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69)
제작발표회를 마치고, 뒤풀이 회식은 깔끔하게 스킵했다.
효주랑 정 실장님이 무슨 일 있냐고 물었지만.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집에 돌아왔다.
어젯밤에는 깊은 고민에 잠겨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저, 내 방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멍하게 천장을 쳐다보는 게 일상.
시계를 볼 필요도 없이, 밥 시간대가 되면 여동생이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오빠, 엄마가 밥 먹으래!”
“안 먹어.”
“…. 엄마! 오빠가 엄마가 해주는 밥은 안 먹겠대!”
“….”
평소라면 반응했을 텐데, 동생이랑 싸울 기운도 없었다.
오랜만에 입술을 떼고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까….”
주어진 대본을 안 쓰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해 본 적이 없었잖아.
시스템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번 기회에….
띠링─
그때, 정새롬 실장에게 톡이 왔다.
[진짜 무슨 일인지 말씀 안 하실 거예요?]
[몸은 괜찮으신 거죠?]
우리 정 실장님이 못난 작가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어휴, 됐다. 돈 벌어야지.”
하룻밤 고민했더니 마음은 많이 편안한 상태였다.
사내 새끼가 겨우 공포 드라마나 영화에 겁먹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놀고 싶어서 보는 영상 컨텐츠도 아니고 돈이 걸린 계약인데.
“회당 5천만! 그것만 생각하자.”
깔끔하게 드라마 한 편에 5천만 원 번다고 생각하면.
“개이득인데?”
뭐,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어.
그래봤자 영상은 영상일 뿐이지.
“…. 그렇겠지?”
시스템이 보여주는 영화는 특별히 더 무섭다거나 그렇지는 않겠지?
그냥 영화잖아.
“혹시 모르니까 성인용 기저귀….”
…. 는 자존심 상하니까 안 해야지.
톡, 토톡─
곧바로 폰을 들어서 정 실장님에게 답장을 보냈다.
[며칠 뒤에 들를게요]
[지성호 배우랑도 미팅하시죠]
다시 활력을 되찾고 스마트폰으로 내 이름을 검색했다.
하루 만에, 제작발표회 관련 기사가 여럿 있었으니.
《김진우, 차기작 질문에 답변! 다음 작품의 장르는 공포물!?》
《제작발표회 도중 실수로 대외비를 발설하고 당황한 스타작가》
《유례없는 속도로 작품을 뽑아가는 글 기계, 다음 작품은 바로!》
“이제는 내 행동이 기삿거리가 되는구나.”
떤 기자는 벌써 나를 스타작가라고 지칭했다.
아직 두 작품밖에 안 쓴 작가놈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 같긴 한데.
“뭐, 됐고. 시스템이나 다시 볼까.”
정신이 없어서 대충 본 것 같아.
【내용 :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1부】
【장르 : 공포, 스릴러, 인터넷 방송, 옴니버스】
【장소 : 통곡 초등학교 랜덤 지정】
【제한 시간 : 13일 7시간 54분 20초 】
“음….”
공포물에 인터넷 방송을 끼얹다니.
1인칭 시점도 많을 거 아냐.
다시 봐도 악랄하구만.
아니, 근데 제한 시간 옆에 붙어있는 상세보기 뭐냐.
여태까지 별생각도 없어도 무시하고 있었던 내용인데.
【상세보기 : 대본 집필 시간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4시까지로 제한됩니다.】
“…. 지랄났네.”
* * *
강남의 모 학원, 제작발표회와 함께 스타가 된 인물이 있었다.
강준에 이어 학원에서 두 번째로 공중파 데뷔한 배우 이진호.
탑급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연급으로 데뷔했으니.
그런데, 다른 수강생들에게 한 여자아이는 정말 특이하게 보였다.
“쟤는 강준하고 이진호랑 왜 친한 거야?”
“김희정? 쟤 빽이 장난 아니라던데?”
“에이, 아니야. 원래 쟤네끼리 친했어.”
김진우 작가의 동생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들은 희정에 대해 뒤에서 수근거렸다.
특히나, 서너 명의 소수 인원씩 같은 반으로 구성된 학원 특성상 다른 반 아이들과는 전혀 친분이 없었기에.
강준이 눈쌀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내가 가서 말할까?”
“됐어.”
“다 들리게 말을 하냐. 기분 나쁘게.”
“신경 쓰지 마.”
이미 촬영을 마치고, 종영을 앞둔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20프로 중후반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스타가 됐음에도.
강준은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학원에 나왔다.
“선배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팔뚝에 힘을 빡 주고 말하는 이진호의 모습.
흡사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의 풍모가 아닌가.
“야. 네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싸우러 가는 거 같잖아.”
“네? 아….”
진호는 희정의 핀잔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어차피 수업 시작하면 금방 사라질 거니까. 관심 노노.”
“네. 선배님!”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이 끼어들었다.
최근에 만남이 뜸해진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했으니.
“저기…. 김진우 작가님은 어떠셔?”
“응? 오빠?”
“어. 오늘 회사에도 안 나오셔서 걱정이 되네. 별일은 없으시지?”
“별 일은 없고.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시골 내려갔어.”
“응….?”
“뭐가 그렇게 비장한지 모르겠는데. 머리통만 한 손전등 하나 들고 감.”
“???”
그때, 연기 선생이 들어오며 세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자자. 조용, 조용! 수업 시작한다. 앉아 번호!”
“…. 하나.”
“둘.”
“셋….?”
“오케이. 다 왔네.”
선생님, 세 명이 전부인데 왜 굳이….?
* * *
저녁 9시 55분.
조부모님 댁에 들르자마자, 통곡 초등학교 교문 앞으로 직행했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하아….”
성능 좋은 손전등 하나 믿고 완전히 맨몸으로 왔다.
사실 이거 말고 뭐를 더 가져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끼이이이─
언제 기름칠을 했는지 모를 교문을 슬쩍 밀어내고 운동장 모래를 밟았다.
“모래 보니까 사막 생각나네. 으으.”
생각해 보니까 사막에서도 밤이었으니, 다를 게 하나도 없어.
…. 더 소름돋는 것 같기도 하고.
저벅, 저벅─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유리로 되어 있는 문을 통과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쪽 유리문은 열려 있…. 아니, 깨져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 복도.
자박, 자박─
한 번씩 밟히는 나무조각이나 대리석 돌조각.
그 밖에 들리는 소리는 오직 내 발소리뿐이었다.
찌찍찍!
“으악─!”
갑자기 들려오는 쥐새끼 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비명 소리는 복도 끝에서 작은 메아리를 치며 내 귓구멍으로 돌아왔다.
“이런 야발, 진짜.”
혼자 있는데 허공에 섀도 복싱을 하듯이 욕설을 내뱉었다.
“나와.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진짜. 다 알아, 거기 있는 거!”
음,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나오면 없는 거임.
내가 귀신이면 이렇게 욕 먹고 가만히 안 있는다.
참을성 좋은 귀신은 들어본 적 없거든.
“후우….”
복도를 환하게 비추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계단을 올랐다.
“…. 밤에 와서 좋은 점이 하나는 있네.”
빛이 낮보다 더 잘 보인다는 것.
4층 저 멀리서 손전등 빛이 아닌, 훨씬 강렬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런 폐건물에 저런 불빛이 있을 리는 없고, 틀림없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위적인 빛이겠지.
나는 재고 따지고 할 것도 없이 그쪽으로 이동했다.
“음악실이라….?”
과학실보단 낫지.
아닌가.
이제 와서 무서울 게 뭐가 있으랴.
곧바로 새하얀 빛에 내 몸을 맡겼는데.
“흐읍.”
차기작, 호러 드라마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드라마 내용과 현실이 미묘하게 겹쳐 보였다.
음악실 내부에 귀신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으니.
이내, 음악실를 덮은 음울한 분위기가 내 몸을 짓눌렀다.
타다다다다닥─
끔찍한 공포.
“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음악실에서 벗어났다.
초등학교 계주 대표 때도 이렇게 열심히 뜀박질하지는 않았는데.
머릿속에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운동장에서 교문으로 향하는 그 순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 *
다음 날.
“으어…..”
희정이는 좀비처럼 누워있는 내 모습을 빼꼼 쳐다보더니 문을 닫고 소리쳤다.
“엄마! 오빠가 이상해!”
“얘는, 오빠 좀 내비둬!”
“진짜 이상해서 그래!”
니가 제일 이상해.
띠링─
“으악!”
이제는 스마트폰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오늘 보기로 한 건 아시죠?]
정 실장의 독촉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아니, 어제 본 드라마가 조금 더 무서운 것 같다.
낮 시간이 돼서 그런지, 아니면 기억이 슬슬 희미해져서 그런지.
“어휴…. 이제 좀 살겠네.”
원래 조부모님 댁에서 편하게 한 숨 자고 올 계획이었는데.
오밤중에 고속버스를 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꿈도 잘 안 꾸는데…”
밤에 악몽이라도 꾼 것 같아.
털썩─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노트북을 펼쳤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어제 개고생을 한 게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았기에.
타닥, 타다닥─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1부」
제목만 보고도 예상은 했지만.
주인공, 지성호는 인터넷 방송 BJ였다.
공포 체험을 테마로 하는 스트리머.
중요한 건, 가장 앞에 있는 단어 ‘코리안’.
이런 미친 주인공 놈은 한국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세계 무대를 꿈꾸는 진성 또라이였다.
물론, 초반에는 주인공이 돈도 없고 인맥도 없기에 한국의 유명한 흉가를 찾아다니는 게 한계지만.
타닥, 타다닥─
-조만간 국내 탑 찍고 해외에 유명한 흉가도 내가 다 정복하겠어!
주인공의 개소리를 대본으로 옮기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느낌상 진담반 농담반처럼 대사를 치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농담처럼 안 보여.
“일단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여주인공인데….”
지성호 외에도 새로운 마스크의 여주인공, 소채담.
‘쏘블리’라고 불리는 강아지상의 15년차 여배우님.
‘많이 바쁘실 텐데, 캐스팅이 되려나.’
어쩌면 배우 변경권을 써야 할 수도 있겠어.
드라마 속에서, 얼굴은 예쁘장하지만 어두운 인상의 재벌가 딸래미로 나오는 소채담 배우님.
하꼬 스트리머를 유일하게 후원까지 하며 시청하는 인물인데, 어이가 없게도 여인의 정체는.
“신내림 받고 귀신을 보는 구나….”
시각적으로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드라마 속, 폐교 근처에서 귀신을 본 여인은 스트리머에게 후원을 한다.
『‘기싱꿍꼬또’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고통 초등학교 음악실 가서 1시간 피아노치고 오기 100만원빵. 콜?』
-고통 초등학교 100만 원!? 오케이. 바로 갑니다!
고통과 통곡이라.
갑자기 킹받네.
여인의 후원을 받은 지성호는 망설임 없이 통곡 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학교 음악실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헤실헤실 웃으면서.
“어후, 호러 드라마에서 귀신이 잊혀지지를 않으니까 완전 죽을 맛이야.”
이 드라마는 두 가지 시점이 공존한다.
무서우면서 무섭지 않은 척하는 스트리머, 남자 주인공 시점.
남자의 인방을 통해, 화면으로 귀신을 보는 여자 주인공 시점.
빛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기에.
시스템이 보여주는 드라마와 현실의 음악실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물론, 시각적으로는 여자의 시점이 훨씬 무섭다.
“으으, 큰일 났다. 대사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대사도 그렇고, 주변 환경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가 없었다.
너무 급하게 뛰쳐나와서 그런지, 쓰면서도 계속해서 끊기는 느낌.
“아씨, 다시 가야 하잖아.”
타닥, 타닥─
우선 남은 기억을 최대한 짜내서 천천히 대본을 완성했다.
* * *
시간이 흐르고,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나는 작업실에서 양손에 깍지를 끼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눈 앞에 펼쳐진 노트북에는 대충 끄적인 조잡한 활자조합물이 보였다.
“얼마 후면 디지니에서 손님도 오실 텐데.”
이렇게 미완성 허접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는 없잖아.
회당 5천…. 아니, 돈을 떠나서 프로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나마 다행인 건, 첫 번째 대본이라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점.
그동안 준비할 시간이 차고 넘칠 만큼 많으니까.
“공포 영화 좀 못 보면 어때.”
무서운 영화를 처음부터 잘 보는 사람이 어딨겠어.
잘 볼 때까지 계속 보다 보면 언젠간 질리지 않을까.
이것도 업무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꿀직장이 아닌가.
나름대로 정신승리를 하며 마인트 컨트롤하고 있었는데.
드르륵─
“나는요~ 변 팀장이~ 좋은걸~!?”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생기발랄한 음성이 들려왔다.
침울한 내 상황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흥겨운 노랫소리.
“오빠, 오빠!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막방이 얼마 안 남았네용!!”
“그래?”
“넹.”
“…. 내가 시킨 일은 다 했고?”
“아! 서지훈 음악감독님?”
“응.”
“미팅 잡았어요!”
“흠….”
일전에 안면을 튼 「해외영업 3팀 김나연」의 외주 음악감독.
친분이 있는 음향감독이 두어 명뿐이라 일단 미팅을 잡아놨다.
공포물에서 사운드와 OST의 중요성은 말하기도 입 아프지.
‘일단 실력부터 보고 판단하자.’
그나저나, 오늘따라 황효주 씨 기분이 참 좋아 보인다.
혼자 기분 좋아서 열심히 대본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까, 괴롭히…. 아니, 함께 담력을 키우고 싶어진다.
“효주야.”
“넹?”
“오늘 변 팀장님 만났어?”
“앗! 어떻게 아셨어요?”
“니 맘 다 알지. 좋았겠네….?”
“헤헤.”
어려울 때는 함께할 동료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지.
원래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불행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거잖아.
“오늘 딱히 할 일 없지?”
“???”
마치 토끼처럼 눈을 똥그랗게 뜬 효주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름인데…. 왜 추움….?”
초식 동물이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을 때 나오는 야생의 본능과도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