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80)
하와이로 향하는 비행기.
비즈니스 석에 앉아서 편안한 비행을 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타닥, 타다닥─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갑자기 드는 생각이었다.
‘분명히 쉬려고 했는데….?’
어째서 나는 비행기에서도 일을 하고 있는가.
이게 말로만 듣던 워커홀릭인가.
타닥, 타다닥─
노트북의 화면 상단에 새로 들어가는 작품의 제목이 보였다.
「나쁜 남자의 사랑법 1부」
시스템이 임무까지 부여한 마당에 열심히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미션으로 가 떴다는 건 2단계, 3단계도 있다는 뜻일 테니.
‘느낌상 공모전까지 계속 달리게 만들 것 같은데….’
시스템처럼 대충 끄적여도 명작을 뽑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TVM 공모전 제출까지 남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자.’
하나의 습작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다.
시스템이 주는 작품은 본업.
TVM 공모전 준비는 연습.
타닥, 타닥─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중,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작가님.”
“앗, 실장님. 일어나셨어요?”
“네.”
“죄, 죄송해요. 시끄러웠죠?”
잠에서 깬 새롬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네?”
“새 작품 들어가시는 건가요?”
“아….”
이상하게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탁─
나는 곧바로 노트북을 덮었다.
“새 작품이라기보다는…. 자기만족 같은 거예요.”
“제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음, 나중에요. 아직 구상 단계 정도여서요.”
옆에서 정 실장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은 다 보여줘도, 그녀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민낯이었으니.
“작가님.”
“네.”
“나중에 꼭 보여주세요.”
살며시 눈을 떠서 그녀를 쳐다봤을 때.
나를 향해 보내는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공모전 준비…. 더 열심히 해야겠네.’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다듬고 나서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다.
정 실장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시스템이 아닌, 내가 쓴 대본을 떳떳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 나중에 꼭 보여드릴게요.”
* * *
호놀룰루 국제공항.
우리는 예약된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 한 명씩 밴에 탑승했다.
특히, 매니저들은 해외에서도 배우들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케어했다.
하나둘씩 밴에 탑승하고, 남아있는 사람을 찾다가 효주를 불렀다.
“효주야, 같이 가자.”
“네!”
밴을 타고 호텔로 가는 길.
효주는 뜬금없이 단말마를 터트렸다.
“아, 맞다! 국제운전면허!!!”
“…. 나는 발급받았는데?”
“으으, 죄송해요. 미리 해놓을걸.”
“됐어.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여행인데.”
“그래도.”
“정 실장님도 발급하셨다더라. 매니저분들이랑.”
“음….”
세네 명이면 충분하겠지.
그래봤자 2주짜리 여행인데.
얼마 후,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예약한 방으로 이동했다.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 와이키키가 한눈에 보이는 호텔룸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형님, 방이 엄청 좋은데요?”
“그러네.”
나는 이진호와 한 방에 묵었다.
변 팀장님은 배우 매니저들과 한방을 쓰고.
‘음, 그래도 진호가 편하지.’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써 준 정 실장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변 팀장이나 매니저분들이랑 같은 방을 쓰면 약간 어색할 것 같아.
‘게다가….’
진호의 정수리에서 반짝거리는 머머리 빛.
시스템이 내려준 미션을 깨기에도 좋을 것 같고.
노트북을 펼쳐 대본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나를 보더니, 진호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진우 형님.”
“응?”
“여행 와서도 대본을 편집하시는 거예요?”
“아…. 뭐, 그렇지.”
“정말 대단하시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진호를 보며 지나가듯 이야기를 꺼냈다.
“…. 네가 한 번 봐줄래?”
“제, 제가요?”
“그냥 편하게 봐줘. 재미없다고 해도 상처 안 받을 테니까.”
“네, 넵!”
진호의 반응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거의 임재준 이상으로 깍듯한 모습.
나는 곧바로 톡을 보내서 진호에게 대본을 보여주었다.
잠시 후.
“형님.”
“응?”
“…. 재밌는데요?”
“진짜?”
“네! 투박한 맛이 있어요. 김나연이랑은 또 다르긴 한데….”
“그래….?”
“이건 배우들한테 자유도를 많이 주셨네요!”
“음…. 그렇지.”
이전 작품들처럼 배우들의 모든 행동과 표정을 대본에 적을 수는 없었다.
아예 드라마를 통째로 보여주는 시스템이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너무 제 취향이라 객관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는 너무 재밌어요!”
“그래. 고맙다.”
띵동─
진짜 고맙네.
【미션 : 당신이 직접 쓴 대본을 ‘해외영업 3팀 김나연’에 등록된 배우에게 인정받으세요. (1/2)】
곧이어, 이진호의 정수리에 있던 빛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시스템이 발동하는걸 보면 진심인 것 같다.
고비 하나를 넘긴 느낌이라, 땀이 삐질 나왔다.
‘진호랑 같이 와서 다행이야.’
아직 극단 물이 덜 빠져서 그런가.
대박 작품에만 욕심을 부리는 다른 탑스타와 다른 느낌이다.
“일단 나가자. 놀아야지.”
“네, 형님!”
템페스트 식구들이 예약한 호텔룸 사이로 이어진 발코니.
다과가 마련된 테이블과 파라솔은 기본에.
프라이빗 수영장까지 딸린 프리미엄 방이었다.
“와아…. 뷰가 장난이 아니네요.”
“어쩐지 비싸더라니….”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눈에 펼쳐지는 와이키키 해변을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수많은 외국인들이 모래사장에 누워있거나, 수영 혹은 레저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수영장의 한쪽에는 선베드에 누워서 햇살을 쐬고 있는 여인이 눈에 띄었다.
‘여민서?’
제법 세련된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수리에서 빛나는 탈모빔-, 아니, 시스템의 빛이 은은하게 그 존재를 과시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갔대.”
“아, 매니저 형한테 들었는데. 다들 쇼핑하러 가셨대요.”
“희정이도?”
“네! 정 실장님이랑 같이….”
“….”
둘이 왜 이렇게 친한 거야.
그때, 여민서는 서서히 뒤척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음…. 작가님?”
“네? 아, 일어나셨어요?”
나를 물끄러미 보던 여민서가 툭 던지듯 입을 열었다.
“식사하셨어요?”
“아뇨.”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배고픈데.”
“….”
내가 아니라 본인 끼니 걱정이었구나.
이내, 옆에서 눈치를 살피던 진호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 식사 같이 하실래요?”
“그러시죠.”
여민서의 대답과 함께, 셋이서 외식하러 가게 됐으니.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서 여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톡, 토톡─
[어디냐? 점심 같이 드실?]
* * *
띠링─
희정은 스마트폰을 확인하더니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새롬 실장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희정아, 누구한테 연락 온 거야?”
“아, 오빠가 점심 먹자고 해서요.”
“그래? 그럼 같이 식사하러….”
“에이, 우리 너무 멀리 왔어요. 대신 맛집 추천해 줌.”
“맛집을 어떻게 알고?”
“미리 알아놨죠. 헤헤.”
의외로 준비성이 철저한 타입.
자신과 비슷한 성향에 새롬은 미소를 지었다.
“근데 언니.”
“응?”
“아까부터 자꾸 서핑보드만 고르시네요?”
“아, 응. 나 서핑 좋아해.”
“와, 잘 타요?”
“그건 아니고. 그냥 탈 줄 아는 정도.”
어쩐지 하와이까지 와서 래쉬가드 수영복만 챙겨왔더라니.
사실, 희정은 호텔에서 짐을 풀자마자 새롬의 수영복을 확인했다.
“언니, 지금 서핑보드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응?”
“수영복이 심각하단 말이에요.”
“….”
“놀러 와서 래쉬가드가 웬 말이람.”
래쉬가드만 입고 예쁜 몸매는 꼭꼭 숨길 심산인가.
매일 운동해서 만들었을 탄탄한 복근이 너무 아깝잖아.
호텔에서 잠깐만 봤는데도 숨겨지지 않던데.
“언니, 따라와요.”
서핑보드를 구매하는 새롬의 손을 붙잡고 어떤 가게로 들어갔다.
잠시 후,
정새롬은 입을 떡 벌린 채 희정을 쳐다보며 물었다.
“으음…. 나보고 이거 입으라고?”
“네!”
“…. 혹시 이거 벌칙이야?”
“에이, 이게 벌칙이면 너무 가볍잖아요.”
“….”
“그리고 언니가 입으면 완전 예쁠 것 같은데요?”
빨간색 비키니.
입어보긴커녕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 적도 없건만.
“아니야, 나는 됐어.”
“언니이이!!!”
“???”
“제발류. 내 평생소원임.”
“….”
“이거 입으면 오빠가 완전 좋아할 듯!”
“무, 무슨 소리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희정은 당황해서 뚝딱거리는 새롬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언니, 설마….”
“…. 왜.”
“설마 비키니 처음 입는 거 아니죠?”
“다, 당연히 입어봤지.”
“그래요? 그럼 됐네. 내가 사줄게요.”
“….”
새롬은 빨간 비키니를 구매하는 희정을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자신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카드를 긁어버리는 모습을.
“자, 선물! 오디션 선물로 태블릿 사주셨으니까 이건 제 보답이에요!”
“…. 일단 고맙긴 한데.”
태블릿 사주고 벌칙을 받아버렸네.
어쩔 수 없이 일단 받기는 하는데.
지이이잉─
그때, 새롬의 스마트폰에 불이 켜졌다.
“네. 팀장님.”
-실장님, 변혁주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여행까지 와서 무슨 급한 일인가 싶었는데.
-이진호 배우님이 갑자기 배탈이 났다고 하네요.
“네? 많이 아픈 거예요?”
-다행히 그런 건 아닙니다. 약 먹고 쉬면 되는 정도라고 합니다.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 * *
여민서랑 단둘이 밥을 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진호는 괜찮대요?”
“네. 약 먹고 자는 거 보고 나왔어요.”
“…. 갑자기 아프고 그러냐.”
희정이는 언제부턴가 답장할 생각도 없고.
효주는 변 팀장이랑 데이트하느라 바쁘고.
“민서 씨.”
“네.”
희정이한테 추천받은 호텔 근처 해산물 레스토랑.
“…. 뭐 드실래요?”
“빨리 나오는 거요.”
“굿.”
우리는 의외로 마음이 잘 맞았다.
뭐든지 얼른 퍼먹고 냉큼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곧이어 음식이 나오는 족족 입속에 넣어서 먹어 치웠다.
“맛있네요.”
“그러게요.”
밥도 먹고, 후식으로 릴리코이 주스를 두 잔 시켰는데.
배가 불러서 그런가, 순간 욕심이 생겼다.
여민서의 머리에서 반짝거리는 빛무리를 보니.
【미션 : 당신이 직접 쓴 대본을 ‘해외영업 3팀 김나연’에 등록된 배우에게 인정받으세요. (1/2)】
‘미션 클리어가 코앞이야.’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그녀를 불렀다.
“저기, 여민서 씨.”
“네?”
“대본 한번 보실래요?”
“…. 갑자기요?”
“제가 쓴 건 아니고, 아는 사람이 쓴 대본인데요. 그래서 욕하면 천벌 받음.”
“….”
탈룰라 떡밥을 뿌리고 곧바로 톡을 보냈다.
띠링─
「나쁜 남자의 사랑법 1부」
떨떠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여민서.
이내,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의 평가를 기다리는데.
“작가님.”
“네?”
“제목 별루에요.”
“앗, 오래 고민했는데….!”
“아는 사람 거라면서요.”
“….”
이내, 대본의 도입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하는 여민서.
심장이 멎을 것처럼 콩닥거리는 와중에, 그녀의 입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끝내, 그녀의 입술이 슬그머니 열렸으니.
“졸려서 내일 읽을래요.”
“…. 그래요. 그럼.”
역시 여민서랑은 안 맞아.
* * *
그날 저녁.
정새롬은 숙소에서 희정에게 선물 받은 수영복을 입어보았다.
“이건 좀….”
아무리 선물이라지만 빨간색은 너무했다.
수영복이 아니라, 무슨 속옷만 입은 느낌이야.
“….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용기였을까.
커튼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아름다웠기도 했고.
이 밤중에 누가 있을 리 만무했으니.
드르르륵─
발코니로 향하는 커다란 창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하네.”
낮에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발코니의 바깥 풍경.
굳이 멀리 펼쳐진 와이키키 해변까지 갈 것도 없이.
프라이빗 수영장 주변에 켜진 조명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옆에 다과가 올려진 예쁜 테이블과 파란색 파라솔.
그 옆에는 선베드에 누워서 밤공기를 즐기는….
“작가님?”
순간, 뒤를 돌아본 김진우 작가와 정면에서 눈을 마주쳤다.
“푸웁!”
뭐야.
저 사람 왜 먹던 칵테일을 코로 뿜어.
“…. 여기 계셨네요.”
“컥! 콜록! …. 네, 실장님.”
“….”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김진우는 로봇처럼 뻣뻣하게 팔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앉으셔도 되는데.”
“아, 네.”
새롬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밤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네, 저도 그래서 나와 있었어요.”
두 명은 선선한 밤공기를 느끼며 와이키키 해변을 내려다보았다.
“블루 하와이죠?”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새롬은 똑같은 칵테일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진우에게 편안함을 느꼈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나긋나긋한 분위기.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었다.
이진호가 아팠던 이야기, 여민서와의 식사, 희정이한테 끌려다녔던 쇼핑.
“희정이가 좀 그런 면이 있죠.”
“그래도 심성이 착해서.”
“…. 걔가요?”
“네. 그런 동생 한 명 있으면….”
“저처럼 되겠죠.”
“….”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변의 풍경을 감상하던 새롬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풍경을 감상하던 새롬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작가님, 고마워요.”
“네? 뭐가요?”
“덕분에 하와이도 와보네요.”
“…. 제가 정 실장님 덕분에 온 거 같은데.”
새롬은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굳이 구구절절하게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순간, 화사하게 미소 짓는 새롬을 보는 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흠흠….”
“작가님?”
“네?”
“괜찮으세요?”
“…. 왜요?”
“왜 그렇게 땀을 흘려요?”
“….”
진우는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좀 더운가 봐요.”
“이렇게 시원한데….?”
“제가 열이 좀 많아요.”
“그러고 보니….”
정새롬은 몸을 기울여서 한 손으로 진우의 이마를 짚었다.
“얼굴이 많이 빨개요! 작가님,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진호랑 같이 있어서 옮았나?”
“…. 배탈은 전염 안 돼요.”
김진우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는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겠어요. 진호 츄르 줘야 해서.”
“…. 알겠어요. 푹 쉬세요.”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새롬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뭐지, 열은 없으신 것 같은데….”