타는 건 국내 어떤 시상식 중에서도 가장 어려울 것이다.
공중파 3사와 종편, 케이블에서 방영된 모든 드라마와 예능 중 단 한 명, 혹은 단 한 작품이 가져가니까.
심지어, 배우나 드라마 작품이 아니라 예능 프로나 국민 MC가 대상을 가져갈 수도 있으며.
한 드라마의 작가 개인이 대상을 타는 경우도 있었기에, 수상자 예측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재준이는 하늘빛 때문에 절대 수상 못 할 것 같지만.”
세미는 어떻게 또 가능할런지도 모르겠다.
봉진호 감독님 작품에 들어갈지 말지 거론될 정도니까.
“그새 진짜 많이 컸구나.”
종편과 케이블 방송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시상식이었기에.
지상파 3사의 연기대상이나 연예대상 이상의 권위를 자랑한다.
“그만큼 나도 많이 컸다는 증거….. 앗! 특가!”
[5월 특가 : 230,142원]
아까보다 무려 4만 원이나 떨어졌다.
이거 놓치면 10년 동안 땅을 치고 후회한다.
타다다다, 타타다─
“개꿀 찬스!”
인터넷이 느려서 마우스를 아무리 광클해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았다.
곧이어, 하얀색 화면에서 결제 페이지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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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씨!”
다시 존버간다.
베트남 가즈아─!
템페스트에서 여민서 배우랑 약속 시각까지 아직 1시간 남았다.
* * *
“실장님, 임재준 배우님이 후보에 오른 건….”
“이미 언론에는 충분히 흘렸어요.”
“아, 벌써….”
“대중에 공개되는 순간 포탈에 도배될 겁니다.”
백술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후보.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의미를 모를 수는 없을 터.
신인이 후보에 올랐다는 건 엄청난 의미를 내포했다.
혹시, 정말로 덜컥 수상이라도 하는 날에는….!
‘힘들긴 하지.’
경쟁작이 너무 강력하니까.
“세미 씨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신인이 수상하기는 힘들죠. 특히, 작년에 서주희 배우님은….”
“글쎄요.”
권위자 7명의 투표로 결정되는 수상 방식.
대중의 인기는 이미 충분했으니, 그들의 기준에 부합했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똑, 똑─
그때, 여민서가 노크를 하고 실장실에 들어왔다.
“민서 왔어?”
“네.”
어제 그녀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는 적잖이 놀랐다.
그 까칠한 성격에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줄 알았는데.
“김진우 작가님도 오실 거야.”
움찔─
잠시 흠칫한 여민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냥…. 작품이 좋아 보여서 이야기나 하려고 온 거예요.”
“그래.”
“…. 유설아 배우님 원톱이니까, 그래서 읽어봤어요!”
“알아.”
새롬은 급하게 변명하는 민서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김진우 작가의 전작에서는 메인 여주인공인 김현지 때문에 캐스팅이 불발되었다.
결론적으로, 미령을 캐스팅해서 현재는 KBC에서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으니.
‘확실히, 김진우 작가님 선구안이 좋단 말이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캐스팅 디렉터보다 정확한 눈을 가졌다.
배역을 정해두고 글을 쓴다는 추측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 할 테니.
다시 말해서, 아무리 여민서가 자존심을 굽혀도 그의 안중에 없으면.
똑, 똑─
그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김진우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김진우입니다.”
“들어오세요.”
끼이익─
곧이어,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둘의 사이가 안 좋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으니.
새롬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떼려는 찰나.
여민서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달싹거렸다.
“…. 작품 잘 봤어요.”
“해외영업 3팀 김나연?”
“네에. 재밌던데요.”
사실, 새롬은 그녀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작품이 엎어질지언정 절대 이렇게 숙인 적은 없었으니까.
“혹시 그동안 무례했다면 사과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새롬은 침을 꿀꺽 삼키고 김진우의 입을 하염없이 바라봤는데.
걱정과 다르게, 김진우 작가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도 무례했어요. 죄송합니다. 여민서 씨.”
어쩌면 양쪽 다 마음속 진심으로 사과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사소하게 삐걱대던 관계가 공적인 관계로 돌아섰을 뿐이지.
‘이 정도면 충분해.’
김진우 작가의 세 번째 마스터피스.
톱니바퀴는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부터 배역 이야기할까요?”
* * *
MBS 방국사 드라마제작국.
김진우 작가의 방문 소식은 직원들 사이에서 핫한 뉴스였다.
이 바닥에서 이런 성적으로 스타트를 끊은 신인작가는 없었기에.
한 여자는 고현래 감독에게 접근했다.
“선배님, 소문으로는 엄청 멋있다던데. 맞아요?”
“아니. 그냥 사람이야.”
“에이, 아닌데. 완전 유명하던데요?”
“뭐가.”
“같이 드라마 찍는 배우들이 완전 잘 따른다더라고요.”
“누가.”
“예를 들면, 퍼플걸…. 웁.”
고현래는 후배의 입을 틀어막고 주변을 둘러봤다.
“너 이씨, 나 매장당하라고 일부러 이러냐?”
일본에서 퍼플걸스의 인기는 나날이 고공행진 중이다.
덕분에, 동남아 등지에서의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중이고.
해외 인기가 곧 국내 인기로 연결되는 한국 특성상, 퍼플걸스의 성역화는 한동안 쭉 이어질 것이다.
“푸하, 선배님 손 완전 짜! 손 안 씻었죠?”
MBS 드라마국의 몇 안 되는 여자 감독, 나지수.
특유의 사교성으로 입사하자마자 선배들과 두루두루 친했는데.
아직 입봉은 못했지만, 조감독으로서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이번 김진우 작가님 작품, B팀 조연출 아직 안 정해졌죠?”
“그렇긴 한데….”
고 감독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다들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알아서 고를 거니까 신경 꺼라.”
“넵, 선배님. 헤헤.”
메인 감독 A팀을 서포트하는 조감독의 B팀.
주요 장면 외 디테일을 살리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 팀이었다.
얼마 후,
김진우는 정새롬과 함께 MBS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MBS 드라마 편성이 걸린 중요한 미팅이었는데
그들은 표정에는 일말의 걱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터벅, 터벅─
직원들은 무신경한 척하면서도 힐끔힐끔 그들을 훔쳐봤다.
특히, 나지수는 눈빛을 빛내고 김진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편, 김진우는 사람들의 눈빛을 애써 무시했지만, 사실은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실장님.”
“네.”
“혹시 베트남 가보셨어요?”
“어…. 갑자기?”
“갑자기 생각나서요.”
“…. 그런 말은 농담으로도 하지 마세요.”
그때, MBS 드라마제작국장, 김영식은 버선발로 뛰쳐나와 그들을 환영했다.
“아이고, 작가님 오셨어요?”
“국장님, 안녕하세요.”
“일단, 안으로 드시죠. 하하.”
“네.”
“뭐 마시고 싶은 음료라도….”
“따뜻한 냉커피요.”
“….”
“없으면 녹차요.”
새롬은 이미 반쯤 포기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 * *
MBS 방송국 김영식 드라마국장님.
그동안 만난 국장님들 중에 가장 친근한 스타일이었다.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이득을 위해 뭐든 할 것 같은 장사꾼 타입.
지금으로서는 내게 가장 반가운 성격이었다.
“신인작가가 두 번 연속 성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전부 대본이 좋아서 그런 거죠.”
“아…. 네.”
계속 칭찬을 들이부어서 치사량이 넘어갈 때쯤.
새롬이 적절한 타이밍에 끊고 캐스팅을 언급했다.
“국장님, 준비한 자료를 봐주시겠습니까?”
“네, 그래요.”
정 실장이 깔끔하게 정리한 자료에 빼곡히 들어선 캐스팅 후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주연급 배우들은 대부분 확정된 상태였다.
“너무 화려해서 눈이 부시는구먼. 하하.”
유설아, 기현수, 여민서.
연예계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들.
그중에서도 유설아 배우님은 명실상부 탑스타 중에 탑스타가 아닌가.
“이분들이 전부 캐스팅 완료되었다는 거죠?”
“예. 국장님.”
국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이러다가 진짜 TVM의 인턴을 뛰어넘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요.”
“쉽지는 않겠지만…. 해봐야죠.”
현실적인 오피스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품.
하지만, 「인턴」 이후로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성공하기 어려운 장르였으며, 대본의 의존도가 극도로 높았으니까.
그런데, 국장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저기, B팀 연출은 아직 안 정해졌는데….”
“아, 그래요?”
“괜찮은 감독으로 선별해 두겠습니다.”
“네. 국장님.”
이왕이면 B팀 조연출도 연출 경력이 제법 되는 사람이 맡아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 작품을 거쳐 간 스타감독들처럼 뛰어난 재능이 있다던가.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안 그래도 작가님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는 조연출은 널렸어요.”
“네?”
“대박작에 묻어가면 다음 작품에서 입봉하기 수월하겠죠.”
“아….”
곧이어, 드라마 미팅을 마치고 국장실을 벗어났는데.
몇몇 조연출들이 접근해서 친한 척을 했다.
“작가님, 회귀자 시청률 22퍼 찍었죠? 축하드려요. 하하.”
“제가 바로 세집살림 오바람을 공동 연출한 정 PD입니다.”
그게 뭔데요.
국장님의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연출진에 인기가 많았나.
“혹시 목 안 마르세요? 여기 음료수 한 캔 마시고….”
누군가는 음료수를 건네며 소소하게 로비를 했고.
“작가님, 여기 대본 한 번만 봐주세요.”
누군가는 웬 대본을 건넸다.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땀을 흘리고 있는 순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해외영업 3팀 김나연 1부」
‘내 대본?’
“제가 나름 해석한 내용을 달아봤어요. 그림이랑.”
“네?”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주저 없이 뒤돌아 성큼성큼 멀어지는 그녀.
“음….”
밖으로 걸어 나오며 대본을 쓱 훑어보니, 맨 앞장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 벌써 팬이 생겼나. 허허.”
* * *
다음 날, 인천국제공항.
나는 베트남 하노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러 게이트로 향했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서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 채로.
-아니, 진짜 가시는 거였어요?
“지금이라도 같이 가실?”
-….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앗 비행기 출발한다!!!”
-비행기가 무슨 마을버스야?
정새롬 실장님의 잔소리를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