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72)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나는 침을 꼴깍 삼킨 채 영화의 다음 장면에 집중했다.
옆에 있는 효주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눈만 빼꼼 내놓았다.
빔프로젝터에서 발산하는 영롱한 빛이 스크린에 투영되었는데.
스스스스스─
귀신이 등장하기 직전의 하이라이트 장면.
고조되는 긴장감 속, 영화의 주인공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끄어어어어
모가지가 90도로 돌아간 귀신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으아악─!”
이제는 자연스럽게 눈을 가리는 황효주.
이렇게 다 가리고 볼 거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좀 참고 보라니까.”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는 것 같아.
두려움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니까.
“귀, 귀신!”
근데 효주를 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얘는 공포 영화를 아무리 많이 봐도 성장할 기미가 없었다.
“사실은 제가 공포 영화 알레르기가 있어요.”
“거짓말하지 마.”
“진짠뎅.”
결국, 한 편의 영화를 완주하고 나서야 효주는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 오빠, 진짜 폐병원 가시게요?”
“응. 가야지.”
“으음…. 많이 무서울 텐데요.”
“너튜버들도 많이 가던데?”
“으으, 그 사람들도 여러 명이 가요”
“너도 같이 가실?”
“…. 여보세요? 변 팀장님?”
너 지금 스마트폰 거꾸로 들었어.
“아, 혁주 오빠 저랑 사귀자고요? 오빠 하는 거 봐서요.”
그렇게 말하면 구라인 거 너무 티 나잖아.
작가라는 게 현실 고증을 개못허네.
드르륵─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는 효주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제 진짜 갈 준비해야지.”
폐쇄된 정신병동에서 글 쓸 준비.
공포의 8할은 어둠과 사운드에서 나오는 거니까.
미리 준비하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나는 곧바로 회사를 나와서 ‘다이따’ 마트로 이동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바로 조명기구.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춰줄 물건은 필수였다.
“오, 이거 좋네. 바닥에 놓는 납작 전등.”
일전의 굴욕은 깔끔하게 잊고 새 출발 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들어서 정새롬 실장에게 톡을 보냈다.
톡, 토톡─
“나와 함께할 동료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지.”
* * *
강남의 한 연기 학원.
김희정은 조만간 있을 오디션을 대비해 특별 수업을 받았다.
극소수 인원을 가르치는 학원이었기에 과외처럼 수업 진행이 가능했다.
“그 역할에서 중요한 건 톡 쏘는 매력이야.”
“아, 네!”
“일단 한 번 내 앞에서 연기해 봐. 받아줄게.”
“네!”
희정은 순식간에 역할에 몰입했다.
“오빠는 왜 매번 그렇게 이기적이야? 가족 생각은 안 해?”
“지금 일이 더 중요한 거 알잖아.”
“알긴 뭘 알아! 내가 지금까지 했던 고생은….”
희정의 눈가에는 조그마한 이슬이 맺혔다.
떨리는 말투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는 수준급의 실력.
대본을 그대로 따르지만 자신만의 색을 입혔다.
짝, 짝, 짝─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과 연기 선생이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너무 잘했어. 조금 디테일을 더해보자면….”
잠시 후,
수업이 끝나고 이진호가 다가와 물을 건네었다.
이내, 두 명은 함께 학원을 벗어나며 대화를 이어갔다.
“선배님, 오늘 너무 좋았어요.”
“그래?”
“네! 하하.”
오늘 결석한 강준을 제외하면, 희정이와 가장 친한 후배였다.
“근데 진호 너는 드라마 안 찍어? 계속 학원 나와도 돼?”
“아! 제가 아직 부족해서 촬영 중에도 가능하면 학원은 나올 겁니다. 회사에서도 허락받았습니다.”
“그래? 기특하네. 인성 합격.”
고개를 끄덕인 희정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한 포스터 앞에 섰다.
[JTBS 새 드라마 ‘오류동 팔남매’ 공개 오디션!]
주연급이 8명이다 보니까, 너덧 명은 비중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비중 있는 조연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
아마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하겠지.
“저기, 선배님.”
“어.”
이진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JTBS면 김진우 작가님 인맥이 통할 텐데….”
“근데?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이야?”
“아, 아니 오해하지 마시고. 제 말은 그러니까….”
“뭐야, 너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이었어?”
“아, 아뇨! 절대 아닙니다!”
“흐음….”
“지, 진짜 아닙니다. 믿어주십쇼!”
“믿지. 너도 아버지 유명하신데 밑바닥부터 시작하잖아. 우리 극단 들어온 거 보면.”
진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희정을 쳐다봤다.
“남매끼리 두 분 다 멋있으시다고요.”
사실, 희정의 말마따나 진호의 아버지 역시 그런 식으로 배역을 꽂아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한때는 괜히 불만스러웠던 시기도 있었고.
그래서 당당한 희정의 모습이 더욱더 대단해 보였다.
“선배님.”
“응.”
“근데 포스터는 왜 뜯으시는지….?”
“아이쿠, 실수로 가져갈 뻔했네.”
“???”
“실수로 학원 친구들 오디션 못 보게 할 뻔.”
“….”
* * *
정새롬 실장은 대나무 엔터테인먼트에 들렀다.
‘쏘블리’ 소채담 배우를 섭외하려고 직접 방문한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실장님.”
“안녕하세요.”
“요즘 제일 잘나가는 템페스트에서 방문을 다 해주시고, 하하.”
대나무 엔터 측에서도 실장급 인물이 마중을 나오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하하. 그러게요.”
고작 반년 전까지만 해도 대나무 엔터의 배우 풀이 월등히 좋았는데.
최근에 템페스트의 급이 올라서 거의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잠시 후, 정 실장은 회의실에서 자리를 잡고 용건을 꺼냈으니.
“음, 소채담 배우님이요?”
“네.”
“아, 음…. 사실, 지금 밝은 이미지로 화장품 광고를 찍고 있어서요.”
“아, 그런가요.”
귀신이 나오는 공포 드라마와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광고.
아무래도, 회사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곧이어, 대나무 엔터의 실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솔직히 저희도 김진우 작가님 작품을 놓치고 싶지는 않거든요.”
“네?”
“광고보다 중요한 게 드라마 아닐까요? 하하.”
“그럼….”
“채담이 의견을 들어보고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좋네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이내, 정새롬 실장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미팅 한 번에 끝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조급한 쪽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어 있으니까.
반응을 좀 더 확인하고 계약을 진행할 수밖에.
“소채담 배우님이 하시려나 모르겠네.”
띠링─
그때, 새롬의 스마트폰에 김진우의 톡이 도착했다.
[정신병동 체험, 같이 가실? ㅎㅎ]
“…. 이러다 내가 정신병 걸리겠어.”
어쩌다가 그런 약속을 해서 코가 꿰인 건지 모르겠네.
* * *
성공한 여배우가 살기엔 조금 작아 보이는 투룸.
하지만 취미가 게임에, 아기자기한 취향의 그녀에게는 충분한 크기였다.
지이이잉─
소채담은 매니저임을 확인하고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전화를 받았다.
“어. 오빠.”
-톡 안 봤어?”
그녀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는 데스크탑 모니터를 보면서 대충 대답했다.
“무슨 톡?”
-김진우 작가님 차기작.
“오오, 요즘 핫한 작가님이잖아. 얼마 전에 너튜브 방송도 봤어. 롱터뷰!”
-여튼, 그래도 일단 공포물이라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해.
“공포물….? 공포물이라고?”
채담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할래!”
-응. 아니야. 그렇게 정하는 거 아니야.
“….”
-광고 이미지 생각해야지.
“으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스타작가 중 한 명이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대본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빨리 대본 보고 싶은데.”
-알았어. 내일 아침 스케줄 때 가져갈게.
“응.”
빰빠바밤─
그때, 채담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도네이션의 향연.
그녀는 급하게 스피커의 소리를 낮췄다.
-너 설마 또 인방에 도네하는 거 아니지?
“앗.”
-…. 채담아.
“조금만 할게.”
-후우…. 그래. 내일 아침에 보자.
“예써!”
뚝.
조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법.
“진짜 조금만 해야지.”
매니저 외에는 소속사도 모르는 가벼운 유흥이었다.
물론, 익명성이 보장되는 선에서 즐기는.
스릴이나 공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누가 알아볼까 두려워 직접 체험을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대리만족시켜줄 공포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며 후원하는 것.
“공포 드라마 찍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안 시켜주면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안 올지도 몰라.
그 유명한 김진우 작가의 작품이니까, 회사에서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겠지.
채담은 거의 누운 듯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미션을 걸었다.
『‘자체발광’ 님이 3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나는 3번 보람찬 정신병원에 한 표! ㅎㅎ』
공포 스트리머는 곧바로 허리를 120도로 접으며 리액션을 보였다.
-형니이이이님! 보람찬에 30만 표 쏘셨습니다!
적어도, 이곳 세상에서는 한 사람당 한 표가 아니었다.
그녀가 돈을 쏜 액수만큼, 3번에 표가 몰렸으니.
-나는 공동묘지가 좋은데 ㅡㅡ
-응 돈 있으면 니들이 쏴 ㅋㅋㅋ
-나는 첨부터 3번이었음 ㅎㅎ
-자체발광 믿고 있었다구
유명한 공포 전문 BJ 노빠꾸와 함께하는 세 명의 게스트.
물론, 게스트들을 포함한 네 명은 전부 스트리머였다.
곧이어, 장소 투표를 마치고.
-형님들! 오늘 밤에 보람찬 정신병원에 갑니다! 그럼 다음으로….
BJ 노빠꾸는 돈에 미친 사람처럼 복장에도 투표를 걸었다.
좀비, 저승사자, 미라, 드라큘라.
그냥 가도 정신이상자인데, 코스프레까지 하고 간다니.
『‘자체발광’ 님이 3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좀비 ㄱㄱ』
-오케이! 좀비 분장 30만 원 낙찰!!!!
* * *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춰, 템페스트 사옥의 주차장에서 정 실장을 만났다.
“작가님.”
“네?”
“그 가방은…. 뭐예요?”
“???”
“어디 이민이라도 가세요?”
큰 배낭에, 노트북 외에도 각종 조명기구를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이 정도는 돼야죠. 야발병원 가는데.”
“….”
“그 복장은 뭔데요.”
“아, 이거요? 옷에서 이온이 나온다고 해서요. 이거 입으면 귀신이 안 달라붙는대요.”
“….”
“걱정 마세요. 실장님 것도 준비 했….”
“출발하시죠.”
철컥─
내 성의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차 문을 여는 정 실장.
머지않아서 후회할 게 분명하지만,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까.
잠시 후.
정새롬 실장이 운전하는 차는 금세 경기도 화성에 닿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도착한 보람찬 정신병원 정문.
어두운 시각, 전방을 밝히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겠네요.”
“와 씨, 분위기 장난 아닌데?”
터벅, 터벅─
겁도 없이 앞장서는 정 실장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폐건물에 담쟁이덩굴 줄기가 얽혀있는 모습.
깨진 유리창과 녹슨 쇳덩이들이 스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건물 내부에 진입했을 때, 나는 입을 떡 벌리고 할 말을 잊었다.
내벽에 빨간색 페인트로 온갖 낙서들이 칠해져 있었는데.
하나 같이 공포심을 자극하는 문구들이었으니.
-나는 아직 살아있다. 제발 살려줘….
-원장 새끼 내가 죽인다 KILL ME
-우리 아기 좀 구해줘요 아 근데 우리 아이가 몇 살이에요?
-자살할래. 비명소리 이제 그만….
눈부신 손전등으로 복도 끝까지 비추었다.
‘빛이 새어 나올 법도 한데. 1층에는 없는 건가.’
당장 시스템을 발견해서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복도를 기점으로 시스템의 빛을 찾는데.
-그워어어.
-꺄르르.
그 순간, 아주 미세한 소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뭐지?”
방금 올라온 계단 밑에서 들려온 것 같은데.
너무 작은 소리라서 환청 같기도 하고.
“실장님, 방금 소리 들으셨죠.”
“무슨 소리요?”
“아니, 방금 이상한 소리 들렸잖아요.”
“기분 탓이에요.”
-그어어어.
-꺄하하.
다시 한번 들리는 소리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진짜 무슨 소리 안 들려요?”
“…. 장난 그만 치세요. 이제 어디로 가면 돼요?”
“….”
예민해져서 잘못 들은 건가.
그나저나, 혹시 어디 구석에 빛을 꼭꼭 숨겨놓은 거 아니겠지?
요즘 시스템이 하는 짓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
“방마다 언제 다 찾냐.”
“뭐를요?”
“글쓰기 좋은 장소요.”
“…. 일단 좀 둘러보죠.”
정 실장은 앞장서서 문을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볼 수 있는 건 나뿐이라 의미는 없을 텐데.
‘진짜 겁이 없구나.’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니까 나만 바보 된 것 같아.
하지만 덕분에, 덩달아 덜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끼이익─
[심리 치료실]
한쪽 문을 열어서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내벽에는 지저분한 자국들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 밖에도 쓰러져 있는 휠체어 몇 대와 붉은 페인트가 칠해진 침대.
“…. 페인트 맞겠지?”
혹시나 해서 구석구석 빛이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찾고 치료실을 나섰는데.
“여기는 없…. 음? 저기요, 실장님?”
그 사이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정새롬 실장.
같이 찾아보자더니 혼자 사라져 버린 건가.
“실장님, 저 이런 거 안 좋아해요!”
떨리는 내 목소리만 메아리쳤다.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이런 씨, 이렇게 사라진다고?
“이봐, 정 씨!”
항상 옆에 있던 사람이 없어지니, 공포감은 더 심해졌다.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서 그녀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터벅, 터벅─
아래층 계단으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구우어어어.”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좀비 네 마리.
“끅….”
곧바로 입을 틀어막고 그들에게서 멀어지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한 좀비 새끼와 정면에서 눈을 마주쳤다.
“구우워어?”
“으아아악─!”
미친 듯이 뛰었다.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타다다닥─
“하아, 하아.”
손전등 빛에 비춰진 그들의 모습은 분명 영화에서나 볼 법한 좀비였으니.
“이게 말이 되나….?”
한참을 헐떡이던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복도 끝 쪽의 방에서 미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기에.
곧바로 정 실장에게 연락하려고 스마트폰을 찾았으나.
“아씨, 내 핸드폰!”
도망치다가 떨어뜨린 것 같다.
아까 좀비 보고 나서 잃어버린 것 같은데.
“…. 진짜 울고 싶네.”
귀신이라든지 좀비라든지, 그딴 걸 믿는 건 아니지만.
단 하나의 가정을 한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시스템, 이 쉑….!”
킹리적 갓심이었다.
사실, 시스템 자체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황당한 능력이잖아.
이 자식, 혹시 좀비도 만들 수 있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