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66)
「해외영업 3팀 김나연」 대본리딩 현장.
템페스트 엔터를 비롯한 다양한 매니지먼트의 배우들이 자리했다.
유설아를 포함한 출연진들은 U자형 테이블에 일자로 앉아 있었다.
MBS에서 임시로 파견 나온 연출팀은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안녕하십니까. 고현래 감독입니다. 이번 작품은 무조건 성공할 자신이 있어요.”
고 감독은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본리딩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어서, 슬픈 이야기를 장난스러운 말투로 승화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얼마 전 태양을 쏘다에서 어마어마한 상대를 만나서 고꾸라졌거든요.”
“하하하.”
“그런데 그 대단한 작품을 쓴 작가님이 이제는 우리 편이네? 이건 못 참죠.”
굳이 아픈 기억까지 들추어내며 이번 작품에 대한 의지를 표하는 고 감독.
그만큼, 전작의 실패를 묻어두고 새로운 작품에 올인하겠다는 뜻이었다.
“여기, 차세대 스타작가님 모셨습니다. 김진우 작가님!”
고현래 감독님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를 쳐다보았으니.
“음….”
나는 긴 테이블에 앉아 있는 배우들을 한 명씩 천천히 둘러보았다.
유설아를 음방 대기실에서 처음 봤던 순간.
기현수랑 클럽에 가서 찌질대었던 추억.
여민서와 복지센터에서 봉사활동 했던 일.
이진호하고 얼마 전에 찜질방에 갔던 기억.
“이번 작품을 쓰면서는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네요.”
하나 같이 의미 있는 나날들이었다.
당연하지.
전부 대본을 쓰기 위한 노력이었니까.
감기 기운으로 몸은 무겁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말을 이었다.
“공중파 MBS에서도 보기 드문 드림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오히려…. 장르를 대표하는, 길이길이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내 말을 듣고, 몇몇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TVM의 「인턴」을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전혀 숨기지 않았으니.
곧이어, 배우들은 한 명씩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김나연 역을 맡은 유설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순간, 다들 그녀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녀가 잠시 벗어서 테이블에 올려둔 모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려달라고 해야 하는데.’
유설아 배우가 쓰고 온 검정색 모자.
평소에 쓰고 다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여동생 극단 모자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줬던 거 뺏으면, 아무리 착한 유설아도 서운하겠지.
“작가님?”
“네?”
“오늘 첫 번째 씬은 작가님이 해설하시기로….”
“아, 그 부분은 제가 하기로 했어요.”
효주가 자연스럽게 바통을 넘겨받으며, 나지수 조감독과 함께 대본리딩을 진행했다.
* * *
새롬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템페스트 엔터와 김진우 작가는 큰 결단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었다.
디지니 플레이와 템페스트 엔터의 공동 제작 제안.
당연히 김진우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요청이었다.
“조셉 리 감독이라….”
그런 거물급 감독까지 포섭해서 차기작 제작을 논의하는 열정이라니.
업계 전반을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기회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만약 이번에 손을 잡으면….”
이제 넥플렉스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합작하여 드라마를 제작하는 순간, 더이상 양다리를 걸치는 건 불가능하다.
디지니 플레이.
넥플렉스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2등 기업.
몇몇 전문가들은 디지니 플레이가 2024년에 OTT 시장의 왕관을 차지할 거라고 예견했다.
북미 등지에서 그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며 다양한 컨텐츠를 흡수하고 있었으니.
“그런 초대형 플랫폼에서….”
몇 주간 1등을 차지했던 김진우 작가의 실력은 어디까지일까.
물론,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장기 집권했던 건 아니지만.
《순정마초, 2주간 1위! 공룡 기업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권에서 정상을 찍다!》
얼마 전에 일제히 뉴스가 풀렸는데, 사람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넥플렉스에 밀려도 한참 밀리는 형국이었기에.
“하지만 여기는 미국이 아니란 말이지….”
무려, 9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넥플렉스를 쓰고 있는 대한민국이니까.
똑, 똑─
정새롬 실장은 노크 소리에 반응했다.
“들어오세요.”
변 팀장은 들어오자마자 서류를 꺼내며 용건을 꺼냈다.
“실장님,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넥플렉스 측 조건입니다.”
“네? 아….”
이내, 그의 서류를 확인했는데.
“…. 다시 조건이 좋아졌군요.”
“네. 순정마초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다.
가령, 디지니 플레이 측에서 김진우 작가의 차기작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던가.
턱─
정새롬은 서류를 덮으며 변혁주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오늘은 고민이 많아서. 대본리딩 현장에는 저 대신 가주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터벅, 터벅─
실장실 문을 나서는 변혁주 팀장을 뒤로한 채 눈을 감았다.
“김진우 작가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전속계약도 아닌데, 자신의 선택을 믿어달라고 말하는 게 옳은 판단일까.
굳이 도박하지 않고 지금처럼만 꾸준히 성장해도 언젠가 반드시 정점을 찍을 사람이 아닌가.
“안젤라 지부장….”
확실히 영리한 사람이다.
김진우 작가를 돈으로 포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할리우드 감독까지 포섭했으니.
“반년 만에 재산을 5억이나 벌어들인 분한테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 * *
‘아, 돈 벌고 싶다.’
임재준이가 요즘 작품 들어갔다던데, 광고 한 번 더 안 물어다 주나.
아니면, 강철중 아저씨가 강준이를 좀 더 확실히 굴려줘야 해.
잠은 죽어서 자면 되거든.
“자, 배우분들! 휴식 시간 끝났고, 다시 입장하시겠습니다!”
나지수 조감독의 말을 듣고 배우들은 하나둘씩 다시 모여들었다.
감기 기운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그런지, 이 시간조차 길게 느껴졌다.
‘이제 두어 시간이면 끝나겠네.’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시작된 대본리딩.
나 조감독은 이진호를 보더니 다음 씬의 상황을 설명했다.
“소상훈, 회식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상황. 홀로 근손실을 걱정한다.”
순간, 이진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내가 어떻게 만든 근육인데…. 이놈의 술자리 때문에 요즘에는 삼대 오백도 버겁다고!”
쟤가 저렇게 말하니까 진심이 느껴진다.
현실에서도 틈만 나면 헬스장에 가니까.
“내가 오늘은 술자리 빠진다고 꼭 말한다. 진짜.”
곧이어, 부장 캐릭터를 맡은 이승윤 배우님이 대사를 넘겨받았다.
“하…. 이 새끼 아직 내 성격 모르나 보네.”
“그게 아니라, 부장님.”
“대가리 박아.”
뭔가 대사가 틀렸는데….?
회사에서 대가리를 왜 박아.
“음, 저기…. 선생님.”
“아, 실수! 애드립이었어요. 하하하.”
“….”
그런 애드립을 왜 하십니까요.
“대본리딩 계속 진행시켜.”
“네. 선생님, 그럼 다음 씬은….”
곧, 이어지는 이경윤 선생님과 진호의 티키타카를 천천히 지켜봤다.
‘이진호 쫌 치네?’
주연급 배우들 중에 가장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까 시스템 일치율도 가장 낮은 축에 속했었다.
‘잠깐만, 이진호 저 친구….’
문득, 시스템 일치율이 바뀔 수도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에 연기 실력이 늘었으면 당연히 오르는 게 정상 아닌가.
베네핏 강화 포인트를 써서 쿨타임이 2주뿐이라 부담 없이.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사전 조사(Lv 2)를 사용합니다.】
【해당 배우는 ‘소상훈’ 역할과 87% 만큼 일치합니다.】
그사이에 많이도 올랐다.
분명히 70퍼 중반이었는데.
‘이게 오르기도 하는구나.’
배역에 대한 열정과 연기력, 외모 등을 종합한 결과가 아닐까.
잠시 후, 대본리딩을 마치고.
배우들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유설아 배우님을 보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유 배우님.”
“네?”
“그 모자 말이에요.”
“네? 아! 그때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아니, 그게….”
“정말 감사합니다.”
월드스타가 꾸벅 인사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같이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활짝 웃는 표정으로 내게 할 말이 더 있는지 빤히 쳐다보는데.
“…. 화이팅.”
“네! 작가님도요!”
멀어지는 유설아 배우를 보는 내 마음이 든든하다.
반년 전에는 우러러보기에도 너무 높았는데, 지금은 내 작품의 배우라니.
그래, 장그래라는 단어 하나로 누가 희정이 극단이랑 연결 짓겠어.
유느님 말마따나, 드라마 「인턴」을 연상하는 게 상식이지.
띠링─
그때, 정 실장님에게 톡이 도착했다.
[대본리딩 끝나면 잠깐 얘기 좀 하실래요?]
이내, 우리는 연출팀에 인사하고 대본리딩 현장을 벗어났다.
“효주야. 가자.”
“네. 오빠.”
운전기사 겸 보조 작가 겸 통역사 겸 매니저.
효주와 함께 템페스트로 향했다.
* * *
잠시 후 도착한 템페스트 엔터 실장실.
정 새롬 실장의 제안을 듣고, 나는 고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회당 5천만 원이요?”
“네.”
“연출은 조셉 리 감독님?”
“네.”
“가시죠.”
“네?”
디지니의 통 큰 원고료 책정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짜 탑급 작가들이나 받을 법한 거금을 투척했으니.
“작가님, 좋은 기회긴 한데….”
“가즈아!!!”
“….”
새롬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넥플렉스에는 영원히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건 순정마초 때도 이미 각오했죠.”
“…. 고마워요. 저를 믿어주셔서.”
“???”
“저 하나 믿고 가시는 거잖아요.”
돈 때문에 하는 건데요.
“보장된 꽃길도 마다하고 어려운 도전을 하실 줄은 몰랐네요.”
돈 많이 주니까요.
“제작사로서 저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사실, 나도 아직 무슨 작품인지 모르니까.
“일단, 이번 작품만 끝나고 차기작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물론이죠.”
새롬은 슬쩍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작가님은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고민도 없으시네요.”
“음, 고민할 이유가 있나요? 좋은 기회인데.”
“….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세요?”
실패라.
시스템으로 본 드라마를 100% 그대로 만들어낼 연출자만 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시청률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쓴 대본을 온전히 영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
실패란 그것뿐이다.
내게 그것 이상의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 능력은 진짜니까.’
순정마초의 성공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이어온 기록들.
이제 세 번째 드라마 제작까지 돌입했으니.
“정 실장님.”
“네.”
“아직 망한 적 없잖아요.”
“….”
“실장님이 첫 번째 증인이에요. 제 능력이 진짜라는 증거.”
나야, 시스템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가 들으면 세상 혼자 사는 자뻑처럼 들릴 것이다.
그런데, 나를 쳐다보던 정 실장은 슬쩍 웃음을 짓더니.
“네. 제가 증명할게요. 작가님 능력은 진짜예요.”
“…. 고마워요.”
똑, 똑─
그때, 누군가 실장실 문을 두드렸다.
“아마, 성호일 거예요. 지성호 배우요.”
“아, 그래요?”
“네. 같이 차기작을 고르고 있거든요.”
“아하, 그럼 저는 이만….”
곧이어, 지성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를 마주치자마자 시스템이 익숙한 신호를 보냈다.
두근─
새 작품의 주인공을 발견하면 등장하는 알림.
세미, 김현지, 유설아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의 주인공이 정해졌다.
【새로운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지성호와 정 실장님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실장님.”
“네?”
“지성호 배우님, 차기작 당분간 미루시죠.”
“그게 무슨 말씀….”
“제 다음 작품 주인공이라서요.”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럼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 네.”
인사를 마치고 실장실을 나서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다음 작품에 대한 단서도 잡았으니, 당장 시급한 문제는.
“일단 이번 드라마를 빨리 마치는 게 최우선이야.”
장소로 어디가 나오든 상관없어.
감기에 또 걸려도 감수하는 걸로.
띵동─
【세 편 연속 집필이 발동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생각하기 전에 한 번만 더 고민해 봐야겠다.
【내용 : 해외영업 3팀 김나연 13-15부】
【장르 : 오피스, 회사, 군상】
【장소 : 두바이 아부다비, 사막 사파리 】
【제한 시간 : 18일】
【※ 플래티넘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30억 원】
“음, 그래. 원래 이런 식이지.”
베네핏 외에, 장소에 처음으로 부가적인 꼬리표가 붙었다.
【상세보기 : 집필 장소를 찾으려면 푸른빛을 먼저 찾으세요.】
사막에서 시스템을 찾는 방법이 고작 이거야?
아니, 상식적으로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됐다.
“그래, 그래서 푸른빛을 어떻게 찾으라는 건데.”
대답할 리가 없지.
톡, 토톡─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톡을 보냈다.
[효주야, 내가 없는 동안에는 니가 작가야 ㅇㅋ?]
[그래도 중요한 일 있으면 매번 보고하고]
* * *
그로부터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휘이이잉─
건조한 모래 폭풍이 터번을 스치듯이 지나쳤다.
“찾았다.”
“네? 뭐를 찾으셨다는….”
사막으로 이어지는, 끝없이 늘어선 한줄기 푸른빛.
밤하늘 아래, 마치 이정표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차가운 빛.
한쪽 손으로 그쪽 방향을 가리키며 가이드에게 말했다.
“우리 저쪽으로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