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71)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내 작업실.
나는 저녁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녹음실에 잠시 들렀지만, 아직 시간이 안 돼서 아무것도 없었기에.
“오빠, 오늘따라 심심해 보이시네요?”
“심심하다기 보다는….”
아직 할 일이 없어서.
【상세보기 : 대본 집필 시간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4시까지로 제한됩니다.】
그냥 회사 녹음실이라 걱정을 안 했는데.
이번에도 밤에만 대본을 쓸 수 있다는 게 좀 걸린다.
“저기, 새 작품 1부 편집했어요.”
“수고했어. 아, 그때 폐교 같이 간 것도 수고했고.”
“…. 오빠, 거기에 같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제 인생 업적이에요.”
“어, 그래 보이더라.”
문득, 궁금한 점이 생각나서 효주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번에 서지훈 음악감독님이랑 미팅 잡은 거 날짜가 언제더라?”
“며칠 후일 텐데, 날짜는 다시 잡기로 했어요.”
“그래?”
“네. 음, 근데 오빠…. 오늘 목요일인 거 아시죠?”
“벌써?”
“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종영일!”
요즘 시간 개념이 없어졌어.
새 작품 신경 쓰기에도 바빠서.
“시간이 빠르긴 하네.”
“오늘 같이 보실 거죠?”
“글쎄.”
밤 10시면 딱 시스템이 드라마 시청을 허용하는 시각이라.
이미 알고 있는 막방보다는 새 드라마 2부가 더 궁금한데.
“효주야, 빔프로젝터는 구해왔어? 내가 시킨 거.”
“네. 저쪽에요.”
효주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족자형 빔프로젝터와 기계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너랑 나랑 매일 보는 거야. 귀신 나오는 영화, 하루에 다섯 편씩.”
“오호, 요즘 귀신의 칼날 개꿀잼이라던데?”
“응. 애니메이션 말고 공포 영화 틀어.”
“앗! 오늘 막방 변 팀장님이랑 같이 보기로 했는데!”
“뭐래. 빨리….”
후다닥 도망가는 효주.
이제 습관처럼 도망가네.
바로 스마트폰을 들어서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오후 6시 넘었구나? 퇴근 인정.”
퇴근 시간 이후에는 터치 안 하는 마인드.
물론, 신성한 대본 집필 장소에 가는 날에는 야근 수당을…. 정 실장님께 말씀드려서 줘야지.
“…. 너무 착한데, 나?”
밤 10시까지 할 일도 없어서 빔프로젝터를 설치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1부를 내용을 편집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니.
[9시 54분 50초]
마침내 다가온 그 시각.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또 얼마나 무서운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까.”
터벅, 터벅─
무거운 마음을 품고, 3층 녹음실로 향했다.
지난 며칠간 무서운 영화를 많이 본다고 봤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포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게 학계 정설이지.
잠시 후,
녹음실에는 예상대로 새하얀 빛이 생성되었다.
“후우, 흡….!”
빛에 몸을 내던지는 순간 두 번째 이야기가 머릿속에 주입되었다.
“으으.”
귀신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압도되어 입이 절로 다물어진다.
기괴한 형상이 생생하게 떠올라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었다.
끔찍한 분장이 어찌나 생생한지,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녹음실에서 시체로 발견된 젊은 프로듀서.
사망 원인이 과로사라고 하니까 누군가 겹쳐 보인다.
“이거 혹시 내 미래냐….?”
됐고, 일단 귀신의 형상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하자.
이번 드라마의 성패는 분장팀에 달린 것 같으니까.
최대한 묘사를….
“아씨, 눈 마주쳤어.”
어이가 없네.
내 머릿속에 있는 귀신이랑 눈도 마주치고.
진짜 내가 살면서 별일을 다 겪는다.
이제 여기 다시는 못 올 것 같아.
저 아저씨 얼굴이 떠오를 거 아냐.
“녹음실 안녕.”
전반적으로 폐교 편을 마무리하는 내용의 2부.
장르에 에피소드가 박혀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
매 편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더러운 내용.
이러다가 진짜 전국의 흉가를 순회하게 생겼다.
당분간 사람이라도 한 명 고용해야 하는건가.
“잠깐만, 근데 오늘 후반부 내용이….”
『‘기싱꿍꼬또’ 님이 2,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요즘 핫한 공포 스팟있다던데? 자란다 정신병원 가주세요! ㅎㅎ』
음, 다음은 폐쇄된 정신병동 체험이야?
여주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좀비 병동.
좀비를 귀신이 빙의한 귀접물로 퉁쳐버린다.
“이제는 뭐만 하면 다 폐건물인가.”
현실에서는 우연히라도 가볼 일이 없는데.
곧바로 빛에서 빠져나와,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집필을 시작했다.
드라마 내용을 떠올리는 상태로 알아서 쓰는 연습은 여전히 효과적이었으니.
무엇보다, 이번 드라마만 봐도 더욱더 실력을 키워야 해.
기억에 의존해서 써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옮길 만큼.
타닥, 타다닥─
폐교에서 귀신들에게 제대로 혼쭐이 난 주인공, 지성호.
이번 내용부터는 스트리머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귀신을 보는 여자 주인공은 후원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니.
-기싱꿍꾸또…. 님, 후원 감사합니다. 자란다 정신병원은 음….
큰손 후원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만, 못내 찝찝한 표정.
돈에 굴복하는 모습이 썩 현실적이었다.
“여주인공은….”
쏘블리라고 불리는 탑급 여배우, 소채담.
발랄하게 톡톡 튀는 성격을 보고 입덕하는 팬들도 여럿 있었다.
평소에 게임을 즐겨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인방 문화를 알지도 모르겠다.
시스템이 이분을 배역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근거가 있지 않을까.
전작에서 연기력과 대중성을 둘 다 사로잡아 탑스타가 되었기에.
“캐스팅이 어려울 수도…. 정 실장님이랑 대화 좀 해봐야겠어.”
* * *
제법 커다란 스크린에 드라마의 오프닝 장면이 걸렸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마지막 회」
템페스트의 직원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중, 강준의 옆자리에는 여주인공 김현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으니.
“오빠 진짜 고생 많았어요.”
“너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촬영 시간.
중간에 웹드라마나 광고 등의 스케줄까지 치면, 잠도 거의 못 자고 일만 했지만.
“김진우 작가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
“그니까요. 헤헤.”
아마, 지금쯤 강남의 학원에서 희정이랑 진호는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을 터다.
‘왜 자꾸 신경이 쓰이지.’
심지어 다른 수강생들이나 연기 선생님들도 같이 보고 있을 텐데.
“준이 오빠.”
“응?”
“우리 시청률 28프로예요!”
자체 최고 시청률을 또 한 번 경신했다.
어마어마한 수치에 현실 감각이 떨어졌다.
“이제 곧 일본 스케줄도 있을 텐데, 더 바빠지겠네요.”
“음, 그런가.”
“네. 당분간 한국에는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라고 그러던데요? 매니저 언니가.”
“아….”
분명히 좋은 현상이고, 잘 나간다는 증거인데.
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지.
“우리 같이 예능 찍는 거 아시죠? 런닝친구들.”
“알지.”
“그거 나눠준 질문 중에….”
옆에서 김현지가 떠드는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편, 같은 공간.
정새롬 실장은 두 명의 합작에 감탄하며 드라마를 시청했다.
송권수 감독의 연출과 김진우 작가의 대본이 둘 다 뛰어났기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천재들의 합작이 아닌가.
한동안 이런 조합은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마지막 화에서 포텐이 터지네.”
새롬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서 배우들을 확인했다.
강준과 김현지는 나란히 앉아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문득, 또 다른 주역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진우 작가님은 어디 가셨지?”
그때, 옆에서 듣던 효주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오빠, 오늘 녹음실에서 대본 쓰신다던대요?”
“아, 그래요?”
“네!”
“음….”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내려갔다.
유리창을 통해 그의 모습을 확인했는데.
“여기 계셨네.”
대본을 쓰다가 한번씩 흠칫 놀라는 모습이 굉장히 특이했다.
본인이 쓰는 드라마 내용에 본인이 공포를 느껴서 부르르 떨고 있다니.
“확실히 보통은 아니야.”
상상력이 평범한 사람을 아득히 뛰어넘으면 저럴 수 있을까.
똑, 똑─
“으허어억─!”
단순한 노크에도 기겁을 하는 김진우 작가.
새롬은 한숨을 내쉬고 녹음실 문을 열었다.
“응? 실장님, 어쩐 일로….”
“그냥 뭐 하시나 해서요.”
방금 비명소리를 냈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모습.
“흠, 보시다시피 대본을….”
“하필 여기서요?”
“…. 원래 공포물은 녹음실에서 써야 돼요. 그런 속설도 있잖아요.”
“녹음실에서 귀신 나오면 작품 대박 난다는?”
“얍! 바로 그거죠.”
그런데, 이미 그의 모습은 공포에 질린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벌써 귀신 본 것 같은데.’
한 번씩 담요를 꾹 쥐는 손동작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으니.
“무서우세요?”
“엥? 전혀요.”
“…. 무서운 것 같은데.”
“에이, 눈 감고도 써요.”
“….”
그게 무서운 거예요.
자존심이 상하는지, 애써 자신의 상태를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김진우 작가.
본인의 글을 쓰면서 본인이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실소가 터졌다.
“작가님, 무서운 거 싫어하세요?”
“허 참, 안 무섭다니까요.”
“흠, 같이 있어줄까 했는데. 저는 무서운 것도 잘 봐서.”
“…. 뒤지게 무서워요.”
착한 정 실장은 살짝 웃더니 김진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실장님.”
“네.”
“저 차기작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주셨으면 하는 여배우님이 있는데.”
“누군데요?”
“소채담.”
“…. 어렵네.”
진우는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정 실장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심 아니고.”
“누가 뭐래요?”
“방금 눈빛이 뭔가 이상했어요.”
“은근히 예리한…. 아, 아니, 그분을 캐스팅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정새롬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슬쩍 운을 떼었다.
“…. 작가님.”
“네?”
“얼마 전에 폐교에서 대본 쓰신 거라면서요.”
“효주한테 들었어요?”
“아뇨. 변 팀장한테요.”
“….”
새롬은 측은한 마음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료 조사도 좋지만, 꼭 밤에 그렇게….”
“실장님.”
“네?”
“다음번에는 흉가에서 써야 할 지도 몰라요.”
“….”
“거기 가야 영감이 떠오를 거 같아서.”
정새롬 실장은 어떻게 위로를 할지 고민했다.
그답지 않게 너무나도 슬픈 목소리로 말했기에.
“아, 음…. 그런 작가들 많아요. 제가 아는 작가분들 중에도….”
“정말요?”
“그럼요!”
“그럼 같이 가주던가.”
“….”
논리가 없는데?
“아니, 제가 왜….”
“으음, 싫으시면 어쩔 수 없죠.”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흐리는 김진우.
마음씨 착한 정새롬 실장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아, 알겠어요. 시간 나면 뭐….”
정 실장은 보지 못했지만 김진우의 입꼬리는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 * *
정새롬 코인으로 간다.
줄여서, 정코인.
“겁쟁이 효주 따위는 이제 버려도 돼.”
정새롬 실장이 효주처럼 겁먹은 모습은 상상이 안 되잖아.
게다가, 공포 영화를 전혀 안 무서워한다고 말했으니까.
“흐흐.”
집에 가는 길이 어찌나 가벼운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집 근처 정육점에 들러 소고기를 사서 집에 들어가는 길.
스마트폰으로 오늘 뜬 연예계 뉴스를 검색했다.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시청률 28%로 종영! 특히, 배우 강준의 경우….》
《청출어람!? 김진우의 스승, 이민주 작가는 4%의 초라한 성적으로….》
“단순 수치만으로는 7배 차이구나.”
시청률이 전부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이쪽 사정이니까.
전 직장 상사가 쓴 작품의 몰락이 기쁘거나 후련하지는 않았다.
드라마 하나로 평가되기엔 스타작가의 이름값이 너무 아깝지.
“더 망해야 돼.”
다음 작품도 망해라.
삐삐삐, 삐─
집에 들어가서 희정이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응? 뭐야, 이 쓰레기는?”
“…. 소고기.”
“허, 헐! 소느님!”
희정은 자세를 고쳐 잡고 양손으로 소느님을 영접했다.
“대박쓰! 내가 어제 좋은 꿈 꿨다니까!?”
“뭐래.”
고기를 들고 주방으로 가는 희정이를 보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오빠! 빨리 고기 먹자!”
“어.”
치이이이─
“앗, 고기 타잖아! 집게 줘봐. 내가 할래.”
“그러던가.”
희정이는 고기를 뒤집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근데 오빠 표정이 왜 그래? 썩었는데?”
“…. 너는 오늘 썩은 부위만 먹자.”
“음, 역시 오빠는 썩은 표정이 제일 매력적이야.”
“그래?”
“응!”
…. 양심 어디?
“요즘 극단이나 학원에서는 별일 없고?”
“오올, 신경 써주는 척?”
“…. 됐다.”
“얼마 후에 드라마 오디션 봐. 요즘 연습 중이야.”
“오디션?”
“응. 학원 홍보물 보고 알았어. 비중 있는 조연.”
“그래?”
그러고 보면 나한테 배역을 부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업어 키운 내 공이 크다.
‘뭐, 능력도 안 되는 배우를 억지로 끼워넣을 생각은 없지만.’
흐뭇하게 바라보는 내 표정을 보고 희정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냐 그 표정은.”
“흐뭇하게 동생을 보는 느낌?”
“음….”
“오디션 보려는 건 무슨 배역인데.”
“주인공 여동생 역할.”
“…. 싸가지 없는?”
“오, 어떻게 알았어?”
메소드 연기 쌉가능.
희정이를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 집게를 들었는데.
띵동─
그 순간, 이제는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시스템이 발동했다.
【내용 : 코리안 호러 스트리머 3부】
【장르 : 공포, 스릴러, 인터넷 방송, 에피소드】
【장소 : 경기도 화성 ‘보람찬’ 정신병원 랜덤 지정】
【제한 시간 : 5일 】
【※ 플래티넘 승급 : 110-110101-1011(가상 계좌, W Bank)】
【※ 입금 금액 : 0원 / 30억 원】
집에서 소고기 굽다가 시스템이 발동할 줄은 나도 몰랐지.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최악의 장소와 함께.
“와아, 소고기 먹다가 입맛 뚝 떨어지네.”
“엥? 소고기 앞에서 입맛이 없을 수가 있어? 그게 가능?”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서 ‘보람찬’ 정신병원을 검색했다.
‘곤지움’ 이후, 공포체험의 성지.
조만간 철거 예정의 폐병원.
“어휴…. 이러다 내가 정신병 걸리겠어.”
그래. 이 정도는 되어줘야 시스템이지.
그나마 다행인 건, 땅주인이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했다는 것.
본인의 다른 사업 아이템 바이럴 홍보용으로 너튜브에 박제했다.
‘주인한테도 반쯤 버려진 건가.’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네.
이렇게 노골적이니까 오히려 당황스럽다.
톡, 토톡─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톡을 보냈다.
[정신병원 같이 가주실 정 실장님 계십니까? ㅠㅠ]
이런 톡을 보낼 때는 최대한 불쌍해 보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