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65)
강남역 인근, 스파시바 찜질방.
술자리에서 말을 놓게 된 이진호와 함께 목적지에 방문했다.
어제 회식 자리만 빨리 끝났어도 두어 시간은 일찍 올 수 있었을 테지만.
아직은 시간 여유 있으니까.
“진우 형님.”
“어.”
“비닐 방수포는 왜 가지고 오신 건지….”
“혹시 필요할까봐.”
“???”
임재준과 강준에 이어, 어제부로 친해져서 형 동생 하게 된 배우.
안 그래도 희정이 극단 후배라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찜질방 온 김에 내가 미역국도 쏠게.”
“감사합니다. 형님.”
한국은 참 좋은 나라야.
‘해외로 뜨는 것보다야 100배쯤 낫지.’
이렇게 4화만 더 버티면 끝나는 거잖아.
다음 작품이 뭐가 나오든 이번 작품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가뿐하게 쓰고 빨리 집에 가자.”
“네?”
“아, 내가 오늘 여기서 글을 쓸 생각이거든. 지루하면 먼저 가도 괜찮아.”
“아, 아닙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시간 좀 걸릴 텐데.”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저도 찜질방 오랜만에 와서 좋네요.”
“그래?”
“넵!”
곧이어, 목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탐사를 시작했다.
찜질방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목욕탕 아니면 불가마 아니겠는가.
시스템의 악취미 정도는 예상하고 있다고.
‘일단 탕에는 없는 것 같네.’
혹시나 물속에서 써야 하나 걱정했는데.
“목욕탕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고….”
나는 각종 한증막 문을 열고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시스템이 내뿜는 빛은 항상 눈에 띄었기에 금방 찾을 줄 알았건만.
“뭐지, 설마 관계자 출입금지라든가….?”
“형님, 뭐를 그렇게 찾으러 돌아다니시는지….”
계속 쫓아다니던 진호가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
“다 돌아다닌 것 같은데 왜 없지.”
“…. 대체 뭐가 없으시다는 거예요?”
“글쓰기 좋은 장소!”
“네?”
“잠깐만.”
문득, 내가 아직 가지 않은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당연히 아닐거라고 생각하여 자연스레 스킵했던 곳.
터벅, 터벅─
천천히 걸어가서, 내가 발을 들이지 않은 유일한 장소를 확인했다.
“에이, 진짜야….?”
[펭귄 ROOM]
방문 앞에는 이글루 한 채와 조막만 한 펭귄 그림이 대충 그려져 있었다.
나무로 된 문고리만 살짝 그러쥐었는데도 내부가 훤히 그려졌다.
따뜻한 한증막 외에, 유일하게 서리를 품고 있는 장소.
발도 딛기 싫을 만큼 차가운 냉기가 나를 반겨주는 곳.
끼이익─
문이 열리고, 아이스 방 너머에 미세한 빛무리의 존재를 확인했다.
“…. 위치 선정 족같이 하네. 진짜.”
“???”
이진호는 욕설을 내뱉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며 말했다.
“…. 다른 곳으로 갈까요?”
“너한테 하는 말 아니야.”
“네? 아, 네!”
이중으로 되어 있는 문을 열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문밖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시원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채워진다.
“음….”
【제한 시간 : 8시간 5분 21초】
감기나 안 걸리면 다행이겠어.
* * *
똑, 똑─
“실장님, 변혁주 입니다.”
“들어오세요.”
변 팀장은 새롬의 대답을 듣고 문을 열였다.
“해외 스케줄 일정 가져왔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새롬은 변 팀장이 가져온 서류를 확인하며 입을 떼었다.
“유설아 배우님은 일본, 여민서는 두바이, 기현수 배우님은 베트남.”
각자 해외 로케 일정이 달랐으나.
“이진호 배우를 제외하면 전부입니다.”
“네. 그렇네요.”
주연급 중에서는 이진호 배우만 해외 일정이 없다.
컨셉상, 그는 회식자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내용이 주요 갈등이라서.
“실장님.”
“네?”
“제휴 학원 측에서 말하길, 이진호 배우의 연기 실력이 놀라울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고….”
“음, 그래요?”
“네. 처음에 염려했던 감 팀장님도 이제는 고개를 끄덕일 정도입니다.”
“…. 김진우 작가님의 픽이니까요.”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캐스팅 디렉터보다 뛰어난 안목이라니.
대본을 뽑아내는 그 천부적인 실력을 제외하더라도, 능히 평생 먹고살 만한 재능이었다.
“해외 일정은 계속 조율해 주세요. 여러 국가에 가는 만큼 최대한 효율적으로.”
“네. 실장님.”
“이제 대본리딩까지 얼마 안 남았죠?”
“네. 그래서 여민서 배우님도 요즘 대본에 빠져 산다고 들었습니다.”
“…. 민서는 항상 연기에 진심이니까요.”
보고를 마치고, 변 팀장이 떠나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새롬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이진호 배우랑 면담 좀 하려고 하는데.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나요?”
“아, 그게…. 시바….”
“…. 네?”
“스파시바 찜질방이라는 곳에 간다고 들었습니다.”
“….”
“어제 김진우 작가님이랑 친해지더니 같이 사우나를 가겠다고….”
“이진호 배우도 이제 조심해야 할 타이밍입니다만.”
정 실장은 황당하다는 듯 묻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아니에요. 일단 알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서 일 보세요.”
멀어지는 변 팀장으로부터 눈을 떼고 습관처럼 얼굴을 매만졌다.
“어제 작가님이 나한테 뭐라고 말했더라….”
그래, 기억났다.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혹시 목욕탕에서 대본 쓰는 작가 본 적 있어요?
어쩐지 느낌이 쎄하더라니.
* * *
극단의 한 선배로부터 김진우 작가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오빠? 또라이야. 나랑은 비교도 안 됨. 아! 그렇다고 내가 또라이라는 건 아니고.
김희정 선배님 피셜, 본인보다 훨씬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어젯밤 술자리를 가져본 바로는 굉장히 착하고 좋은 형이었다.
작가 특유의 까칠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친근하고 유쾌한 스타일.
그런 줄 알았다.
어제까지는.
[수면실 Zzz]
이진호는 식혜를 한 모금 마시고, 맥반석 계란을 까면서 천천히 그를 관찰했다.
타닥, 타다닥─
찜질방 수면실의 한쪽 구석에서는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낮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기에,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전혀 아니었지만.
‘대체 왜 찜질방에서 글을 쓰시는지….’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떠오르는 즉시 그 자리에서 글을 쓰는 타입일 수도 있지.
그런데,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흘렀을까.
“진호야.”
“네. 형님.”
“내가 진짜 이 말을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거든?”
“네?”
“핫팩 좀 구해다줘.”
“???”
지금 6월인데요.
“담요도 좀….”
“….”
“부탁 좀 하자. 내가 진짜 시간이 없어서 그래.”
“…. 네. 형님.”
“진짜 고맙다, 야.”
타닥, 타닥─
다시 대본 집필에 집중하고 있는 작가 형님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왔다.
근처 ‘다이따’ 마트에서 핫팩과 담요를 구해왔는데.
“어디 가셨지?”
곧바로 작가님을 찾기 위해 한증막 문을 하나씩 열어보다가.
“대체 어디 가신…..”
[펭귄 ROOM]
문득, 눈에 들어온 아이스 방.
아까의 기억이 떠오르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간 장소에는,
“왤케 늦게 왔더….”
“….?”
“소, 손까락이….”
“여, 여기 핫팩이요!”
“고마버.”
아무래도, 입술이 굳어서 말도 잘 나오지 않는 듯 했다.
곧바로 담요를 덮어드리기는 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대체 왜….’
굳어서 잘 펴지지도 않는 손가락을 기어코 움직여서까지 대본을 쓰는 건지.
“시간이 없더서 그래.”
“….”
“두 시간만 더 빨니 올걸.”
“….”
“내가 불가마는 잘 버틸 자신이 있덨는데….”
“….”
타닥, 탁─
‘그니까 왜 버티냐고요.’
그는 눈에 띄게 느려진 타자 속도에도, 손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마치,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글을 못 쓸 사람처럼.
“…. 핫팩 좀 더 사올까요?”
“크으. 고마버.”
펭귄방에서 담요를 덮고, 핫팩을 매만지며 글을 쓰는 사람.
이내, 이진호는 펭귄방을 나서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 김희정 선배님은 평범했구나.”
천재 작가라서 그런가,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 * *
다음 날,
희정이는 한심한 생물을 쳐다보듯이 내 이마에 물수건을 놓았다.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에엣취─!”
“….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리는 거 알지?”
“내가 개는 아니잖아.”
“차라리 개가 낫…. 음, 여튼, 아까 진호한테 연락 왔어.”
“뭐라는데.”
“미역국 얻어먹고, 대신 찜질방비 세 번 냈다네?”
“아. 그거 내가 두 번은 내줬어야 하는데.”
“됐거든. 내가 줬어.”
“어, 잘했다, 야.”
여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방문을 나섰다.
가만 보니까 시스템도 참 악질이다.
알래스카 간접 체험이라도 시켜준 건가.
이거 혹시 무슨 훈련 같은 거야?
더 강한 사람이 되어서, 더 글을 잘 쓰게 만들려는 목적이라도.
“혹시나 그런 거라면 실패야.”
하루 만에 수명이 3개월 정도 단축된 것 같거든.
폐부에 침투한 한기는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이야.
지이이잉─
그때, 효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오빠, 몸은 좀 어때요.
“아프고 괜찮아.”
-음, 오뉴월 감기는….
“멈춰!”
-넹.
이내, 효주는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내었다.
-저기…. 어제 12부 대본은 잘 받았는데요.
“어.”
-오타가 왜 이렇게 많아요?
“…. 그 정도면 양호한 거야.”
-아니에요. 여태까지랑 비교하면….
나는 효주의 말을 끊고 조만간 있을 일정을 상기했다.
“…. 우리 대본리딩이 주말이지?”
-네! 일요일이에요.
“내가 그때까지 좀 아플 예정이거든?”
-네?
“당분간 회사 못 나가니까 그런 줄 알고.”
-네! 알겠어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요!
“오키.”
뚝.
오늘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살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데.
띠링─
왜 꼭 혼자 쉬고 싶을 때 연락이 몰리냐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서 톡을 받았다.
[힘내, 내 마음이야! 전복이 3배, 트러플전복죽!]
[정새롬 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 내가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구나.”
[아프지 마세요]
정 실장님이 보낸 톡을 보니 미소가 저절로 새어 나오려는데.
띠링─
[일 하셔야죠]
“…. 내 감기 가져가.”
* * *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 지부.
한 여성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 조건이라면 못 할 것도 없지요.
“다행이네요. 감독님을 제가 얼마나 고심해서 선정했는데요.”
-솔직히, 그 정도 조건이면 저 말고도 실력 있는 분들 중에….
“아뇨. 다른 감독님들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니까요.
-음….?
“감독님은 한국계 미국인이시잖아요. 저처럼.”
조셉 리.
업계 전문가들 평가로, 할리우드에서도 매년 100위권 안에 속하는 거장.
실력도 실력이지만, 안젤라가 그를 포섭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가 소개시켜 드릴 작가님이 한국에 계시거든요.”
-그렇게까지 대단합니까?
“그럼요. 제가 본 세 작품 모두 대단했어요.”
-어느 정도길래….?
“아마, 글로벌한 배우들로 캐스팅했으면 할리우드에서도 충분히 먹혔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허허.
‘확신’이라는 단어는 절대 써서는 안 되는 시장이었다.
더군다나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확신한다는 말은 더더욱.
만약 상대가 디지니 플레이의 중진급 인사가 아니었다면 더 이상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정말 기대되는군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럼 곧 뵙지요.
“네. 감독님.”
뚝.
안젤라는 핸드폰을 올려놓고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김진우의 차기작을 잡고 싶었다.
“그런 수준의 작가가 절대 돈으로 움직일 리는 없고.”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이름난 거장을 포섭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한국어 패치까지 완료된 감독으로다가.
“이 정도 준비면…. 김진우 작가님이랑 템페스트에서도 우리와 같이 일할 맛이 나지 않을까?”
물론, 거절당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작품도 준비해 놓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반드시 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구했는지, 그녀의 책상 위에는 「해외영업 3팀 김나연」 1, 2부 대본이 놓여 있었다.
스르륵─
이미 전부 읽었지만, 다시 한번 대본을 집어서 첫 페이지를 넘겼다.
“흥흥. 이번 작품도 너무 재밌어.”
그러나, 안젤라가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녀가 거장급 감독을 섭외하기 위해서 물처럼 소비한 금액 정도면.
급전이 필요한 김진우 작가는 충분히 혹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점이다.
* * *
시간이 흘러, 대본리딩 날이 다가왔다.
대본리딩 현장에 가는 중에도 효주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질문을 했다.
“진짜 괜찮아요?”
“어.”
조금 몽롱한 거 빼면.
“오빠는 그냥 자리만 지켜요. 필요한 거 있으면 저 시키시고.”
“고맙다.”
아직 몸이 골골대는 걸 보니, 감기가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중요한 일정인데 빠질 수는 없잖아.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경윤 배우님께서는 이미 일찍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반가워요. 고독한 승부사 이경윤입니다. 하하.”
“….”
생각보다 졸라 고독한 분이셨구만.
캐스팅 자체가 워낙 화려했기에, 속속들이 들어오는 배우들만 봐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경윤 배우님을 포함한, 조연급 배우들의 면면을 확인해 보았는데.
“이야, 이번 드라마 망하면 템페스트 엔터 파산하겠는데?”
“당연히 망하면 안 되죠! 저 돌아갈 데도 없어요.”
효주의 말에, 아픈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처럼 이민주 작가한테 욕이라도 퍼붓고 나온 것도 아니면서.
곧바로 이어지는 주연급 배우들의 입장.
그중, 유설아 배우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유설아 배우님.”
“네.”
“제가 어지러워서 헛것이 보이나 봐요.”
“네?”
“으음…. 모자…. 를 쓰고 계시네요.”
“아! 저 주시려고 맞춤 제작까지 하실 줄은 몰랐어요! 헤헤.”
“???”
“작가님 바람처럼 꼭 장그래 같은 김나연이 될게요!”
뭔 소리야.
그냥 김나연 같은 김나연이면 충분한데.
‘음, 어지럽네….’
감기 기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