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7)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1층 카페.
또각, 또각─
정새롬 실장은 힐 소리를 내며 내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나는 찔리는 마음에 이틀 전에 있었던 해프닝에 대해 급하게 변명했다.
“저기, 얼마 전에는 죄송….”
“작가님.”
“네?”
그녀는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제가 죄송합니다.”
“저, 저한테요?”
“허락도 받지 않고 노트북을 들여다봤어요. 죄송합니다.”
“아….”
당장 사기꾼이라고 욕이라도 퍼부을 줄 알았는데.
작가라고 부르는 걸 보면 작품이 꽤 괜찮았던 모양이다.
“제가 더 죄송하죠. 그날은….”
“저희랑 같이 일하실 생각 있으세요?”
정 실장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 때도 거침이 없었다.
‘무슨, 기계처럼 일만 생각하는 워커 홀릭 같네.’
하나씩 뜯어보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비현실적인 외모라던가, 사기 친 나에게 먼저 사과하는 모습도 그렇고.
헐리우드 톱스타처럼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일이라면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지….?”
“잠시만요.”
눈을 마주치면서도, 괜히 나 혼자 민망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미녀와 대화를 하고 있으니.
새삼 시스템이 내게 준 힘의 크기가 피부로 와 닿는다.
스윽─
그녀가 슬쩍 꺼내는 종이에는 계약서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이미 세팅을 끝내 놓은 모양새였다.
“지성호 배우, 캐스팅할 생각 있으세요?”
“제, 제 작품에 지성호를요!?”
“그럼요.”
옆에서 지성호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했다.
‘당연히 메인 남주 자리를 원하겠지?’
이미 작품의 주연 자리를 픽스했지만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재준이를…. 아니, 임재준 씨를 찾아가기 전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성호를 까고 임재준을 넣는 미친 짓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웹드라마에서도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친구랑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이어지는 정 실장의 말은 내 걱정을 덜어주었다.
“서브 남자 주인공. 우리 성호한테 주세요.”
“네?”
“평소에는 조금 까불어도 연기할 때는 제대로 하는 친구예요.”
“아, 아….”
“처음부터 느꼈는데, 3부 중반부까지 보고 확신했어요. 정말 좋은 배역이라는 걸.”
내가 망설이는 이유를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정 실장은 계속해서 부언을 추가했다.
“서브 남주면…. 너무 좋아요. 솔직히 과분할 정도예요.”
“생각이 같아서 다행입니다. 후훗.”
나도 주연을 바꿀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우리 재준이한테 미안한 말을 할 뻔했네.’
이내, 그녀는 슬쩍 계약서를 내밀었다.
벌써 계약까지 하려는 것 같은데, 너무 시기상조가 아닌가.
“그래도 아직 배우분이랑 계약할 단계는….”
“이 계약서는 성호 아니고 작가님 계약서예요.”
“네?”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사도 겸하는 건 알고 계시죠?”
“그야 당연히 알죠.”
설마….!
“왜 이렇게 놀라세요? 제작사랑 작가랑 한 팀으로 묶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닌걸요.”
“그렇긴 한데.”
“작가님, 저는 전속계약을 원합니다.”
너무 뜻밖의 제안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고작 3부도 안 되는 대본만 보고 전속계약이라니.
템페스트 엔터면 언제 망할지 걱정할 그저 그런 회사도 아니잖아.
회사의 보호를 받으면 이민주 작가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저기, 그럼 이번 작품은 회당 원고료가 얼마 정도인가요….?”
“보통 신인작가 분들 같은 경우에….”
제발 200만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전속계약을 하시면 5년간 연봉 6천에 이번 작품은 회당 500 드릴게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작업실에 전문적인 보조 작가 두 명까지 지원해 주는 시스템.
심지어, 그들의 월급은 회사에서 지급하기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자료 조사를 포함한, 자문이나 오타 수정을 해주는 인력.
보조 작가라기보다는 잡일을 처리해주는 우수한 회사 직원에 가까웠다.
“성적에 따른 옵션 지급은 계약서에 쓰여 있을 겁니다.”
오히려 이렇게 나오니까 살짝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신인작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좋은 조건이었으니.
“조금 갑작스러워서요.”
“네. 알고 있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주세요. 다음번에 만날 때….”
“아니요. 잠시만요.”
아마, 오래 생각하면 반드시 계약서에 사인할 것 같다.
한번 사인하면, 하겠다고 말하면 끝일 테니까.
그래서, 무조건 지금 결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거절하겠습니다.”
“…. 이유는요?”
말할 수 없었다.
시스템을 믿으니까-, 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수밖에 없잖아.
이런 전문가까지 혹할만한 작품을 쓸 수 있는 능력이라면.
순식간에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만 같았기에.
‘혹시 능력이 사라질지라도….’
언제 능력이 사라질지 몰라서 계약하겠다는 건 멍청한 생각이었다.
그건 또 그거대로, 비루한 전속계약 기간을 꾸역꾸역 채워야 할 테니까.
이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번 작품만요. 건당으로 가시죠. 다음 작품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음, 그래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새롬 실장은 전속계약 거절에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말로는 아쉽다고 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에는 전혀 아쉬움의 기색이 없었으니.
예상은 했지만, 방금의 선택을 번복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정 실장님, 그럼 전속계약이 아니면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템페스트 엔터 전속계약 신인에게 주는 최대의 조건은 회당 500이었다.
이전 조건은 정 실장이 부를 수 있는 최대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원래 작품당 계약의 경우에는 신인작가님께 최대 400선에서 계약합니다.”
그 정도면 내 생각보다 훨씬 조건이 좋았다.
“근데…. 저는 이 작품 정말 좋게 보거든요.”
새롬은 새로운 계약서를 꺼내며 400이라는 숫자를 찍 그어버렸다.
“회당 500은 그대로 가고,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네요.”
“아…. 네!”
대체 얼마나 좋게 봐준 걸까.
나는 당장에라도 사인을 하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었는데.
순간, 다른 조건을 생각해서 팔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만요!”
“네? 왜 그러시죠?”
“계약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
나는 계약서 상의 다른 조항을 세세하게 확인했다.
‘좆될뻔했네.’
대본을 시스템이 써주는 이상, 대본 수정에 누구보다 신중해야만 한다.
즉, 주연 캐스팅과 PPL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큰일이었다.
* * *
“세미야, 저번에 웹드라마 편집자 기억나?”
퍼플걸스의 막내, 세미는 매니저의 질문을 듣고 천천히 대답했다.
“음…. 당연히 기억나죠. 말씀을 잘하셔서 그때 작품도 같이 했잖아요.”
“그 사람이 이번에 좋은 작품 있다고 소개시켜준다는데.”
“아, 정말요?”
“16부작에 주연인데….”
“와, 그럼 당연히 해야죠!”
세미의 연기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매니저는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거, 대본이거든? 누가 엄청 봤나 봐. 좀 너덜너덜해.”
“그, 그러네요. 종잇값 아끼고 좋죠. 하하.”
매니저 역시 대본을 봤기 때문에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미안한데. 이거 작가님이 너무 신인이고, 제작이 될지 말지도 모르는 작품이야.”
“아, 아….”
그런 작품을 추천한다는 게 매니저로서 조금 민망했다.
그럼에도 보여주고 싶을 만큼 작품이 괜찮았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래도 한 번 읽어는 볼게요.”
“그래.”
드르르륵─
그때, 밴의 문이 열리며 멤버들이 들어왔다.
메인댄스 재은이 매니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오빠, 오빠! 나 방금 이민주 작가님한테 톡 받음.”
“어, 그래? 뭐라고 보내셨는데?”
“이번에 시청률 대박난 작품 있잖아. 내가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한 거.”
“응. 알지.”
“거기에 우리 멤버들 전부 나오래!”
그녀의 선언에 멤버들은 열렬하게 반응했다.
“꺄아아아아!”
“역시 퍼플걸스 에이스는 재은이지.”
“언니, 짱이야. 헤헤.”
재은의 콧대가 한껏 올라갔다.
자기 덕분에 이민주 작가의 드라마에 멤버 전원이 출연하게 되었으니까.
퍼플걸스가 인기 걸그룹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팬층은 남성에 치중되었다.
반면에,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 시청자들이 아닌가.
2화 만에 시청률 20%를 찍은 대박작.
여성 팬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잘됐네.”
세미는 진심으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했다.
시기질투까지는 아니지만, 부러움의 감정까지는 컨트롤할 수가 없었으니.
‘재은 언니도 나처럼 딱 한 줄짜리 연기 경력이 전부인데….’
재은과 세미의 경력은 하늘과 땅보다 큰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웹드라마로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내, 세미는 매니저에게 받은 2부짜리 대본을 펼쳐보았다.
연기에 대한 열망을 채워준 고마운 사람의 부탁인데 무시할 수는 없지.
“순정마초…. 제목 귀엽네.”
그녀는 밴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대본에만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숙소에 가서도 너덜너덜한 대본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었다.
* * *
나는 계약서의 항목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제작사는 캐스팅에 관여할 자격을 갖는다.
제작사는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투자와 PPL을 선택할 권한을 갖는다.
너무 당연하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조건들.
이미 정해놓은 주연 배우들은 둘째 치더라도.
“저기, PPL은 빼고 가면 안 될까요?”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저도 힘든 건 알고 있는데.”
“이유나 들어보죠.”
“어….”
시스템이 PPL까지 신경 쓰면서 대본을 써주지는 않으니까요.
“….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요.”
“아, 음. 그래요. 예술하셔야죠. 자까님.”
비꼬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근데요. 주연급이면 못 해도 2천. 어쩌면 회당 5천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시죠?”
“아, 그 문제는….”
“서브 남주 비중도 만만치 않은데. 작가님 원고료까지 대충 1억 정도 잡으면. 그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할까요?”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실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앞으로 욕먹을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저기…. 그래서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추가 폭탄을 떨어뜨렸다.
“사실 주인공 두 명은 제가 미리 생각해둔 배우가 있습니다.”
“아, 그래요? 누구….”
“메인 남주는 회당 출연료 100만 원이면 될 것 같아요. 여주도 연기 경력 없는 인기 아이돌이니까 한…. 천 정도?”
“이런 미친….!”
결국, 정새롬 실장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그런 배우들 데려다 놓으면 누가 투자를 하고 어떻게 PPL을 꽂아 넣겠는가.
“아, 그래도 저는 회당 300 정도만 받아도 만족하니까…. 헤헿.”
“대가리에 총 맞으셨어요?”
“말넘심….”
정새롬의 격한 반응이 신선했는지, 옆에 있던 지성호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제작사도, 방송국도, 다들 돈 벌기 위해 드라마 하는 겁니다.”
“그건 저도 알죠.”
“본인 작품의 상업적 가치를 본인만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눈빛만으로 쌍욕을 퍼붓고 있는 정 실장.
딱 현실 모르는 초짜 작가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돈 벌고 싶다고! 이거 개억울하네.’
시스템으로 쓴 대본만 아니었다면, 돈에 미친 새끼가 어떤 대본까지 쓸 수 있는지를 증명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아…. 이게 처음부터 남주와 여주를 낙점하고 집필한 대본이라서요.”
PPL은 몰라도 주연 자리는 양보할 수가 없었다.
정 실장은 단호하게 말하는 나에게 묘한 시선을 보냈다.
“일단 들어나 보죠. 대체 누구예요? 작가님 마음을 사로잡은 주연 배우들이.”
“퍼플걸스 세미요.”
“….”
“오해예요.”
슬쩍 눈을 흘겨보더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 눈으로 경멸하고 있잖아요. 지금.”
“아닌데? 평소에도 원래 이런데요?”
반말한 거 같은데. 이것도 기분 탓인가.
“후…. 남자 주연이 누군지는 물어보기도 무섭네요.”
“그러면 서면 보고로 할까요?”
“그러시죠.”
“???”
농담이었는데?
“캐스팅은 원래 협의가 필요할 내용이니까. 나중에 추가로 이야기하시죠.”
“네. 감사합니다.”
아마, 신인작가 중에서 캐스팅에 PPL까지 건드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편의를 봐주면서 대화하는 거 보면, 작품을 정말 좋게 봐주긴 한 모양이다.
“일단 방송국 측에 컨택하고 감독님 정해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 저는 한 시간 정도만 더 대본을 쓰다가 일어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드르륵─
정 실장과 지 배우는 동시에 일어났다.
나는 천천히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빤히 지켜봤다.
특히, 그중에서도 정새롬 실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조금…. 멋있네.”
아마 동경에 가까운 찬사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