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58)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장.
스크린에 다섯 명의 쟁쟁한 후보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하나같이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여자 최우수연기상 후보들.
그중에서도,
한 여인은 화면에 비추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마치 거울처럼 자신을 따라 입가에 미소를 그리는 화면 속의 여배우.
세미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까지 올 수 있던 원동력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이 전부 함께였다.
급한 촬영 일정 속, 숨 가쁜 촬영 기간에 힘이 되어준 임재준과 지성호.
힘들 때마다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 퍼플걸스 리더, 미령 언니.
자신의 부족한 연기력으로도 최고의 연출을 이끌어내 주신 성기훈 감독님.
‘그리고, 또….’
그 순간, 사회자의 음성이 홀 전체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JTBS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의 세미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티비 속에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정말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5초.
미령 언니가 후다닥 달려와서 꽉 끌어안아 주는데 5초.
가족처럼 소중한 순정마초 식구들이 열정적으로 축하해 주는데 5초.
“어, 어….?”
“세미야, 빨리 올라가야지.”
미령의 말을 듣고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시상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축하드립니다.”
작년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가 활짝 웃는 얼굴로 트로피를 건네주었다.
자신이 배우의 꿈을 키우기도 전부터 이미 정상급 여배우였던 김혜미 배우님.
“가, 감사합니다.”
김혜미 님께서 살포시 안아주는데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수상이었지만.
다행히, 회사에서 강제로 암기시킨 대본은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이 자리에 설 줄이야….’
화려한 조명이 자신을 비췄다.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시야가 온전치 못했지만.
“일단, 순정마초를 연출해 주신 성기훈 감독님….”
두근거리는 심장과 별개로, 차분한 어조로 고마운 사람들을 상기했다.
* * *
지난 1년간, 지상파 3사와 케이블을 통틀어서 최고의 여배우로 인정받은 세미.
“괜히 내가 다 자랑스럽구먼.”
물론, 연기력만으로 이렇게 상을 받은 건 아니었다.
최근에 이슈가 되어 승산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고.
‘근데 뭐, 상 받으면 장땡이지.’
수상이 발표되는 순간, 하늘빛의 여주인공 서주희는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연기력 논란까지 있었으면서, 작품이 떴다고 본인이 탈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양심도 없지.’
세미의 수상소감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 역시, 그녀를 보고 처음 시스템이 발동했던 순간이 떠올라 감흥에 젖었다.
“어, 그리고…. 봉진호 감독님, 저를 믿고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영화배우로서….”
‘봉진호 감독님 주연?’
세미의 폭탄선언에, 후방의 플래시 세례는 더더욱 거세졌다.
결국, 봉진호 감독님 차기작의 히로인으로 확정된 것인가.
슬쩍 옆 테이블의 미령을 쳐다보았는데.
잔잔하게 미소 짓는 걸 보니, 돌발 발언은 아닌 듯 했다.
곧이어, 클로징 멘트를 하려고 뜸을 들이는 세미.
“마지막으로….”
가족과 회사, 순정마초 팀까지 전부 이야기했는데.
의도적으로 지금까지 나에 대한 언급을 배제한 느낌이다.
“김진우 작가님.”
세미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숨 막히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기자들조차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여배우 세미를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이어,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
역대 수상자들 중 수상 도중에 작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있었던가.
‘아니, 뭘 그렇게까지….’
이미,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는 세미가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어젯밤의 추억이 떠올랐다.
“…. 난리도 아니었어.”
그동안 연락처를 자주 바꿔서 사람들이 내 번호를 모르는 줄 알았는데.
[부재중 통화(25)]
[문자 메시지(42)]
처음 들어보는 연예부 기자들도 내 번호를 알고 있을 줄이야.
분명히 어제 싹 다 확인하고 삭제했는데도 밤새 또 쌓여 있었다.
“관심 없어요.”
[부재중 통화(0)]
[문자 메시지(0)]
터벅, 터벅─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하니,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던 희정이 반응했다.
“아이고, 우리 작가님 일어나셨어요?”
“오냐.”
“티비에 오빠 엄청 많이 나와. 완전 웃겨.”
삑─
희정은 채널을 돌려 연예가 TV 재방송을 틀었다.
-화제의 인물이죠? 김진우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시죠. 레이나 리포터!
-신조훈 배우님과 세미 배우님, 두 분의 마지막 멘트가 똑같은 사람이었죠!
-재벌 상속자는 순정마초와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두 작품의 작가로서….
내 소식을 TV에서 들으니 괜히 민망한 기분에 살며시 입을 열었다.
“희정아, 티비 꺼라.”
“왜? 두 번 봐도 웃긴데?”
“….”
오랜만에 건수를 제대로 잡은 표정이다.
“오빠 너튜브에 박제됨. 추카추카.”
“….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
“에이, 잘못은 무슨! 오빠 인기 장난 아니야. 템페스트에 조공한다고 난리 났어.”
“조공? 나한테?”
“응. 퍼플걸스 팬클럽에서 이것저것 선물한다던데.”
“와, 정말 행복하다.”
마침, TV에서 세미의 시상식 장면이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 레인보우 엔터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세미의 차기작.
‘봉진호 감독님 차기작이면….’
진짜 엄청난 기회를 잡은 거네.
잘 됐으면 좋겠다.
내가 티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사이, 여동생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언니. 그럼 주말에 극단에 들르면 제가 표 드릴 테니까…. 에이, 당연히 그냥 드려야죠. 네…. 네! 네, 언니!”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희정이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응?”
“언니라고?”
“뭐가.”
“니가 언니가 있어?”
친오빠는 오빠 취급도 안 해주면서.
남의 집 언니한테는 뭐가 이렇게 깍듯해?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있지. 새롬 언니.”
“너 이씨, 정 실장님 귀찮게 하지 말랬지.”
“아, 내 공연 구경하러 온다고 하셨거든?”
“…. 니가 돈 주고 초청한 거야?”
한 두 푼으로는 안 될 텐데?
“아니거든!”
그렇게 바쁜 사람이 진짜 여동생을 보러 가는 건 아닐 테고.
‘설마, 이진호….?’
문득, 얼마 전에 그녀에게 말한 배우가 떠올랐다.
연기판 금수저에 근수저까지, 다 갖춘 신인배우 한 명.
그를 보러 가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지.
나도 조만간 한 번은 확인해 보고 싶었으니까.
“공연이 언제라고?”
“응?”
“보러 오라며.”
“뭐야…. 저번에는 궁금해 하지도 않더니 언니가 간다니까 물어보는 거야?”
“정 실장님 간다고 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래?”
“…. 진짜 아니라고.”
니가 이상한 말 할까봐 그러지.
“10만 원 용돈 줌.”
“콜.”
이래서 아티스트는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에 물들면 우리 아우님처럼 되는 거야.
“오빠, 방금 그 눈빛 뭐야?”
“뭐가.”
“나를 지금 쓰레기처럼 봤어.”
“그럴 리가.”
“아니야. 내가 알아. 내가 평소에 오빠를 그 눈빛으로 보거든.”
“….”
오늘도 김씨 가문은 평화롭다.
* * *
-오성 사이다 PPL은 계약 완료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실장님.”
정 실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캠퍼스 커플 사이다…. 제목을 계속 유지하면 조건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저도 이왕이면 그 제목을 유지할 생각이긴 한데.”
-네.
“아직 확실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라서요.”
-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아! 티라미수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네? 아하하. 넵.”
-그럼.
뚝.
“오늘 바쁘신가. 목소리에 힘이 없으시네.”
연지대 측에 허락을 득하고 출입한 캠퍼스.
다시 말해, 「캠퍼스 커플 사이다」 첫 촬영 현장.
나는 시스템을 확인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용 : 캠퍼스 로맨스, 두 번째 이야기 1-8부】
【제한 시간 : 무기한】
“어차피 서브 작품 기한은 무제한이니까….”
이내, 시선을 옮겨서 빛무리가 머무는 장소를 확인했다.
대낮에도 선명하게 눈에 띄는 밝은 빛무리.
“일단 촬영해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아예, 시즌제를 엎어버리고 새 드라마 제목을 쓰는 수밖에.
사실, 시즌 1만 해도 당시에 광고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싹둑 잘라내고 편집한 내용이 절반 이상이었다.
덕분에, 그것과 연결되는 내용인 시즌 2도 내 실력으로 알아서 썼던 건데.
“작가님, 안녕하세요!”
그때, 나지수 감독이 접근하며 인사를 건넸다.
편한 복장으로 촬영장에서 보니, 이미 몇 작품쯤 찍은 감독처럼 듬직해 보였다.
“나 감독님, 잘 지내셨어요?”
“아, 네! 작가님, 여기 대본….”
또다시 내게 대본을 건네는 나지수 조연출님.
「캠퍼스 커플 사이다, 두 번째 이야기 1-8부」
대본을 받아서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확인했다.
이전처럼 각종 해석과 그림이 포함된 해석본이었다.
‘된장을 가져다줘도 금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네.’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나 감독을 바라봤다.
“트, 틀렸나요?”
“네….?”
“아니, 말씀이 없으셔서.”
“….”
불안한 듯 나지수 감독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게 무슨 시험지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 고민하더니 대본에 빨간 펜으로 무언가 적어넣는 그녀.
근데 추가된 내용을 보니까 연출 면에서 풍성함이 더해진다.
인물의 구도와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다른 영상이 되었으니.
“와아…. 내용을 추가할수록 점점 더 좋아지네요.”
“역시! 이게 맞았구나?”
“….”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다.
잠시 후,
나지수 감독의 진두지휘 아래, 드라마 제작이 개시되었다.
언젠가 광고 감독님하고 웹드라마를 찍을 때랑은 차원이 다른 실력.
딱 하나만 빼면 완벽하다.
옆에서 자꾸 나를 힐끔힐끔 쳐다봐.
“음….”
이렇게 잘하면서 대체 왜 내 눈치를 보는 거지?
누가 보면 나한테 한 대쯤 얻어맞은 줄 알겠네.
곧이어, 나지수 감독은 나에게 슬쩍 영상을 보여주었다.
“일단 이 장면 한 번 보시겠어요?”
“네? 아, 네.”
시스템과 완전히 동급의 드라마는 이미 물 건너갔다.
벌써 이전 시즌부터 대본이 틀어졌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시즌 1과 비교 했을 때 이번 시즌의 퀄리티가 급격히 올라갔다는 점.
당시 광고 감독님과 비교하면, 나지수 감독은 그야말로 연출의 신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 사실을 본인만 모르는지.
“저기, 작가님…. 이거 맞죠?”
“….”
“아니, 정답을 그대로 알려달라는 건 아니고요. 헤헤.”
뭔 개소리야.
정답이 자꾸 왜 나오냐고.
역시, 천재와 바보는 한 끗 차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 옳다.
특히 예술가로서 천재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다.
“작가님. 여긴 어때요? 이거 좀 아쉬운 거 같은데….?”
아니라고. 완벽하다고.
계속해서 집요하게 물어보는 나 감독이랑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촬영장에 도착한 강준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형님, 회귀자 촬영 끝나자마자 왔습니다.”
“어, 그래.”
무슨 허리를 90도로 꺾어서 인사하냐.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준아, 인사 그렇게 하지 마. 내가 무슨 깡패냐.”
“아, 넵!”
이제 내 인지도도 올라가서 나름 팔자에도 없는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한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내, 강준이 투입되어 촬영 분위기가 살아났다.
임재준과 함께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준’자 돌림이라.
한 장면 찍고 나를 힐끔 쳐다보는 나 감독.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한마디 던져주었다.
“아주 좋아요.”
“나이스.”
“크, 기가 막히네요.”
마치 SNS에서 따봉을 눌러주면 기뻐하는 인플루언서처럼.
내 좋다는 한마디에 헤헤 웃으며 곧바로 다음 촬영을 이어간다.
“생각해 보니까….”
요즘 너무 강행군이었어.
이제 나도 이제 좀 쉬고 싶….
띵동─
【두 편 연속 집필이 발동했습니다.】
쉬겠다니까 일이 두 배가 됐어?
【내용 : 해외영업 3팀 김나연 6-7부】
【장르 : 오피스, 회사, 군상】
【장소 : 대학로 인근 극단, ‘장그래’】
【제한 시간 : 3일 3시간】
【※ 골드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5억 원】
“장그래 극단….”
이진호 배우를 등록해서 그런가.
어차피 나도 그분 연기 실력도 볼 겸 들를 생각이었으니까.
“운이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